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78)
불과 잠깐 전.
높은 상공에서 요수 흠원이 힘차게 날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날개 짓은 평소와 다르게 상당히 어색하고 벅차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흠원의 날개를 무언가가 달라붙어 대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무언가는 다름 아닌 수백의 원혼들이었다.
원래라면 요력과 더불어 상처부위의 회복기를 거쳐야 했지만, 원혼들이 들러붙어 하나하나가 깃털의 역할을 해주어서 겨우 이곳까지 날아온 차였다.
그러나,
-펄럭펄럭!
이제는 그것도 한계인 듯 했다.
들러붙어 있는 원혼들도 그렇고 요수 흠원도 날개 짓을 하는 게 벅찼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기야!”
“젠장! 벌써 전쟁 중인 건가?”
배 아래로 보이는 십만대산을 내려다보던 섭춘이 혀를 내둘렀다.
뭔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벌써 전쟁이 한참 중일 줄은 몰랐다.
그런 그에게 파계승 복마권사 자금정이 말했다.
“어이. 섭춘. 다 좋은데 말이야. 이제 슬슬 어디로 내려야 할지 결정해야 할 듯 한데.”
-쿠우우우.
요수 흠원의 날개 짓이 많이 불안했다.
배가 점점 기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는 동안 내상을 어느 정도 회복해서 안색을 되찾은 몽무약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디든 힘들다.’
그런데 이미 한참 전쟁 중인지라 각 세력들이 뒤섞여서 어디에 내려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뱃머리에 있던 원혼 하윤이 어딘가를 손으로 가리켰다.
-고오오오오!
무언가 고조되는 살기가 느껴진다.
이에 팔독사장 구양소가 뱀 머리 모양의 사장을 짚으며 그곳으로 다가가 물었다.
“왜 그러나?”
-놈이다. 저놈이 틀림없다.
원혼 하윤이 가리킨 곳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들 중에서도 후방에 자리한 산봉우리였다.
워낙 높은 곳에 있기에 누가 누군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구양소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살의로 인해 한 가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설마 저곳에 있는 겐가?”
-그대들이 정말로 세 번째 눈을 가진 자와 싸운다면 확실하겠지. 나는 아직도 그때를 기억한다.
원혼 하윤의 그 말에 구양소는 얼마 전 그의 도움을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원혼의 도움을 받아 참으로 진기한 일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이내 원혼 하윤이 목경운을 비롯해 섭춘, 몽무약 등과 인연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 섭춘이 자신들의 사정을 이야기하자 원혼 하윤이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이마에 세 번째 눈이 있는 존재라고 했나?
그 뒤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분명 원혼 하윤은 밀회의 수장인 목간과 어떠한 악연을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는데 원혼 하윤이 배에 있는 목경운의 심복들에게 소리쳤다.
-곧 배가 착륙할 거다. 갑판이든 어디든 꽉 붙잡아라.
착륙?
대체 어디에 하겠다는 건가?
의아해하는데 원혼 하윤이 거대한 발톱으로 배를 붙잡고 있는 요수 흠원에게 소리쳤다.
-흠원이여. 저기 봉우리를 향해 배를 착륙시켜라. 아니. 저곳으로 배를 던져라.
‘!?’
* * *
“배? 배가 어찌?”
“여기로 떨어지고 있어! 피, 피해랏!”
비밀 통로의 입구인 바위를 지키고 있던 시혈곡 무사들이 봉우리를 향해 떨어지는 커다란 배를 보고서 놀란 나머지 혼비백산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정의맹주 정현문은 이를 피할 생각이 없었다.
“흥!”
오히려 떨어지는 배를 보며 코웃음을 치더니 이내 명검 일휘를 쥐고서 위를 향해 휘둘렀다.
-촤아아아아아악!
정현문이 검을 휘두르는 순간 명검 일휘에서 거의 십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검강(劍罡)이 솟구치는 것과 함께 떨어지는 배를 그대로 갈랐다.
반으로 갈라진 배는 그 상태로 떨어지며, 그 충격으로 봉우리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콰아아아아앙!
박살난 봉우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며 난리도 아니었다.
그 한가운데서도 반탄강기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 정의맹주 정현문은 파편들과 먼지를 예기로 튕겨내며 바위 입구로 향했다.
‘고작 이런 걸로 본좌를 막을 수 있을 성 싶으냐.’
제법 참신했기는 했지만 그래봐야 떨어지는 물체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렇게 앞으로 걸어가는 그에게 권격(拳擊)이 날아들었다.
-파아아아앙!
-채애애애앵!
예상을 뛰어넘는 위력의 권격에 정현문이 검강이 실린 명검 일휘로 이를 튕겨냈다.
