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75)
검은 불꽃 속에서 탄생한 아기.
마지막 강렬했던 기억을 끝으로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공간 속에서 목경운의 눈시울이 조금씩 붉어졌다.
-화르르르!
눈앞에 몸보다도 크게 타오르고 있던 검은 불꽃은 어느새 수그러들어 주먹만 한 크기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목경운이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의사를 보냈다.
‘어찌하여 한낱 인간의 의사체인 내게 맡기려하는 것이냐?’
-…….
‘모든 것을 네가 거두어도 되지 않느냐?’
모든 기억을 되찾은 시점에서 목경운은 인격에서 다를지언정 그와 동일했다.
하나 인간이 되면서 탄생한 의사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격을 떠나서 그는 짧은 생을 살아온 자신의 의사체를 얼마든지 먹어치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조금도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에 목경운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검은 불꽃이 일렁였다.
-한낱이 아니다.
‘……..’
-더욱 반짝이고 있지 않느냐?
‘너……..’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짧으니까 더욱 반짝이는 거라고. 저희도 그렇게 살아가면 되잖아요.]활짝 웃는 그녀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것이 네 모든 것이었더냐?
영생이나 다름없는 마(魔)의 왕(王)으로 태어나 덧없을 만큼 짧지만 누구보다 빛나는 인간의 삶을 바랐구나.
-스스스스!
점점 검은 불꽃이 작아지고 있었다.
꺼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참으로….길고 길었구나.
‘멈춰라. 이렇게까지 너의 의사를 완전히 내게 녹일 필요는 없다. 아니 왜 사라지려고 하는 것이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너!’
-그리….생각할 필요….없다. 나는….너. 너는….나. 결국….우리는 하나다.
검은 불꽃이 손가락 정도의 크기까지 줄어들자 목소리마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목경운은 그가 자신에게 스며드는 것은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 그만해라. 그녀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느냐? 깨어났던 매순간마다 그녀에게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느냐?’
기억의 모든 것이 동화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깨어났던 그 순간마다 그는 수십, 수백, 수천 번 같은 말을 속으로 되뇌였다.
[너무도 보고 싶었다. 하나뿐인 나의 신부.]그럼에도 입 밖으로 이를 내뱉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털끝 하나라도 미련이 남는다면 인간의 의사체인 자신과 동화되는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그렇기에 끝내 그녀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
설령 하나일지언정 목경운은 그가 자신의 인격인 채 이걸 말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스스스스!
불꽃이 연소되어가며 붉은 불씨만이 일렁였다.
그런 목경운의 귓가로 그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울려퍼졌다.
-소….월……과……나의……아름답고…..반짝였던…..이야기는…….그때…..끝을 맺…..었다. 이젠……청령과…..너의….이야기다.
꺼져가는 불씨.
불씨 속의 그는 찰나에 그녀와의 만남을 그렸다.
그리고 너무도 아름다웠던 자신의 신부를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아름다웠다……너무 아름다워 한 송이 붉은 작약 같더구나.
-슈우우우우!
불씨는 그렇게 꺼졌고 아지랑이처럼 흩어졌다.
머릿속으로 그의 마지막 의지마저 깃들자 의사가 녹아들어 완전히 하나가 된 목경운의 붉어진 눈시울로 한 방울의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렸다.
-주르륵!
그 순간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던 시간 속에 균열이 일어났다.
-쩌적!
* * *
-쩌적!
태공봉천식에 금이 가는 순간 목간의 분신의 세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찌?’
태고의 금술이라 불리는 태공봉천식.
이것은 순리를 벗어나려는 존재 즉 신의 영역에 가까워지는 이들을 붙잡기 위해 만들어진 절대에 가까운 술법이었다.
그때와 다르게 완벽하게 펼쳐졌기에 자신이 아니고는 누구도 이를 해지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쩌저저적!
한 번 생겨난 균열은 점차 사방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이에 목간의 분신의 시선이 이내 태공봉천식의 중심부에 있는 목경운에게로 향했다.
-쿵!
그때 그의 귓가로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이었기에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릴 수가 없는데, 놈의 심장이 점차 들릴 만큼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다.
