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5)
2화 연목검장 (1)
붕대를 푼 목경운은 동경에 비춘 자신의 상체를 보았다.
왼쪽 가슴과 복부 쪽에 검에 찔린 상처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흉터?’
평소라면 어지간한 상처들은 흉터도 남지 않았다.
한데 그자의 흑색 검에 찔린 상처는 고스란히 흉터로 남아졌다.
아무래도 평생 갈 것 같다.
‘뭐…..별 수 없지.’
살아남은 걸로 만족해야 했다.
자신도 그 정도 상처라면 죽을 거라고 여겼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살아남았다.
애초에 남다른 회복력을 가진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상상 이상의 질긴 생명력이었다.
‘아직 그곳으로 오지 말라는 의미인가.’
다행이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을 거라면 복수는 마치고 싶었다.
그래야 덜 억울할 테니 말이다.
‘복수……’
복수를 떠올리니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세상에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덕분에 신분을 세탁할 수 있게 되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형수의 신분이 살해당했으니 도망쳤다는 수배령이 붙을 일은 없을 것이다.
사실 관청에서 수배령을 붙이는 것보다 다른 것을 염두에 둔 그였다.
‘이제 내가 죽었다고 믿겠지?’
원수의 흔적을 쫓다가 만난 그 흑색 검의 중년인.
그 자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났다.
한데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또 다시 나타날 게 틀림없었다.
‘……무공.’
확실하게 경험했다.
그 자는 자신이 난생 처음으로 겪어본 괴물이었다.
무공이라는 것을 익히지 않고는 절대로 상대할 수 없을 듯 했다.
그런 점에서 천운인 것 같다.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녀석이 무림의 세가인 연목검장의 삼공자였다.
겸살귀가 아닌 연목검장의 삼공자로 놈과 세상을 속일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열리긴 했는데……’
단지 문제가 하나 있었다.
목경운은 상의를 입으며 방문 바깥에 서있는 검은 인영을 보았다.
감 호위가 자신을 감시하기 위해 둔 자였다.
그 덕분에 별장에 갇혀서 측간을 갈 때를 제외하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성가시군.’
상황이 녹록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감금 수준이나 다름없었다.
거래를 하긴 했으나 역시나 감 호위는 자신을 절대 믿지 않았다.
아마도 계속 그럴 것이다.
눈앞에서 대담하게도 ‘진짜’를 죽였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어떻게 할까?’
가만히 있으면 이대로 휘둘릴 뿐이었다.
무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도 오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무 것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경운은 오히려 담담한 얼굴로 피식하고 웃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점심을 가져왔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며 한 여시종이 쟁반에 식사를 가지고 왔다.
소고기 가지 볶음과 숙주나물, 그리고 밥이었다.
여시종이 늘 그래왔던 것처럼 창문 앞 쪽에 있는 원형의 탁자 위로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상의 단추를 잠그며 의자에 앉는 목경운을 힐끔 쳐다보았다.
‘잘생겼어.’
연목검장의 네 공자들 중 목경운의 미모는 단연 최고였다.
여시종들이 앞 다퉈 식사를 챙겨가며 그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할 정도였다.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응?’
여시종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살짝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까지 여느 때의 목경운과 다르지 않았다.
한데 묘한 이질감은 무엇일까?
‘뭐지?’
뭔가 느낌이 다르다.
대체 어디서 그런지 사뭇 알기가 어려웠다.
속으로 어리둥절해하던 여시종이 쟁반을 챙겨서 물러나려하는데,
“잠깐.”
“네?”
“소고기 가지 볶음 말이야.”
“네.”
“다음번에는 소고기를 덜 익혀줬으면 좋겠어.”
“하나 덜 익히면 핏물이…..”
“소고기는 덜 익혀야 육질이 부드럽고, 핏물이 살짝 적셔 있는게 맛있거든.”
그 말과 함께 빙그레 웃는다.
미소를 보는 순간 여시종은 등골이 살짝 오싹해졌다.
왜 이질감을 느꼈는지 알 것 같다.
입가는 웃고 있는데 눈동자가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몸이 경직되는 기분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어?”
“그….그게….”
한 번 두려움에 사로잡히자 대답을 하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요리는 숙수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도련님.”
목경운이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열려 있는 문으로 감 호위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못마땅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여시종에게 손을 휙휙 휘저었다.
이에 여시종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쿵!
문을 닫은 감 호위가 목경운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튀는 짓거리 하지 말라고 경고했을 텐데.”
