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3)
12화 장주 (1)
배서함을 등에 진 남색 도복의 사내가 연목검장의 장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부적을 손에 쥔 채 서성이고 있었다.
-펄럭펄럭!
그러고 있는데, 얼마 있지 않아 그가 서있는 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날개 짓을 하는 그림자가 생겨났다.
이윽고 그것은 마치 하강하는지 점차 작아졌다.
“고조. 놈을 찾았느냐?”
그 말에 작아진 수리 그림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에 사내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도지(刀指) 수인으로 허공의 어딘가를 향해 가리켰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뭔가에 열중했다.
이윽고 사내가 눈을 뜨며 눈살을 찌푸렸다.
‘뭐지?’
고조가 보았던 것을 받아들인 그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장원 전체가 희뿌연 안개가 둘러싸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런 현상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고위 원혼의 강한 념(念)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으로 일종의 귀의영역(鬼意領域)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귀의영역은 방술로 치면 결계에 가까웠다.
이런 귀의영역을 형성할 수 있는 원혼은 적어도 녹령(綠靈) 이상만이 가능했다.
사내가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이것에 있었다.
‘이를 어찌 한다.’
밖에서 놈을 살피려고 했는데 그것이 힘들어졌다.
자신과 거의 버금가는 방술 실력을 지닌 방기 삭(朔)마저도 당했기에 섣부르게 주술로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귀영각이 대부인의 분노를 샀기에 안으로 들어갈 방법도 요원하다.
“흐음.”
그렇게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그의 눈에 양팔에 기녀로 보이는 여인들과 어깨동무를 하고서 걸어오는 한 술에 취한 청년이 보였다.
비틀거리던 청년이 바닥에 토를 하며 쓰러지자 기녀들이 그를 깨워댔다.
“어머머!.”
“목 공자? 목 공자? 집에 가셔서 쉬셔야죠? 구경시켜 주신다면서요.”
“음냐……”
몇 번이나 흔들며 깨우던 기녀들이 주변을 힐끔 거리며 살폈다.
그러다가 목 공자라 불리던 청년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품속을 슬그머니 뒤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내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 * *
음양가본서(陰陽家本書)에 이르길 원혼의 가장 낮은 격인 적령(赤靈)은 일종의 지박령이고 살아있는 존재에게 닭살이 돋거나 가벼운 오한이 들게 하는 정도의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한다.
고찬은 죽고 싶지 않다는 일념, 그리고 억울함, 목경운이 불어넣은 사기(死氣)로 인해 원혼이 되었다.
그것도 가장 격이 낮은 적령이다.
막 원혼이 되었기에 아무 것도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기에 빙의를 하는 것조차도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어떻게 하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청령의 조언이 있기에 하채린의 육신을 장악해나갈 수 있었다.
자아를 억누르니 기억의 편린들이 스며들었다.
피로 물든 방안.
원통으로 가득한 심정.
[할배? 설마 죽은 거야? 할배 중원 사대살수 중 한 사람인 비살염객이잖아. 일어나. 죽으면 안 돼. 일어나라고!] [문주의 자리가 공석인데 백일백살을 달성하라고? 무슨 엿 같은 소리야?] [하면 되잖아! 하면!] [할배…….내가 반드시 할배 자리 물려받아서 복수해줄게. 그 누가 되었든 말이야.]하채린의 기억을 흡수하면서 알게 되었다.
문주가 갑자기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그로인해 비살문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혼란에 빠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채린은 그런 비살문의 문주가 되기 위해 백일백살을 행하고 있었다.
‘그랬었나?’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사대살수의 칭호를 받은 죽은 문주는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이자, 살수계의 정점답게 거의 완벽에 가까운 청부 성공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대단한 살수가 느닷없이 살해 당했다라.
하채린의 기억을 보면 손녀인 그녀도 그렇고 내부적으로 다른 사대살수 중 한 사람의 소행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 거라면 비살문이 복수를 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애로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것은 그들의 문제였다.
고찬은 이 문제를 부디 해결하고 싶었다.
“공자…….”
“네?”
“제발 이 몸에서 빼내주십시오.”
-오싹!
말을 하면서도 소름이 끼치면서 팔에 닭살이 돋았다.
스스로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성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게 되니 감당하기 힘든 고찬이었다.
“빼면 당장 그 여자를 처리해야 하는 걸요.”
“……..”
목경운의 목숨을 노리던 살수였다.
살려둘 순 없었다.
“그 여자 비살문 문주의 손녀라면서요. 차기 문주라고 했던가요?”
“그, 그야 그렇지만……”
“은퇴한 감 호위 때문에도 왔는데 손녀가 죽기라도 한다면 더 귀찮아지는 거 아닌가요?”
