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31)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위소연을 되찾는 것부터가 꽤 난항이 될 거라 여겼던 목경운이었다.
그러나 가장 난항이 될 수 있는 조건이 의외의 변수로 인해 해결되리라고는 그 역시도 상상하지 못했다.
‘변수.’
목경운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실룩거렸다.
[곁에 믿을 만한 자들이 있고 없고의 차를 분명 느낄 게다.]청령이 했던 말을 허투루 흘린 적은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최후의 최후에는 자신 이외에는 믿을 것이 없다고 믿고 있는 그였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니고 고찬이 이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거라 누가 예상했겠는가.
이로 인해 목경운은 인과라는 것에 흥미가 생겼다.
-아니 씨발. 진짜 안 들리는 건가?
-슥!
목경운이 왼손으로 수인을 맺고서 고찬과 연결된 연(緣)을 붙들고서 머릿속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알겠으니 기다려라.
-헉! 주, 주인님. 혹시 방금 전에 제가 했던 말을······.
-뭐라고 했지?
-휴우.
고찬이 어찌나 당황했는지 목경운의 그 말에 깊은 안도를 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찬의 반응에 목경운은 속으로 피식하고 웃었다.
최악의 난항이 될 수도 있었는데 그가 결정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에 계속 욕을 한 것에 대해선 그냥 넘어가 주는 것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주인님. 위치는 정확히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하나 연(緣)을 따라오면······.
-그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곧······. 아니.
문득 목경운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고찬과 위소연의 육체를 그냥 데리고 오려 했는데 이 상황을 역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잠시 그 상태로 대기해라.
-네? 대기하라는 건? 계속 이러고 있으라는 겁니까?
-그래.
-······아? 어? 음······. 알겠습니다.
대기하라고 하는데 별수 있겠는가.
내심 관 속에서 계속 있는 것이 답답했지만 어차피 목경운의 도움 없이는 탈출할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슥!
목경운은 다른 연(緣)을 건드리며 수인과 함께 의사를 보냈다.
-위소연 수색은 중지한다. 마수 알유를 따라 청령의 위치를 확보해라.
그것은 요수 흠원에게 보내는 의사였다.
천지회의 일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려 한다 해도 곧바로 수색에 나설 수 없기에 공중을 활보할 수 있는 요수 흠원을 미리 보낸 차였다.
그렇게 목경운이 식신으로 삼은 이매망량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이 아무 대답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긴 섭춘이 입을 열었다.
“주군. 심기가 불편하시면 따로 억류시켜서 심문을 하겠습니다.”
이런 그의 말에 밀회의 제 일계 춘추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항복을 했는데 심문을 하겠다고? 예우가 없네.”
“웃음이 나오나 보지? 네년의 손에 수십 명이 넘는 아군이 죽었다고 들었다. 당장 목을 베어서 효수해도 이상하지 않은······.”
“애송이는 빠지지.”
“뭐?”
“아무리 잡혀줬다고 해도 이쪽도 나름 격이라는 게 있단다.”
“하?”
제 일계 춘추의 비아냥거림에 섭춘이 기가 차다는 표정이 되었다.
애초에 대전에 있는 대부분은 주군의 심복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간부들이었다.
비록 자신이 여기에서 연륜이 떨어지기는 해도 목경운에 대한 충심은 다른 이들 못지않다고 여겼다.
-스릉!
섭춘이 광무도를 반쯤 뽑으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버릇을 좀 고쳐놔야겠군.”
“아서라.”
그때 복마권사 파계승 자금정이 그를 만류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 자리에서 제 일계 춘추와 손을 섞은 몇 안 되는 인물이 그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엄청난 무위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주군과 함께하며 그간에 엄청나게 무위가 상승했다고는 해도 상대는 칠천(七天)의 대종사 급 절세고수인 영검산장의 구천무 장주와도 자웅을 겨루는 게 가능한 괴물이었다.
만약 싸우게 되면 섭춘은 몇 초식도 버티기 힘들었다.
