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49)
天遁 星明劍法
[천둔 성명검법]목함의 뚜껑이 열리며 드러난 두 개의 물건 중 서책 겉장에 적혀 있는 글자를 본 진예린의 두 눈이 커졌다.
성명검법은 그녀의 가문인 진가의 독문무공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성명검법은 여러 형태로 존재했고, 가장 완벽에 가까운 검로를 가졌고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익힐 수 있다고 알려진 신로 성명검법은 무쌍성의 성주이자 조부가 사망하며 그대로 단절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뭐지?
‘천둔 성명검법?’
이건 부친인 소성주 진영인에게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그분이 새롭게 창안한 성명검법인 건가?
쉽게 손을 가져다 대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는 그녀에게 악심파파 철수련이 오랫동안의 기다림이 후련한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분께서 당신께 남기신 것입니다.”
“저에게요? 하나 그분께선 이미······.”
“네, 더는 이곳에 계시지 않으시지요. 하나 그분께서 오래전 이르시길 업을 다 씻을 무렵 당신의 혈손이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분께서 제가 이곳에 오리라 예견하셨다고요?”
“네, 그분께서는 말년에 선도를 깨우치셨기에 약간의 천기(天機)를 읽으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하여 언젠가 중원에 큰 겁난들이 닥칠 수도 있다고 예견하셨으나 먼 훗날의 일이기에 이를 관여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안배하신 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철수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를······.”
“안배······.”
‘!?’
그때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진예린이 이것을 잘랐다.
그리고는 다소 서운함이 깃든 목소리로 입술을 뗐다.
“······라고 하셨는데 어째서 대재앙의 날은 그냥 내버려 두신 거죠?”
“대재앙의 날이라면······.”
“그날 무쌍성과 혈교······. 그 모든 것들이 무너지고 그분의 후손들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는데, 이제와서 안배라니······.”
“아가씨.”
“아뇨. 제 얘기부터 들어주세요.”
“······.”
차분하기 그지없었던 그녀의 언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었다.
철수련이 입을 다물자 그녀는 할 말을 이어갔다.
“대재앙의 날로 모두가 죽고 기껏해야 살아남은 유일한 혈족은 저뿐인데 대체 뭘 지키실 거라고 안배를 남기신 거죠? 천기를 읽으셨다면 최악의 대재앙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쌍성과 일족의 멸망은 막으셨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
-팍!
그녀가 천둔 성명검법의 비서를 거칠게 들고서 흔들어 대며 붉어진 눈시울로 토로했다.
“이건 절대 안배 따위가 될 수 없어요. 모든 걸 다 잃고서 이제 와 이런 걸 넘기는 건 복수를 다짐하라는 것과 무슨 차이죠? 이런 건 안배가 아니라······.”
“대재앙의 날······. 밖에서 온 자들이 그날을 이야기하더군요. 온갖 요물들이 날뛰는 재앙이 닥쳐 수많은 문파와 무인들이 목숨을 잃었다고요.”
그때 이번에는 철수련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러더니 철수련이 진한 탄식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하아. 정말 안타깝더군요. 밖에선 그분의 혈족들이 목숨을 잃어 갔는데 이 안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현실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건······.”
“아가씨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닙니다. 혈족들을 잃고 혼자 살아남으셨다고 하셨으니 그 고통을 어찌 말로 이룰 수 있겠습니까?”
“······.”
“저 역시도 진심으로 애통하기 그지없습니다. 하나 한편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분이 대체 얼마나 많은 걸 후손들에게 해줘야 만족할까요?”
“······네?”
“이미 혈족들에게 무림 최고의 무력 단체를 남겨주셨고 당대 최고의 무공들과 뛰어난 자질마저 유산으로 물려주셨습니다.”
“그건······.”
“한데도 그것도 모자라 혈족분들께서는 그분께서 순리를 어기면서까지 영원히 세상에 남아 후손들을 보호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지켜주며 아이마냥 돌봐주기를 바란 겁니까?”
“······.”
순간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대재앙의 날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마당에 그분이 남긴 안배라고 하며 무언가를 받게 되자 섭섭한 마음에 토로했던 그녀였다.
그러나 철수련이 냉정하게 현실을 꼬집자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오랜 벗들과 주변인들이 전부 떠나보내고 그 자식들마저 노쇠하여 병들고 죽어가는 모습을 수없이도 지켜본 그분입니다. 하물며 자식과 후손들이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쉬울 것 같나요?”
