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30)
정의맹의 본단 대회의장.
그곳에 정의맹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구파일방과 칠대세가의 수장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을 두고서 무림인들은 십칠웅주(十七雄主)라 칭했다.
평소라면 맹주와 부맹주, 총군사를 포함해 20명이 참석을 해야 하는 자리였지만 이번 회의장에는 총 열네 명의 웅주들만이 앉아 있었다.
맹주와 부맹주, 세 군사는 황궁에서 온 사신을 맞이하고 있었기에 자리를 비우고 있었고, 원래부터 세속적인 일에는 나서지 않는 소림사의 방장과 봉문한 칠대세가의 일원인 사천당가가의 가주, 그리고 남궁세가의 경우 가주 남궁진이 영검산장에서 사망 후 아직 새 가주를 아직 뽑지 않아 빠져 있었다.
사실 웅주대회의가 열린 까닭은 근래에 일어난 여러 사건으로 인해서였다.
과거 정사 대전 이후 무림은 한동안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소림사의 군림보(君臨步) 사건을 시작으로 무림이 한 인물로 인해 시끌벅적해졌기에 더 이상 이를 관망만 할 수 없었다.
“허어. 정 장문인. 그게 사실입니까?”
“아미타불. 사실입니다. 영검산장에 조사관으로 파견되었던 정명 사태께서 직접 확인했습니다.”
항산파의 장문인 정한 사태의 말에 웅주들의 안색이 심각해져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지 않아도 새로이 나타난 일곱 번째 하늘이라 불린 그 천마(天魔)의 행보가 정종에 가깝지 않기에 모인 그들이었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중도의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영검산장, 그리고 칠천(七天)의 일인인 구천무 장주가 그자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하니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이것은 가벼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현 무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무인들이 바로 칠천이었다.
그런 칠천 중 한 사람이 또 다른 칠천에 굴복하여 충성을 맹세했다는 건 지금까지 균형을 맞추고 있던 삼대 세력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게다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모르겠구려. 남궁세가의 가주를 죽였다는 그 정체 모를 도객도 그렇고 청성파의 제자들을 전멸시킨 그 괴세력도 그렇고 말이오.”
팔성의 일인인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진과 남궁세가의 전력이 의문의 도객에게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그자가 새로이 나타난 칠천의 일인인 천마에게 패했다고 듣기는 했으나, 그런 정체 모를 고수의 등장은 현 상황에 있어서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이걸 보시지요.”
청성파의 장문인 진속자가 원탁 위로 탁본 한 장을 올려놓았다.
그것에는 두 이(二)의 한 가운데로 선 하나를 종(縱-세로)으로 관통시킨 표식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이 그 표식이오?”
화산파의 장문인 구철자의 물음에 진속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본문의 제자들에게 새겨져 있던 흉터입니다. 이 표식을 남겨놓은 자들이 어떤 세력인지는 모르겠으나 보통 자들이 아닙니다.”
“보통 자들이 아니라 하면?”
“본인의 판단이 맞다면 그들의 시신은 하나 같이 일검에 당했는데, 이것이 그냥 일검이 아닙니다.”
“그냥 일검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이오?”
“아무래도 이기어검술(以氣馭劒術)로 보입니다.”
“뭐요? 이기어검술?”
이기어검술이라 하면 적어도 벽을 넘어서 화경의 극에 이른 초고수만이 가능한 기예였다.
그 정도라 한다면 최소 팔성(八星)에 준하는 무인이 그들을 전멸시켰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대체 이 짧은 기간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건이 터진 것인가?
그때 은은한 녹빛을 가진 봉을 들고 있는 한 늙은 거지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평화가 너무 길었던 모양이오.”
그는 당대 개방의 방주 홍원석이었다.
혀를 차며 아무렇지 않게 하는 그의 말에 화산파의 장문인인 구철자가 나무라듯이 말했다.
“홍 방주. 어찌 그리 말씀하시오. 하면 누군가 이 평화를 해치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이기라도 했다는 것이오?”
“관과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간 후로 작은 충돌은 있었지만 이런 큰 사건들이 계속된 적은 없었소이다. 이것을 단순한 사안으로 보는 겝니까?”
“······.”
개방 방주 홍원석의 말에 화산파의 장문인 구철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도 내심 이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면 모를까 연달아 사건이 터진다면 무언가 음모나 계략이 벌어진다고밖에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한데 한 단체가 근래 상당히 조용하지 않습니까?”
입을 연 자는 하북팽가의 가주인 팽일현이었다.
황궁에서 벌어진 서 황귀비 사건으로 인해 전력에 큰 타격을 입고 입지가 줄어서, 봉문에 가까운 근신 중인 하북팽가였다.
