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37)
-치이이이이!
너무 어지럽다.
그리고 영체가 타들어갈 것처럼 고통스럽다.
대체 여긴 어디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청령은 기이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자신이 희귀한 은목(銀木)으로 만들어진 옥창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 은목이 가진 원념을 압박하는 힘 덕분에 제대로 운신도 하지 못할뿐더러 고통이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끄으으.
괴로워하는 와중에도 청령은 이곳이 정확히 어딘지를 알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그녀는 은목으로 만들어진 옥창만 신경 쓴다고 미처 알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하나 깨달을 수 있었다.
‘설마?’
주변의 모든 것이 거대했다.
커다란 벼루부터 붓, 수많은 약재 통들과 큰 서적들.
이 모든 게 자신보다 컸다.
혼란스러울 만도 했지만 그녀는 거대한 주변 환경들로 인해 하나의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줄어든 건가.’
중생의 목각인형에 봉해졌을 때와 비슷한 이치인 듯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목각인형은 가둬두는 데 그친다면 이건 거의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은목이 가진 정화의 힘은 원념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소멸시킬 수도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최악의 위기라 할 수 있었다.
‘안 돼.’
이곳에 계속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판단한 청령은 괴롭지만 영력을 끌어올려 은목을 부숴버리려고 했다.
원혼으로 격이 극에 달한 자신이 몸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고작 이 정도 은목을 파괴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고오오······파차차차차착!
-아아아아악!
영력을 끌어올리던 청령이 이내 영체가 통째로 갈려버릴 것만 같은 고통에 이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괴로워하던 청령이 비틀거리며 이해할 수 없어 했다.
격이 낮은 원혼이라면 모를까 자신은 이미 고위 이매망량이나 다름없는 격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째서 영력을 방출시킬 수 없는 거지?
의아해하던 그녀가 이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은목으로 만든 옥창의 바닥, 즉 책상 위에 진형을 갖춘 부적들이 자신을 중심으로 붙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한데 뭔가 이상한 부적이었다.
목경운과 함께 있었기에 많은 부적을 보았다.
그런데 이 부적들은 그것들보다 더욱 복잡한 문구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부적 자체에서 내뿜는 주력마저도 보통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게 은목과 함께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자신이 함부로 영력을 방출하지 못하도록 막는 듯했다.
‘······빌어먹을 년.’
청령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서 아까를 떠올렸다.
죽림(竹林)의 공간이 소용돌이처럼 휘어지며 그녀는 그곳으로 빨려들어 갔었다.
-우저저적!
이윽고 그녀의 눈앞이 환해지며 주변이 녹색으로 뒤덮인 넓은 초원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벌어진 신묘한 일에 청령은 일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대체 여긴 어디지?
아무리 진법이 고도로 발달했다고 해도 어떻게 대나무 숲속 안에 이런 넓은 초원이 숨겨져 있을 수 있는 거지?
의아해하던 청령의 눈에 이내 무언가가 띄었다.
그것은 초원의 한복판에 있는 초가였다.
[······이런.]그때 귀검으로 짐작되는 죽립인이 뭔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이에 그녀가 물었다.
-왜? 이곳이 아닌 것이냐?
[이곳이 확실하다.]-한데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이런 기시감은 처음이다.]-기시감?
기시감(旣視感).
그것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데, 이런 상황이나 주변의 환경이 마치 겪어본 적이 있는 일인 것처럼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현상이었다.
이런 죽립인의 말에 그녀 역시도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이 중생 놈 같은 전서구를 열두 번이나 보냈다고 했었다.
마치 전부 처음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설마?’
청령이 커진 눈으로 죽립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놈 혹시······.
[이것 참 재밌구나.]‘!?’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에 청령이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영감(靈感)이 극대화된 자신이 이렇게나 가까이 누군가 다가오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열 보 뒤로 옥고리가 달려 있는 은빛 지팡이를 짚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긴 청흑색 머리카락에 또렷한 눈썹, 동그란 눈에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서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뭐지?’
청령의 눈이 경계심으로 가득해졌다.
어떻게 이런 존재가 가까이 오도록 알아차리지 못했던 거지?
