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36)
-무(武)를 숭상하는 자들이 모여 높은 성(城)을 이룬 곳. 구무림의 전설이 살아 숨 쉬었던 터전.
[쿨럭쿨럭······. 역시 그대가 더욱 잘 아는구려.]-해서 놈은 어디에 있지? 혹여 속일 생각은 버려라. 그렇게 된다면 네놈은 본좌와 지옥 밑바닥까지 함께 하게 될 거다.
이런 청령의 위협에 천지회주가 피 기침을 내뱉더니 쓴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지옥······. 그대가 그걸 원한다면 천맥의 일족인 내게는 거절할 명분 따윈 없는 듯하구려. 쿨럭쿨럭. 다만 지금 살아가는 이 세상이 더욱 지옥 같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소?]-······.
[쓸데없는 소릴 한 것 같구려. 귀검은······. 하아······. 귀검은 무너진 옛 성터에서 멀지 않은 죽림(竹林)에서 기다리고······있다고 보고해왔소.]-죽림? 대나무 숲을 말하더냐?
[그렇소. 혁대에 있는 이걸······. 이걸 가져가면······. 내가 보냈음을 알 것이오.]청령의 영력에 붙들려 움직일 수 없는 그였기에 눈짓으로 자신의 허리 혁대를 가리켰다.
혁대에는 회주의 패가 달려 있었다.
이를 본 청령은 문득 목각인형 속에 있을 때 섬독왕 백사하가 목경운에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와 겨루다 회주에게 저 패를 전달해달라 부탁했다고 했었다.
저것이 회주가 귀검을 움직일 수 있는 매개체인가.
격이 극에 이르러 영체가 물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청령이기에 그의 패를 아무렇지 않게 거두었다.
이를 거둔 그녀가 물었다.
-한데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다.
[쿨럭쿨럭······. 무엇이 말이오.]-귀검 말이다.
[······.]-금술을 얻었는데 어째서 네놈에게 보내지 않고 그곳에 머무르는 거지?
핵심을 찌르는 그녀의 물음에 천지회주가 묘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그건······.]* * *
그로부터 이레 후.
‘찾았다.’
영체인 그녀는 하늘을 자유로이 활보할 수 있고 음식을 섭취하거나 수면을 취할 필요가 없기에 고작 이레 만에 섬서성 북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낮에도 온전히 영력을 최대로 행할 수 있었다면 더 빨리 도착했을 것이다.
격이 극에 이르렀다고 해도 양기(陽氣)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태양에 장시간 노출된다면 아무리 그녀라 해도 오직 음기(陰氣)로만 이루어진 영체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저것들은 뭐지?’
뜻밖에도 귀검이라 추측되는 죽립인이 수십여 명에 이르는 무인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보게 된 청령은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현 무림의 최고 고수인 팔성(八星)의 일인인 것도 알았고 밀회의 제 일계에 속한다는 것도 알았지만 이건 예상외였다.
-촥! 촥!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적의 요혈만을 노려 일수에 죽이고 있었다.
단 하나도 쓸데없는 불필요한 동작이 없었다.
적들의 합공에 의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적들을 그 효율적인 방식으로 일검에 죽여 나갔다.
한데 청령이 이를 인상 깊게 보게 된 것은 저 검법은 일말의 수(守)가 없었다.
오직 공(攻)으로만 이루어졌다.
자칫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해서라도 적을 확실히 죽이기 위한, 아니 말살하기 위한 검법이었다.
‘스스로의 안위 따위는 배제한 검법이라니······.’
어떤 의미로 정말 위험한 검법을 익혔다.
하나 이런 단점을 단 하나로 극복해내고 있었다.
‘······괴물이군.’
검(劍)으로 적들의 치명적인 공격들을 전부 흘려보냈다.
이렇게 완벽하면서 극에 이른 이화접목(梨花接木)의 수는 처음 본다.
이자가 어째서 귀검(鬼劍)이라 불리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슥!
귀검으로 짐작되는 죽립인이 마지막 적을 죽이자 청령은 귀의영역(鬼意領域)인 혈계(血界)를 펼쳤다,
마침 조건이 좋았다.
높게 치솟은 대나무 숲 덕분에 주변이 어두웠고 수십여 명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이 일대가 사기(死氣)로 넘쳐났다.
그렇기에 이 조건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스멀스멀!
더욱 강력한 귀의영역을 구축할 수 있었다.
주변의 사기가 맞물린 그녀의 영력이 사방으로 피로 물들이며 어느새 주변은 오직 핏빛으로만 가득해졌다.
귀검을 움직일 수 있다는 회주의 패를 가져왔음에도 그녀가 그를 이렇게 묶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것은 회주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
[······하아······하아······. 뭔가 금술(禁術)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문제가 발생한 것 같소.]-문제가 발생해?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서 동일한 문구의 서신이 주기적으로 왔소.]-동일한 문구?
[그렇소.]-그게 뭐지?
