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69)
여자에 대한 면역력이 없는 그는 쑥스러움을 많이 타기에 손만 닿아도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빨개진다.
그러나 사제인 여수린의 입에서 나온 대법구라는 말에 순식간에 빨갛던 얼굴이 식어버렸다.
“안 돼. 그건 절대 안 돼.”
“아잉. 사형.”
“전에도 멋대로 신원당에 들어갔다가 스승님의 법구를 망가뜨려서 벌을 받아놓고는 그런 소리가 잘도 나오는구나.”
“그건 제가 아직 미숙할 때였고요. 지금은······.”
“지금도 스승님께서 신원당으로 들어가는 걸 금했을 텐데.”
“그러니까 사형이 도와주셔야죠.”
“너무 뻔뻔한 거 아니니?”
여수린의 사형이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사부님께서 애초에 해선각을 나가는 것조차 금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사부님의 대법구에까지 손을 댄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즉시 파문(破門) 감이었다.
“이번엔 절대로 안 된다. 대붕마왕의 봉인이 풀린 것도 모자라 방사들이 사라지는 등 심상치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철딱서니 없는 짓을 벌이려 한다면 널 면벽실에 가둬둘 수밖에······.”
“육마 하나만 풀려나는 게 아니라면요.”
“뭐? 그게 무슨······.”
“말 그대로예요. 제가 하려는 건 물론 스승님의 명을 어기는 것이지만 절대 철딱서니 없는 짓이 아니에요.”
사뭇 진지해진 그녀의 말에 사형이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육마 하나만 풀려나는 게 아니라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
“말 그대로에요. 제가 무슨 임무를 맡고 있었는지 사형은 모르시죠?”
“스승님께 받은 임무는 다른 사형제들에게도 함구해야 한다는 건 본 각의 규칙이다. 설마 그걸 어길 셈이냐?”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규칙을 지키게 생겼나요.”
“허어······.”
난처해하는 사형에게 그녀가 자신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 읽으신 천기 기억하시죠? 삼안(三眼)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될 거라고.”
“······설마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그것과 관련 있다는 것이냐?”
이런 그의 물음에 여수린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답했다.
“맞아요. 만약 지금 저희가 스승님의 명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희생이 벌어질 수도 있어요.”
“희생이라니······.”
“저희가 수수방관하게 되면 중원의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단 말이에요.”
“······.”
“그러니 사형의 도움이 절실해요.”
“하아.”
그녀의 이 말에 사형은 탄식과 함께 점점 난처함을 넘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했다.
* * *
사흘 후.
노인의 몸을 하고 있는 목간 분신의 안색이 상당히 초췌해져 있었다.
영물의 피를 흡수하여 넘쳐나는 원기가 있기에 버티고 있었지만 태고의 금술 태공봉천식은 술자의 희생을 요하기에 서서히 벅차갔다.
길어봐야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이 분신은 수명이 다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태공봉천식이 해제되는 일은 없을 거다.
완전한 상태의 진은 해제의 식이 발동되지 않는 한 외부의 힘으로도 내부에서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참으로 지독한 것들이다.
목간의 분신이 태공봉천식에 갇혀 멈춰 있는 목경운을 노려보며 혀를 찼다.
계속해서 놈의 숨을 거두려고 노려봤는데, 그때마다 목경운이 마음의 검으로 공격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자신이 더욱 타격을 보았다.
‘인간으로 퇴화했는데 어떻게 이 정도의 정신력을 지닐 수 있는 거지?’
아흐레 가까이 되었는데 놈의 정신은 멀쩡했다.
애초에 이 수법은 인간을 가두는 용이라기보다는 영수(靈獸)나 선인(仙人)과 같이 순리를 벗어나려는 존재들을 가두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평범한 인간은 며칠만 갇혀도 흐르지 않는 시간으로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리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여전히 눈빛이 살아 있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하나 소용없다.’
마음의 검은 말 그대로 마음의 검이다.
이것은 살아있는 존재에게나 통하는 것이었기에 공간 전체를 묶어두는 태공봉천식을 어찌할 수 없었다.
