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49)
13화 습격 (4)
이걸 그저 달라졌다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리 사이가 나쁘다고 해도 명목상으로는 어머니나 다름없는 석 부인을 희생시키자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목경운.
그런 그의 말에 목인단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칠 만큼 충격 받았다.
달라진 걸 넘어서 사람 자체가 바뀐 것 같다.
그때 목경운이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장주를 죽게 내버려두고 자신의 아들에게 모든 걸 주려했던 여자입니다. 주저하실 가치가 있을까요?”
‘이 녀석……’
사실인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목경운은 자신에게 잔인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감정적인 명분을 제공하고 있었다.
한 집단을 살리려는 우두머리로서나 사람으로서 충분히 혹할 수 있는 명분이었다.
그러나,
‘아니야.’
목인단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잡고 있던 목경운의 손목에서 손을 떼며 작게 다그쳤다.
“네 말을 신뢰할 수 없다.”
“진실인 걸요.”
“……..설령 네 말이 맞다고 하여도 누군가를 희생시켜서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 옳다고 할 순 없다. 그리고……”
장주 목인단은 뒷걸음을 치고 있는 석 부인의 얼굴을 보았다.
겁에 질린 그녀의 눈빛은 강한 부정을 보이고 있었다.
아내였기에 잘 알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저지른다면 오히려 시치미를 뗐으면 뗐지 저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역시 아니야.’
그렇다는건,
“혹 저게 네가 한 거라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해주마.”
“어리석은 짓이요?”
“그래. 그리고 지금은 너와 이럴 때가 아니다.”
-팟!
그 말과 함께 목인단이 석 부인에게 다가가려는 명도왕 손윤에게 막으려고 했다.
그런데 미처 그러기도 전에,
-콰직!
그녀를 향해 뭔가를 할 것처럼 걸어가던 손윤이 손에 있던 귀걸이를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부서뜨린 귀걸이를 바닥에 흘리며 손윤이 말했다.
“이곳에 장주 부인을 싫어하는 자가 있나보군.”
“네넷?”
손윤이 보내는 강렬한 살기에 위압 당했던 그녀는 식은땀에 젖어서 반문했다.
그러자 손윤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연목검장의 내부인 중에 누군가가 그대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차도살인을 원했나 보지.”
차도살인(借刀殺人).
말 그대로 타인의 칼을 빌려 죽인다는 의미였다.
이런 손윤의 말에 겁에 질려있던 그녀가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풀썩 바닥에 꿇고 말았다.
손윤이 살기를 풀풀 풍기며 연목검장의 사람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흘기며 말했다.
“이런 농간에 넘어갈 거라 생각하나?”
그 말에 장주 목인단이 이를 악물며 목경운에게 눈빛을 보냈다.
‘보아라.’
그가 말한 어리석은 짓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면 어느 정도 정황이 보이게 되어 있었다.
어떤 범인이 자신의 흔적을 저리 대놓고 남긴단 말인가.
오히려 정적이 남겼다는 걸 드러내는 꼴이었다.
‘악수를 뒀다.’
아무리 영악한 척하더라도 고작 해야 열일곱 밖에 되지 않는 자의 머리에서 나온 계책의 한계였다.
목인단이 목경운에게 인상을 쓰며 속삭였다.
“일이 더 커졌다. 더는 안 된다. 내놓아라.”
“안타깝네요.”
“뭐?”
“운이 좋길 바랐는데.”
“지금 그런 말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촥!
그때 명도왕 손윤이 태도를 휘둘러 연목검장의 무사 한 사람의 목을 베어버렸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막을 틈도 없었다.
“명도왕!”
-챙!
장주 목인단이 분노해서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손윤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약조를 어긴 것은 그쪽인데 내게 화를 내어서 쓰나. 연목검장의 사람들에게 고한다.”
-고한다! 고한다! 고한다!
내공이 실린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주위에 있던 이들이 귀를 틀어막고서 울리는 고막에 고통스러워할 지경이었다.
‘전력이 아니었구나.’
목인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까 전에 나눴던 일식 때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공력이 심후했다.
몸이 멀쩡했어도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손윤이 계속 하던 말을 이어갔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살고 싶으면 그것을 내놓든지. 아니면 장주 부인이 죽었을 때 가장 득을 볼 자가 누군지 말해라.”