권격을 튕겨내고서 앞을 쳐다보는데, 그의 앞으로 다섯 인영이 보였다.
그들을 알아본 정현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은 목경운의 심복들이었다.
가장 앞에서 백보신권(百步神拳)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파계승 복마권사 자금정을 필두로 얼굴을 검은 천으로 가리고 있는 마라현, 사장을 들고서 독기를 풀풀 풍기고 있는 팔독사장 구양소, 섭춘과 몽무약 등이 기수식을 취하며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정현문이 비웃음과 함께 말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이 명줄은 길구나.”
“클클, 뭐가 버러지라는 것이냐? 이 눈깔 기생충 놈아!”
자금정이 전혀 기세에 눌리지 않고서 소리쳤다.
그런 그의 외침에 정현문의 눈빛이 불쾌함으로 물들어갔다.
운 좋게 겨우 살아 돌아왔다고 해서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닌데, 감히 버러지들이 자신과 같은 선상에 서려고 하다니.
“스스로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줄 느끼게 해줘야……”
-쿠르르르르!
그때였다.
갑자기 그들이 있는 산봉우리 쪽으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먹구름이 번쩍이며 천둥과 함께 번개가 쳤다.
정현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귀의영역?’
구름 한 점 없었던 곳에 먹구름이 생겨나자 정현문은 이것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 격이 높은 원혼에 의해 생겨난 귀의영역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스멀스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방으로 수많은 원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엄청난 수의 원혼들이 봉우리 전체를 가득 메우는데, 사방으로 귀기가 퍼져나가며 주변에 있던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런 원혼들의 한가운데서 양손에 쌍도(雙刀)를 쥐고 있는 범상치 않은 모습의 원혼이 보였다.
‘격이 높군. 청령 급…..아니 그 이상인가?’
지금 느껴지는 기세는 청령 급이 아니라 격이 남령(藍靈)은 되어보였다.
한데 저 원혼의 모습이 묘하게 낯이 익다.
그러나 정현문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버러지들이 본좌를 귀찮게 하는군.”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이 성가실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와 다르게 화경의 고수가 둘에 그에 버금가는 기묘한 역량을 지닌 녀석 하나, 그리고 초절정의 극에 이른 자가 둘, 거기서 모자라 남령 급에 가까운 원혼.
이는 아무리 정점의 육체라 하여도 쉽게 물리칠 수가 없기에 더 이상 힘을 아낄 수가 없었다.
-쩌적!
정현문의 이마가 갈라지며 이내 세 번째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동자가 개방되는 순간 퍼져 나오는 엄청난 기운에 그의 앞을 가로막은 목경운의 심복들이 경계심으로 긴장을 금치 못했다.
반면,
-삼안(三眼)!
-솨아아아아아아!
세 번째 눈을 확인한 원혼 하윤의 한(恨)은 더욱 폭발했다.
어찌나 한이 깊었는지 원혼 하윤은 삼안을 개방한 정현문의 기운이 어떻고 간에 아무 망설임도 없이 신형을 날렸다.
-오늘 그분을 지키지 못했던 불충을 씻어내겠다!
* * *
같은 시각.
봉인의 술법인 삼십육정봉술(三十六停封術)에 갇혀 있는 청령이 이를 부수기 위해 명검 순연의 검 끝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었다.
역량이란 단순히 가진 영력(靈力)을 검에 모으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자신이 그간에 익혔던 검에 대한 깨달음과 식의(式意)를 담아내야 한다.
그녀는 생전에 벽을 넘어선 화경(化境)의 경지에 이르렀다.
본래라면 역량을 한 점으로 모을 수 있으려면 한참은 모자르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원혼이 된 그녀에게는 인간으로서의 경지는 무의미했다
오히려 원혼으로서는 그 격의 끝이라 할 수 있는 자령(紫靈)의 한계마저 넘어선 그녀였다.
-스스스스스!
순백의 검인 순연의 검 끝이 진한 핏빛으로 물들었다.
혼란했던 그녀의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고 오직 하나만을 그리고 있었다.
‘중생.’
그것은 목경운이 역량을 하나로 모을 때의 그 모습이었다.
이 모습을 스스로에게 투영한 그녀의 머릿속으로 이내 그것이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었다.
-촥!
그 순간 허공에 붉은 선이 그려졌다.
-콰직!
그와 깨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삼십육정봉술의 주력으로 이루어진 겹겹의 벽이 일순간에 갈라졌다.
‘됐어!’
생전에는 이르지 못했던 검극(劍極)의 영역에 일순간 오르자, 청령의 눈동자가 환희에 차올랐다.
중생과 함께 했던 그 모든 경험들은 하나하나 쌓여 그녀의 깨달음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벅차오른 것도 잠시였다.
