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28)
“미안하지만 보낼 수 없군요. 이미 청령이 제 인생이니까요.”
‘!!!!!’
목경운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청령의 검붉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찰나에 불과했지만 잠시 원래대로 돌아왔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緣)이 이어져 있을 때는 목경운의 감정에 동조될 때가 많았다.
그간에 함께 해왔던 것도 있겠지만 연결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청령의 존재 자체가 원념(怨念)으로 이루어졌기에 연이 끊기는 순간부터 잠시 감정적으로 흔들릴지언정 원혼으로서의 본연의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일순간 흔들릴 뻔한 마음을 붙잡은 청령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목을 붙든 목경운의 손을 전력을 다해 뿌리쳤다.
-팍!
‘!?’
이런 그녀의 매몰찬 뿌리침에 목경운의 눈동자가 희미하지만 떨려왔다.
그 모습에 청령의 머릿속에 회주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 *
[섬서성 북단. 무너진 성터가 있는 곳이오.]-······그곳에 혼과 백이 하나가 되는 술법이 있는 게 확실하느냐?
[쿨럭쿨럭······. 귀검은 오랫동안 금술을 익혔던 구 무림의 흔적을 찾아왔소.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그곳일 줄은 몰랐지만 확실할 거요.]-······.
금술이 없다면 비용헌은 원하는 바를 이룰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것을 빌미로 놈을 찾아낼 필요도 없이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놈과 결착 낼 수 있게 된다.
이 긴 원한의 끝을 내는 순간이 머지않았다.
그때 회주가 말했다.
[하나 서두르는 게 좋을 거요. 놈들 역시 그 흔적의 가까이 까지 파고들었소.]-네놈이 재촉하지 않아도 그럴 거다.
[쿨럭쿨럭······. 하아······. 그리고 한 가지 유의할 게 있소.]-뭘 유의하라는 것이냐?
[류소월······. 그대의 원한이 어떠한 무엇보다도 깊은 것은 알겠지만 이 싸움은 절대적으로 그대에게 불리하오.]-아니. 이젠 아니야.
비록 분노했지만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서 싸우려 했지만 그녀와 함께 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
‘중생.’
녀석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놈의 잠재력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수많은 역경마저 이겨냈다.
그리고,
-딱히 불리할 것도 없다. 혼(魂)을 담은 육신을 얻었을지언정 다른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놈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으니.
청령은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한다면 자신들이 더욱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회주께서 말씀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핏물에 붙잡혀 있는 대법사 명률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이에 그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뭘 어쩌라는 거지?
그런 그녀의 물음에 대법사 명률이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위소연, 아니 당신의 혼(魂)을 담고 있는 육체는 이번 생이 마지막일 지도 모릅니다.]-무슨 소릴 하는 거지?
혼을 담고 있는 육체가 이번 생이 마지막이라니?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 천문(天門)을 통과해 정화되는 과정을 겪습니다.]-그래서?
[하지만 당신의 혼은 백 년 동안 그런 과정을 겪지 않고서 계속해서 강제로 태(胎)에 넣어져 윤회(輪廻)를 겪었습니다.]-그게 어쨌다는 거지? 불완전하게 태어나는 것 이외에 다른 뭔가라도 있다는 것이냐?
[육신만 쇠하는 것이 아닙니다.]-뭐?
[혼(魂) 역시 정화를 겪지 않으면 쇠하게 되고 끝내는 소멸하게 될 겁니다.]의미심장한 대법사 명률의 말에 청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혼이 소멸한다는 게 대체 무슨 의미일까?
원래 혼(魂)은 백(魄)과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중 하나인 혼(魂)이 사라진다면 백(魄)인 내게도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는 건가?
말문이 막혀버린 그녀에게 대법사 명률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완전히 소멸하면 백인 그대도 소멸할 겁니다. 혼백은 하나의 운명을 타고 났으니까요.]‘!!!!!!’
순간 청령이 충격을 받았는지 굳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혼이 소멸하게 되면 자신 역시도 완전히 소멸한다고?
그것은 내세도 무엇도 없게 된다는 것이 아닌가.
말 그대로 존재의 끝을 의미했다.
‘혼이 소멸하면······. 백이 죽는다. 혼이 소멸하면······.’
청령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저 백 년 동안 쌓아온 한을 풀고서 놈의 광기와 집착을 멈추면 모든 게 끝이 날 거라고만 여겼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건······.
-주르륵!
그녀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가혹해.’
청령은 분노를 넘어서 모든 것이 막힌 듯한 답답함에 피눈물과 탄식만이 나왔다.
비록 소중한 모든 것을 앗아갔지만 원한만 갚는다면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놈은 마지막까지도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었다.
만약 비용헌이 최후에 와서 이판사판으로 나와 자신의 혼을 가진 위소연을 죽이게 된다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된다.
그녀는 떨리는 자신을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그의 모습과 목경운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 한 송이 붉은 작약 같더구나.] [이미 좋아하게 된 건 어쩔 순 없잖아요.]-꽉!
청령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원한이 풀리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을까?
모든 걸 포기하고 중생과 함께한다면 좋을까?
수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부질없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수가 틀렸다고 여기게 된다면 놈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거다.
그리 된다면······.
‘······중생.’
녀석의 앞에서 자신은 소멸하게 될 거다.
죽음도 소멸도 두렵진 않다.
이미 그런 것 따윈 옛적에 초월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소멸하고 나면 목경운은 어떻게 되는 거지?
-주르륵!
다시는 볼 수 없게 되는 건가?