이런 그의 외침에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호흡을 가다듬던 석 부인의 입 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목경운 저 망할 놈 때문에 이런 수모를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원래는 장주의 눈치를 본다고 입을 다물었으나 저놈도 저리 나온 마당에 이젠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석 부인이 입술을 뗐다.
“손 대….”
미처 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누가 이런 짓을 벌였는지 제가 압니다!”
외친 자는 다름 아닌 호앵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석 부인이 옳지하며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그림보다는 호위 무사인 호앵이 충성심에서 사실을 고하는 게 더 낫기는 했다.
“누군지 안다고?”
“네.”
이에 명도왕 손윤이 도신의 피를 닦아내며 살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거짓이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거다.”
“대부인 마님이 잘못되시면 본 장의 대공자의 입지도 곤란해집니다. 그렇기에 후계자 구도에 유리해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말에 의도한 건 아닌데 자연스레 연목검장의 무사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갈라졌다.
그들은 다름 아닌 둘째 목은평과 막내 목유천이었다.
사람인 이상 순간적으로 향하는 시선은 어쩔 수가 없었다.
목은평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목유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무례합니다. 호 호위. 제가 왜 그런 짓을 한단 말입니까?”
두 사람이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인들이 저지른 짓이 아니니 말이다.
한데 공교로운 것은 누구 하나 호앵의 말에 목경운을 쳐다보는 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게……’
장주 목인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을 상대로 흥정하려 한 목경운을 보면 분명 뭔가를 꾸몄다면 이 아이가 틀림없었다.
그런데 후계자 구도에 유리한 자들이라고 하니 연목검장의 사람들 중에서 누구도 목경운을 쳐다보는 이들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힘도 없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명도왕 손윤이 둘째 목은평과 막내 목유천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럴 듯 한데 그걸 어찌 믿지?”
“증거라 짐작될 게 있습니다.”
“증거? 호오. 얘기해보거라. 계집.”
‘증거?’
이런 호위무사 호앵의 말에 석 부인이 미간을 찡그렸다.
딱히 증거라 할 만한 게 있었던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호앵이 말했다.
“약당 지하에 손 대협이 찾으시는 물건 이외에도 연목검장의 장주만이 익힐 수 있는 비급서들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걸 가지고 있는 자가 이런 짓을 벌였을 겁니다!”
‘!!!!!!’
호앵의 그 말에 두 사람이 동시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겉표지와 단 두 장뿐이기는 했지만 원본 비급서인 연목화심법과 연목성검결을 가지고 있는 막내 목유천과 석 부인이었다.
당황한 그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아닙니다!”
“호앵 너!”
동시에 외친 그들은 순간 이목이 집중되자 아차 싶었는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호앵의 말에 이렇게 반응해선 안됐다.
이러면 저들이 자신들의 거처를 뒤질 게 뻔했다.
‘하!’
이런 그들의 모습에 장주 목인단은 목경운을 쳐다보았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그 모습에 목인단의 눈동자가 떨렸다.
[혹 운이 좋아서 저 여자 하나의 희생으로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그것 나름대로 좋은 일이 아닌가요?] [안타깝네요. 운이 좋길 바랐는데.]목경운이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이 녀석이 말한 운은 자신이 받아들였던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너…….”
목경운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속삭였다.
“이것 참 큰일이네요. 하나로 끝낼 일을 모두 엮여서 이러다 비급이고 뭐고 간에 저 무서운 분이 전부 죽이겠다고 난리치겠어요.”
* * *
[뭐? 그 목함에다 이 귀걸이를 집어넣으라고?] [네.] [중생 너 멍청이냐?] [뭐가 말이죠?] [그런데다 넣으면 누가 그 나이든 중생 계집이라고 믿겠느냐? 오히려 그 석 부인인가 뭔가 하는 여자를 노린 누군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지.] [네. 그러라고 그러는 거에요.] [뭐?] [껍데기에 가까운 비급서를 굳이 그들에게 준 이유가 뭐겠어요?] [너…..설마?] [만약이지만 장주가 깨어났을 때의 작은 대비라고 할까요. 뭐 가벼운 장난이죠.] [가벼운 장난? 하여간 잔머리 하나는 잘 굴리는구나.]* * *
원래는 장주가 깨어나서 비밀 장소를 확인할 것에 대한 대비였다.
하나 의도와 다르기는 했으나 덕분에 혼란은 가중되었다.
목경운이 입 꼬리를 비릿하게 올리며 말했다.
