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54)
-자네가 선(善)을 추구하거나 협의(俠義)를 중시하는 자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네. 하나 그런 자네에게도 조금이라도 소중한 것이 있다면 다가올 파멸로부터 이를 지킬 수 있는 건 과거의 부산물에 불과한 내가 아닌 현세를 살아가는 그대일세.
진운휘는 오래 전 천기를 읽었다.
그리고 천기 속에서 광기에 찬 절대 악(惡)이 가져올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그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절대 마(魔)임을 깨달았다.
예전의 ‘그’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는 다르다.
인간의 생을 이해하고 소중한 이의 가치를 안다면 파멸이 아닌 조화와 공생만이 답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말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파멸로부터 지킬 수 있다라······.”
-이게 자네를 이곳으로 끌어들인 답이네. 소중한 이들을 위해서······.
“거절하지.”
-역시 옳은 결정을······. 뭐?
가면 속의 진운휘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쉬운 남자가 아니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단번에 거절할 줄은 몰랐다.
이에 진운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가 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이라는 말조차 우스울 만큼 중원의 씨가 마를 수도 있는데, 이를 마냥 지켜보겠다는 건가?
“나는 그저 복수를 위해 살아가고 곁에 있는 이들을 지킬 뿐이다. 거창한 영웅질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을 찾아라.”
-······.
“아아. 그래. 그대의 후손도 있지 않나? 그녀를 위해서도 안배를 했으면서 구태여 나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나? 정히 그리 급하다면 그녀를 써라.”
-그 아이 혼자서 막을 수 있다면 진즉에 그렇게 했겠지. 안배가 아니더라도 그 순간이 온다면 많은 이들이 움직일 걸세. 내가 바라는 건 자네가 계기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으면······.
“아니. 나는 그대가 만들어놓은 판대로 움직일 생각은 없다.”
-······.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경운의 의사에 진운휘는 침묵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역시 본질이 마(魔)이기에 쉽게 움직일 그릇은 아니었다.
하나, 이 같은 모습 또한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누구나가 운명이라고 하면 이를 거스르고 싶어하지. 나 역시도 그러했다.’
오히려 목경운의 이런 완강한 태도를 보게 되니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자신도 저 시절에는 대의(大意)보다는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했다.
그래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도 하며 많은 경험을 했다.
잠시 과거에 젖어드는 이런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단검이 옆에서 재잘거리 듯 공명음을 냈다.
-우우우웅!
‘그래 너도 예전이 떠오른 모양이구나. 소담.’
진운휘가 피식하고 웃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알겠네. 자네의 뜻 또한 존중하네.
“쉽게 포기하는군.”
-포기라기보다는 현세의 일은 말 그대로 자네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몫이네. 생각해보니 훗날이 우려된다고 해서 이래라저래라할 자격은 내게 없지. 하나 내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것이 자네의 길이 될 때가 있다는 것만 기억하게.
“······.”
사실 목경운은 필연적으로 밀회와 세 번째 목간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신과 청령의 복수를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진운휘의 말대로 결국 길은 하나로 모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들을 스스로가 아니라 타인의 의도대로 끌려다니기를 원치 않았고 만인을 위한다는 이타적이고 거창한 이유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할 말이 끝난다면 이곳에서 내보내라.”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죽간 안으로 빨려 들어오기 전에 분명 뭔가가 터졌었다.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진운휘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내보내는 건 어렵지 않지. 하나 가면 아쉽지 않겠나?
“뭐가 아쉽다는 거지?”
-이것은 말 그대로 안배일세. 보아하니 아직 파사팔식을 전부 깨닫지 못한 것 같군.
“······.”
-그래도 훌륭해. 아마도 타고난 본질 덕분에 이 정도에 이르렀겠지. 보통의 머리라면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 이해하기 힘들 테지만 자네는 고작해야 십여 년 정도에 불과했겠지.
“······.”
십여 년?
십분 지의 일인 고작 반 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목경운은 이에 대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어쩌란 거지?”
-파사팔식의 후반부는 다르네.
“다르······다고?”
-높은 경지에 이를수록 무(武)는 만류귀종(萬流歸宗)처럼 하나로 모이지. 수많은 물줄기가 결국 대해에 이르는 것과 같네.
“······.”
-조화(調和)의 식(式)과 오행(五行)의 식(式)은 모든 흐름의 균형과 대자연의 위대함을 깨달아야만 받아들일 수 있지. 다만 이것은 선도(仙道)와도 직결되어 있기에 일반적인 깨달음만으로는 익힐 수가 없네.
