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29)
그것은 아주 공교롭게 이루어진 우연에 불과했다.
-육체! 어디 들어갈 육체 없냐고!
격렬한 전장 속에서 다시 이공자 장능악의 육체로 빙의를 할 수 없게 된 호위 고찬은 어떻게든 새로운 육신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었다.
전장이 워낙 격렬하다 보니 들어갈 만한 육체는 사실상 죽기 직전의 육체이거나 혹은 죽은 육체뿐이었다.
그러한 시체(屍體)에는 들어간다고 해봐야 큰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그는 원혼이기는 했으나 목경운의 술법에 의해 강제로 되었기에 격도 낮았고, 스스로 빙의를 해 본 적도 없을 만큼 경험이 낮았다.
그렇기에 괜히 들어가서 고생할 육체보다는 신중하게 결정해서 장능악처럼 신분적으로도 그렇고 무위도 괜찮은 육신을 선정하려 했다.
그러나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 속에서 그러한 육체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음. 저 정도면 괜찮을 려나?’
회의 대단주로 보였다.
마침 대결에 져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육신의 상태는 그럭저럭 나쁘진 않다.
해서 이 육신으로 들어갔는데,
[살아 있었군. 확실히 죽여주마!] [헛? 머, 멈춰! 나는….]-촥!
[컥!]들어가자마자 바로 근방에 있던 적에게 공격을 당해 목이 베여 육신이 죽고 말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죽을 거라 누가 예측했겠는가.
이에 그나마 멀쩡하고 좀 쓸 만 해 보이는 다른 육체로 들어갔는데,
[뭐야? 죽은 게 아니었나?] [잠깐….]-푹!
[이….이…..개색…..말하는데……끄으으.]또 다시 들어가자마자 심장을 관통당해 회복도 하기 전에 육신이 죽었다.
좀 더 격이 높았다면 육신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다뤄서 빠르게 회복을 유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고찬에게는 무리였다.
‘빌어먹을. 차라리 적을 노려볼까?’
그러나,
[죽어랏!] [켁.]이것은 적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같은 상황의 반복이었다.
고찬은 세 번 가량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고 나니 전장터에서 새로운 육신에 빙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해서 전장에서 떨어져 안전한 곳에서 아무 육체나 구해야겠다고 여겼다.
영체일 때는 몸이 가볍기에 위로 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고찬은 떠올라서 적당한 곳을 물색했는데,
‘응?’
그러다 적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력이 본관 광장에 모인 와중임에도 어느 지점에 한 무리의 복면인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저들을 그냥 보내려 했던 고찬이었지만 복면인들 사이에 정신을 잃은 한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녀는 바로,
‘위소연?’
회주의 막내 제자인 위소연이 틀림없었다.
분명 주인님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누군가를 보냈다고 했던 걸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 저 상태로 있는 거지?
고찬은 찰나에 고민을 했다.
육체를 구해야 하나 저들을 따라가야 하나 고심하던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뭔가 또 개고생할 것 같긴 한데 공적(功績)의 향기가 난단 말이야.’
해서 이렇게 가사상태가 된 덕분에 쉽게 위소연의 육신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슥!
일단 이 관짝 만져보니 생각보다 단단하다.
뭘로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힘을 줘서는 부서질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이 복면인들 하나하나가 보통 고수들이 아니었다.
경공을 펼치는 속도를 보면 하나하나가 절정 이상의 고수들인데다 특히 우두머리는 초절정의 극에 이르렀다.
‘위소연 이 계집의 육신이 강하기는 해도…..’
이들을 홀로 정면으로 상대하기는 힘들지도 몰랐다.
뭔가 기회를 봐서 탈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 듯 했다.
-주인님!
-파르르르르르!
-주인님!
-파르르르르르!
목경운에게 식신으로서 의사를 전달하는 수법을 전수 받은 그였다.
해서 연(緣)으로 위치를 알리기 위해 일부러 떨림과 함께 의사를 전달하고 있는데, 아직 알아차리지 못한 듯 했다.