“하나둘씩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이라도 그 상처에 대해 얘기해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꽉!
장주 목인단이 이를 악물었다.
‘이놈은 대체……’
더 이상 자신의 아들이라는 생각도 사라졌다.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영악한 놈은 처음이었다.
연목검장의 위험을 볼모삼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기가 질릴 정도였다.
“어떡하실 거죠?”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에 목인단이 말했다.
“…….비급을 가져와서 저 자에게 넘겨라. 하면 알려주마.”
“흥정이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죠.”
“네가 정녕!”
“시간이 많지 않네요.”
일그러진 얼굴로 목경운을 노려보던 목인단이 볼살을 파르르 떨며 힘겹게 입술을 뗐다.
“십칠여 년 전 광동성 용문에서 귀검(鬼劍)이라 불리는 자에게 당한 상처다.”
“귀검?”
“너……..설마 귀검을 모르느냐?”
알 리가 만무했다.
무공도 배운지 얼마 되지 않은 목경운이 무림의 생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귀검이 누구…..”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딸랑딸랑!
그때 방울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조 방사.”
명도왕 손윤이 전각을 넘어서 들어오고 있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불렀다.
뱀 모양이 그려진 안대에 지팡이를 짚고 있는 중년인이었다.
그런데 이 사내의 등장보다도 모두를 의아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중년인의 허리춤에는 방울이 흔들지도 않는데 저 혼자 울리고 있었다.
‘저게 대체?’
그러고 있는데 조 방사라 불린 안대의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괴이가 장난을 치고 있구나.”
“괴이?”
“괴이가 사람의 껍질을 빼앗으려드는 구나.”
-팍!
그 순간 중년인이 지팡이를 허공에 휘두르며 왼손으로 수인을 맺어 주술을 외웠다.
“신필휘동 중신호우 자이안녕 항마복사 오봉태상노군 급급여율령!”
-타아아앙!
주술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년인이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쳤다.
그와 함께 보이지 않는 파동이 일어나며 한순간 주변에 강한 바람이 일어났다.
-파아아앙!
“아아아아아악!”
그러더니 스치는 바람을 맞은 석 부인의 호위무사 호앵이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으며 미친 듯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의 주변에 있던 이들이 일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호앵의 목 주변으로 핏줄이 검게 울룩불룩 튀어나오는데,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뭐, 뭐야?”
-두드드득!
호앵의 눈이 뒤집히며 전신에 미친 듯이 경련이 일어났다.
모두가 놀라서 그녀의 주위에서 떨어졌다.
-울컥울컥!
이런 호앵만큼은 아니지만 속이 더부룩해지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고찬이었다.
바람이 스치는 순간 불쾌한 기분과 함께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내공을 끌어올려 호신기운을 펼치니 그나마 괜찮아졌다.
“후우…후우…”
고찬이 호앵을 쳐다보았다.
고찬의 두 귀안(鬼眼)에는 호앵의 몸 안에서 고통스러워하는 마승이 보였다.
육신이 이류에 불과한데다 막 빙의해서인지 버티지 못했다.
결국,
-파아아아아악!
빙의된 몸에서 튕겨 나가지고 말았다.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하던 호앵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절한 사람처럼 쓰러졌다.
-털썩!
이를 본 조 방사라는 안대의 중년인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내 너를 제령시키리라.”
그리고는 허리춤에 있던 칙부주(勅符咒)의 부적을 꺼내 지팡이에 붙이고는 외쳤다.
“진귀귀멸 오봉태상노군칙 신병신장화급여율령!”
그와 함께 지팡이를 던졌다.
-슉!
놀랍게도 지팡이가 곧게 뻗어나가며 화살처럼 날아갔다.
모두의 눈에는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곳에는 아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마승이 비틀거리며 있었다.
그런데 마승에게 신묘한 힘이 실린 지팡이가 미처 닿기도 전이었다.
-팍!
누군가 지팡이를 도중에 잡아냈다.
“곤란한 짓을 하시네요.”
그는 다름 아닌 목경운이었다.
이 광경에 안대의 중년인 조 방사가 순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니?’
칙부주와 주언을 담은 지팡이를 맨손으로 잡아내다니, 아무리 무가의 사람이라고 해도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한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게 아니었다.
조 방사가 눈살을 찌푸리더니 목경운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원혼을 볼 수 있구나.”
그 말에 주위가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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