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21)
“송구합니다, 주군. 속하의 실력이 저자에게 미치지 못하는군요.”
‘주군?’
명도왕 손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주군이라고 했나?
그는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합공을 해야 할 만큼 괴물 같은 적과 싸우기는 했으나, 지외는 광검객(狂劍客)이라 불릴 만큼 검에 미친 절세고수다.
‘······ 그럴 리가.’
대부분의 무림인들은 무공에 미쳐있다고는 하나 지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지외는 육천, 아니 지금은 칠천(七天)이라 불리는 현 무림의 정점 중 한 사람인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를 꺾기 위해 인생의 절반 가까이를 검곡에서 식객으로 보낸 자다.
누군가의 검을 꺾기 위해 인생을 바칠 자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간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하는데,
-팍!
목경운이 바닥에 박혀 있던 요검 악즉을 뽑으며 말했다.
“검마.”
목경운의 부름에 예를 갖추고 있는 검마(劍魔) 지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은 자신을 부르는 방식도 그렇고 뭔가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진심이든 아니든 간에 누구에게든 존대하며 말하던 목경운이었는데, 지금은 일대 대종사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천지회를 무너뜨리니, 복속 어쩌고 하더니 확실히 군림의 길을 걸으려는 건가.’
뭐 나쁠 건 없었다.
명색이 이 지외의 주군이다.
이왕이면 누구도 쉽사리 닿지 못할 곳까지 올라가는 편이 자신에게도 좋았다.
지외가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네, 주군.”
“저기 저 여인을 구해라.”
목경운의 시선이 닿는 곳.
그곳에 죽은 듯이 기절해 있는 천지회주의 막내 제자 위소연이 있었다.
검마 지외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했다.
“명을 받듭니다.”
그가 그렇게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명도왕 손윤이 황급히 외치며 그를 만류했다.
이에 검마 지외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손윤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양암곡주 기해의 여식인 기옥련과 검마 지외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하아······하아······. 다른 지원 병력은 어디에 있는 게냐?”
이런 그의 물음에 기옥련이 난처하다는 듯이 답했다.
“지원 병력은······.”
부친이 죽음을 눈앞에서 겪고 난 후에 곧바로 검마 지외에 의해 보내진 그녀는 오직 목경운을 데려와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게다가 그녀가 본관 광장으로 갔을 때 그곳 역시도 이곳 이상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명도왕. 그곳은 지원병력을 부를 수 있는 여력이······.”
“지금 그걸 말이라고······쿨럭쿨럭······.”
복부가 관통되는 중상을 입었기에 손윤은 신형을 제대로 유지할 수가 없었다.
-쿵!
결국 한쪽 무릎을 꿇게 된 그가 지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의 구출도 중요하지만 저 괴물 같은 자를 처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거요.”
이에 지외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보게. 자네가 뭔가를 착각하고 있는 듯한데 이 이상의 지원 병력이 있다고 생각하나?”
“하아······.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명도왕 손윤이 답답했는지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짜증을 냈다.
목경운이 빠른 속도로 강해진 것은 시혈곡 종관식을 통해 확인했고, 심지어 제자들을 통해서도 들어서 알고 있다.
그러나 눈앞에 저 거구의 사내, 강염은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솔직히 칠천(七天)의 일인인 회주가 나서지 않고는 일대일로 도저히 제압할 수 없어 보였다.
그런데 목경운 하나가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는 건가?
명도왕 손윤이 기옥련에게 말했다.
“다시 가서 지원을 요청해라. 그리고 목경운 너는 지외 공과 함께 저자를 합공하여라. 내가 곧······크윽······.”
손윤이 몸을 일으키려다 비틀거렸다.
강염이 도를 비트는 바람에 더욱 상처가 벌어져 출혈이 심했다.
바로 그때였다.
-타타타타탁!
그의 혈도를 목경운이 타혈하며 지혈점을 눌렀다.
그와 함께 목경운이 그의 복부에 박혀 있는 강염의 투박한 도를 그대로 뽑아버렸다.
-푹!
“끕!”
명도왕 손윤이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상처를 치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도를 뽑아버리게 되면 출혈을 막을 방도가 없다.
“끄으으······너!”