“……..그건……그렇지요.”
고찬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목경운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비록 비살문의 문도들이 그녀의 성정 때문에 힘들어하기는 하나 죽은 비살염객에 대한 충성이나 존경심은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 손녀인 하채린이 죽기라도 한다면 비살문 전체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경운을 죽이려 들 것이다.
사실 내심은 바라는 바다.
‘죽었으면 좋겠는데.’
한데 목경운이 죽게 되면 자신도 소멸한단다.
그게 연이 이어진 식신의 운명이라고 청령이 얘기해줬다.
‘빌어먹을.’
기구하다.
정말 노예나 다름없었다.
목경운과 생사를 함께 하기에 죽게도 내버려둘 수 없는 처지였다.
고찬은 착잡한 심경이 되고 말았다.
-후우.
그런 그에게 곰방대로 피면서 연기를 내뿜고 있던 청령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뭘 그리 죽을 상을 하는 게냐? 신입. 어차피 죽은 마당에 살아있는 몸에 빙의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
이게 감사할 일인가?
아니 그럼 남자의 몸에 넣어줘도 되지 않는가.
그러나 청령을 두려워하기에 본심과는 다른 말을 뱉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어차피 살아생전에 약해 빠졌었잖아.
“……..”
-살수를 은퇴하고 자시고 간에 그 나이 먹도록 고작 이류면 거의 가망도 없었구만.
“……..”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고 해야 할까.
청령이 하는 말은 한 마디 한 마디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서 고찬을 괴롭혔다.
다른 의미로 말문이 막혀하고 있을 때였다.
-팍!
그 순간 고찬은 본능적으로 뒤로 고개를 살짝 젖혔다.
“고, 공자?”
그의 바로 코앞에 목경운의 신발 발바닥이 보였다.
조금만 늦었어도 그대로 발길질에 턱을 맞았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확실히 빠르네요. 죽기 전의 고찬 호위보다도요.”
“네?”
그 말에 고찬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자신의 원래 움직임이 아니었다.
육신이 이끄는 대로 따른 것이었다.
절정의 경지에 이른 하채린의 육신은 고작 이류에 불과했던 고찬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기감이 예민했다.
‘아!’
이런 그에게 청령이 피식거리며 말했다.
-뭘 그리 새삼 놀라는 거냐? 강한 몸에 빙의했으니 당연한 것을.
“그, 그런 겁니까?”
-그래도 적응하는 게 좋을 게다. 신입 네 수준이 떨어져서 그 몸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더 시간이 걸릴 테니 말이야.
원혼에도 격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매망량의 영역까지 오른 청령은 빙의하면 원래 몸 이상의 힘을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낮은 적령의 급에 불과한 고찬은 그렇게까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절정의 고수의 몸이니 원래 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절정……..’
고찬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살아생전에 무공을 연마할 때만 하더라도 일류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간절한 바람과 달리 무재가 떨어졌기에 그 문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그런 그가 절정의 경지에 이른 육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를 의식하니 기분이 사뭇 달라졌다.
-이제 좀 마음에 드나보군.
청령의 그 말에 정신을 차린 고찬이 손사래를 쳤다.
절정이라는 경지에 현혹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남자가 아닌 여자의 몸이라는 것은 그를 괴롭게 만들었다.
-신입이라 그런지 사고가 아직 중생스럽군.
청령이 혀를 찼다.
스스로 죽었다는 사실과 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육신은 그저 허물에 불과했다.
물론 그 허물도 마음에 드는 것과 아닌 것에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그저 여자라는 이유로 이리 거부감을 보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쯧쯧. 젊고 아름다운 육체를 얻었으면 만족할 것이지.
“저, 저는 남자입니다. 젊은 건 좋다고 해도 여자의 몸은 도저히…..”
-그래놓고서 안 보이는 곳에서 동경을 보면서 혼자 만족해하면서 히죽거리는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죽여 버린다.
“아니. 제가 그런 짓을 왜 합니까?”
자신은 그런 취향이 없었다.
굳이 빙의를 할 거라면 남자의 몸이었으면 할 뿐이었다.
이런 그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일단은 그 몸에 적응해주세요.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옮기게 해드릴 테니까요.”
당장에 바꿔달라고 하고 싶지만 상황이 어떤지를 인식했기에 고찬은 더는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에 낙담해서 고개만 끄덕였다.
별 수 없이 한 동안은 하채린의 몸으로 지내야 할 듯 했다.
한데 이놈이 정말 순순히 다른 몸으로 옮겨줄까?
묘하게 불안하다.
그러고 있을 때였다.
-쿵쿵쿵!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시죠?”
-공자! 내당의 복현이라고 합니다.
“들어오세요.”