“······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자네가 파사팔식을 전부 익힐 수 있도록 선도(仙道)를 일부 가르쳐주겠네.
“선도?”
-그렇네. 천마 원래의 그대였다면 마(魔) 그 자체였기에 선도를 익힐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네. 인간은 모든 가능성을 가진 존재. 그렇기에 하얀 도화지와 같아 무엇이든 받아들일 수 있네. 지금 자네는 무궁무진한 가치를 지닌 셈이지.
“······.”
-대가를 바라고 가르쳐준다는 게 아니니 경계심은 풀게. 영웅이 되지 않더라도 파멸의 재앙이 벌어지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자네는 이를 맞이할 수밖에 없을 걸세.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이매망량. 지금의 힘만으로는 절망에 이를 수도 있네.
“해서 선도를 전수하고 파사팔식의 나머지 단초들을 주겠다는 건가?”
-그렇네. 자네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보네만.
이런 진운휘의 제안에 목경운이 가늘어진 눈매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다.”
-······거절하겠다고?
“그래.”
-어째서 말인가?
“그대의 의도이든 우연이든 간에 파사팔식을 익혔기에 많은 위기를 벗어났고 더 높은 경지에 오른 것은 확실하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감사를 표한다.”
-탁!
목경운이 진운휘에게 두 손을 모아 포권지례를 했다.
의외의 감사 표현에 진운휘가 의아해했다.
그러나 목경운은 이를 개의치 않고서 두 손을 풀고서 말을 이어갔다.
“하나 더 이상 진운휘 그대의 손을 빌리고 싶지 않다.”
-손을 빌리지 않겠다라······. 하면 스스로의 힘으로 앞으로 벌어질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건가?
“그래.”
-흐음.
목경운의 의사에 진운휘는 난처하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천기를 읽었기에 그는 알 수 있었다.
이제 곧 닥칠 재앙은 지금의 목경운으로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여기서 한 꺼풀 벗어나 순리의 끝에 이르러야만 위기를 대처할지도 몰랐다.
-그것이 자네의 의지라면 말릴 수 없겠지만 지금의 자네에서 한 단계 높은 위로 오르려면 선도를 통해 조화와 오행의 이치를 깨닫든지 혹은 자연지기에 가까울 만큼 순도 높은 오행의 기운을 직접 취하는 것 외에는 없네.
“선도가 뭐지?”
-선도는······.
“신선이 되는 선의 도가 아닌가?”
-단순하진 않지만 넓게 본다면 그렇기도 하지.
“그렇다면 나의 길은 선도(仙道)가 아니다.
-······하면 자네의 길은 뭐란 말인가? 더 높은 경지를 바란다면 안정적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터인데.
“진운휘 그대와 겨루며 깨달았다.”
-깨달았다고? 무엇을 말인가?
“너무 많은 것은 필요치 않다는 것을 말이다.”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무공을 익힌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알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강해지는 길이 아님을 알았다.”
‘!?’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날카로운 검과 무상의 역량. 그 외에 어떠한 것도 필요 없다.”
‘!!!!!’
목경운이 내린 결론에 악귀 가면의 틈새로 보이는 진운휘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에 도달할 수 있는 거지?
상당히 놀랍다.
자신은 수많은 연을 만나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 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배움이고 조화라고 여겼다.
그런데 목경운은 달랐다.
그는 이번 만남을 통해 안배를 받아들여 자신과 같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려 하고 있었다.
-무상의 역량······. 오행의 이치를 깨닫지도 못했는데 그것에 이를 수 있겠나?
“조화는 내가 갈 길이 아니다. 무한한 역량은 무상(無上)과도 같은 법. 중요한 건 결국 의지다.”
-······.
진운휘는 진심으로 목경운에게 혀를 내둘렀다.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너무도 높이 올랐기에 앞으로의 길이 막막하게 느껴지고 벽이 이내 절망과 통곡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렇기에 안배를 통해 가야 할 길을 잡아주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자는 그야말로 스승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존재.
진정한 대종사다.
* * *
같은 시각.
진식으로 이루어져 있던 죽림(竹林)의 대나무들이 반 이상 꺾이고 부서져 있으며, 그 내부는 거의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육천호 소예린, 아니 진예린이 상처투성이의 몰골로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하아······. 하아······.”
-파르르르!