이놈 설마 자신을 죽이려는 건가?
하는데 목경운이 그의 상처 부위에 손바닥을 갖다 대고서, 다른 한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치이이이이!
상처부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끄으읍!”
어지간한 통증 정도는 가볍게 참아내는 손윤이었지만, 이것은 참기 힘들었는지 몸을 비틀며 목경운의 어깨를 붙들고서 신음성을 흘렸다.
그러는데 이윽고 목경운이 그를 밀쳐냈다.
-팍!
손윤이 비틀거리며 볼품 없게도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목경운이 그런 그를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덕분에 이곳에 올 수 있었으니 목숨은 붙여주지.”
“뭐?”
바닥에 주저앉은 손윤이 자신의 복부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열양지기(熱陽之氣) 같은 기운으로 상처 부위를 태워서 지진 것 같았는데, 그런 정도로 간단한 상처가······.
“이게?”
손윤의 눈이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상처 부위가 어느새 아물어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기이한 현상에 놀라워하고 있는데, 어느새 검마 지외가 피식하고 웃더니 이내 위소연을 지키고 있는 복면인들을 향해 신형을 날리는 게 보였다.
“지, 지외······.”
전력을 분산하면 안 되는데 어찌······.
그때였다.
목경운이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았다.
-쾅!
그 순간 바닥이 갈라지고 공기로 물결의 파동이 퍼져나가더니, 이내 주위를 포위하고 있던 스무 명가량의 복면인 중 8할 가량이 가슴을 움켜쥐고서 피를 토해냈다.
“끄웩!”
“컥!”
그렇게 피를 게워내며 괴로워하던 복면인들이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명도왕 손윤의 동공이 흔들렸다.
일순간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네, 소림의 백팔나한진(百八羅漢陣)을 단 일보에 무너뜨려 그것을 두고 그리 부른다더군요.] [일보라······.]듣고도 쉽게 믿기지 않는 일화였다.
병환으로 앓고 있다지만 회주의 전성기 시절을 기억하는 그였다.
그런 회주조차 과연 일보(一步)로 소림의 최고 전력 중 하나라 불리는 백팔나한진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절정 이상의 무위를 지닌 고수들이 진각 한 번에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
바로 그때였다.
-스륵!
눈앞에 있던 목경운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그대로 사라졌다.
어디로 사라졌다 했더니 어느새 목경운은 뒤로 신형을 벌렸던 강염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자신들의 온갖 합공에도 두세 보 이상을 움직이지 않던 괴물이었다.
그런데,
-촥!
목경운이 요검 악즉을 휘두르는 순간, 강염은 그 거구의 신형을 움직여 경신법을 펼치며 뒤로 거리를 벌리려 했다.
저 정도의 괴물이 어찌 단순히 검을 휘둘렀을 뿐인데 이를 피하는 거지?
의아해하는 찰나였다.
-촤촤촤촤촥!
목경운이 검을 휘두른 방향으로 공기가 갈라지며 이내 뒤에 있던 담벼락과 건물의 잔해들이 일(一) 자로 갈라졌다.
검세가 어디까지 닿는지 모를 만큼 계속 갈라지고 있었다.
양암곡주 기해의 여식인 기옥련 역시도 이 광경에 입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더 강해질 거야.] [지금도 회의 후기지수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오호(五虎)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데, 이 이상 강해지면 얼마나 강해진다는 거죠?] [글쎄.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아.] [그 정도예요?] [맞아. 그래서 요즘은 이런 생각도 들어.] [그게 뭐죠?] [······그 사람은 나, 아니 누구도 품을 수 없는 그릇인 것 같아.] [설마 회주님도 포함한 건 아니죠?] [사부님께는 송구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맞아.]그때만 하더라도 ‘와 정말요?’ 하고 그녀의 비위를 맞췄지만, 내심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던 우 오라버니를 꺾었다고는 하나 그래 봐야 정파의 볼모에 불과하기에 언젠가는 늘어나는 적들에 의해 금방 목숨을 잃을 거라 여겼던 그녀였다.
그러나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부친인 양암곡주 기해와 광검객 지외, 명도왕 손윤, 대단주 급의 무인들이 합공을 해도 몇 발자국 이상 떼지도 못하게 했던 괴물이다.