여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도저히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다.
기운만으로 친다면 중생마저 상회하고 있었다.
어찌 이런 존······.
-슥!
그때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지팡이를 내밀었다.
그 순간 청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영체인 자신이 돌처럼 굳어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데,
-스륵!
그때 귀검으로 짐작되는 죽립인이 이형환위를 일으킬 정도로 빠르게 신형을 날렸다.
단숨에 여인의 가까이로 거리를 좁힌 죽립인이 지팡이를 쥐고 있는 여인의 손목을 베어버리려고 했다.
그런데,
-채앙!
‘!?’
죽립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여인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아무리 강기를 일으키진 않았다고 해도 상대가 강하다고 여겨 팔성의 공력으로 휘두른 검을 맨손으로 잡아냈다.
이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죽립인이 황급히 강기(罡氣)를 일으키려고 했는데,
-파르르르르! 파착!
“큭.”
여인이 붙잡은 검신의 끝이 떨리더니 이내 검 전체로 그 떨림이 이어지더니, 이내 안 그래도 찢긴 손바닥의 상처가 더욱 벌어졌는지 피가 터져 나왔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피가 터지는 것과 함께 죽립인의 신형이 뒤로 밀려났는데, 자그마치 십여 보가 넘었다.
-촤르르르르르르르!
만약 용천혈에 진기를 가하지 않았다면 더욱 밀려났을 것이다.
멈춰선 죽립인의 발바닥을 중심으로 주변의 바닥에 나 있던 풀들이 썩어들더니 이내 바스라져버렸다.
‘······뭐지?’
죽립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손바닥을 타고 기운이 들어오는 순간 검병에서 손을 놓아야 한다고 여겼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몸을 파고든 기운을 무조건 흘려보내야 한다고 여겨서 용천혈로 기운을 내보냈다.
안 그랬다면 이 기이한 기운에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죽립인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자신의 검신을 쥐고 있는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또다.’
기시감이 찾아오자 죽립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는데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몸이 기억해서 신기하느냐?] [뭐? 지금 그게 무슨······.] [뭘 부정하느냐? 머리로는 아니더라도 그리 당했으면 당연히 몸이 기억하는 것이 당연하겠지.] [몸으로······. 기억해? 그렇다면 역시······.]죽립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청령으로부터 들은 말과 묘한 기시감들 때문에 뭔가 이상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그 이상함이 이 여인이 하는 말로 인해 확실해졌다.
아무래도 자신의 기억이 온전치 않은 듯했다.
이를 확신한 죽립인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 열세 번째인가?]이런 그의 물음에 청흑색 머리카락 여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너······. 설마 기억을 되찾은 것이냐?]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흐음.]여인의 한쪽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러더니 이내,
-스륵!
여인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뒤로 밀려나 있던 죽립인의 뒤에서 나타났다.
죽립인의 뒤로 나타난 여인이 순식간에 왼손으로 금나수의 수법을 펼치며 그의 팔을 뒤로 꺾어 앞으로 넘어뜨렸다.
-쿵!
죽립인이 인상이 일그러졌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아무리 여인의 신형이 쾌속하고 금나수의 수법이 대단했다고는 하나, 자신이 이 정도로 무력하게 당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체 이 여인의 정체가 뭐지?
-팍!
당혹스러워하는 그의 뒷머리로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의 손이 닿았다.
손이 닿는 순간 차가운 기운이 파고드는 것을 감지한 죽립인이 황급히 반탄강기를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공력이 모이지 않아.’
이상하게도 힘이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뭔가 이질적이라 느꼈는데 체내의 공력이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제대로 순환하지 않고서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흠······. 풀리지 않았는데.] [뭐?]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곳에 왔던 횟수를 어찌 알았느냐?]이런 그녀의 물음에 죽립인이 입을 꾹 닫았다.
뭔가를 대답하는 것보다 정신을 집중하여 제멋대로 날뛰는 내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비웃음을 흘렸다.