검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이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런 그녀의 옆에는 이마가 움푹 들어간 중년의 사내, 귀검(鬼劍)이 있었는데 그녀보다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팔이 잘린 것도 모자라 왼쪽 정강이가 부러졌는지 비틀거리고 있었다.
심지어 복부를 관통당했는지 출혈이 심했다.
“쿨럭쿨럭······.”
“겨우 이 정도이더냐?”
이런 그들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있었다.
사내의 이마에는 세 번째 눈동자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를 바라보는 진예린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강해. 너무 강해.’
눈앞의 세 번째 눈동자의 사내를 귀검과 합공으로 상대했는데 호각은커녕 오히려 자신들이 밀렸다.
벽의 벽을 넘어선 두 절세고수가 상대해도 어찌 못할 강함에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꽉!
‘이러면 철수련 공의 희생이 무색해지잖아.’
진예린의 머릿속에 아까 전의 상황이 스쳐 지나갔다.
푸른 초원으로 이루어진 진식 내부로 갑자기 나타난 세 번째 눈동자의 존재.
그는 밀회의 수장 세 번째 목간의 본체가 아닌 분신이었다.
그런데 그 분신은 하나가 아니었다.
‘!?’
놀랍게도 분신은 둘이었다.
서로 다른 얼굴에 연령대도 달랐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위압감은 동일하기 그지없었다.
[놈은 어딨지?] [분명 이곳에 있을 텐데.]분신들이 처음 찾은 대상은 바로 목경운이었다.
그들이 왜 그를 찾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죽간과 관련이 있음을 깨달은 그녀는 일단 그것을 품속에 숨겼다.
그리고 너무도 위압적인 기세를 풍기는 두 목간의 분신들과 싸웠다.
철수련과 함께 싸웠는데 그녀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두 목간의 분신들은 그야말로 괴물들이었다.
철수련과 같은 절세고수조차 그들의 합공에 결국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그러다 진예린이 놈 중 하나의 손에 붙잡혀 목숨의 위기에 처해지는데, 이를 악심파파 철수련의 기지로 벗어나게 되었다.
[풀어줘라. 그럼 금술을 알려주겠다.] [속일 생각은 하지 마라. 본좌 역시도 술법의 대가. 어설픈 수작은 진가의 마지막 혈통을 끊어버리게 될 것이다.] [철수련 공 저는 괜찮으니 절대 이자에게······.]-꽉!
[컥!] [말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당장 그분께 손 떼!] [말해. 그럼 약조는 지킨다.]결국 악심파파 철수련은 금술의 술법을 뱉었다.
술법을 제대로 알려주는 듯하자 분신 중 하나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던 손을 뗐다.
그러자,
-아가씨.
악심파파 철수련이 전음입밀(傳音入密)을 보내며 그녀에게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대체 왜 그러나 했는데,
-쿵! 쿵!
철수련이 고리가 달린 지팡이를 바닥에 연거푸 내려쳤다.
그러더니 이내 공간이 찢겨지며 진예린의 몸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처, 철수련 공!] [이년!]빨려 들어가는 그녀를 분신 중 하나가 황급히 붙잡으려 하자, 철수련이 신형을 날리며 놈을 방해했다.
그러더니 그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작별을 고했다.
-부디 살아남으시길.
그와 함께 찢긴 공간이 닫히는 미세한 틈으로 철수련이 초가의 한가운데 있던 기둥을 향해 고리가 달린 지팡이를 날리는 것이 보였다.
-콰아아아앙!
그리고 굉음이 터지며 진식을 이루던 대나무들이 일제히 꺾여나갔다.
이런 철수련의 희생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나 싶었는데, 그녀는 나오자마자 또 다른 절망과 직면해야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목간의 분신이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세 번째 분신은 귀검의 오른팔을 자르고 그의 목을 움켜쥐고서 뭔가 심문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이를 그녀가 공격하여 구한 후에 합공을 했는데 결과는 이러했다.
합공에도 불구하고 부상을 입은 것은 오히려 자신들이었다.
“하아······하아······.”
검을 쥐고 있는 손에 점점 힘이 빠진다.
선천진기의 팔 할을 소모했기에 더 싸우게 되면 위험해진다.
-저벅저벅!
다가오는 목간의 분신을 보며 진예린이 마른침을 겨우 삼켰다.
본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리 강한데, 이런 괴물 같은 분신을 목경운은 상대한 것도 모자라 죽였다고?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그렇게 다가오는 목간의 분신을 절망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차였다.
-파르르르르!
그녀의 품속에 있는 죽간이 갑자기 떨리기 시작했다.
‘!?’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