그런 괴물을 압도한다고?
대체 얼마나 강해지면 저리되는 거지?
-촥!
‘이놈······.’
목경운의 검을 피하고 있는 강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가볍게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의 눈에는 목경운의 검에 실려 있는 검세가 작은 산마저도 베어버릴 수준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간만에 제대로 경신법을 펼쳐가며 검을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놈 대체 정체가 뭐지?
분명 그분의 말씀대로라면 이 안에서 자신을 상대할 수 있는 건 육신에 있어서 그분의 피를 이은 천지회주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강함은 대체 뭘까?
그분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인 건가?
-팟!
-촥!
그 순간 그의 뺨으로 날카로운 예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뺨의 피부가 갈라지며 그곳에서 붉은 피가 아니라 끈적거리는 푸른 핏물이 흘러내렸다.
이를 보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역시 인간이 아니군.”
이 광경에 놀라서 쳐다보고 있던 명도왕 손윤조차 미간을 찡그렸다.
워낙 강해서 벽의 벽마저 넘어선 건가 라고 여기기만 했지 인외의 존재라고 여겼던 적은 없었다.
그런데 푸른 피라니 대체 저게 뭐지?
-슥!
제 일계 강염이 소매로 자신의 뺨에 흐르는 푸른 피를 닦아냈다.
그러자 그의 상처 자국이 어느새 사라졌다.
“후우. 이제 겨우 생채기 하나 냈는데 호들갑이군.”
“호들갑?”
“그래도 제법이군. 피할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말이야. 역시 인간의 잠재능력은 상상 이상이야.”
“더 이상 인두겁을 쓴 흉내는 내지 않기로 했나?”
“처음부터 인간이라고 한 적은 없다. 그저 수준에 맞춰서 싸워줬을 뿐이지.”
-꽉!
이런 강염의 말에 명도왕 손윤의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놈이 여력을 남기면서 시간을 끌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지만, 본인 입으로 저리 말하니 무인으로서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 와중에 더욱 놀라운 것은 목경운의 무위였다.
놈을 직접 천지회로 데려온 당사자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때만 하더라도 무공을 거의 익히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저놈이야말로 정말 괴물인 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반년 만에 도저히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일이었다.
그때 목경운이 거리를 벌리고 있는 강염을 향해 검 끝을 겨냥하며 말했다.
“반백의 그 여자와 같군. 요력(妖力)을 운기하며 내공처럼 다루는데. 삼안(三眼)에게 배운 것이냐?”
‘!?’
그 말에 강염이 처음으로 표정 변화를 보였다.
‘이놈 뭐지?’
분명 이자가 말하는 그 반백의 여자는 자신과 같은 제 일계 춘추(春秋)를 말하는 것이 틀림없었고, 그 삼안은 분명 세 번째 목간이었다.
이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소계(小計)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저 정도 무위를 지닌 녀석이 이곳에 어찌하여······.
“기다리지 않는 게 좋을걸.”
“뭐?”
“아아. 아직 주인 놈의 지시를 받지 못했나 보지?”
“지금 네놈 무슨 말을······.”
“하긴. 기껏 차지한 몸을 버리고 자폭을 시도했는데 남겨진 수하들에게 도망치라고 지시할 틈이나 있었겠나.”
-고오오오오오오!
목경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염의 몸에서 열기(熱氣)와 함께 엄청난 살의(殺意)가 뿜어져 나왔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운에 주변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순간 놀라서 쳐다볼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염은 목경운을 무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구나. 네놈이 목간께서 이야기한 그놈이었어.”
-우득! 우득!
강염의 어깨 근육이 울룩불룩해지며 피부에서 날카로운 비늘 같은 것이 돋아나기 시작······.
-촥!
“컥!”
-스륵! 탁!
그때 검은 선이 생겨나며 그의 뒤로 목경운의 신형이 흐릿하게 나타나 멈춰서더니, 흑색 강기로 물든 요검 악즉을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 거뒀다.
-착!
목경운이 고개만을 돌린 채 가슴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서 비틀거리는 강염에게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설마 기다려주길 바란 건 아니겠지?”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