[금술의 진원지에 가까워졌다. 이것뿐이오.]-뭐?
[말 그대로요. 금술의 진원지에 가까워졌다는 보고가 반복적으로 이뤄졌소.]-그게 몇 번이지?
[열두 번이오.]-!?
천지회주는 귀검이 거의 닷새 주기로 같은 내용을 적은 비밀 전서구를 자그마치 열두 번에 걸쳐서 전달했다고 한다.
밀회에서 감시하는 눈이 있기에 비밀 전서구를 회수하는 것은 보통은 한 달에 한 번 이루어졌는데, 장로전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피치 못하게 두 달째에 회수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회수된 두 달 치의 비밀 전서구에 같은 보고만이 닷새 주기로 이뤄지자 천지회주는 이를 기이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회 내부의 일이 정리되면 직접 그곳에 가려 했으나, 이젠 류소월 그대가 그 반복되는 전서구의 비밀을 알아내야 할 것 같소.]회주가 했던 그 말을 상기시킨 청령이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 비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귀검이 회주를 배신했다거나 일신에 어떤 문제가 생겨 그를 놓치게 된다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니 어떻게든 제압부터 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그녀는 혈계를 열어 피를 움직였다.
-스멀스멀!
핏물 속에서 이내 수많은 피의 가시가 돋아났다.
그렇게 돋아난 피의 가시가 귀검으로 짐작 가는 죽립인을 향해 일제히 쇄도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
날아드는 가시들에 죽립인이 반쯤 집어넣었던 검을 뽑았다.
전광석화와 같은 검광이 흘러나오며 찰나의 순간 죽립인을 뒤덮고 있던 붉은 피의 가시들이 갈라지며 핏물로 녹아내렸다.
‘그래, 그 정도는 해줘야지.’
그녀의 격은 예전과 비교하기 힘들었다.
이곳까지 쉬지 않고 오면서 불처럼 타오르던 분노가 어느 정도 차분해지면서 천지회에서 냈던 것만큼의 영력이 극대화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평시에 적어도 칠천(七天)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고강해졌다.
-촤륵!
순식간에 핏물 속에서 나온 두 손이 죽립인의 발목을 붙잡고서 잡아당겼다.
이에 죽립인의 균형이 무너지며 뒤로 넘어지려 했다.
그 순간에 맞춰서 핏물들로 이루어진 창이 튀어나와 죽립인의 양손과 허벅지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런데,
-푹!
-팟!
넘어지려 하던 죽립인이 허리를 뒤로 젖혀 바닥에 검을 꽂더니 이를 지지대 삼아 몸을 뒤집으며 그와 동시에 검을 잡은 손을 밀어내 몸을 위로 띄웠다.
그렇게 몸이 뜬 죽립인이 검결지를 휘두르자,
-촤촤촤촥!
날카로운 예기가 흘러나와 그녀가 핏물로 만들어낸 창들을 베어냈다.
죽립인이 그 상태로 손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하자 바닥에 꽂혀 있던 그의 검이 튀어나와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탁!
검을 쥔 죽립인이 이내 검강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탄검강(彈劍罡)을 날려댔다.
-촤촤촤촤촤촤촥!
날아든 푸른빛의 검강이 혈계를 부술 기세로 사방에 물든 핏물들을 갈랐다.
그렇게 갈라지며 일순간 혈계가 아닌 실제의 세상인 대나무 숲의 일부가 잠시 드러났으나, 이내 핏물이 이를 뒤덮어버렸다.
‘이걸로 부족한가.’
하나 강한 진기에 영력으로 만들어진 세계가 걷힐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죽립인이 피로 뒤덮인 한 곳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고오오오오!
그의 검에 서려 있는 검강의 크기가 거의 오 장 가까이 치솟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렇게 치솟았던 검강이 응축되듯이 줄어들며 푸른빛이 더욱 짙어져 갔다.
‘저건 안 되겠어.’
기운을 최대한 집약시켜 혈계를 강제로 베어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청령이 이내.
-촥!
핏물 속에서 튀어나와 현신했다.
청령의 손에 들려 있던 곰방대에 핏물이 달라붙으며 검의 형태를 이뤘다.
그녀는 피로 만든 검에 원념이 집약된 영력을 모았는데 그 기운은 죽립인이 검강을 응축시킨 것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렇게 영력으로 이루어진 검과 응축된 검강이 부딪치려던 찰나였다.
“흡.”
갑자기 죽립인이 검을 휘두르던 것을 강제로 멈추는 것이 아닌가.
단순하게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와중에 억지로 멈추려고 한다면 그 행해지던 힘의 여파가 고스란히 스스로에게 닥치며 몸에 과부하를 일으킨다.
하물며 이럴 진데 검강을 응축시킬 정도로 이 정도로 기운을 일으킨 상태로 그것을 강제로 멈추게 한다는 것은,
-우득! 우득!