“아미타불. 팽 가주. 설마 그들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정한 사태의 말에 모두가 자연스레 한 세력을 떠올렸다.
근래 들어 유독 조용하기 그지없는 한 세력.
워낙 잦을 정도로 계속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사련맹(邪連盟)과 달리 그 수장인 회주가 병환 중일지도 모른다고 알려진 천지회(天地會)였다.
“그렇소.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고 황궁에서 서 황귀비를 앞세워 일을 꾸미고 있는 그들이오.”
“흐음.”
이런 그의 말에 일부가 일리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사 전쟁 이후로 힘을 비축하듯이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던 천지회였다.
그들이 이번 일들과 관련이 없다고 배제할 순 없었다.
이에 잘됐다는 듯이 팽가의 가주 팽일현이 이를 몰아붙이려 했다.
“이번 일들이 전부 천지회와 관련되어 있다면 이를 가만히 좌시하게 된다면 더욱······.”
그런데,
“꼭 그렇다고 보기도 힘들지 않소?”
“황보 가주?”
도중에 끼어든 자는 같은 칠대세가 중 하나인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성이었다.
하북팽가와는 유독 사이가 좋지 않은 곳이 황보세가였다.
그렇기에 그가 나서자 팽일현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뭐가 그리 보기 힘들다는 것이오?”
“물론 천지회도 그 배후에 없다고 단정 짓긴 힘들겠지만 개인적인 원한으로 일을 크게 키우려 한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될 거요.”
“뭐라!”
-쾅!
팽일현이 원탁을 강하게 내려쳤다.
그러나 그런 그의 노기에도 불구하고 웅주들 대부분이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은 비웃음이 담긴 모습마저 보였다.
‘큭.’
이에 팽일현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외당주 팽석임이 서 황귀비를 범하려 했던 사건으로 인해 팽가 세력을 절반을 잃은 것도 모자라 봉문에 가까울 만큼 근신 상태였던 그였다.
그렇기에 한때 그의 입김은 예전만큼 크지 않았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냈다고 여긴 가주 팽일현이 화를 억누르며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성에게 말했다.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니오. 황보 가주 그대야말로 감정에 앞서서 본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오?”
“꼭 그런 것도 아닐 겝니다. 천지회에 보내는 간자들을 책임지는 곳이 황보 가주께서 관리하는 암천 아니오.”
“홍 방주?”
암천(暗踐).
그것은 정의맹 내에서도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단체였다.
이들은 비밀리에 양성된 간자들로서 정의와 협을 표방하는 정파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기에 원래는 잘 거론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그 극소수에 포함되는 웅주들만이 모인 대회의 자리였기에 이를 개방방주가 대놓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황보 가주가 그리 말했다는 건 천지회에 관련하여 뭔가 정보가 있는 것이 아니오?”
“역정보인지 확실하지 않은 정보 하나가 들어왔소.”
“확실하지 않은 정보? 그게 무슨 소리요?”
이런 홍 방주의 물음에 황보세가의 가주 황보성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얼마 전 그에게 출처가 불명한 정보가 들어왔다.
분명 자신이 알기로 현재 천지회에 내성에 투입된 대부분의 암천의 요원들은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외성 비밀 연락망을 통해 암구호로 하나의 정보가 들어왔다.
한데 이 암구호를 보낸 자는 시혈곡에 투입시켰지만 목숨을 잃은 암천 요원의 패를 통해 접선을 했다는 게 문제였다.
‘스스로를 연목검장에서 붙잡혀온 볼모라고 했다.’
반년 전, 명문무가인 연목검장이 갑자기 봉문 선언을 했었다.
그 원인을 알지 못했는데, 이 비밀 연락망을 통해 암구호로 정보를 보낸 자는 스스로를 연목검장의 볼모라고 밝혔었다.
아직 이를 확인 중이라 공식석상에 정보를 알리지 않았지만,
“천지회에 조만간에 큰 내분이 벌어질 거라는 정보였소.”
“큰 내분?”
“설마 천지회주의 병환이 악화된 것이오?”
“불분명한 정보가 확실하다면 그럴 것이오. 그렇다면 내분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연관되었다고 보기도······.”
-쿵!
그때였다.
모두의 시선이 원탁의 우측 편에 앉아 있던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그곳에 자신의 왼쪽 눈 부위를 움켜쥐고서 식은땀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그는 칠대세가 중 하나인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인호였다.
“단목 가주? 괜찮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단목 가주.”
이런 그들의 걱정에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인호가 이내 손사래를 치더니, 이내 한쪽 눈이 불편한 듯이 감고서 말했다.
