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55)
15화 제안 (3)
-무게가 다르다.
“네?”
-본좌의 제자가 된다는 건 중생 네가 월(月)의 업을 지고서 피의 숙청을 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피의 숙청?’
살의가 물씬 풍겨나는 청령의 분위기는 평소와는 달랐다.
하나 생각해보면 그녀는 원혼이었다.
그것도 100년이 넘게 이승에 존재해올 만큼 그 한이 깊어도 너무 깊다.
목경운이 그녀와 눈을 마주한 채 입을 열었다.
“역시 천지회와 관련이 있으시군요.”
-……..그건 부정하지 않으마.
“한데 청령의 제자가 되는데 월의 업이니 피의 숙청이니 하는 말은 왜 나오는 거죠?”
-들은 그대로다. 본좌는 피의 대가를 원한다.
“쉽게 말해 복수군요.”
이 말에 청령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곰방대를 길게 들이켰다가 길게 목경운의 얼굴에 뱉으며 말했다.
-후우. 무게감이 다르긴 하다만 네 식으로 치면 그래 복수겠지.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그것은 복수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자신 또한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이렇게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그녀처럼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서 이 한을 풀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어쩔 거냐? 본좌의 제자가 되겠느냐?
“왜 제자가 되어야 하는지 어느 정도는 알려줘야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건?”
-아니다. 만약 천지회로 갈 게 아니면 본좌가 했던 말은 그냥 잊어라.
“…….운을 띄운 후에 식게 만드는 능력이 있으신가 보네요.”
-흥. 네 흥미를 돋우려고 한 얘기가 아니다.
“……….”
목경운이 청령을 빤히 쳐다보았다.
사실 남의 사정이나 이야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목경운이었다.
설령 복수라는 동질감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청령에게 사정을 이야기해보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저 왜 제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납득시켜보라고 한 소리였다.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들을 수 없는 질문이면 처음부터 삼가라.
“그거야 청령의 마음이죠. 청령 정도의 격이면 죽은지 정말 오래됐을 텐데 이미 세월이 복수를 해주지 않았을까요?”
그런 목경운의 말에 청령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물었다.
-네놈이라면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해서 적을 그냥 놓아줄 거냐?
“아뇨.”
-왜 아니지? 방금 전에는 그러지 않았느냐?
“………도리어 한 방 먹었네요.”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맞아요. 복수를 할 거라면 끝을 봐야죠. 그 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거든요.”
가족, 친지 소중한 모든 것을 앗아가야 한다.
복수를 할 거라면 이것저것 사정을 봐주고 자시고 할 이유가 없었다.
적어도 목경운이 생각하는 복수는 그랬다.
청령이 붉은 입술을 실룩거리며 입을 열었다.
-뜻이 맞구나. 본좌도 마찬가지다. 그 씹어 먹어도 모자랄 개자식의 핏줄들이 숨을 쉬고 있는 꼴도 진실이 묻혀져 본좌를 모욕하는 것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럴 바엔 본좌의 손으로 모든 것을 다 거둬가고 만다. 그것이 설령 모든 것을 피로 얼룩지게 할지라도.
-고오오오오오오!
목경운이 주변을 바라보며 손을 가리켰다.
그녀의 엄청난 분노가 표출되었는지 폭풍이라도 몰아치는 것처럼 사방이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주변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진정하시죠.”
-………
목경운의 그 말에 그녀가 이를 의식했는지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러자 주변의 급작스러운 변화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멎어졌다.
이를 보며 목경운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청령이 이 정도인데 그 이상의 격을 가진 원혼은 대체 얼마나 위험하고 강할까?
궁금하기는 하다.
하나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청령.”
-말해라.
“꼭 제자가 아니어도 상황이 맞아 떨어지면 청령의 복수도 같이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네?”
-중생 네놈이 월의 업을 이어야만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대체 그 월의 업이 뭔가요?”
-본좌의 제자가 되어 그곳에 가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이다.
“고집이 있으시네요. 그럼 그냥 제자가 되지 않을 래요.”
-뭐?
청령의 고운 미간에 주름이 생겨났다.
그녀가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면 천지회에 안 갈 거냐?
“아뇨. 갈 건데요. 가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왜!
쩌렁쩌렁한 외침이 귓가에 울리며 목경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청령은 마음 같아서는 강제로 뜻대로 하고 싶었지만 식신과 주인의 관계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정말 성가신 관계다.
이것 때문에 굴레에 얽매여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게 말이다.