죽립인의 몸에서 근육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검을 잡고 있는 손이 강하게 떨려왔다.
검병을 쥐고 있던 손바닥이 찢기며 핏물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이런 그의 모습에 청령이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의도지?
이에,
-촥!
청령은 영력으로 만든 피의 검을 휘두르는 것을 마찬가지로 멈췄다.
육신이 존재하는 그와 다르게 영체로 이루어진 그녀는 가했던 힘을 멈추는 것에 대해서 과부하가 생기진 않았다.
피의 검을 죽립인의 바로 목 앞에서 멈춘 청령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검을 왜 멈춘 거지?
그런 그녀의 물음에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죽립인이 이내 입을 열었다.
“정말로 풀려났군.”
-뭐?
“고작 백 년에 불과한데 원혼으로서의 격이 이리 높다는 건 화신과의 접촉이 아니라 그대의 의지로 풀려난 건가?”
‘!?’
죽립인의 그 말에 청령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가 알고 있는 귀검은 밀회의 간부라 할 수 있는 제 일계이나 모종의 이유로 천지회주와 뜻을 함께한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이자가 자신에게 하는 말투를 들어보면 마치 뭔가를 아는 듯했다.
-네놈 뭐지? 대체 본좌에 대해 뭘 알고 있는 것이냐?
“······기껏 봉인에서 풀려났는데 원한을 불태워야 할 그대가 이곳까지 왔다는 건 그분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일 테고 회주가 하는 일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것이겠군.”
그의 말에 청령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조금 더 나아간다고 해도 목경운의 할아버지인 해영약선 장문노의 죽음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 정도라 여겼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닌 듯했다.
단순한 정보만으로도 상황을 이 정도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통찰력을 보이려면 많은 것을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윽고 청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무래도 네놈의 입을 열게 하면 많은 것을 알게 될 것 같구나.
“······.”
-강제로 여는 편이 나을지. 아니면 네놈 스스로 여는 편이 나을지는 직접 선택해라.
-슥!
청령이 그에게 회주로부터 받은 패를 보였다.
이를 본 귀검으로 짐작되는 죽립인이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더니 이내 옅은 탄식을 흘리며 말했다.
“그걸 가져왔다는 건 그분에게 순순히 받았든지 강제로 빼앗았든지 둘 중 하나 일터.”
-후자였다면 네놈의 위치를 어떻게 알았을 것 같으냐?
“그분마저도 이제 금술의 흔적에 가까워진 마당에 이곳을 알아내는 것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죽립인이 고갯짓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시신들을 가리켰다.
이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밀회에서도 금술의 흔적을 기어이 알아냈다는 것을 의미했다.
-흥, 하면 네놈이 반복적으로 같은 전서구를 보낸 것을 안다고 하면 전자라고 여길 테냐?
“반복적으로······. 같은 전서구를 보내? 그게 무슨 소리지?”
죽립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물었다.
이에 청령이 말했다.
-네놈이 금술의 흔적에 가까워졌다는 전서구만 계속 반복적으로 보냈다고 하는데, 이걸로 충분히······. 네놈······. 왜 그러는 것이냐?
‘!?’
죽립인이 뭔가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청령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놈이 작게 뭔가를 반복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설마라는 말이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하는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그때 청령이 놀란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까지 귀의영역인 혈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주변의 공간들이 갑자기 휘어지는 것이 보였다.
대체 무슨 현상인가 하는데 이윽고,
-쩌저저저저적!
놀랍게도 공간이 비틀리는 것을 넘어서 그녀의 혈계가 강제로 부서져 버렸다.
영력이 더욱 강해졌기에 쉽사리 깨지기 힘들다고 자부했는데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혈계가 깨지면서 드러난 대나무 숲마저 휘어지고 있었다.
‘이게 대체?’
의아해하고 있는데 귀검으로 짐작되는 죽립인이 입을 열었다.
“단순한 대나무 숲처럼 보이지만 이 죽림 전체가 하나의 진법이다.”
-······이게 진법이라고?
“단순한 진법이 아니다. 대나무가 꽂힌 위치들을 보면 고도의 진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것은 하나도 아니고 수백여 가지가 집약된 것으로 특정 조건이 맞아들지 않으면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진법이다.”
-설마 이게 그······.
“그래, 이 대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진법이 금술의 흔적으로 향하는 입구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쯔저저저적!
그렇게 휘어지던 대나무 숲의 공간이 소용돌이 형태로 완전히 비틀리더니, 이내 청령을 비롯한 죽립인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쑤욱!
그리고 그 소용돌이의 비틀림이 끝나고 다시 공간이 원상복구 되는 순간,
죽립인이 어느새 혼자 대나무 숲 한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산들바람이 불며 대나무가 흔들거리며 잎들이 흩날리며 떨어지자, 이를 맞은 죽립인이 주변 대나무의 배치를 스윽하고 훑으며 살펴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드디어 찾았군. 전서구를 보내야겠어.”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