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73)
전략적 명목상 후방을 맡고 있는 것은 시혈곡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위소연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콰콰콰콰콰쾅!
전방의 산봉우리 쪽에서 들려오는 굉음 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검은 연기와 함께 무너져내리는 산봉우리들이 보였다.
이를 바라보던 시혈곡주 이지염이 미간을 찡그렸다.
천연의 요새라 불리는 십만대산의 고지라는 요지에다 독(毒)이라는 이점이 있기에 적어도 단시간에 뚫리는 일은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산봉우리에서 일어난 저 폭발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설마 내부에 아직 밀회의 간자들이 남아있었던 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납득하기 힘든 사태였다.
이지염이 산봉우리에 진을 치고 있는 시혈곡의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전방에 이변이 생겼다. 곧 총공세가 이어질 듯하니 경계하라.”
“충!!!”
-우르르르르!
시혈곡의 무사들이 이지염의 명에 열두 명씩 뭉치며 진을 쳐 경계 태세를 갖췄다.
이지염은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가 주변을 살피며 경계했다.
봉우리 위에는 바위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수십여 개가 있어서 어떤 곳에 숨겨진 비밀 통로가 있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두두두두두두!
산봉우리들 사이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전열이 무너지자 역시 총공세로 이어지는 듯 했다.
그렇게 전방을 살피던 시혈곡주 이지염의 눈매가 문득 날카로워졌다.
-흠칫!
‘뭐지?’
전방을 경계한다고 미처 몰랐는데 어느새 산봉우리 위로 정체 모를 기척들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에 이지염이 시혈곡의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적들이 올라오고 있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충!”
그의 명에 봉우리의 끄트머리 쪽을 지키던 무사들이 아래 쪽을 살폈다.
그때 동남쪽 부근 쪽과 남쪽, 서남쪽 부근에서 동시에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적이다!”
“복면을 쓴 자들이 올라온다!”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라!”
활을 들고 있거나 원거리 병기를 들고 있는 이들이 이내 화살을 쏘고 비수나 암기를 던졌다.
그러자 기척을 죽이며 올라오던 복면인들이 이내 날아드는 원거리 병기들을 피하며 민첩한 몸놀림으로 경공을 펼치며 봉우리 위로 올라왔다.
“막아라!”
“적이 올라왔다!”
“진에 가둬라!”
-우르르르르르!
곳곳에서 복면인들이 봉우리 위로 올라오자 미리 진을 만들고 있던 무사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복면인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기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하나하나가 보통의 고수들이 아니었다.
이런 그들을 보며 시혈곡주 이지염 역시도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었다.
-스릉!
‘역시였나.’
이지염이 혀를 찼다.
소수 정예의 고수들을 투입시켜 전방을 혼란시켜 총공세가 이어지게 만들고, 그 틈을 노려 위소연을 납치할 자들을 보낸 듯 했다.
물론 그 예상은 정확했다.
복면인들의 우두머리인 밀회의 제 이계 능진순이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산봉우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지염을 쳐다보았다.
‘그분을 속일 수 있을 성 싶으냐.’
능진순의 머릿속에 아까의 기억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을 노렸군.]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이곳에 있다. 그녀의 혼(魂)과 육신이.] [하면 허를 찌르기 위해 천지회 본단이 아닌 전장터가 될 곳에 데려왔다는 말씀이십니까?] [나쁜 판단은 아니다. 다만 일반적인 경우라면 말이지.] [흐흐흐. 참으로 어리석은 놈들이군요. 어떤 식으로든 목간의 눈을 피할 수 없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죠. 하면 본격적으로 저들이 부딪칠 때 십만대산으로 침투하여 육신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아니. 지금 움직여라.] [네? 하나 지금 가게 되면 저들의 경계도 그렇고 육신을 찾는데 꽤 시간이…..]차라리 전면전이 벌어지는 틈 사이를 노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그였다.