[깔깔깔.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여기선 누구도 제힘을 발휘할 수 없단다. 아가야. 물론 제힘을 발휘한다고 해도 별반 다를 게 없을 테고 말이야.] [내게······. 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글쎄. 무슨 짓을 했을까? 이미 짐작하고 있지 않느냐?] [······이곳에 왔었다는 기억을 잃게 만든 것이냐?] [후후후.]이 물음에 여인이 작게 웃었다.
긍정을 의미했다.
이에 죽립인이 조용해졌다.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나자 오히려 더욱 냉정해지면서 이 상황을 어떻게 타파할지를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다 죽립인이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립인의 말문이 막혔다.
그녀를 설득하는 방법을 취해보려 했는데, 지금의 대답으로 확실해졌다.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 방법을 분명 자신은 취했었다.
그리고 실패를 한 게 틀림없었다.
[왜 말이 없지?] [당신이 그걸 아는데도 내게 아무 기억에 없다는 건 설득은 무의미하다는 거겠지.] [잘 아는구나.]그녀의 답에 죽립인은 내심 머리가 복잡해졌다.
일단 지금까지의 상황만 본다면 확실해진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원하는 것을 설득으로 얻을 수 없다는 것과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자신을 죽일 수 있음에도 기억만 잃게 만들어서 진법의 바깥으로 내보냈다.
‘어째서지?’
그녀에게 있어서도 계속되는 반복은 성가심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계속 이것을 반복하고 있는 걸까?
의아해하는데 여인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그분과의 약조만 아니면 차라리 그냥 죽여버리는 게 처리하게 편할 텐데. 쯧쯧.] [지금 그게 무슨······.]-꽉!
[흐읍.]그때 여인이 죽립인의 뒷머리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어째서 기억이 전부 지워지지 않는지는 모르겠다만 변종아. 네 덕분에 심심하진 않아서 좋구나. 또 오려무나.]‘!?’
-팍!
그 순간 죽립인이 머리가 엎어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런 그의 옷 뒷덜미를 움켜쥔 그녀가 죽립인을 일으켜 세우더니, 지팡이로 바닥을 연거푸 내려치며 작게 술법 같은 것을 외웠다.
그러자,
-우저저저적!
공간의 일부가 소용돌이를 치듯이 일그러져갔다.
그렇게 일그러진 공간을 향해 여인이 이내 뒷덜미를 들고 있던 죽립인을 그대로 밀어 넣어버렸다.
죽립인의 모습이 사라지자 이내 일그러지던 공간이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움직여. 움직여.’
이를 본 청령이 어떻게든 영력을 일으켜 몸을 움직여보려 했다.
그런데 한 번 돌처럼 굳어진 영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죽립인을 사라지게 만든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다가오며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참으로 좋은 날이야. 불살(不殺)을 약조했지만 애초에 죽은 원념을 건드리진 말란 언급은 없었거든.]-······네년······. 네년은 대체 무엇이냐?
가늠할 수 없는 무위도 그렇고 기이한 술법마저 자유자재로 다루는 괴물이다.
이런 존재에 대해선 생전에도 사후에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어찌해야 할지 난처해하는데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여인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먼 옛날, 밖에 있을 때도 이 정도로 강한 원념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런 행운이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고오오오오오!
청령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내재된 원념을 불태워 영력을 일으켜보려 했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온 청흑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영체인 그녀의 턱을 아무렇지 않게 들어올리며 말했다.
[소용없단다. 아가야.]위협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에 기가 죽을 리가 없는 청령이 살의 어린 목소리로 받아쳤다.
-아가는 네년이겠지? 중생아.
[깔깔깔. 확실히 격이 높은 원념이라 그런지 쉽게 기가 죽지 않는구나. 네년 정도의 격이라면 꽤 오래 전에 원혼이 되었을 테니 내 위명 정돈 알 수도 있겠구나.]-위명? 하!
고작 백 년도 살지 못하는 중생 주제에 자신을 묶어뒀다는 과신에 빠져서 이런 소릴 해대는 것이 우습다.
[네가 이 위명을 안다면 적어도 나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왔다고 할 수 있겠지.]-흥. 그래. 얼마나 대단한 위명을 지녔는지 한 번 들어보자꾸나.
[악심파파(惡心婆婆)]‘!?’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