그때 목경운이 말했다.
“죄송한데 저는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게 싫거든요. 그건 제가 현재 그나마 신뢰하고 있는 청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짜증나.
“그래도 별 수……
-짜증난다고!
청령이 손을 파르르 떨면서 빽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런 애송이의 식신이 되어서 휘둘리는 현실이 너무도 화가 났다.
겨우 봉해져 있던 곳에서 빠져나왔고 지박령도 아니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격을 지녔는데도 이게 뭔가?
마음 같아선 이놈을 죽여서 분풀이하고 싶다.
하나 그렇게 된다면 원한을 곱씹으며 버텨온 100년의 세월이 무의미해진다.
‘망할 고집불통 중생 놈!’
반의 반 백 년도 살지 못한 주제에 짜증난다.
목경운을 한참이나 노려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좋아. 이것만은 가르쳐주지. 지금의 상황은 알지 못하지만 원래 천지회는 세 종맥(宗脈)에 의해 탄생했다.
“세 종맥?”
-그 중 하나가 바로 월맥(月脈)이다.
“……..그리고 청령이 그 월맥의 사람인거고요?
하여간 눈치는 빠르다.
청령이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중생 네게 지금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어차피 100년의 세월이 지났기에 그때의 일을 알아봐야 무의미하다. 그 시절의 모든 게 그대로 있을 리도 없으니 그저 월(月)의 업을 이어주면 된다.
그녀가 목경운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다른 인간들은 눈이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유독 이 중생 놈만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분노 이외의 감정들은 진짜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목경운이 흔쾌히 말했다.
“좋아요.”
-후우. 하여간 네놈의 고집은…..뭐?
“청령에게 배우겠다고요.”
-제자가 될 거라고?
“네. 단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이냐?
“사부님이니 제자니 하는 의례적인 표현은 그냥 생략하죠.”
-건방진 중생 놈.
“저도 청령이 식신이더라도 주인 소리를 듣거나 하진 않잖아요.”
-………
목경운을 향해 혀를 차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차피 상관없었다.
원래라면 당연히 무공을 전수 받는 입장이니 사제 관계를 확실해 하는 편이 옳으나, 어차피 자신은 죽은 몸이었다.
이승에서의 예의법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쯧쯧.
이런 그녀를 보며 목경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어차피 천지회에 가게 된다면 그녀에게 그 검법의 나머지 초식들과 운기 요결을 배워야 하는 처지였다.
오히려 부탁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뭘 그렇게 쪼개는 거냐?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서둘러야 겠네요.”
-뭐가 말이냐?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기도 힘들어서요.”
목경운이 들고 있던 시문비서를 폈다.
한 시진 안에 발바닥을 뗄 수 있도록 술법을 해지해야 하고, 청령의 기운을 숨길 수 있는 방술도 터득해야 한다.
* * *
한 시진이 되기 반 각 전.
주변이 어수선하다.
자리를 비웠던 복면인들이 하나둘씩 복귀를 하고 있었다.
‘흐음.’
방사 조의공이 살짝 실망한 눈으로 서북쪽 숲을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사실 한 시진이 그리 길다고는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지정된 술법이라고 해도 한 시진 만에 방술을 터득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데 시문비서 안에서 어떤 술법인지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당히 촉박했다.
‘가능할 수도 있다 여겼는데.’
만약 실패한다면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주어진 상황이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가서 직접 술법을 해지시켜줄 수밖에 말이다.
그러던 찰나였다.
‘!?’
어두운 숲속에서 걸어오는 인영이 보였다.
그는 바로 목경운이었다.
“아니?”
“이놈이 어떻게?”
목경운을 발견한 복면인들이 그가 짐마차가 아닌 밖에 나와 있는 것을 보고서 놀라서 다시 제압하려 들었다.
그런 것을 방사 조의공이 제지시켰다.
“멈춰라.”
“하오나……”
“그 아이는 이제 내 제자다. 잠시 수련을 시켰을 뿐이다.”
“네?”
복면인들이 살짝 놀란 눈으로 목경운과 방사 조의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정말로 제자로 받아들일 줄 몰랐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조 방사는 자신들보다 윗사람이었고 항명할 수 없기에 이내 다시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갔다.
조 방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목경운을 향해 말했다.
“기대보다 늦었구나.”
아니 사실은 기대이상이었다.
정말로 한 시진 안에 술법을 찾아서 해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자로 삼은 이상 칭찬을 최대한 삼갈 생각인 그였다.