물론 이런 판단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니. 굳이 저들의 흐름이 맞춰줄 필요가 없다. 준비해둔 폭약(爆藥)을 전부 동원하여 혼란과 전면전을 앞당긴다.] [폭약을 벌써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봉우리를 전부 뒤질 필요 없이 시혈곡이 있는 곳을 찾아라.] [시혈곡은 어찌?] [육신이 노려진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니 분명 가장 신뢰하는 자들에게 지키게 했을 것이다.]이런 목간의 혜안은 정확했다.
아무리 후방이라고 하나 적이 쳐들어오는 방향이 아니라 봉우리의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분의 예측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스릉!
밀회의 제 이계 능진순이 등에 차고 있던 도를 뽑아들었다.
-솨아아아아아!
도를 뽑아들자 마치 얼음으로 만든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반투명하기 그지없는 도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차가운 한기가 휘어 감겼다.
이를 느꼈는지 시혈곡주 이지염 역시도 경계심이 가득 찬 눈으로 검으로 열기를 일으켰다.
-화르르르륵!
“흐흐흐. 그래 네놈의 상대는 나다.”
완전히 상극을 이루고 있는 화검(火劍)과 빙도(氷刀)였다.
비록 요력(妖力)을 받아들이지 못해 제 일계에는 들지 못했어도 대붕(大鵬)의 피에 담긴 영력을 일부 흡수하는데 성공한 그는 그분을 가까이서 보좌할 수 있게 되었고 그 대가로 북해의 장인이 만년빙(萬年氷)으로 만든 설원도(雪元刀)를 하사받았다.
극음의 한기를 머금은 이 도에 베인 자는 상처가 얼어붙어 부서져 내리게 된다.
“그럼 시작해보실까?”
-팟!
능진순이 전광석화처럼 신형을 날리며 시혈곡주 이지염을 향해 한기가 넘치는 도초를 펼쳤다.
이에 맞서 이지염도 불꽃을 일으키며 적염검법의 검초로 이에 대응했다.
둘이 부딪치자 시혈곡의 무사들도 검진을 펼치며 자신들을 뚫으려하는 복면인들을 공격했다.
-채채채채채챙!
순식간에 봉우리 위가 전장터로 뒤바뀌었다.
“아니?”
“언제 후방으로 적들이?”
가까운 중앙 쪽의 봉우리들에서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에 적들의 침투를 알아차리기는 했으나 정의맹과 사련맹 연합의 총공세가 시작되었기에 이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
엄청난 수로 밀려오는 저들을 막지 못한다면 새로운 단체를 제대로 개파하기도 전에 멸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막아라!”
“조금이라도 지연시켜야 한다!”
-촤촤촤촤촤촤촤!
폭발에서 살아남은 사수들이 독무가 담긴 화살을 날리며 어떻게든 총공세를 해오는 적들을 막아보기 위해 안간 애를 썼다.
그러나 가장 선두에서 다가오는 괴물을 지연시킬 방도가 없었다.
그것은,
“크하하하하하하하핫!”
광폭한 웃음을 터뜨리며 보랏빛 독무를 가볍게 뚫고나왔다.
피부가 구릿빛으로 그을리고 흉폭한 야수를 연상케 하는 모습의 그는 바로 칠천(七天)의 일인이자 사련맹의 일맹주 광악패제 항심이었다.
“쏴라!”
-촤촤촤촤촤촤촤!
“흥!”
-촥! 솨아아아아아!
그가 콧방귀와 함께 가볍게 도를 휘두르자 화살비가 순식간에 소멸되어버렸다.
-팟!
화살비마저 뚫어낸 그의 신형이 어느새 하늘 위로 솟구치며 사수들이 뭉쳐 있는 매복지를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마치 유성우와 같은 그의 엄청난 기세에 활을 쏘던 사수들이 겁에 질린 나머지 혼비백산 도망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채아아아아아앙!
순식간에 산봉우리를 베어버릴 기세로 날아오는 항심을 막아선 자가 있었다.
검과 도가 부딪치며 그 여파로 엄청난 풍압이 몰아쳤다.
광악패제 항심이 자신의 일도를 막은 자를 노려보며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구천무!”