‘설마 이 관짝 뭔가 주술로 만들진 건 아니겠지?’
안타깝게도 고찬의 그 예상은 맞았다.
급하게 위소연과 함께 관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지만, 관의 틈새 사이마다 특수한 부적(符籍)을 붙였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점……혈…….]목경운은 천지회주가 마지막에 청령의 손에 목이 꺾여 죽기 전, 소리 없이 사력을 다해 아우성치던 것을 기억했다.
분명 자신을 향해 무언가를 알리려 했고 그것은 바로 점혈이었다.
왜 그런 것일까?
이제 그 의미를 이제 알 것 같다.
“컥……”
목경운은 대공자 나율량의 심복인 모약의 목을 움켜쥐고서 말했다.
“너……점혈이 풀렸는데 왜 기절한 척 하고 있지?”
“켁켁. 나, 나는……”
-슥!
“컥, 뭐, 뭐하는 거야?”
목경운이 가슴 쪽으로 손을 가져가자 그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목을 움켜쥐고 있는데다가 몸을 옴짝달싹조차 할 수 없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가슴 한 가운데에 손을 갖다댄 목경운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특이한 점혈이군.”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마혈(痲穴)과 기절시키는 훈혈(暈穴)을 점해놓았는데, 훈혈의 점혈 방식이 통상적인 것과 달랐다.
기감에 예민한 어지간한 자들조차 눈치 채지 못할 만큼 서서히 풀리도록 해놔서 의식만 살아나도록 해놓은 듯 했다.
결론적으로 일부러 이렇게 해놓은 것이었다.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의도했군.’
스스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을 염두해둔 것인가?
목경운은 목이 꺾여서 죽어 있는 천지회주의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 죽었음에도 그 얼굴과 눈빛에는 어떠한 억울함도 괴로움도 묻어나지 않았다.
마치 이를 순순히 받아들인 것처럼.
스스로가 조율할 수 없는 판이 되었음에도 마지막까지 무언가를 해보려 했던 건가.
‘어째서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자는 분명 천맥 비용헌의 피를 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까지 그와 대립되는 길을 걸으려고 하는 거지?
어쨌거나 이 여자는 청령이 어째서 자신을 뿌리쳐가면서까지 혼자서 떠난 것인지 그 답을 알고 있다.
“말해라. 무슨 대화가 있었는지.”
“컥컥……나, 난…..”
“못 들었다는 헛소리를 하진 않겠지? 지금의 내 기분은 어떤 누구에게도 두 번 묻고 싶지 않다.”
마혈이 풀리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전신이 마비된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등골까지 떨려오는 소름에 모약은 입술을 쉽사리 뗄 수 없었다.
이미 이 괴물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는 건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슥!
모약의 시선이 기절해 있는 대공자 나율량에게로 향했다.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듯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대….대공자를…..살려….준다고….공식석상에서 약조한다면……말…..말하겠다.”
“협상할 위치가 아닐 텐데.”
“그…..그럼 죽여.”
망설임 없는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한 쪽 눈썹이 위로 살짝 올라갔다.
이 여자도 흔히 말하는 그런 류의 인간이다.
타인을 위해서 얼마든지 자신의 목숨 따윈 던질 수 있는 그런 류다.
“그렇군.”
체념하는 듯한 말투.
이에 그녀는 목경운이 자신의 거래를 받아들였을 거라 여겼다.
방금 전 그가 그 원혼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다면 이 자에게 있어 그 존재는 상당히 소중한 듯 했다.
모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박이나 다름없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모…..모두가….보는 앞에서…..약조한다면…..”
-슥!
모약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목경운이 가볍게 손짓을 하자 기절해 있는 대공자 나율량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모약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무슨!”
-꽉!
목경운이 손을 움켜쥐는 시늉을 하자,
-푸슉! 푸슉!
나율량의 전신의 곳곳의 몸이 조이며 여기저기서 피가 터져 나왔다.