“······.”
“이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앞으로 닥칠 모든 걸 해결해주길 바라는 건 오히려 선조라 할 수 있는 그분께 잔혹한 바람이지 않을까요?”
‘아아아.’
이런 그녀의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꼬집음에 진예린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내심 너무 부끄러웠다.
순간의 섭섭함으로 이를 토로했지만 그녀 역시도 철수련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이미 선조인 그분은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남기고 떠났다.
대재앙의 날은 애초부터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모두가 불가피한 재난에 휘말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예린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꾹 참고서 입을 열었다.
“······송구합니다. 제가 너무 철부지 같은 말을 내뱉은 것 같습니다. 철수련 공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저희에게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족 중에 혼자만 남았다는 현실에 괜히 마음이 약해져 결례를 범한 것 같습니다. 부디······.”
-슥!
진예린이 두 손을 모아 포권지례를 하며 고개 숙여 사죄하려 했다.
그러자 그녀가 이를 막고서 말했다.
“아닙니다. 일족 모두를 잃고서 혼자 겨우겨우 버텨오셨는데, 어딘가에 기대고 싶거나 울분을 토하고 싶은 게 당연한 일이지요.”
-슥!
철수련이 그녀를 포옹해주면서 말했다.
“애써 괴로움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그간의 홀로 버텨왔던 길이 고되셨다면 잠시 우셔도 됩니다.”
이런 그녀의 따뜻한 말에 이내 진예린의 눈에서 참아왔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황궁 금의위에서도 얼음꽃이라 불릴 만큼 늘 냉정한 모습만을 유지해왔던 그녀였지만 누구보다 힘든 나날을 홀로 버텨왔다.
대재앙의 날을 일으키고 일족을 멸망시킨 존재를 향한 복수.
그리고 다시 일족을 부흥시키기 위한 사명감.
그 모든 짐을 짊어졌기에 그간 눈물을 흘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치라 여겼으나, 이 순간만큼은 철수련의 따뜻한 위로에 감정이 북받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눈물은 길게 가지 못했다.
그것은,
“계속 울고 있을 틈이 없을 텐데.”
목경운 때문이었다.
진예린을 달래고 있던 철수련이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았으나 목경운은 이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밖에 여전히 적들이 있다.”
이 말에 눈물을 흘리던 진예린이 이내 소매로 그것을 닦으며 다소 민망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하아······. 맞네요. 그걸 잊을 뻔했군요.”
“아가씨······.”
“괜찮습니다. 목 공자의 말이 맞아요. 지금 이러고 있을 틈이 없습니다.”
그녀는 이내 들고 있는 천둔 성명검법의 비급서를 품속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목함 안에 있는 둘둘 말려 있는 목간(木簡)을 손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무엇이죠?”
그녀의 물음에 철수련이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그건······. 흐음.”
“왜 그러시죠?”
“사실 이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다뇨?”
“그분께서 가지게 될 자가 자연히 가지게 될 거라며 집어넣었는데 무엇인지 따로 언급이 없으셨습니다.”
“가지게 될 자가 가지게 될 거라고요?”
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애매모호한 말을 남긴 거지?
의아해하던 그녀가 이내 목간을 들고서 폈다.
정확히는 대나무로 만든 것이니 죽간(竹簡)이라고 부르는 게 옳았다.
죽간은 의외로 그 안의 내용이 적은지 고작 여섯 개를 꿰어서 말아놓았는데, 그 안에는 총 서른 글자의 한자가 두서없이 나열되어 있었다.
얼핏 봐서는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기 어려웠다.
이를 본 그녀가 미간을 찡그렸다.
‘이게 대체 뭐지?’
하는데 뒤에서 살짝 떨어져 이를 바라보던 목경운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저건?’
목경운은 죽간에 적혀 있는 서른 글자를 보고서 단번에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파사팔식(破思八式)의 구결이었다.
한데 적혀 있는 구결들이 적혀 있는 위치와 배열이 모르는 이들이 보면 두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규칙적으로 느껴졌다.
심지어 보아하니 목간의 옆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한 번 보고 싶어졌다.
그러는데 이런 시선을 느꼈는지 진예린이 물었다.
“공자는 마치 이걸 본 적이 있는 듯한 눈빛이시군요.”
