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87)
-슈슈슈슈슈! 푸푸푸푸푹!
[컥!] [끄억!]학사의 풍모를 지닌 노인이 쇠구슬로 탄지신통(彈指神通)을 날려 일순간에 다섯 명이나 되는 고수들의 심장을 관통시켰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들의 모습에 우직해 보이는 한 사내가 혀를 내둘렀다.
자신과 삼십 인의 호위대가 기를 쓰고 막으려고 했던 초절정 초입의 고수들을 고작 일수에 목숨을 앗아가는 무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뒤에는 단아해 보이는 외모의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진아영으로 무쌍성 진씨 일족이다.
진아영이 노인을 알아보자 화색이 돌더니, 이윽고 뛰어가 품에 안겼다.
-팍!
[착 할아버지!] [인석도.]그런 그녀의 어리광에 노인, 아니 사마착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었다.
속세와 등을 졌기에 사위나 여식이 불러도 움직이지 않던 그였지만 이 아이의 얼굴이 죽은 부인과 너무 빼닮았기에 종종 무쌍성을 찾아오는 그였다.
[또 절 보러오신 건가요?]환하게 웃는 이 얼굴.
하나뿐인 여식 사마영보다도 그녀를 닮았다.
내세에서나 다시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이 아이로 인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그러는 한편으로 사마착은 그녀가 보지 못하게 등을 토닥이면서 싸늘한 눈빛으로 호위대주에게 경고했다.
[하윤이라고 했느냐?] [그, 그렇습니다. 어르신.]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이 아이를 지킬 수 있겠느냐?]사마착의 나무람에 하윤이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고서 포권지례를 하며 사죄했다.
[송구합니다. 어르신!] [말뿐인 송구는 필요없다.]-팍!
이와 함께 사마착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손가락을 튕겨 날려보냈다.
지면으로 삼분지 일 가량이 박히는 것은 다름 아닌 종이였다.
종이에는 무언가가 빼곡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공 구결이었다.
[이, 이건……]두 눈이 휘둥그레진 하윤에게 사마착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제대로 익혀서 이 아이를 호위하지 못한다면 네놈의 두 다리를 부러뜨려 평생 걷지 못하게 만들 게다!]이런 그의 경고에 하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저 나무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만날 때마다 채워주는 어르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8년 후,
[응애응애!]자신이 거취하고 있는 깊은 산속까지 찾아온 진아영의 품속에 있는 아기를 보며 사마착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설마 네 아이냐?] [네. 이쁘죠?] [허허허. 아이가 아이를 낳았구나.] [또 그러신다. 저 이제 아이 아니거든요.] [응애응애!] [오! 그래. 엄마 여기 있잖아.]진아영은 울고 있는 아기를 까꿍하며 달래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 모습에 사마착은 또 다시 마음이 짠해졌다.
죽은 아내가 하나뿐인 여식 사마영을 안고서 행복해하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기억은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추억에 잠겨 있던 사마착이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진아영의 뒤에 우두커니 서있는 하윤을 슥하고 쳐다보았다.
진땀까지 흘리며 잔뜩 긴장하고 있는 그를 살피던 사마착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이제 겨우 쓸 만해졌구나.] [어, 어르신!]사마착의 그 말에 하윤은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수련을 했던가.
이 말에 보상을 얻은 기분이었다.
사마착이 진아영의 품 안에 있는 아기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기 이름이 무엇이냐?] [영인이에요. 진영인. 이쁘죠?] [제 아비보단 어미를 빼닮아서 다행이구나.] [그렇죠? 헤헷.]이런 진아영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사마착이 하윤에게 말했다.
[지켜야 할 이가 늘었구나.] [반드시 해내보이겠습니다. 어르신!]-쿵!
하윤이 자신의 가슴을 세게 두드리며 다짐해보였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무림의 대사건이 벌어지게 되었다.
바로 대재앙의 날이다.
순리로 인해 세상에 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위와 여식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화선으로 가지 않았었다.
그는 삶에 더 이상 큰 미련도 집착도 없었다.