“당신! 컥컥……”
“잔머리를 굴린다고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걸러서 이야기하면 이대로 터뜨려서 죽이겠다.”
-꽈아아악! 콰드득!
나율량의 피부가 비틀리며 찢겨져나가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특별한 점혈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 되고 있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이놈은 악귀야.’
그 원혼과 나누던 부드러운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었고, 잔혹하면서 냉혹 그 자체였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충혈된 눈으로 괴로워하던 모약이 이내 소리쳤다.
“그만! 전부 말….하…..겠어.”
결국 그녀는 굴복하고 말았다.
* * *
‘위소연이 혼(魂)이고 청령이 원념이 담긴 백(魄)이라는 건가.’
모약을 통해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게 된 목경운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겼는데 이제야 답이 나왔다.
위소연을 삼안(三眼)에게 빼앗긴 시점에서 최악이라 할 만큼 불리한 상황에 처했다고 여긴 그녀가 선택한 것이다.
모든 업을 혼자서 지기로 말이다.
‘일부러 정을 끊었군요.’
정말로 자신을 복수의 도구로 이용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길 수 없는 싸움이 될 수도 있기에 매몰차게 밀어내서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꽉!
목경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의 진의를 알게 되자 목경운은 당장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급선무는 놈들에게 납치된 위소연을 되찾고 청령이 홀로 혼백(魂魄)을 하나로 만드는 금술이 있다는 그곳으로 가게 만들어선 안 된다.
서둘러야 한다.
‘위소연을 가장 먼저 찾아야 해.’
해야 할 것의 순서를 정한 목경운이 이내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가 나오는 순간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하늘과 땅이 울릴 정도로 거대한 함성이었다.
우두머리들이 제압된 시점에서 전장은 이미 그들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적들을 전부 죽이고 제압한 회인들은 새로운 천지회의 주인이 될 목경운이 모습을 드러내자 격정의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파파파파팟!
목경운의 곁으로 수많은 간부들이 다가왔다.
파부왕 호태강을 비롯해 암종주 환야선, 섭춘, 복마권사 광승 자금정, 가면의 마라현 등 제법 부상을 입기는 했으나 주요 심복들은 모두가 무사했다.
-쿵!
이런 간부들 중 파부왕 호태강이 목경운을 향해 한 쪽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추고서 큰 소리로 외쳤다.
“승리를 감축드리옵니다. 주군!”
-쿵! 쿵!
간부들을 비롯해 함성을 지르던 이들 모두가 목경운을 향해 마찬가지로 예를 갖추며 외쳤다.
“승리를 감축드리옵니다!”
수천에 이르는 회인들이 외치자 광장 전체가 떠나갈 듯 했다.
승리로 인해 격앙되고 들떠 있는 이들을 보자 곧장 목적을 위해 천지회를 떠나려고 했던 목경운의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오직 머릿속에 위소연과 청령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그였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을 향해 예를 갖추며 우러러보는 장엄한 광경을 바라보던 목경운은 이내 발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탁!
지금은 이를 감축하고 뭔가를 할 상황이 아니다.
어차피 승리를 했으니 당장 자리를 비운다고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오래 전 본좌는 새로운 세상을 이끄는 대종사이자 개파조사가 되고 싶었다.]순간 청령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울리며 발걸음이 멈칫했다.
왜 하필 이 순간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오르는 걸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은가.
[모두를 아우르는 대종사가 되어다오.]-꽉!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선명히 머릿속을 휘어감으며 목경운의 움켜쥐고 있는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청령의 간절한 바람.
이를 떠올리자 허투루 모든 걸 넘길 순 없었다.
‘……..’
이에 목경운은 자신을 우러러보는 모든 회인들을 향해,
-챙!
승리의 희열을 각인시키듯 검을 뽑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또 다시 터질 듯 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몰아쳐오는 군웅의 뜨거운 열기에 목경운은 난생 처음으로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