그것이 너무 두렵고 슬펐다.
청령이 가슴을 부여잡고서 몸을 숙였다.
너무 괴롭다.
‘······무얼 해도 정해진 비극인가?’
결국 놈은 그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자신은 소멸되리라.
아무리 수많은 수를 그려보아도 도저히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결말은 같았다.
왜 놈이 양동을 펼쳐가면서까지 위소연을 데려갔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위소연이 자신들의 손에 있다면 모를까 놈의 손에 들어갔다면 결국 최후의 패를 들고 있는 것은 놈이 된다.
‘비······용······헌!’
놈의 광기와 집착에 할 말이 없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떤 길을 가든지 그 결말이 최악이라면 결국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차악(次惡)의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수는 단 하나였다.
오직 혼자만의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
‘금술로 놈을 끌어들여서 함께 이 모든 걸 끝낸다.’
그것만이 답이었다.
사실상 동귀어진의 결말이라 할 수 있었다.
-꽉!
‘중생······.’
목경운을 이 수라행에 끌어들일 수 없었다.
목경운이 자신과 함께한다면 놈을 더욱 자극하게 될 테고, 최악의 경우 원한을 갚기도 전에 그의 앞에서 소멸될 수도 있었다.
녀석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너무도 비극일 것이다.
‘끊어야만 해.’
그래야만 적어도 나 하나만의 비극으로 끝낼 수 있다.
녀석이 또 다시 누군가를 잃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청령은 이내 대법사 명률과 회주를 바라보았다.
‘녀석은 어떻게든 도우려 들 거다.’
그렇다면 그걸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유일하게 귀검의 행방과 이 비밀을 아는 저들을 죽이게 된다면 중생이라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내 청령이 그들에게 살의를 드러내며 다가갔다.
* * *
“미안하지만 보낼 수 없군요. 이미 청령이 제 인생이니까요.”
목경운의 진심 어린 그 말에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이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원한과 분노로 단절시켰다.
-······본좌는 아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흔들리고 있잖아요.”
-거짓이 아니다. 연으로 묶어두지 않았다면 진즉에 널 떠났을 거다.
“······.”
-본좌에게 있어서 넌 그저 복수를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아니잖······.”
-아니, 맞아. 본좌가 사랑했던 남자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넌 절대로 그를 대신할 수 없어.
냉혹한 그 말에 목경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처음으로 목경운의 감정 변화를 읽은 청령은 가슴이 울컥거렸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를 감정적으로도 떼어내야만 혼자서 결자해지를 할 수 있다.
‘미안하다. 중생.’
씁쓸함을 억지로 삼켜낸 청령이 이내 귀의영역 혈계의 모든 영력을 집중시켜 목경운을 향해 피로 만들어진 수많은 검을 난사시켰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촥!
“청령!”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검을 무형검으로 가르며 목경운이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
-촤르르르륵!
그녀를 감싼 회오리치던 핏물이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이내 사라져버렸다.
자령(紫靈)의 격마저 넘어선 청령이 작정하고 도주를 시도하니 주변과 동화되는 것처럼 사라져버려 이를 찾아내기가 힘들었다.
-스르르륵!
이윽고 주변을 가득 메웠던 핏물이 사라졌다.
혈계(血界)가 풀린 것이었다.
기감(氣感)을 열고 모든 동력(瞳力)을 개방하려 했던 목경운이 이내 그것을 멈췄다.
이성적으로 붙잡아야 한다고 여겼지만 이상하게 자신을 계속 밀어내려 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를 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째서지?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을 자신을 억지로 밀어내게 한 거지?
분명 뭔가가 있다.
그런데 이들이 전부 죽어버려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살아 있다면 뭐라도,
-흠칫!
목경운이 어딘가로 고개를 돌렸다.
한구석에 쓰러져 있는 두 남녀가 보였다.
그들은 회주의 첫째 제자인 대공자 나율량과 그의 심복이자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인 모약이었다.
이들을 바라보던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지더니,
-슥!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손을 뻗었다.
그건 바로 모약이었다.
목경운이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는 순간 그녀의 몸이 저절로 일으켜져 이내 목경운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팍!
그녀의 목을 붙잡은 목경운이 그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너······. 점혈이 풀렸는데 왜 기절한 척하고 있지?”
-꿀꺽!
순간 당황한 모약이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 * *
천지회 본단 동쪽으로 삼십여 리 정도 떨어진 한 깊은 계곡.
그곳에서 한 무리의 복면인들이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복면인은 지게를 짊어지고 있었는데, 그 지게 등에는 관으로 보이는 것이 실려 있었다.
한 복면인이 관을 손으로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깨어날 일은 없겠지?”
이 물음에 지게를 어깨에 메고 있는 복면인이 답했다.
“가사상태로 보름은 간다고 했으니 당분간은 깨어날 일은 없을 거야. 아니다 싶으면 계속 점혈을 주기적으로 해두면 되니 문제될 게 있나.”
“하긴 뭐.”
이런 그들에게 우두머리로 보이는 복면인이 다가와 말했다.
“잡담은 그만. 이제 출발한다.”
이에 복면인들이 아쉬운 눈빛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일어나자 어디선가 이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어딘가는 바로 관 안에서였다.
-탁!
관 안에서 가사상태로 있어야 하는 존재가 번쩍 눈을 떴다.
그 존재는 바로 위소연, 아니 정확하게는 위소연에게 빙의해 있는 호위 고찬이었다.
고찬이 난감하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가사 상태라 해서 어떻게 빙의에 성공하긴 했는데 이걸 어쩐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