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74)
-화르르륵!
옮겨붙는 검은 불꽃.
그것이 이마를 타고 머리부터 전신으로 퍼지는 순간 목경운의 두 동공이 인지하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 속도로 흔들렸다.
불꽃이 붙는 순간부터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것처럼 타고 들어오는 방대한 양의 기억.
아주 잠시 흘러들어온 기억만으로도 이미 목경운이 살아온 세월을 가볍게 넘어섰다.
그것은 하나의 탄생 과정이었다.
어둠과 혼돈 속에서 형성되어가는 그 모습조차 기억에 남아있다니.
‘멈······춰.’
목경운이 힘겹게 의사를 보냈다.
밀려들어 오는 방대한 양의 기억에는 단순히 생각나는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혼돈 속에서 있었던 그 기묘한 감각마저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그렇기에 목경운은 기억이 밀려들어 오는 것만으로도 뇌가 터질 것만 같은 고통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만······. 그만해라.’
-괴로워도 버텨라. 격을 갖출 때까지 기다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귓가로 마(魔)의 왕(王)의 의사가 울려 퍼졌다.
밀려들어 오는 방대한 양의 기억에 머리가 터질 것 같으면서도 목경운은 그 말에 납득이 갔다.
만약 깨달음을 통해 정신의 각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 기억들로 인해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서 순식간에 미쳐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여전히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밀려드는 방대한 기억은 고작 십팔 년밖에 살지 못한 목경운의 의사를 점차 흐릿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먹힐 것이 자명했다.
설마 이렇게 자신을 잠식하기 위해 기억을 넘기는 것인가.
‘끄으으으.’
괴로워하는 목경운의 귓가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네 잠재 능력은 무한하기 그지없다. 살아온 세월은 의미 없다고 하지 않았나? 나여.
‘······.’
이러한 말에도 불구하고 목경운의 눈동자는 점차 흐릿해져 갔다.
점차 기억에 잠식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검은 불꽃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굴복하여 너 또한 소중한 존재를 잃을 것이냐?
‘······!!!!!’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점차 목경운의 떨리던 동공이 멈춰지며 눈빛에서 강렬한 안광이 흘러나왔다.
이 모습에 검은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르며 일렁였다.
그와 함께 목경운의 머릿속으로 그저 흘러들어오기만 하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 하늘, 그리고 세 개의 달.
구름 한 점 없고 온통 갈색빛으로 물든 기이한 세상.
이곳은 현세가 아니었다.
이 기이한 세상 속의 드넓은 대지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존재가 자신을 우러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는데 그 모든 것들이 피와 죽음으로 얼룩져 있었다.
수십, 수백, 수천 년이 넘는 세월임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아비규환과 죽음.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가.
새하얀 날개의 존재들이 수도 없이 자신의 손에 죽어갔고 순간마다 두려워하고 저주했다.
기억은 온통 긴 세월 동안 오직 피와 끝없는 전쟁으로 점철되며 점차 모든 것에서 허무함을 느끼고 지쳐갔다.
그러다 이내 문이 열리며 달빛이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곳을 보는 순간 기억 속의 자신과 모든 이들에게서 생기가 돋아나고 새로운 활력이 솟구쳤다.
이 아름다운 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자.
이곳을 조금만 가꾼다면 굳이 그들과 다툴 필요도 없다.
그렇게 이상을 가지고서 이곳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저들 역시도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해서 섣불리 접근할 수 없을 깨닫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이곳 세상은 밤과 낮이 존재했고 낮이 되면 일족들은 버티기 힘들었고 밤이 되면 저들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낮이라는 것을 없애지 않고는 이곳을 새로운 터전으로 삼기 어려울 듯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산봉우리 위에 서서 이곳을 내려다보며 고민하던 찰나에 그의 기억 속에 절대 잊히지 않을 존재가 나타났다.
[암컷인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라······.] [됐다. 죽여서 갖다 버리거라.] [명을 받듭니다.]이곳에 토착하고 있는 인간이라는 하찮은 존재였다.
암컷이라 그런지 꽤나 아름답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그런 것은 하등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암컷? 말 아주 엿같이 하네. 씨발 수컷 놈아.]‘!?’
난생처음 들어보는 욕설에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이곳 세상의 존재들은 자신을 신(神)으로 여겼고, 모든 만마(萬魔)가 자신을 우러렀으며 심지어 적대적인 그들조차 자신을 두려워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기에 누구 하나 함부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고작 하찮은 인간 따위가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한다고?
[감히!]자신을 보좌하던 타우라는 크게 분노하여 그 여자를 죽이려 했다.
하나 한번 가진 흥미는 쉽게 그치지 않았기에 그는 그로 하여금 그녀를 죽이지 못하도록 했다.
