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72)
너무도 천천히 흘러 멈춘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 속에서 가지게 된 초조함은 갈수록 깊은 심고를 낳았고 그것은 이내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그것을 깨우게 되었다.
복잡한 사념이 사라지고 사고가 단순해지는 순간,
-화르르르륵!
목경운의 시야 속으로 들어오는 검은 불꽃이 들어왔다.
그것은 불꽃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심연과도 같은 어둠을 머금고 있었다.
끝도 없는 나락 속에는 흉포함과 더불어 순수한 마성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처음 마주하게 되는 것임에도 매우 익숙했다.
눈앞의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의아해하는 순간 검은 불꽃이 일렁이며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이나?
‘!?’
-보이는군. 이제야 제대로 마주하게 되나?
‘너······.’
-스스로를 관조하기까지 더욱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 여겼는데, 참으로 놀랍구나.
이 목소리.
분명 그것이다.
자신의 안에 있던 그 존재.
이것이 그것의 형상인 건가? 대체 이게 뭐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이질적인 모습에 의아해하는데 다시 검은 불꽃이 일렁이며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다가온 순리에 의문을 가질 필요 없다. 네가 나와 이렇게 조우하게 된 것은 너의 의지가 그만큼의 격을 갖춘 것이니.
‘격?’
-비록 핵(核)을 잃었을지언정 완전히 인간의 의사로 태어난 네 격이 아득히 오랜 세월을 살아온 나와 같을 순 없지.
아득히 오랜 세월?
대체 이자는 무엇이지?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시작된 복수의 여정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단서를 알면 알수록 오히려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귀검으로 인해서 더욱 그러했다.
‘······넌 대체 뭐지? 너는 나에 대한 것을 전부 알고 있나?’
-단도직입적인 물음이군.
‘묻는 말에 답해라.’
-나 자신에게 나에 대한 물음이라. 참으로 색달라.
‘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나 자신에게 나에 대한 물음이라니? 마치······.
-우리가 서로 다른 존재라고 여겨왔던 것이냐? 아닐 텐데. 너는 분명 직감했을 것이다. 인격과 의사가 비록 다를지언정 우리가 하나라는 것을.
‘······.’
잠시 말문이 막혔던 목경운이 이내 이를 부정했다.
‘······헛소리.’
-왜 부정하는 거지? 그간의 삶 또한 부정될 수 있다고 여겨서 그러나?
‘······.’
삶의 부정.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은 스스로로 하여금 최악의 가정을 내놓았다.
그것은 자신의 안에 있는 존재가 사실은 본질이고 자신은 그저 본질에서 파생된 존재라고 말이다.
이를 의식한 것은 검은 불꽃의 존재가 자신의 육신을 통제했을 때였다.
마치 스스로의 의사는 존재했음에도 육신이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통제권을 완전히 잃었었다.
그렇기에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군. 나의 바람이었고 선택이었으나 이렇게까지 강한 의사를 형성하게 될 줄은 몰랐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스스로의 삶에 애착을 가지게 되었나?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의지의 격이 높아졌다고 하나 확실히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
인간의 의사로 태어났기에 확실히 짧은 생이었음에도 많은 감정이 형성된 것 같다.
역시 아직은 완전히 받아들이기에 이른 것이었나?
하는데 목경운이 의사를 일으켰다.
‘삶에 애착······. 네 마음대로 나에 대해 정의 내리지 마라.’
-정의를 내리지 말라?
‘설령 나에 관한 진실이 바라지 않았던 것이라 해도 내가 지금껏 겪어왔던 이 삶과 지금 가지고 있는 이 감정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다.’
-······.
이런 목경운의 강한 의지에 불꽃이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러다 이내 다시 일렁이며 목소리가 울렸다.
-인간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으나 확실히 너는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말 그대로다. 칭찬이지. 너 역시도 나이니 자화자찬이 되려나.
‘······아까부터 너와 내가 하나라고 계속 지칭하는 것은 이 몸의 통제권을 가져가기 위함인 것이냐?’
-나는 불순물에 불과하다.
‘뭐?’
뜬금없는 그의 말에 목경운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은 그 시점부터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인간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삶에 큰 미련이 없다고 하는 편이 옳겠지.
‘미련이 없다?’
-말하지 않았나. 꼭 인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지적 생명체는 스스로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잃게 된다면 살아갈 의미가 퇴색되고는 하지. 생각할 수 있는 사고라는 게 존재한다면 말이야.
검은 불꽃의 그 말에 목경운의 눈빛이 묘해졌다.