이에 목경운이 젓가락으로 밥을 살짝 뜨며 답했다.
“소고기를 덜 익혀달라고 한 게 튀는 짓거리인가요?”
“네놈은 목경운이지 사형수가 아니다.”
“감 호위께서 외우라고 주신 종이에는 ‘진짜’가 어떤 고기를 선호하는지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더라구요.”
조곤조곤 반박하는 목경운.
‘이 새끼가.’
그런 그의 태도에 감 호위의 인상이 무섭게 굳어졌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말끝마다 대꾸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나는 와중에 밥을 우물우물 거리는 것도 거슬린다.
감 호위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그딴 식으로 말하는 걸 보니, 숙지하라고 한 것은 전부 외웠나 보지?”
“네. 별 것 없더군요.”
“별 게 없어? 하! 그럼 첫째 도련님의 이름은 뭐지?”
“목영호. 나이는 스물. 왼쪽 뺨에 반점이 있고 이틀에 한 번 꼴로 주루를 갈 만큼 주색에 빠져있다. 네 형제들 중 가장 무능한데 욕심이 많고 포악하다.”
‘……’
감 호위의 한 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다.
진짜였던 도련님이 직접 정보지를 작성했기에 자신의 관점으로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둘째 도련님은?”
“목은평. 나이는 열여덟. 대부인을 닮아 처진 눈매. 영악하고 교활함. 가주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를 쓰레기.”
적혀있던 그대로 외운 목경운이었다.
필체에 힘이 들어간 것이 굉장히 싫어하는 느낌이 강했다.
‘차라리 머저리면 편할 텐데.’
감 호위가 속으로 혀를 찼다.
예상대로 영악한 녀석이라 전부 다 외웠다.
굳이 더 확인할 필요도 없어보였다.
“넷째 도련님도 말할까요? 아님 진짜 목경운의 평소 습관 같은….”
“됐다. 그 정도면.”
“그럼 아직 식사를 마치지 않아서 그런데 마저 해도 될까요?”
“흥. 먹으면서 들어라.”
“알겠습니다.”
감 호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를 쳐다보며 뒷짐을 진 채 입을 열었다.
“정보지에 있는 내용을 숙지했지만 네놈이 이 집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거다.”
“…….그건 왜죠?”
“네놈이 아무리 도련님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해도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애초에 그럴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해서 계속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라는 건가요?”
“잘 아는구나.”
“이러면 대역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요.”
“대역 대신 꼭두각시를 자처한 건 네놈이다. 스스로 그 길을 선택했으니 네 녀석은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감 호위는 확실하게 못을 박아두었다.
이 영악한 놈이 다른 생각을 전혀 할 수 없도록 말이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거군요.”
“그래.”
“그 외에 따로 제가 더 알아야 할 사항은 없나요?”
“없다.”
감 호위의 마지막 말에 젓가락질을 하던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숙지해야 할 정보들이라고 알려줬지만 가짜라는 사실이 쉽게 들통 나지 않을 정도의 습관이나 인적 사항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특히 가장 알아야 할 정보.
‘왜 대역이 필요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군.’
물론 알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는 짐작했다.
이로 인해 목경운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대역을 필요로 하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도 그대로 둘 생각인건가.’
그러지 않고서야 이를 알려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독단을 먹였는데다 ‘진짜 목경운’이 죽은 이상 유일한 대체제이기에 한동안은 자신을 활용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도 숨겨놓은 또 다른 패가 있는 듯 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목경운의 입 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줄을 갈아타려는 거네.’
* * *
-쿵!
문을 닫은 감 호위가 문밖을 지키고 있는 눈매가 날카로운 중년인에게 말했다.
“놈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해라. 그리고 누군가 찾아오면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다른 이들과 마주치지 못하게 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잠시 밖을 다녀오마.”
그 말과 함께 밖으로 나가려는데 중년인이 속삭이며 말했다.
“사형. 한데 굳이 줄을 갈아탈 필요가 있겠습니까?”
“응?”
“어차피 독단도 먹였겠다. 차라리 저 가짜 녀석을 부리는 건 어떻습니까? 어차피 삼 공자를 선택했던 것도…..”
“저놈은 아니다.”
“네? 그게 무슨?”
“쉽게 부릴 놈이 아니란 소리다.”
그런 감 호위의 말에 중년인이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제깟 놈이 사형수라고 해봐야 무공도 익히지 않은 민간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렇게 사형이 과민반응 하는 것이 우스웠다.