“항심 맹주. 오랜만이구려.”
항심의 일도를 막은 자는 다름 아닌 같은 칠천의 일인인 영검산장의 장주 구천무였다.
유일하게 광악패제를 막을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나선 것이었다.
광악패제 항심이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크하하하핫. 속는 셈치고 전장에 온 보람이 있군. 안 그래도 그때의 섭섭함을 좀 계산하고 싶었는데 말이야.”
이런 그의 말에 구천무는 오래 전을 잠시 떠올렸다.
홀로 검곡의 영검산장을 찾아와 자신의 독문병기로 쓸 명도(名刀)를 만들어달라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던 모습을 말이다.
당시 검을 제외한 어떠한 병장기는 만들지 않겠다는 그의 말에 불쾌함을 드러냈었지만 이내 조용히 돌아갔던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공교롭게도 그 날 완성된 명검 일휘(一輝)를 가지러 정의맹주 정현문이 도착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라고 해도 홀로 적지까지 내려와 현경(玄境)에 이른 대종사를 둘을 감당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순순히 돌아갔으나,
“병장기를 만드는 자가 그리 편향적이면 쓰나. 이 참에 구 장주 그대에게 검보다 도(刀)의 훌륭함을 알려주지. 이렇게 말이야! 흐압!”
-채아아아앙!
항심의 도에서 일어난 반탄력에 구천무의 신형이 뒤로 튕겨나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에 공력을 끌어올렸던 구천무는 멀지 않은 여섯여 장 거리에서 멈출 수 있었다.
‘기세가 너무 올라있다.’
-파팍!
구천무가 그의 광폭함에 혀를 내두르고 있는데,
-팟!
“이제 시작이다! 제대로 검을 쥐어라!”
-채채채채채채채챙!
하지만 항심이 이내 따라붙으며 엄청난 기세로 흉폭하기 그지없는 도초를 연거푸 펼치며 그대로 구천무를 뒤로 밀어붙였다.
그러는 사이 드디어 정의맹과 사련맹의 전력들이 독무를 뚫고 십만대산의 봉우리로 올라오며 전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한편,
태공봉천식의 내부.
-나는 왕(王). 모든 만마(萬魔)의 일족들을 지배하는 마의 왕(魔王)이다.
‘마의 왕?’
-그래. 그것이 바로 나다. 물론 지금은 마의 왕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겠군.
‘…….마치 과거의 일처럼 이야기하는군.’
-후후후. 그 말 그대로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이렇게 분리된 의사체로서 우리가 만날 일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
존재하는 모든 마(魔)들의 왕(王).
그렇다면 이매망량들에게 있어서 정점인 존재라고 해야 하나.
의아해하고 있는데 스스로를 마의 왕이라고 밝힌 이 존재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말했다.
-나는 이곳에 속하지 않는다.
‘그게…….무슨 소리지?’
-좀 더 다른 세상이라고 해야 옳겠지. 그곳은 끝없이 대립하고 무너져 내리고 있는 세상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해봐야 인간의 의사체인 네가 받아들이기에는 이해하기 힘들 거다.
-슥!
그 말과 함께 마(魔)의 왕이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태공봉천식의 태고의 금술로 인해 움직일 수 없는 목경운으로서는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뭘 하려는 거지?’
-네가 격을 갖출 때까지 고민을 하려 했었다.
‘고민?’
-설마 그녀가 가엽게도 영체(靈體)로마저 그리 남아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의 영체? 잠깐 무슨 얘길 하는 거지? 너 설마…..’
-슥!
마(魔)의 왕이 움직이지 못하는 목경운의 이마를 향해 검지 손가락을 갖다댔다.
그리고는 씁쓸하면서 애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것은 불순물에 불과한 한낱 나의 미련.
‘멈춰! 아직…..’
-굳이 말로 들을 필요는 없다. 나를 받아들이고 나면 자연스레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니.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였다.
-화르르르르륵!
마(魔)의 왕의 몸이 다시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며 이내 그것이 손가락을 타고서 목경운에게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