“자네가 그리 말하면 내 체면이······.”
“크흐흐. 체면 차릴 필요 없다. 애초에 저 여자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여기서 저 여자와 일대일로 겨룰 수 있는 자는 주인과 저 영감뿐이다.”
“허허허.”
영감이라는 말에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합류하기는 했으나, 이 연배에 어딘가의 일원이 되어 겪는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저 미치광이 땡중이 주군께 충성을 맹세하다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파부왕 호태강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삼광(三狂)의 칭호를 받은 이들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갈 만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 중 둘이나 주군인 목경운의 산하로 들어오다니.
이는 꽤나 놀라운 일이었다.
광검객 지외도 그렇고 특히 모두를 경악케 한 것은 역시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였다.
같은 칠천(七天)의 일인을 산하로 거뒀을 거라 누가 상상했겠는가?
내전을 치르고 나면 많은 희생자가 생길 테니 세력이 약화될 것을 걱정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만큼 새로운 힘들로 채워졌으니 말이다.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자의로 항복했으니 원하는 대답을 한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지.”
“이제 좀 말이 통하네.”
“본체는 어디에 있지?”
“······.”
목경운의 너무도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춘추의 말문이 일순간 막히고 말았다.
본체를 거론하는 걸 보면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이 남자 더 많은 걸 아는 듯했다.
하긴 이러니 목간이 무리해가면서까지 직접 나선 게 아닐까?
“왜 말이 없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놀라워서. 그게 본체가 아니라는 것까지 알아낸 걸 보니 천하의 목간이 견제할 만도 하네. 역시 당신이 예언 속의 존재인가 봐. 천마.”
그 말에 간부들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이들의 대화를 이해하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아서였다.
이를 개의치 않고서 목경운이 말했다.
“불필요한 말들은 배제하지. 목간, 아니 삼안(三眼)의 진짜 육체가 어디에 있는지 말해라.”
“당신 이상한데. 지금 급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위소······.”
-고오오오오오!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짓눌리는 거대한 압력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엄청난 기운이 자신을 억누르는데, 그 압력이 굉장해서 무릎이 떨릴 지경이었다.
-파칵!
심지어 발바닥이 패이기 시작했다.
‘이 남자······. 날 힘으로 억누르겠다는 건가?’
아직까지는 버틸 만했다.
그러나 이 이상 기운이 올라간다면 인간화 상태가 아니라 이매망량으로서의 본신마저 드러내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듯했다.
-고오오오오오!
역시나 억누르는 힘이 더욱 강해졌다.
이 남자 목간과 싸울 때 전력이 아니었던 건가?
가만히 앉은 상태로 드러낸 기운만으로도 자신을 이 정도까지 억압하다니.
정말 인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했다.
‘칫.’
어쩔 도리가 없었다.
본신을 드러내게 된다면 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추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금의 모습을 더욱 사랑하는 그녀로서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이에,
-쿵!
‘장단에 맞춰줄게.’
춘추는 그대로 무릎을 꿇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동력(瞳力)을 개방했기에 그녀의 억누르고 있는 요력(妖力)이 보였다.
아마도 죽은 강염인가 하는 다른 제 일계와 같이 이매망량으로서의 힘을 숨기고 있는 걸로 보이는데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말투도 그렇고 행동도 자존심이 꽤 있어 보이는데 무슨 속셈인 걸까?
정말 자신의 주인이 패했기 때문에 불리해서 항복한 걸로 보이진 않았다.
“어차피 목적이 분명하다면 자신이 있는 곳으로 데려갈 게 뻔한데, 굳이 추적을 해서 찾을 이유는 없지.”
“그것도 맞는 말이네. 역시 당신은 참 마음에 들어.”
무릎을 꿇은 그녀가 가슴골을 보이며 혀를 날름거렸다.
그 모습에 영검산장의 구천무 장주나 섬독왕 백사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참으로 요망한 계집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에도 목경운의 눈빛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쓸데없는 말은 배제하라고 했을 텐데.”