‘후후후. 네놈은 이 자리에서 죽게 될 것이다. 소중한 모든 것을 앗아가는 고통 속에서 말이지.’
-콰콰콰콰콰쾅!
그때 폭발의 굉음이 태공봉천식의 안까지 들려왔다.
목간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
저 계집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무형검에 당한 상처 덕분에 회복력이 더디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흐레 동안 밤낮으로 쉴 새 없이 싸워 그들을 막아냈다.
결국 류소월의 백(魄)을 놓치고야 만 것이었다.
목간이 혀를 내둘렀다.
‘부상을 당한 채 수십 개체가 되는 요수 이상 급의 이매망량들을 기어이 막아내다니.’
춘추의 복수에 대한 집념이 이 정도까지였단 말인가.
하나 이제 그것도 끝이 보이는 듯했다.
남아 있는 이매망량의 개체는 넷.
그 모두 마수(魔獸)들이었다.
지친 데다 대부분의 요력(妖力)을 소진한 그녀로서는 이제 한계였다.
창백해진 저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아······하아······.”
이런 목간의 판단대로 춘추는 지친 것을 넘어서 복수에 대한 집념 하나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방금 전의 그 일격으로 이매망량 세 개체를 보냈는데 이젠 정말 남은 여력이 없었다.
기운이 없으니 점차 몸이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상태를 알아차렸는지 남은 네 개체의 마수(魔獸)들이 동시에 입을 벌리며 요력의 탄을 날렸다.
-파파파팡!
닥쳐오는 요력의 탄들을 바라보며 떨리는 손을 내밀던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곧 봐.”
그와 함께 그녀의 몸이 요력의 탄들에 의해 뒤덮여갔다.
-콰콰콰쾅!
* * *
비슷한 시각.
요수 흠원을 타고 천지회 본단으로 복귀하고 있던 목경운의 심복들은 흠원보다도 더 커다란 곤충 형태의 이매망량에 의해 쫓기고 있었다.
“지독하구만.”
파계승 자금정이 가지고 있는 금강저와 법구들을 활용해 이매망량을 쫓아내려 했지만 영악한 놈은 그것을 잘도 피해 가며 흠원을 공격해왔다.
덕분에 흠원의 날개나 몸통의 여기저기가 상처투성이였다.
-위이이이잉!
-촤촤촤촥!
“하아······하아······. 빌어먹을 벌레 새끼들.”
섭춘이 독문병기인 광무도를 휘두르며 날아드는 벌레들을 쉴 새 없이 베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도 이매망량이 보내는 수많은 독충을 상대하고 있었다.
부상 입은 몽무약도 분전했으나 독충에 쏘여 정신을 잃었다.
독의 대가인 팔독사장 구양소가 없었다면 그대로 목숨마저 잃었을지도 몰랐다.
“조금만 버티게.”
-파파파파팍!
구양소가 몽무약을 지키며 날아드는 독충들을 사장으로 쳐냈다.
-파파팟!
처음에는 신형을 둘, 셋으로 나눠가며 흠원의 등 위로 올라가 벌레들을 처리해주던 마라현 역시도 지쳤는지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다.
“후우······후우······. 섭춘!”
“말하시오!”
“본단이 보이나?”
마라현의 외침에 수레 아래쪽을 내려다본 섭춘이 탄식을 흘렸다.
원래라면 날아왔기에 지금쯤이면 본단에 가까워졌어야 했는데, 저 거대한 벌레 같은 이매망량에 쫓긴다고 다른 방향으로 온 것 같다.
밑에 보이는 것은 강이었다.
“젠장. 여긴 대체 어디야?”
도저히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이러다 정말 본단에 가기 전에 죽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는데 수레가 기울어지며 갑자기 옆으로 쏠렸다.
“어어어?”
당황한 섭춘이 수레를 붙드는데 그의 두 눈에 우수수 떨어지는 요수 흠원의 거대한 깃털들이 보였다.
“뭐, 뭐야?”
위를 올려다보니 흠원의 한쪽 날개 깃털들이 빠지며 상처가 드러나고 있었다.
‘어째서?’
저 부위는 밀회의 제 일계 춘추로 인해 나았었다.