일선에서 물러나 호위 노릇을 하면서 살아와서 그런지 확실히 예전의 날카로움이 무뎌진 것 같다.
그 정도로 거슬리면 적당히 밟아서 교육을 시키면 될 일을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어떻든 간에 명색이 사형이 하는 말에 말대꾸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잘 감시해라.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려든다면 금나수로 제압해라. 얼굴을 제외하곤 어느 정도 고통을 주는 것은 허락하마.”
“호오. 정말입니까?”
“저놈은 오히려 그게 나을지도. 어쨌거나 잘 지켜라.”
“알겠습니다.”
중년인이 만족스러운지 입 꼬리를 올렸다.
* * *
감 호위가 나간지 일 각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닫혀있던 방문이 열렸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중년인이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목경운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가려는 것이냐?”
“잠시 나갔다오려고요.”
“측간이냐?”
“아뇨. 별장 밖은 어떤지 구경할까 해서요. 안 그래도 대화 상대도 필요했는데 같이 나가실래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목경운.
그런 그의 모습에 중년인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형이 나간지 얼마 되었다고 밖으로 튀어나가려고 하는가.
중년인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험한 꼴 보기 싫으면 당장 들어가라.”
“고찬이라고 하셨나요? 저희 둘이 입만 다물면 딱히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목경운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파파팍!
중년인, 아니 고찬이 빠른 손놀림으로 목경운의 손목을 잡고 뒤로 비틀었다.
금나수(擒拿手)의 수법이었다.
사형의 말로는 외공까지는 아니지만 근육의 밀도가 보통이 아니라 타격보다는 관절을 꺾는 것이 제압하기 쉽다고 했다.
‘별 것 없군.’
오랜만에 금나수의 수법을 썼더니 감각이 죽지 않은 것 같다.
녀석의 팔을 비틀어 한결 기분이 좋아진 그가 목경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것 같은데 네놈은 진짜 목경운이 아니다. 괜히 내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을 거다.”
-꽉!
더욱 손목을 비틀었다.
근육이 어떻고 간에 관절이 꺾인 것이니 고통스러울 거다.
“곱게 들어가서 처박혀 있어라.”
고찬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이 정도 해두었으면 당연히 곱게 제 발로 들어가리라 여겼는데,
“그러기 싫다면요?”
“뭐?”
기가 찼는지 고찬은 콧방귀가 절로 나왔다.
사고가 남다른 것 같다고는 들었지만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그렇게 곱게 들어가기 싫다면 별 수 있겠는가.
“어리석은 녀석.”
고찬이 내공을 실은 손날로 목경운의 뒷목을 내리쳤다.
-퍽!
이 정도 힘이면 근육이 어떻고 간에 충격으로 기절할 것이다.
라고 여겼는데, 뭔가 이상했다.
무슨 나무 기둥을 친 것 같은 기분이다.
‘뭐지?’
당연히 쓰러질 거라 생각했는데 게다가 멀쩡히 버티고 있었다.
내공이 덜 실렸나 싶어서 더 가하려고 했는데, 목경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확실히 감 호위보다는 약한 것 같네요.”
‘이 새끼?’
아무래도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뒷목을 쳤는데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가.
뭔가 께름칙해진 고찬이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목경운의 손목을 더욱 비틀어서 바닥에 엎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꽉!
아무리 비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아니 녀석이 꺾여진 자신의 손목과 팔목을 바로 펴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당황한 고찬은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놈이 다치고 말고를 걱정할 그런 게 아니었다.
일단 제압하고 봐야 했다.
한데,
‘엇?’
공력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그의 몸이 부웅하고 위로 떠올랐다.
그러더니 이내 녀석의 앞으로 패대기가 쳐졌다.
-쿵!
“큭!”
다행히 그렇게 세게 내쳐진 것 같진 않았다.
재빨리 허리를 튕겨서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목경운이 오른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았다.
-꽉!
“켁!”
그 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당장에라도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고찬의 눈이 파르르 떨리며 충혈 되어갔다.
녀석의 손을 풀기 위해 다급히 손목을 잡고서 밀어내려했다.
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 이 새끼 대체 뭐야? 무슨 힘이 이렇게…..’
그는 무공으로 친다면 이류의 경지에 이르렀다.
평범한 성인 장정의 두 배에 이르는 힘을 가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자신이 무공조차 익히지 않은 이놈의 한 손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컥컥.”
숨이 막혀왔다.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괴로워서 발버둥을 치는데 문득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웃어?’
입 꼬리가 귀에 걸렸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천진난만한 아이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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