[내버려 둬라.] [네?] [내버려 두라 했다.]그때 타우라 보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가축 혹은 벌레만도 못하게 여겼기에 당연한 반응일지도 몰랐다.
이것이 그간의 숙명을 무너뜨리고 운명을 갈리게 하는 순간이었다.
하나 그때는 후회가 없었다.
그녀를 만날수록 자신의 이 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녀 또한 자신과 같았고 우린 서로에게 더욱 깊이 빠졌다.
비록 그들과의 전쟁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둘 수 없기에 짧게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하나 그녀는 한낱 인간.
짧은 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짧으니까 더욱 반짝이는 거라고. 저희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잖아요.] [짧으니까 더욱 반짝인다라······.]참으로 현명하다.
찰나에 불과할 테지만 그녀의 말대로 모든 것이 아름다울 만큼 반짝인다.
어쩌면 나의 숙명은 파괴와 멸망이 아닌 이 순간들을 위해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그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그럼 그녀의 삶에 같이 맞춰서 걸어갈 수 있을 텐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슨 일이지?] [송구합니다. 그들의 수장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지금 본성으로 침공해오고 있습니다.] [······탈리샤.]스스로를 천족(天族) 혹은 신(神)의 일족이라 부르는 이들의 수장이다.
그들과 장장 오랜 세월 동안 전쟁을 치렀다.
전쟁이 워낙 길어져서 관성처럼 느껴지려 할 찰나였는데, 그들의 수장이 직접 친정을 온다고?
‘끝을 내야 할지도.’
그들 또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노리고 있다.
어쩌면 그녀를 위해서라도 전쟁을 확실히 끝내야 할지도 몰랐다.
결국 그는 다시 돌아갔고 그들과의 전면전을 치렀다.
양대 일족의 수장들마저 참여한 전쟁은 여태까지와 그 규모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상호 간의 세력이 비등했기에 전쟁의 양상과 대치는 점점 길어졌다.
-쿵쿵쿵!
그러던 차에 유달리 핵이 요동치며 이상하리만큼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 불안이 들어맞은 것일까?
그곳을 살피게 했던 일족이 자신에게 급히 보고했다.
[왕이시여. 아무래도 그곳에 저들이 개입한 것 같습니다.] [뭐?]마의 왕은 설마 하는 마음에 결국 문을 열어 그곳으로 향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월맥에 있는 사당에 문을 이어놓았던 그였다.
‘아······.’
문을 지나쳐 온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띈 것은 붉고 고운 신부복에 금관을 쓰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진심으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아름다움에 순간 넋을 놓고 있던 그는 이내 어디선가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들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너무도 충격적인 광경을 보게 되었다.
누군가 그녀의 심장을 뽑아서 으깨버리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
그 순간 그는 처음으로 이성을 잃었다.
놈의 정체고 뭐고 간에 이미 머릿속에는 살의만이 가득했다.
-콰드드득!
“끄아아아아아악! 누, 누구······.”
“죽여주마.”
-콰콰콰콰콰콰쾅!
그녀의 심장을 뽑은 놈의 두 팔을 비틀어 뽑아버리는 것도 모자라 그의 두 다리를 쥐고서 분노가 풀릴 때까지 사방으로 내팽개쳤다.
-콰르르르르르르!
대전의 천장이 무너지고 얼굴이 곤죽이 되다시피 한 놈의 심장을 뽑아서 으깨버렸다.
그리고 그도 모자라 죽기 전에 머리통을 그대로 뽑아버렸다.
놈을 순식간에 죽여버린 그는 황급히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심장이 뽑힌 그녀의 체온은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소월······.]이대로 숨은 거두는 것인가?
돌아온다고 하였는데 기다리지 않고 이리 가는 것이냐?
그때 그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찰나의 기적인 것일까?
[끄으으으으으.]눈을 뜬 그녀의 모습에 그는 흐느꼈다.
가슴이 찢어질 듯이 고통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주르륵!
핏빛이 서린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내렸다.
이런 그의 뺨으로 그녀가 손을 얹으며 힘겹게 입을 벙긋거렸다.
-다시 보게······되면······. 당신의······신부가······. 되고······싶었는데······.
나도 그러하다.
오직 너만이 나의 신부다.
그가 점차 힘이 빠져가는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름다웠다······. 너무 아름다워 한 송이 붉은 작약 같더구나.]그의 그 말에 그녀의 입가로 미소가 감돌더니 이내 눈꺼풀이 감겼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품 안에서 숨을 거둔 그녀의 모습에 그는 오열하며 포효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유일하게 찾아온 사랑이 이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잃게 되다니 너무도 아파서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괴로워하는데 이윽고 하늘이 어두워지며 공간이 일렁이더니, 이내 거대한 문이 열렸다.
붉은 하늘이 보이며 그곳에 하얀 날개를 펄럭이는 수백의 존재들이 보였다.
그가 위를 바라보았다.
-으득!