그녀가 자신의 손목을 그어 상처 부위에 피를 붓고서 주술 같은 것을 외우자, 뚫렸던 상처 부위가 메꿔지고 깃털이 다시 올라왔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깃털이 왜······.
바로 그 순간이었다.
-키이이이이이이!
요수 흠원이 한쪽 날개로 날갯짓을 하며 어떻게든 낙하를 지연시켜보려 했으나,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날아와 달려드는 벌레형 이매망량으로 인해 결국 밑으로 추락했다.
-슈우우우우우우!
“으아아아아악!”
“뭐든 꽉 붙잡으시게!”
“아래! 아래 강이다! 맞춰서 뛰어!”
천운이 따른 것일까?
마침 그들이 추락하는 곳은 강이었다.
-첨버어어엉! 촤아아아아아!
거대한 요수 흠원이 강에 빠지자 강물이 출렁이며 해일과도 같이 높은 물결을 일으켰다.
물에 빠진 목경운의 심복들이 하나둘씩 수면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푸아!”
“헉헉. 젠장. 하마터면 부처님 곁으로 갈 뻔했구만.”
“무약? 무약 괜찮나?”
물 위로 나온 구양소가 정신을 잃은 몽무약을 목덜미를 붙들고서 얼굴을 위로 들어 올린 채 힘겹게 발길질을 했다.
-첨벙첨벙!
-파앗!
그때 물 밖으로 나온 마라현이 부서진 가면을 벗어젖히며 몽무약을 잡고서 말했다.
“무약은 내가 맡겠소.”
“하아······하아······. 고맙네.”
안 그래도 노구에 몸이 성하지 않아 몽무약까지 챙기기 벅찼던 구양소가 고마움을 표했다.
그나저나 요수 흠원이 괜찮을지 모르겠다.
강 깊숙이 빠졌는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강 한복판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인 듯했기에 그들은 누구 할 것 없이 헤엄을 쳤다.
그런데,
-우아아아아아앙!
그들의 귓가로 날갯짓 소리가 들려오며 주변의 강물이 풍랑이 몰아치듯 심하게 출렁이며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몰아쳤다.
“하······.”
섭춘이 자신들의 위로 나타난 벌레 형태의 이매망량을 보며 넋이 나갔다.
이는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젠 이놈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던 그들이었다.
이렇게 끝인 건가?
하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르르쾅쾅!
마른하늘에서 천둥 벼락이 내려치며 일순간 사방이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했다.
-촤아아아아아아!
그러는데 강물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며 물살이 격렬해졌다.
그들을 덮칠 기세로 날갯짓을 하며 내려다보던 거대한 벌레 형태의 이매망량의 시선이 이내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거대한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배의 위로 수많은 원혼들이 서있었고, 심지어 배의 양옆으로도 들러붙어 있었다.
“헛?”
파계승 자금정이 배의 선두에 뒷짐을 진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누군가를 보며 화색이 돌았다.
그 존재는 예전에 폭우로 범람하는 강 너머까지로 그들을 보내줬던 원혼 하윤이었다.
원혼 하윤이 거대한 벌레 형태의 이매망량에게 큰 소리로 다그쳤다.
-이노오오옴! 나의 벗들에게서 썩 물러나지 못할까!
* * *
그로부터 나흘 후 정오 무렵.
수많은 산봉우리로 가득한 산맥들이 이어지는 십만대산(十萬大山)의 앞으로 수많은 인파가 진열을 갖춰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 선두의 열에는 정의맹(正義盟)라는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드디어······. 왔구나.”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이를 지켜보고 있던 파부왕 호태강이 도끼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뒤에 있던 무사들이 수신호를 보냈고, 그에 맞춰 각 산봉우리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회의 무사들이 일제히 깃발을 들어 올렸다.
검은 깃에 붉은 문양이 새겨진 깃발들 사이로 커다란 글자가 보였다.
天魔(천마)
그렇게 산봉우리들 위로 갑작스럽게 들어 올려지는 수많은 깃발에 진군하고 있던 정의맹의 행렬이 일제히 멈춰졌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