그저 목숨이 다 하는 날까지 죽은 아내를 닮았던 그 아이를 보는 것만이 낙일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의 눈앞에 그 아이가 숨을 거둔 채 누워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혔다.
자신의 거처까지 밀고 들어온 이매망량들에 불안함을 느껴서 그녀를 찾았던 그였다.
그런데 이미 늦었다.
주변에는 수많은 이매망량들의 사체가 있었고 그 앞에는 온몸이 그들에게 팔 다리가 뜯겨나가고 머리와 몸통만 덩그러니 남은 하윤이 있었다.
주변의 흔적만으로도 사마착은 알 수 있었다.
하윤이 필사적으로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녀를 지키려했음을 말이다.
그렇기에 진아영의 시신은 그나마 온전할 수 있었다.
-스멀스멀!
은거하며 오랫동안 수련을 했기에 자신도 모르게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사마착은 그녀의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원혼을 발견했다.
그는 원혼이 된 하윤이었다.
-지키지 못했습니다. 끝내 지키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사무쳤는지 그는 원혼이 된 자신의 영체를 난자하며 해하고 있었다.
이 모습에 분노는 일순간 수그러들었고 사마착은 구름 한 점 없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 * *
구무림의 전설이라 불렸던 월악검 사마착.
그는 한 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진영인의 아이 진예린.
그 아이는 끝내 찾지 못했지만 진아영을 쏙 빼닮은 모습에 그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내뱉었다.
“이제야 찾았구나.”
진예린이 사마착을 꽉 껴안으며 소리쳤다.
“착 어르신!”
그런 그녀의 등을 사마착이 부드럽게 토닥였다.
모든 것을 잃고서 홀로 지금까지 버텨왔을 이 아이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러다 사마착은 이내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를 보고서 안고 있던 그녀를 내려다주며 말했다.
“일단 저것부터 해결해야 겠구나.”
-크와아아아아앙!
무월공검(無月空劍)의 검초에 콧등을 베이며 분노로 포효하고 있는 육마(六魔)의 하나 사타왕(獅拕王)이 그들을 향해 다시 질주해오고 있었다.
사마착이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이내 그가 검결지를 들어올리자 주변으로 세 자루의 무형검(無形劍)이 형성되었다.
-우우우우웅!
거대한 무형검들의 자태에 탄성을 흘리던 진예린이 이내 검병을 똑바로 쥐었다.
그런 그녀에게 사마착이 물었다.
“할 수 있겠느냐?”
“당연하죠.”
역류하던 뇌기(雷氣)는 사마착이 등을 두드리며 몸 밖으로 빠져나가 안정화 된 상태였다.
이에 진예린이 검을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파치치치치치칙!
먹구름이 낀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내려치며 검에 휘감겼다.
그것은 천둔(天遁)의 비기라 할 수 있는 뇌벽천둔(雷霹天遁)이었다.
진예린이 바닥을 향해 진각을 내려찍었다.
-쾅!
-파치치치치치칙!
그러자 바닥으로 뇌기가 타고 흐르며 사방으로 뿌리 형태의 푸른 불꽃이 튀어올랐다.
그 상태로 그녀가 검을 당겼다가 앞으로 강하게 뻗었다.
‘뇌벽천둔(雷霹天遁) 신로 성명검법 축아회검(逐亞回劍)!’
-파치치치치치치칙! 콰콰콰콰콰콰쾅!
번개로 휘감긴 검끝에서 뇌력에 휩싸인 검세가 회오리를 치며 거대한 뇌전의 폭풍이 되어 앞으로 뻗어나갔다.
이런 그녀의 검초에 사마착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혹시나 했는데 약조를 깨고 전수한 건가?’
이것은 분명 선술이라 할 수 있는 천둔(天遁)이었다.
익힐 수 없는 것을 떠나서 분명 전수할 수 없기에 후세에도 남기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진예린이 이를 쓰자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사마착은 그녀의 축아회검에 맞춰서 세 자루의 무형검으로 검초를 펼쳤다.
‘무월공검(無月空劍) 월무지경(月舞至境)!’
-촤촤촤촤촤촤촥!
세 자루의 무형검이 하늘을 날며 교차하더니 이내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사타왕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눈을 뗄 수 없는 장관이었다.