목경운의 그 말에 문이 열리며 내당의 복색을 하고 있는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복현이라는 사내가 고개를 살짝 숙여 간단히 인사를 한 후에 뭔가 희열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공자. 기뻐하십시오.”
“네?”
갑자기 느닷없이 무엇을 기뻐하라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내당무사 복현이 말했다.
“장주께서 깨어나셨습니다!”
‘!?’
그 말에 목경운과 하채린의 몸에 빙의한 고찬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당시 빙의도 아니고 마승의 살(殺)에 의해 죽어가고 있던 장주였다.
비록 몸에서 나가긴 했지만 상당히 약해진 상태였는데 어떻게 목숨을 건진 모양이었다.
‘흠.’
이건 예상 외의 상황이었다.
장주가 목숨을 잃기 전에 기본공이라도 어느 정도 익숙되면 이곳을 떠날까 고민하던 차였다.
괜히 더 있어봐야 대부인이나 둘째 공자와 안 좋게 엮일 뿐이었다.
그런데 장주가 깨어났다라.
그럼 완전히 살아난 건가?
“공자?”
내당 무사 복현의 부름에 목경운이 표정을 바꾸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다행이라는 투로 말했다.
“아아아. 천만다행입니다. 아버님께서 깨어나셨다니.”
연기를 하는 모습에 고찬이 속으로 혀를 찼다.
물론 목경운의 진면목을 모르는 내당 무사 복현은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연목검장의 홍복입니다.”
“그렇군요. 이리 전해주러 오시다니 감사합니다.”
“아!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네?”
“장주께서 공자님을 찾으십니다.”
“저를요?”
“네. 지금 당장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장주가 깨어나자마자 자신을 불렀다고?
뭐지?
-약당 지하에 숨겨진 그 장소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
‘아아…….’
청령의 말에 목경운이 속으로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일단 막 깨어났다고 전하기는 했으나 비급을 숨겨둔 장소를 확인해보았을 수도 있었다.
그런 거라면 당연히 의심의 대상이 자신이었다.
-어떻게 할 거냐?
그 물음에 목경운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지금 당장에는 내당의 무사가 직접 데리러 왔기 때문에 가볼 수밖에 없었다.
내당 무사의 기뻐하는 반응만 보면 아직까지 청령이 예상했던 그 문제로 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곧 본당으로 가겠습니다.”
“아뇨. 당장 모시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장요?”
‘아닌가?’
이렇게 얘기하니 또 확정하기 힘들었다.
뭐가 됐든 일단 장주와의 만남은 미룰 수가 없을 듯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시죠.”
이런 목경운의 말에 하채린의 몸에 빙의한 고찬이 버릇대로 따라갈 채비를 하려고 했다.
이에 목경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고……채린 호위는 창고 방에 정리할게 있지 않나요?”
‘…….고채린이라니.’
이름이 섞였다.
뭔가 오글거리는지 고찬이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창고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
자신이 목숨을 잃은 곳이다.
아직 자신의 시신을 처리하지 않은 건가?
“다녀올 테니. 그 사이에 정리 부탁할게요.”
“……..알겠습니다.”
고찬이 대답을 하자 목경운은 내당 무사 복현을 따라 방을 나갔다.
청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목경운을 따라갔다.
그들이 가고 나서 고찬은 뭔가 착잡해졌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 자신의 시신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젠장.’
고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이내 창고 방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음.’
고찬이 순간 얼굴을 붉히며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남자일 때는 겪어보지 못한 무게감과 감각에 기분이 묘해졌다.
괜히 닭살마저 돋았다.
동경을 바라보았는데 적응이 되지 않았다.
고혹적인 얼굴에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있는 하채린의 모습이 그대로였는데, 확실히 아름답기는 했다.
성장도 훌륭하게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거슬리네.’
가슴이 좀 무거웠다.
고찬이 아무도 없는 주변을 한 번 힐끔거리다 호기심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슬며시 두 손을 가져갔다.
-스르르륵!
그 순간 문풍지를 투과하며 청령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
고찬은 순간 얼음이 돼서 굳어졌다.
-쯧쯧.
이를 본 청령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이내 얼굴을 뒤로 뺐다.
-스르륵!
황급히 문을 열고 나가보았지만 이미 그녀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고찬은 당장에라도 무덤을 파서 들어가고 싶어졌다.
* * *
‘흐음.’
본당으로 향하는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은 본당으로 가는 것이 자신만이 아니었다.
갈래길로 나흘 전과 비교해 얼굴색이 다소 검붉은 빛을 띠고 있는 목유천이 또 다른 내당 무사의 안내를 받고서 걸어오고 있었다.
‘약당 일은 아닌가?’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목경운을 발견한 목유천이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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