너희가 이 일에 개입된 것이었더냐?
정녕 이렇게까지 하고 싶었던 것이더냐?
-고오오오오오오!
붉은 하늘 위로 보이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 화려하고 거대한 백색 날개를 지녔으며 오색찬란한 빛을 내뿜는 존재의 모습에 그가 손을 내밀었다.
-촤르르르르르르!
그러자 손목에 감겨 있던 검은 팔찌가 이내 흑색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대가는······. 오직 죽음뿐이다.]-팟!
이내 그가 붉은 하늘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 * *
수십 일에 이르는 싸움이었다.
결과는 거의 양패구상이나 다름없었다.
길게 이어지는 싸움에 그를 따르는 일족들이 대부분이 몰려왔으나, 살아남은 자가 거의 없을 정도로 치열하기 그지없는 결과만이 남았다.
‘죽였어야 했는데.’
놈을 확실히 죽이지 못해서 안타깝지만, 핵을 터뜨릴 만큼의 치명상을 입히는 데는 성공했다.
물론 그만큼의 희생을 치러야 했지만 말이다.
부상을 입고서 성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아직까지 저들과의 전쟁이 끝난 게 아니었기에 수족들은 전부 전쟁터로 가 있었고 이곳을 지키는 것은 일부 보좌들뿐이었다.
그렇게 부상을 회복하고 있을 때였다.
[안 됩니다. 아직 그분께서 몸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비켜라. 죽기 싫으면.] [하오나······.] [그분께 급히 아뢸 것이 있다.]밖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보좌관인 타우라였다.
밖에서 그를 필사적으로 제지하려 했지만 강했던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타우라는 그들을 전부 죽여버리고는 알현실의 문을 강제로 열고서 들어왔다.
[분명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랬지요. 한데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으니까요.]이때 놈의 목소리와 눈빛에 서려 있는 살의(殺意)가 선명해졌다.
그때 놈이 무언가를 내려놓자 그것이 빛을 내며 이내 일렁이는 공간의 문을 만들어냈다.
-우우우웅
[지금 무얼 하는 거지?] [마지막으로 당신의 의중으로 알아보려고 합니다.] [무엇을 말이더냐?] [지금 당장 제게 명을 내려주십시오. 이곳으로 들어가 그 세상에 있는 벌레들을 전부 처리하라고 말입니다.]지금 이 상황에서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부상만 아니었다면 놈을 벌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분명 그곳을 지배하지 않을 거라 했을 텐데.] [하······. 제가 알고 있는 당신은 이런 분이 아닙니다. 오직 일족을 위하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고작 인간 계집 하나 때문에 벌레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뇨.] [타우라.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하지 않는다.]그 말에 타우라가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댔다.
[크하하하하하하핫! 역시 천족 왕의 신검에 핵(核)을 관통당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보군요.] [······.] [지금 당장 그곳으로 가서 당신을 약하게 만든 모든 것을 제거하고 원상태로 돌려놓겠습니다. 제 충정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타우라!] [가장 먼저 그 계집을 죽여서 수급을 보내겠습니다.]그녀는 이미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아직 슬픔과 화가 가라앉지 않은 그는 이를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마(魔)의 왕(王)이 회복하던 것을 멈추고서 놈에게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고작······. 이게 답니까? 정말 약해지셨군요.]심각한 부상을 입은 그는 힘이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었다.
타우라가 그의 머리와 가슴을 붙잡았다.
[제게 무슨 능력이 있으신지 아시지요?] [타우라······.] [약해진 당신이 우리 일족을 이끄는 일은 더 이상 불가능할 듯하군요. 그리고 그 나약해진 심성도 말이죠.] [쿨럭쿨럭. 비뚤어졌구나. 타우라.] [흥!]-슈우우우우!
타우라가 남아있는 그의 마기(魔氣)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하아······.’
약해졌다고는 하나 힘을 완전히 소진된 것이 아니기에 이를 반항할 수 있었지만, 그는 이내 그것을 그만뒀다.
그녀가 세상에 없는데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 이상 죽고 죽이는 이 세상에 미련이 없었다.
한참을 걸려서 마기를 거의 다 흡수해가는 타우라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실망스럽군요. 최고의 전사이자 검은 불꽃의 화신이란 분이 반항조차 하지 않다니.]그런 타우라에게 힘을 잃고서 초췌해진 그가 말했다.
[본왕 하나로 끝내거라.]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네가 일족을 이끄는 것을 허락할 터이니, 그곳에는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말라.]-으득!
이 말에 타우라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콱!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끝까지 당신에게는 벌레 같은 그 인간 계집만이 다로군요.] [그녀만이 전부가 아니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됐습니다. 당신이란 존재가 일족을 어찌 생각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렇게 그곳이 좋다면 그곳에서 평생 썩으십시오.] [타우라!]그런 그에게 타우라가 비릿한 미소와 함께 속삭였다.