-으득!
전혀 예상치 못한 구도에 목간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는 극도로 신중했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지켜봐왔던 과거의 여러 크나큰 중원 무림에 닥쳤던 위기들과 대재앙의 실패를 반면교사(反面敎師) 삼아 이 거대한 판을 만들어냈다.
‘완벽했어야 했는데…….’
중원 무림이 힘을 합쳐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재해로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끌려 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육마(六魔) 중 최강이라 불리며 태고의 선인들마저 그 힘을 두려워했던 대력왕 우마왕도 모자라 북해를 피바다로 만든 백붕마왕과 파괴의 야수 사타왕마저 동원했다.
하나하나가 한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천재지변 그 자체였는데, 압도적인 살육이 아니라 팽팽한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꽉!
분노한 목간의 세 번째 눈동자가 대지를 뒤흔들고 있는 두 육마의 대립으로 향했다.
역시 저것이 나타난 것이 가장 컸다.
백면왕(百面王) 금모구미호(金毛九尾狐).
육마 중에서 유일하게 봉인이 되어 있지 않고서 수많은 각국을 떠돌며 파멸을 이룩한 불길함의 극치에 이른 존재.
굳이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방해가 될 거라 여기진 않았다.
그런데 저것이 설마 인간들의 편에 설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콰콰콰콰콰쾅!
게다가 유일하게 봉인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현재의 역량은 대력왕에게마저 필적했다.
순리 너머로 사라진 그 괴물 원숭이가 아니고는 누구도 일대일로는 당할 자가 없다고 알려진 대력왕과 맞먹다니 최악의 변수였다.
‘안 돼. 이대로는.’
작은 변수는 적들에게 희망이 되고 그 희망은 사기를 불어넣는다.
그냥 내버려뒀다간 정말로 반전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이에 목간이 적옥의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우우우우웅!
붉은 옥이 강렬한 광채를 내자 진군을 잠시 멈추고 있던 헤아릴 수 없는 수의 이매망량들이 전보다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이렇게 된 이상 압도적인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육마 중에 단 하나라도 균형이 무너져서 합류할 수만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무리 금모구미호라고 해도 혼자서 육마 둘을 감당할 순 없을 테니 말이다.
-크워어어어어어!
-크우우우우우!
-크카카카카카카!
‘조금의 희망도 없다는 것을 알게…..!?’
-우르르르르르르!
그런데 육마들에 분산되어 있던 그의 세 눈동자로 십만대산 앞으로 집결하고 있는 정의맹과 사련맹, 그리고 전 천지회 무사들이 보였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절대로 뭉치지 않을 것만 같던 삼대 세력이 공동의 적에 맞서기 위해 진열을 갖추고서 결의가 넘치는 함성을 지르는 모습은 목간으로 하여금 분노를 자아해냈다.
‘이놈들이!’
그가 기대했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재앙 앞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망연자실해 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었다.
그러나 이들은 누구 하나 그런 모습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육마에 대항하는 아군들의 모습에서 사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리고 그 선두의 한복판에는 목경운이 있었다.
‘네놈이……네놈이 어째서……’
놈이 있어야 할 곳은 저곳이 아니었다.
버림받은 마(魔)의 왕(王)의 화신.
모두의 적이어야 할 네놈이 어째서 그곳에서 인간들을 이끈단 말이냐?
네놈은…….
-흠칫!
그 순간 목간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차오르던 분노를 일순간에 싸늘하게 식혀버릴 만큼 짓누르는 강대한 위압감.
목간의 이마가 순식간에 식은땀으로 덮여갔다.
낯빛이 창백해지기마저 한 목간이 입술을 파르르 떨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잠깐 아직……아직 끝나지 않았……”
-네 역할은 여기까지다.
-쩌저저저저저적!
머릿속으로 울려 퍼지는 위엄 넘치는 목소리와 함께 그 순간 짙은 먹구름이 반으로 갈라지며 어둠으로 가득했던 하늘이 열렸다.
강렬한 빛이 찬란하게 대지를 비추었다.
그것은 흡사 천지개벽(天地開闢) 그 자체였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