“아아. 얼마 전 수련 중에 눈을 다쳐서. 양해 부탁하오.”
“허어. 힘들면 쉬시는 것이 어떻······.”
“별일 아니오. 그보다 본인 역시도 흥미로운 정보를 가지고 왔는데 이에 대해서 논하는 것이 어떻겠소?”
“흥미로운 정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모두가 자신에게 집중하자 단목세가의 가주 단목인호가 입꼬리를 슬그머니 올리며 의미심장한 투로 말했다.
“이번 안건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그 일곱 번째 하늘이 천지회에서 내전을 일으켰다는 정보요.”
‘!?’
* * *
같은 시각.
황궁에서 온 사신을 모시기 위한 귀빈관.
그곳에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신으로 온 고위 관인이 목이 잘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두 고수가 격렬히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맨손으로 검초를 펼치던 한 중년인이 거리를 벌리며 상대를 향해 왼손 검결지로 가리켰다.
그러자 바닥에 떨어져 있던 자태가 남다른 검 한 자루가 저절로 떠올라 검강을 일으키며 뻗어 나갔다.
-슉!
이렇게 날아드는 이기어검강을 상대가 착(着)의 묘리를 펼치며 검 자루를 붙잡았다.
강기로 인해 파란 불꽃이 튀어 오르는 데도 검이 떨어지질 않는다.
-파치치치!
이를 본 중년인의 눈에 이채가 띠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착의 묘리로 이기어검강을 붙잡는다고?’
이것은 벽의 벽마저 넘어선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할 수 없는 굉장한 기예라고 할 수 있었다.
중년인의 정체는 바로 정의맹의 맹주 정현문이었다.
그런 정현문의 앞에 착의 검식으로 이기어검강을 붙잡은 사내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이게 그 유명한 일휘(一輝)인가?”
그것은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가 만들어준 보검이었다.
이죽거리는 사내를 바라보던 정의맹의 맹주 정현문이 의구심이 넘치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놈 위탁현이 아니로구나.”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내가 위탁현이 아니라면 누가 위탁현이라는 거지?”
정현문을 놀리듯이 비아냥거리는 사내의 정체는 정의맹의 부맹주 만지역검(滿志逆劍) 위탁현이었다.
이런 그를 바라보며 맹주 정현문이 속으로 부정했다.
역시 아니었다.
자신과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위탁현, 아니 의형제 위 아우가 황궁에서 온 사신을 갑자기 멋대로 죽일 리가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팔성의 일인이라고는 하나 무위가 너무 급격히 올라갔다.
맹주 정현문이 자신의 뒤쪽에 오른쪽 다리가 잘려 쓰러져 있는 제갈 군사를 힐끔 쳐다보고는 진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서둘러 제압하지 않는다면 총 군사의 목숨이 위태로울지도 몰랐다.
* * *
전쟁이 끝났기에 광장에 넘쳐나는 시신들과 포로들을 회인들이 정리하고 있었고, 부상자들을 서둘러 의원으로 급히 옮겼다.
천지회의 현판이 부서진 본관의 일 층 대전으로 부상을 입은 이들을 제외한 모든 간부가 모여 있었다.
대전의 석좌에는 우두머리인 목경운이 앉아 있었고, 그 바로 앞 상단의 왼쪽에는 영검산장의 장주인 구천무를 필두로 외부에서 데려온 심복들인 가면의 마라현과 복마권사 자금정, 그리고 섭춘과 몽무약 등이 있었다.
그리고 우측 편에는 파부왕 호태강, 섬독왕 백사하, 암종주 환야선, 시혈곡주 이지염 등이 자리했다.
이런 간부들의 한가운데이자 목경운이 바라보고 있는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반백의 고혹적이면서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밀회의 최고 간부라 할 수 있는 제 일계 춘추였다.
항복하여 포로가 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춘추는 여유롭게 웃는 얼굴로 목경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마음이 급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그녀는 이번 천지회 전쟁에서 목간이 노리고 있는 진짜 목적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눈앞에 있는 저 남자가 꽤 초조할 거라 여겼다.
해서 이를 빌미로 협상을 주도해보려 했는데, 왠지 모를 저 여유로운 모습은 뭘까?
물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목경운의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리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주인님······. 저 고찬입니다. 주인님? 주인님? 정말 안 들리십니까? 위소연 소저의 몸에 빙의해있는데 도저히 탈출할 엄두가 안 납니다. 주인님? 아니 씨발, 관짝에 부적이 붙어 있을 때야 그러려니 하지만 지금은 관 뚜껑이 열려있는데도 안 들린다면 이 새끼 귀가 썩은 거야? 뭐야?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