삼십육정봉술에서 빠져나온 그녀의 영체가 휘청거렸다.
‘영력이 이 정도로 소모되다니?’
모든 영력을 한 점으로 모았기에 당연히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영체에 타격이 올 줄은 몰랐다.
그렇게 휘청거리던 그녀가 이내 남아있는 영력을 끌어올렸다.
이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당장 내려가 대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야 했다.
설령 남은 영력을 전부 소진하여 자신의 영체가 소멸 직전이 되더라도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
중생이 오기 전까지 이걸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
-촥!
바로 그 순간이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스쳐지나가며 그것이 명검 순연을 쥐고 있던 청령의 팔을 갈랐다.
영체가 잘려나간 그녀의 입에서 순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
-파스스스스!
잘려나간 그녀의 팔은 영체였기에 흩어지며 산화되었다.
그러나 명검 순연은 물체였기에 밑으로 떨어지려 했다.
그녀가 황급히 고통을 참고서 영력으로 명검 순연을 잡아당기려 했다.
‘안 돼.’
하지만 영력을 집중하고 있던 오른팔의 영체가 잘려나갔기에 이를 잡아당길 수가 없었던 그녀는 떨어지는 순연을 잡기 위해 밑으로 신형을 날렸다.
검을 붙잡기 위해 떨어지듯이 날아가고 있던 차였다.
-휘리리릭! 팍!
그때 떨어지던 명검 순연이 누군가의 손으로 들어갔다.
‘!?’
호피를 걸치고 있는 짙은 눈썹에 거친 외양을 지닌 한 중년인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를 보는 순간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위압감에 청령은 이내 날아가던 것을 멈추고서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린 그녀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 몸은 대체 뭐지?
“역시 한 눈에 알아보는구나.”
-쩌저적!
그 말과 함께 중년인의 이마가 갈라지며 세 번째 눈동자가 드러났다.
역시 목간의 분신이었다.
그런데 영체가 약해진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보았던 분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이었다.
흘러나오는 날카로운 기운들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갈가리 찢어버릴 것만 같았다.
“본좌가 가장 아끼는 육체지. 공을 꽤나 들였거든.”
-………대체 얼마나 많은 분신을 만든 거지?
“수많은 세월 동안 분신을 고작 몇 체만 만들었을 거라 여기는 것이 더 어리석지 않나? 소월. 물론 분신은 멀쩡한 백(魄)을 쪼개는 것과 같기에 무한하진 못하지. 아쉽게도 이것들이 마지막 분신들이다.”
-스륵! 스륵!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의 주변으로 두 명의 사내가 더 나타났다.
그들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목간의 분신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수에 있어서 여력을 남겨두는 것도 전략이다.”
-………
그런 그의 말에 청령의 안색이 어두워져갔다.
눈앞에 있는 호피를 걸친 분신만큼은 아니었지만 이들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깨달음을 공유하고 있기에 목간이 육신을 차지한 시점에서 절세고수들이라 할 수 있었다.
‘싸우는 건 무리야.’
-팟!
이들을 빠르게 훑던 청령은 이내 신형을 밑으로 날렸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앞을 호피를 걸친 목간의 분신이 가로막았다.
-스륵! 콱!
이형환위의 수법으로 나타난 그가 약해진 청령의 왼팔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리고는 명검 순연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영체에 조금 더 손상이 간다고 해도 혼(魂)과 하나가 되는 것에는 지장이 없으니 머리와 몸통만 남겨놓으마.”
-네놈!
“그 분노도 곧 애정으로 바뀌게 될 거다.”
호피를 걸친 목간의 분신이 광기 어린 미소와 함께 명검 순연으로 청령의 왼팔을 내려쳤다.
-촥!
아무리 원혼이 되었다고는 하나 팔이 잘리는 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꿈틀!
팔이 잘렸는데 어째서 감각이 있는 거지?
의아해하며 눈을 뜨는데,
“끄으으으!”
그런 그녀의 눈앞에 호피 가죽을 걸치고 있는 목간의 분신이 거리를 한참 벌린 것도 모자라, 자신의 잘려나간 오른팔목을 붙잡고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하는데 목간의 분신 둘이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며 신형을 날려왔다.
-팟!
“이노오오오옴!”
“네놈이 감히이이이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촤!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오는 두 분신들이 있는 사이로 검은 선들이 밤하늘의 유성처럼 사방에 궤적을 그려나갔다.
그러더니 이내 날아오던 그들의 몸이 수십, 수백 조각으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허공으로 흩날리는 선혈들 사이로 보이는 기다려왔던 누군가의 모습.
이에 청령이 붉어진 눈시울로 중얼거렸다.
-중생…..
그는 바로 목경운이었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