“······.”
“이게 무엇인지 알겠나요?”
진예린이 이내 목경운에게 죽간을 내밀었다.
“아가씨! 어찌 외인에게 그것을······.”
그러자 철수련이 황급히 이를 만류하려 했다.
그러나,
“아뇨. 목 공자 역시도 어르신의 제자이니, 엄밀히 보면 외인은 아닙니다. 그리고 철수련 공께서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아······.”
[그분께서 가지게 될 자가 자연히 가지게 될 거라며 집어넣었는데 무엇인지 따로 언급이 없으셨습니다.]그녀가 했던 말이었다.
이에 철수련이 제지하려 했던 손을 다시 밑으로 내렸다.
그러자 진예린이 다시 목경운에게 죽간을 내밀며 물었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겠어요?”
-탁!
이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이 이내 죽간을 받아 들고서 진예린이 아닌 철수련을 바라보며 말했다.
“혼백을 합치는 금술(禁術)을 넘긴다면 이게 무엇인지 알려주겠다.”
“하? 뭐라?”
그 말에 철수련이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정말 이 녀석 월악검 그 노친네에게 가르침을 받은 게 맞는 건가?
자신을 상대로 절대 지지 않고서 무언가를 얻으려 드는 자는 젊은 시절의 그분 이래로 정말 오래간만인 듯했다.
한데 이놈도 그렇고 밖에서 온 녀석들도 그렇고 어째서 그 혼백을 합치는 금술에 이렇게 목을 매는 것이지?
의아해하는데 진예린이 말했다.
“철수련 공.”
“네.”
“저 역시도 그 금술이라는 게 대재앙을 일으킨 배후의 집단으로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여기 있는 목 공자에게 그것을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
철수련이 목경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딱히 알려주고 싶지 않았으나, 그분의 혈족인 진예린의 부탁 때문이었다.
“알려줄 테니 너도 아가씨에게 그게 무엇인지 말해주거라.”
“이건 파사팔식(破思八式)의 구결이다.”
“네?”
그 말에 죽간에 별다른 기대감이 없었던 진예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부친인 소성주 진영인이 아니라 떠도는 소문으로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이게 그 지고의 비서라고요?”
그때 옆에 있던 악심파파 철수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반문했다.
“지고의 비서요?”
“네. 이게 어찌하여 그리 불렸는지는 모르겠으나 한때 파사팔식이라는 비서 때문에 수많은 자들이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다퉈 크나큰 피를 흘렸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그녀의 말에 철수련이 묘한 탄식을 흘렸다.
“허어······.”
“왜 그러시는지요?”
“이게 그리 불리고 있었군요.”
“알고 계셨나요?”
진예린의 물음에 철수련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이 안에 있던 것이 그분께서 말씀하셨던 그것인지는 저 또한 몰랐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알기로 그분께서 떠나시기 전에 오랫동안 고민을 하다 자신의 평생의 깨달음을 녹여 무쌍성의 숨겨진 지하 비고에도 남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쌍성의 지하 비고에요?”
“그렇습니다.”
“한데 그것이 어떻게 여기에?”
“어떻게 라기보다는 아무래도 그분께서는 그 깨달음의 집약체가 결국 후손들이 아닌 다른 자들의 손에 넘어가리라 예견하신 것 같습니다. 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도 넣어둔 게 아닐까 사료됩니다.”
“아······.”
철수련의 그 말에 진예린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지금 이 자리의 안배뿐만이 아니라 후인들을 위해서 많은 것을 남겨놓았던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니 오히려 이러한 그분의 여러 안배에도 불구하고 무쌍성은 끝내 멸문을 막지 못했다.
결국 천기를 읽는다 해도 다가올 재앙이란 건 애초에 막을 수 없는 것인가?
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목경운은 다른 것에 관심이 있었는지 죽간의 옆에 새겨진 문양들을 살피고 있었다.
얼핏 그냥 문양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은 무언가를 의미하고 있었다.
흐르는 물, 타오르는 불, 이건······. 땅인가?
이를 살피던 목경운은 새겨진 다섯 문양들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오행(五行)이었다.
화(火), 수(水), 목(木), 토(土), 금(金).
어찌하여 이것을 옆에 새겨놓은 건지는 몰라도 파사팔식의 구결을 나름 규칙적으로 배열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