“······당신 참 오랜만에 의욕을 돋게 만드는 매력이 있네.”
“후우.”
-슥!
목경운이 검결지를 슬며시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흠칫!
뒤에서 느껴지는 소름 돋는 예기에 그녀가 황급히 몸을 앞으로 움직이려 했지만,
-푹! 푹!
그녀는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공에서 생성된 두 자루의 무형검(無形劍)이 교차하면서 자신의 목 뒤를 눌렀기 때문이었다.
‘이건 대체?’
춘추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자신의 목 뒤로 교차하여 바닥을 관통한 이 날카로운 기운은 본신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막기 힘들었다.
춘추가 고개를 슬며시 들어 올리며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가능할까?’
이 남자라면 그 괴물 같은 목간의 대항마가 가능할까?
그를 위해서 자연스레 항복하여 척을 지는 길을 선택했지만 개죽음은 사양이었다.
목경운을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강염이나 귀검의 말대로 당신 역시도 가능성이 있겠어.”
귀검이라는 말에 그녀를 더욱 압박하려 했던 목경운이 검결지를 움직이려 하던 것을 멈췄다.
“가능성?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난 지금 일생일대(一生一大)의 도박을 하고 있거든.”
“도박?”
“맞아. 머지않아 목간은 알게 될 테고 그리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아마도 죽음이라는 형식으로 말이야.”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이 여자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항복했다는 건가?
의구심과 의아함이 동시에 피어났다.
차라리 밀회의 간부급이 아닌 제 삼계 정도의 위치라고 한다면 이해가 되겠지만, 그녀는 밀회에서도 높은 위치의 존재였다.
심지어 인간도 아닌 존재가 삼안을 척지고 정말로 자신에게 붙으려 한다고?
의구심 쪽이 아직 더 강한 와중인데 그녀가 말했다.
“중요한 이야기니까 들어. 목간이 있는 위치를 아는 제 일계는 단 두 명뿐이야.”
“귀검과 파제.”
이런 목경운의 말에 춘추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강염이 말한 거야?”
“그래.”
“······오래되었니 뭐니 하며 온갖 고고한 척은 다 하더니 결국 다 불었네. 어지간히 죽기 싫었나 봐.”
춘추가 혀를 찼다.
강염이라면 죽으면 죽었지 입을 다물 거라 여겼던 그녀였다.
그러나 역시 무슨 일이든 닥쳐봐야 그 민낯을 알 수 있다는 게 맞는 말인 듯했다.
그때 목경운이 그녀에게 말했다.
“놈과 같은 말을 반복할 거라면 너도 그리 쓸모가 있는 편은 아니겠군.”
“아니. 쓸모가 없진 않지. 이렇게 매력 넘치는 여자가 당신 편이 되어주겠다고 했는데 말이야.”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벌써 질리려고 하는데 어쩌지?”
-슥!
목경운이 검결지를 조금 움직이자 그녀의 목을 교차하고 있던 무형검이 움직이려 했다.
목을 베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기운에 춘추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정말 다루기 힘든 남자네. 당신. 뭐 좋아. 쉬운 남잔 재미없으니까. 그런데 귀검을 찾으면 무슨 수로 그에게서 목간의 위치를 알아낼 거지?”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입을 열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미안하지만 그는 강염이나 다른 일계들과는 달라. 죽으면 죽었지 힘으로 절대 굴복하지 않아. 그러니까 위험을 무릅쓰고도 목간이 아닌 회주를 따른 거기도 하고.”
‘회주를 따랐다고?’
그러고 보니 모약이 해준 이야기 중에 유독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마치 귀검이 회주의 뜻대로 움직여주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이라면 목간의 내부에도 균열이 있는 것일까?
의아해하는데 춘추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회주가 죽은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나야.”
“그게 너라는 소릴 하고 싶은 거냐?”
“맞아.”
“죽으면 죽었지 힘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자를 무슨 수로 설득한다는 거지? 묘수라도 있다는 건가?”
“최고의 묘수지. 귀검과 나는 피가 이어져 있으니까.”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