-쿵! 쿵! 쿵!
착각이 아니었다.
심장 소리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목간의 분신이 이내 두 팔을 활짝 폈다.
그리고는 목경운이 있는 곳을 바라보며 팔을 모으며 두 손으로 가두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슈우우우우우!
넓게 퍼져 있던 태공봉천식이 줄어들며 목경운을 중심으로 빛이 더욱 강렬해져갔다.
그것은 점차 구체의 형태로 변해갔다.
광역으로 펼친 태공봉천식의 주력의 범위를 줄어들게 하여 술법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쿨럭쿨럭.”
목간의 분신의 입에서 피 기침이 터져나왔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로 억지로 주력을 움직인 탓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하지 않고는 이 이변을 막을 자신이 없었다.
이미 늦었다고는 하나 놈이 완벽한 태공봉천식에서 빠져나오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쩌저저적!
‘!?’
그 순간 눈부시게 빛나고 있던 구체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안 돼. 어떻게든 막아야…..’
“풋!”
그때 목간의 분신의 입에서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이내 구체가 박살이 나며 응집되어 있던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솨아아아아아아아아!
흘러나오는 빛 속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뻗어나와 목간의 분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꽉!
“컥!”
그는 목경운이었다.
목을 붙잡힌 목간의 분신의 동공이 심하게 떨려왔다.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위압감에 눈을 마주치기조차 힘들었다.
마치 절대적인 존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의 육신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것을 한 번 느껴본 적이 있었다.
“컥….컥…..너…….”
“사라져라.”
“무, 무슨……”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전신은 날카롭게 에워싸는 예기.
그것은 감지하기 무섭게,
-콰직!
목간의 분신의 몸이 그대로 터져나가고 말았다.
바로 앞에서 몸이 터져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음에도 불구하고 목경운의 몸에는 어떠한 것도 묻지 않았다.
놈을 그렇게 죽인 목경운이 머나먼 남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인가.”
-파아아아아아앙!
그 순간 원형으로 물결 형태의 파동이 퍼져나가며 공간이 들썩이며 이내 목경운의 신형이 점이 되어 사라졌다.
* * *
-욱씬!
그림자 속에 서있던 죽립인이 순간의 두통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곁은 지키고 있던 긴 머리카락에 붉은 입술의 사내가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목간. 괜찮으십니까?”
다가오려는 그에게 목간이라 불린 죽립인이 다가오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이에 사내가 황급히 멈춰 섰다.
그런 그에게 목간이 이내 입을 열었다.
“……..놈이 풀려난 것 같다.”
“네? 놈이라면 설마 그 화신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럼 누굴 이야기하는 것 같으냐?”
“소, 송구합니다. 하오나 목간이시여. 태고의 금술인 태공봉천식에 갇힌 자들 중에 자력으로 탈출한 자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없이 신수에 가깝다고 알려진 육마(六魔)도 가둔 태공봉천식이다.
설령 무림인들 중에서는 최고 경지라 할 수 있는 생사경(生死境)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육마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하면 본좌가 잘못 알았다는 것이냐?”
날카롭게 울리는 목소리에 붉은 입술의 사내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서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며 사죄했다.
-쿵! 쿵! 쿵!
“요, 용서하여 주십시오. 어찌 속하가 그런 불경한 생각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물러나 있어라.”
목간의 그 명에 이내 붉은 입술의 사내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그가 눈 밖에서 벗어나자 목간이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가 이내 내렸다.
순간 광기와 화를 주체하지 못할 뻔 했다.
‘뭐지?’
분신들과는 백(魄)이 이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들과 의사를 공유하고 있어서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자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태공봉천식에 금이 가는 광경이었다.
이에 분신이 태공봉천식의 주력을 압축하여 구체로 만들고 있었는데, 그 순간부터 분신의 의사가 검게 물들며 이내 그대로 끊겨버렸다.
백(魄)에 타격이 있는 것을 보면 분명 분신이 죽었다.
한데 어째서 마지막 순간이 보이지 않은 거지?
‘누군가 개입한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목간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상관없었다.
설령 누군가 화신을 도와 그가 천운으로라도 태공봉천식에 풀려났다고 해도 이미 늦었다.