[아! 이걸 깜빡했군요. 그러고 보니 그들이 어떻게 당신의 그녀를 알았을까요?]그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떨려왔다.
[너······. 설마······.] [후후후. 그들이 당신을 찾을 겁니다. 열심히 도망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해보시죠. 그 상태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말이죠.]-팟!
그렇게 놈은 그를 문으로 집어 던졌다.
문이 열린 곳은 다름 아닌 높은 상공이었다.
진실을 알지 못했다면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것이 낫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나 지금 이대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의 몸으로서는 이대로 떨어지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에 그는 체내에 남아있는 잔여 마기를 끌어냈다.
-화르르르륵!
몸이 검은 불꽃에 휘감겼다.
그 상태로 그는 엄청난 속도로 지상으로 떨어졌다.
-쿵!
검은 불꽃의 마기로 몸을 보호했으나 속이 진탕되는 고통을 피할 수가 없었다.
쓰러질 것만 같은 그의 눈동자로 누군가가 보였다.
그곳에 한 노인이 자신을 향해 눈물을 보이며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자신을 숭배하는 인간인가?
-쿵!
기운의 소실로 불꽃이 가시며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런 그에게 노인이 뛰어와 부축하더니 맥을 짚으며 자신을 살폈다.
[화신이시여. 저는 당신을 모시는 종이나이다. 부디 당신을 살릴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뜻대로 하라.]스스로를 배화교의 호법인 장문노라고 밝힌 그는 마의 왕을 엎고서 약재를 수급할 수 있는 큰 마을로 향했다.
그렇게 향한 마을은 광동성(廣東省) 용문(龍門)이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 어귀에 잠시 그를 앉혀둔 장문노가 말했다.
[약재를 찾아올 터이니 잠시만 이곳에서 기다려주십시오. 금방 다녀오겠나이다.] [······그리하라.]장문노가 그렇게 간 후에 벽에 기대앉은 마의 왕이 자신의 중심부를 만졌다.
핵이 뚫린 것도 모자라 모든 기운을 빼앗기다시피 했기 때문에 사실상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대로 소멸하는 것인가?
-으득!
참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다.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동귀어진의 각오로 놈을 죽였어야 했나?
그저 일족을 택하지 않았다고 원망하는 듯하고 삶에 미련이 없기에 포기했던 것이 크나큰 패착이 되어버렸다.
모든 힘을 빼앗긴 이상 설령 살아남는다고 해도 더 이상 가망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흠칫!
어디선가 그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천족의 기운이었다.
타우라 놈의 말대로 놈들이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인가?
-스스스스!
놈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마기를 잃었다고 해도 마의 일족 특유의 기운과 핵(核)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에 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꽉!
가슴을 부여잡은 그가 몸을 움직였다.
아직은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팟!
지붕 위로 올라간 그는 다가오는 기운들을 피해서 반대 방향으로 신형을 날렸다.
-욱씬욱씬!
그러나 기운을 거의 소실한 것 이전에 핵이 뚫렸기에 그는 몸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지붕을 타고 넘던 그는 이내 격통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다.
[큭!]-쾅!
공교롭게도 그가 떨어진 곳은 다름 아닌 마차였다.
마차를 뚫고 그 안으로 떨어졌는데 그와 부딪친 한 여인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고, 그녀가 자신의 몸으로 감싸고 있는 아기가 보였다.
[응애응애!]울고 있는 아기.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정말 작다.
이를 한참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씁쓸해졌다.
만약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자신들에게도 저런 아기가 있었을까?
하나 이제 와서 그걸 바라봐야 헛된 미련일 뿐이었다.
어차피 자신은 인간이 아니기에 그녀가 아기를 낳을 수······.
[아······.]인간······.
그녀와 마찬가지로 같은 삶을 걸어가고 싶었기에 인간이 되고 싶었다.
머릿속으로 그렇게나 간절히 바라왔으나 이끌던 일족들을 두고서 그럴 수가 없었기에 포기해왔었다.
그러나 이제는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아기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그가 이내 아기에게 손을 갖다 댔다.
-스스스스!
점점 그들로 여겨지는 기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핵(核)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다면 저들의 눈 또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아있는 모든 힘을 소진하여 인간이 된다면 자신의 의식이나 자아는 이대로 소멸될 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는 너무도 약해져 있었다.
하나 더 이상 선택권은 없었다.
‘그래.’
차라리 그녀와 같은 인간이 된다면 그것 나름대로 반짝이는 결말일지도.
마의 왕이 아기를 쓰다듬으며 이내 작게 중얼거렸다.
[소월······. 보고 싶구나.]-화르르르륵!
이내 그의 몸이 검은 불꽃에 휩싸이며 그 형체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꽃 속에서 울고 있는 아기와 완전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아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