좀 더 무감정했던 이전에는 이 말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잃고 난 후에 찾아왔던 분노와 살의는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으나, 그 속에는 강한 공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태공봉천식에 갇혀서 청령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초조함과 만약 그녀를 잃게 된다면을 가정하는 순간 분노나 슬픔과는 전혀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그가 말한 대로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순간이었다.
‘스스로를 불순물이라 칭하는 것은 스스로 이미 죽었다고 여긴 것인가?
-그 또한 답이 될 수 있지. 네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겠······.
‘······아니.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다.’
목경운의 목소리에 담겨있는 깊은 감정선.
그것을 읽어낸 검은 불꽃이 미묘한 느낌을 받았다.
-참으로 묘하군. 고작 찰나에 불과한 순간을 살아왔는데 내가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이리 느낀다는 것이 말이야.
‘얼마나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의 문제 같은데.
-하!
그때 검은 불꽃이 크게 일렁였다.
요동치는 볼꽃이 마치 크게 격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하하하핫. 그래. 너의 말이 옳다. 길든 짧든 간에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지.
‘······.’
-참으로 공교롭군. 나 자신을 통해 나를 바라본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아까부터 계속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는군. 넌 대체 뭐지? 인간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정말로 배화교란 곳에서 이야기하는 화신 아니 신적인 존재인가?
-신이라······. 불에 대한 믿음을 가진 신자들은 그리 부르기도 하지.
‘!!!!!!’
신이라고?
그럼 내 안에 있는 아니 나와 다른 이 의사체는 정말로 신적인 존재였단 말인가?
놀라워하는데 검은 불꽃이 일렁이며 답했다.
-하나 그것 하나로 정의를 내릴 순 없다. 나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공포라 부르기도 했고, 탐욕에 젖은 이들은 악(惡)이라 부르기도 했고, 또 순수한 이들은 선(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모든 것은 동전의 앞뒤와도 같지.
‘······보는 면, 아니 관점에 따라서 다르다는 건가?’
-그래. 자신에 관한 정의는 누구나가 스스로 내리겠지만 어떠한 것이든 바라보는 자들의 주관과 따라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타 객체가 아닌 너의 주관이 정의하는 너란 존재는 대체 뭐지?’
-나의 존재에 대한 정의라······. 누군가에게 나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본 것은 정말 오랜만에 있는 일이로군. 아니 처음이라 해야 옳겠어. 나 자신에게 나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말이야.
‘······.’
-나는 심연보다 깊은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나는 두려움과 공포, 혼돈을 가져오는 검은 불꽃이며 태초의 마(魔) 그 자체이다. 나는 오직 군림하기 위한 숙명을 타고났으며 따르는 이들의 경배를 받던 존재이다.
-화르르르르륵!
이윽고 타오르는 검은 불꽃 속에서 하나의 형체가 보였는데 그것은 목경운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듯한 위엄과 위압감.
그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순간 목경운마저도 경외심에 사로잡힐 정도였는데,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존재가 목경운을 향해 더욱 다가오며 말했다.
-나는 왕(王). 모든 만마(萬魔)를 지배하는 마의 왕(魔王)이다.
* * *
같은 시각 십만대산.
천연의 요새나 다름없는 산봉우리의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목경운 산하의 전 천지회의 무사들이 몰려오는 수많은 기마들을 보며 안색이 어두워져 갔다.
-두두두두두두!
얼핏 보아도 일만(一萬)에 가까운 숫자였다.
빠르게 진군해오는 기마의 선두에는 깃발들이 펄럭이며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邪連盟(사련맹)
一盟主(일맹주) 광악패제 항심.
三盟主(삼맹주) 적사련주(赤邪連主) 임무군.
七盟主(칠맹주) 경살왕(輕殺王) 호일사.
九盟主(구맹주) 장강수로삼십육채 대채주 갈윤.
섬독왕 백사하가 사련맹과 네 맹주를 상징하는 깃발들을 보며 미간을 찡그리더니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허어. 우려했던 사태가 벌어졌군.”
“······그렇군요.”
조금 전까지만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여유로움을 보이던 암종주 환야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가장 최악으로 여기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정의맹과 사련맹의 연합은 이미 지부의 전령들의 보고로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그러나 이들의 출발선상이 달랐기에 그들의 전략은 사련맹이 도달하기 전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정의맹과 승부를 내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시작부터 독공을 펼치는 것조차 꺼리지 않았던 것이었는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사련맹이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전장터로 도착한 것이었다.
“아무리 기마를 이끌고 왔다고 하나 이건 너무 빠르오.”
“······정의맹에서 각 문파와 지부들의 역참을 제공했다고밖에 볼 수 없겠구려.”