그곳에서 이곳까지 닿기에는 너무도 멀었다.
그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나 있을 것이다.
놈이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었다.
-씨익!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린 목간이 이내 십만대산에 있는 자신의 분신을 향해 의사를 보냈다.
* * *
‘적염검법 제 7초식 초화불식(超火不式)!’
-화르르르륵!
시혈곡주 이지염의 검이 세밀하기 그지없는 불꽃의 궤적을 만들어내며 이내 한기로 이루어진 도초를 압도해갔다.
-채채채채채채챙!
‘빌어먹을!’
-쩌적!
전력으로 불꽃의 검초를 막아내던 밀회의 제 이계 능진순의 설원도가 이내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균열이 가더니,
-챙가아아아앙!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날아가 버렸다.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서 불꽃의 검이 능진순의 오른쪽 어깨부터 심장을 갈라 허리를 타고 빠져나왔다.
“네…..놈의 승리다.”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능진순이 마지막 힘을 다해 그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갈라진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쿵!
열기로 인해 베어진 부위가 타들어가며 피가 뿜어져 나오진 않았다.
그를 가까스로 쓰러뜨린 이지염이 한 쪽 무릎을 꿇고서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헉….헉…..헉……”
정말 강한 적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오른 데다 신공을 완성했기에 놈을 가볍게 이길 수 있을 거라 여겼는데, 이 자는 가히 팔성(八星)에 비견할 수 있는 초고수였다.
명을 지키기 위해 동귀어진의 각오로 한 팔을 내어주지 않았다면 승부에서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반 이상이나 잘려나간 그의 왼팔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사실상 팔을 잃었다고 해야 했다.
-촥!
이지염이 이내 덜렁거리던 자신의 팔을 베어냈다.
고통스러울 만도 했는데 팔을 자른 그는 조금도 신음성을 내지 않고서, 지혈점을 누르며 출혈을 막았다.
그러는데 누군가의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이지염의 표정이 굳어져갔다.
아무리 부상을 입었다고는 하나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는데 뒤로 다가오는 것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다.
‘나의 기감을 속였다고?’
이제는 무림의 최고수라 할 수 있는 팔성에 견줄 수 있는 그였다.
그런 그의 감각을 속일 수 있는 수준이라면…….
-슥!
고개를 돌린 이지염의 안색이 일순간에 어두워졌다.
그의 눈앞에 정의맹의 맹주 정현문이 손뼉을 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정현문.”
“훌륭하군. 쓸데없는 열양지기에 집착하여 대공을 놓치기에 한계가 극명하다 여겼는데 말이야.”
‘!?’
이지염이 미간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네놈 뭐지?”
한 번도 시혈곡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에 정의맹과는 특별히 접전이 없었던 그였다.
그렇기에 정의맹주라고 해도 자신에 대해 알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적염검법이 열양지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거지?
의아해하는데,
-스릉!
정현문이 자신의 독문병기인 명검 일휘를 뽑으며 다가왔다.
“안타까워. 막 재능을 개화하자마자 이리 죽을 운명이라니 말이야.”
-고오오오오!
검을 뽑았을 뿐인데, 퍼져나오는 엄청난 기세에 이지염의 검을 쥐고 있는 손이 떨려왔다.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해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과연 자신이 현 무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칠천(七天)의 몇 초식이나 막을 수 있을까?
단 일 식이나 막을 수 있을까?
다가오는 그를 노려보던 이지염이 이내 긴 숨을 내쉬었다.
‘무의미하군.’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자신이 하려는 것은 지키려는 것이었다.
-찌익!
이지염이 자신의 옷자락을 찢더니, 이내 이빨로 옷자락의 천을 물고서 검과 손을 움직여 이를 감았다.
죽어도 검을 놓지 않겠다는 결의였다.
“멋지군. 하나 허튼 짓이다. 물러선다면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다.”
“내 목을 베고서 지나가라.”
“풋.”
이런 이지염의 의지에 정의맹주 정현문이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멀스멀!
그때 산봉우리에 죽은 자들이 흘린 핏물들이 한 방울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이한 광경에 정현문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왔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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