역참(驛站).
숙박, 식량, 마굿간, 수레 등을 준비된 곳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말을 바꾸어 탈 수 있게 정비되어 있다.
아무리 훈련된 말이라고 해도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역참에서 충분히 체력이 비축된 말들로 바꾸게 되면 굳이 말들을 쉬게 할 필요도 없이 효율적으로 빠르게 이동이 가능해진다.
“후우. 가능성이 더 낮아졌군.”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자리해 있는 파부왕 호태강 역시도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초전에서 독공으로 이천여 명에 가까운 정의맹의 전열을 물리쳤다고 하나 여전히 그들은 사만 사천에 이르는 대전력이었다.
거기다 모자라 사련맹의 전력까지 합쳐지며 더욱 전황이 어두워졌다.
더 최악인 것은,
‘광악패제(狂惡覇帝) 항심.’
사련맹의 일맹주이자 북부의 패자라 불리며 현 무림의 정점인 칠천(七天)의 일인이었다.
다른 사련맹의 맹주들 역시도 만만치 않은 초고수들이었지만 그 역시도 칠천 중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대종사급의 절세고수였다.
‘하필 주군이 부재중 일 때······.’
저들은 정의맹과 사련맹의 일인자들이었다.
지금 목경운 산하의 최고 간부 중에 저들과 일대일로 정면 대결이 가능한 자는 같은 칠천의 일인인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뿐이었다.
‘칠천이 둘.’
구천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최악의 위기가 도래했다.
‘방도가 없구나. 결국 수성전이 답인가.’
십만대산은 천연의 요새라 불릴 만큼 수성의 조건을 잘 갖추고 있었다.
고지를 점령하고 곳곳의 매복지만 잘 활용해도 가히 수만의 적을 막아낼 수 있었기에 지금으로서는 이것만이 저들 전부를 상대할 수 있는 방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천당가도 그렇고 사련맹에는 마땅히 독을 활용하는 단체가 없기에 전초는 이걸로 최대한 적들의 총공세를 지연시키고 그들의 수와 사기를 줄여나······.
-쾅! 쾅! 쾅! 쾅!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전열에 있던 산봉우리들 쪽에서 커다란 굉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났다.
‘아닛?’
갑작스러운 폭발.
그것이 일어난 곳들은 다름 아닌 궁수들과 백가의 독공을 다룰 수 있는 무사들이 매복해 있는 곳이었다.
-쿠르르르르! 콰콰콰콰!
대체 얼마나 많고 강한 위력의 폭약을 썼는지, 세 군데의 산봉우리가 무너져 내리며 산사태마저 일으키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던 정의맹의 맹주 정현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후후후. 손을 썼군. 본체여.’
피독주가 있다고 해도 저들의 활과 독을 소진시키거나 처리하지 않으면 총력전으로 부딪치는 것은 무리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사수들이 매복해 있던 곳에서 폭발들이 일어나며 절호의 기회가 생겨났다.
갑작스러운 폭발에 정의맹의 간부들은 어리둥절해했지만 정현문은 서둘러 자신의 독문병기인 명검 일휘를 치켜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기회가 왔다! 진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
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피독주를 태운 횃불을 들고 있는 전열을 시작으로 정의맹 무사들이 일제히 십만대산을 향해 내달렸다.
이는 뒤늦게 도달한 사련맹의 전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하하핫. 정의맹 놈들한테 전공을 빼앗길 순 없지. 전부 진격하라!”
-와아아아아아아아!!!
팔천을 넘어서는 기마단이 사련맹의 일맹주 광악패제 항심의 명에 기다렸다는 듯이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진격했다.
사수들이 있던 전열의 산봉우리가 폭발로 무너져 내리자 밀물처럼 밀려오는 정의맹과 사련맹의 총공세에 최고 간부들이 황급히 소리쳤다.
“적들이 온다! 적들이 온다!”
“전방의 전열을 가다듬어라!”
갑작스러운 폭발에 사수들의 7할가량이 목숨을 잃고 부상자가 속출했음에도 그들은 아군의 시신들을 뒤로하고서 비틀거리며 일어나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러는 사이에 좌측으로 사련맹, 우측으로 정의맹의 전력들이 삼백 보 이내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렇게 현 무림을 삼분하고 있는 삼대 세력의 총력전이 시작되려 했다.
‘됐다. 시선이 쏠렸다.’
‘이제 그분의 것을 회수하자.’
-스스스슥!
이들이 이렇게 부딪치려는 순간 시혈곡주 이지염이 지키고 있는 후방의 산봉우리로 검은 인영들이 은밀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