목경운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늦었다면 송구합니다. 사부님.”
“네게 기대하는 바가 있으니 실망시키지 말도록 하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어쨌든 술법을 해지하느라 심력 소모가 클 터이니 잠시 쉬도록 해라. 곧 명도왕이 도착하면 출발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목경운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데 아까부터 궁금하긴 했다.
복면인들이 이인일조로 15세에서 18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은 하나 같이 얼굴에 두건을 씌워놓고 있어서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이에 목경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들은 뭐죠?”
그 물음에 방사 조의공이 피식하고 웃으며 답했다.
“각 파에서 거두는 신입들이다.”
“신입?”
“여기까지 온 김에 겸사겸사라고 보면 된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알아듣기 힘들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두루뭉술하게 이야기하는 듯 했다.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니 지금 이런 것에 관심 가질 필요 없다. 그보다 앞으로는 내 마차로 같이 이동할 것이니 미리 가서 쉬고 있도록 해라.”
그가 가리킨 곳에 짐마차가 아닌 깔끔해 보이는 마차가 있었다.
이를 본 목경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송구한데 사부님. 한동안은 그냥 원래 있던 짐마차에 타도 되겠습니까?”
“뭐?”
방사 조의공이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아. 혹 네 아우 때문에 그러는 것이더냐?”
물론 아니지만 목경운은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그에게 조의공이 혀를 차며 말했다.
“쓸데없는 고생을 자처하는구나. 혹시라도 생각이 바뀌면 내 마차로 갈아타거라.”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경고해두지만 이번에는 이 사부가 의도했기에 나갈 수 있었지만 가령 네 아우를 탈출시키겠다거나 그런 생각은 꿈도 꾸지말거라. 괜한 짓을 했다가 연목검장이 멸문하는 꼴을 보게 될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제자로 들어갔으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방사 조의공이 씨익하고 웃었다.
어차피 주언의 사슬을 차고 있기에 자신의 명을 어길 수 없을 것이다.
목경운이 웃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혹시 사부님의 권한으로 짐마차 안에 감시하던 분은 내보내주실 수 있습니까?”
“그건……”
“사부님의 권한으로도 힘드신 거면 괜찮습니다. 그저 마차 안에서 이걸 보면서 조용히 외우고 싶어서 부탁드린 겁니다.”
목경운이 시문비서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이런 그의 말에 안 된다고 하려 했던 방사 조의공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후자보다는 전자에 했던 말이 거슬려서였다.
“내게 그 정도 권한도 없을 것 같으냐. 알았다.”
“감사합니다.”
“단 의심받을 만한 짓은 하지 말거라. 내 제자가 되었다고 해도 명도왕을 자극해서 좋을 일은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감사의 인사로 고개를 숙이는 목경운의 입 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 * *
짐마차로 들어온 목경운이 문을 닫고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통(通)이라고 글씨가 새겨진 손가락 크기만한 사람 형태의 작은 목각인형이었다.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성공이네요.”
-…….성공이고 자시고 답답해 죽겠구나. 이딴 목각 인형 안에 갇혀 있으라니.
목각인형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청령이었다.
무사히 기운을 숨기는데 성공한 목경운이었다.
만약 이 술법까지 한 시진 안에 그럭저럭 터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방사 조의공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거다.
그는 목경운이 아슬아슬하게 술법을 해지하고 나왔다고 여겼으니 말이다.
목경운이 목각인형을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말했다.
“조금만 참으세요.”
이것에서 나온다면 원혼 특유의 기운이 드러난다.
방사 조의공이 알아차려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때 목각인형이 파르르 떨리더니 목경운의 손바닥에서 저 혼자 꼬물거리며 움직였다.
그러더니 이내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젠 하다하다 못해 이딴 목각인형에 빙의되다니. 이게 얼마나 힘든지 중생 네놈은 모를 게다.
조의공이 알려준 방식은 다름 아닌 매개체에 빙의시키는 것이었다.
거의 봉인(封印)과 비슷한 방식의 술법이었다.
그렇기에 청령은 이 목각인형 안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었다……..라고 여겼는데 그건 아니었다.
마승은 불가능했는데 그녀는 목각인형을 자의로 부수고 나올 수 있었다.
그것은 격의 차이 때문인 듯 했다.
“조심하세요. 또 금이 갔네요.”
-여기서 얼마나 더 조심하라는 거냐? 어지간한 육신조차도 이 몸을 견디지 못하는데.
“그러게요.”
그나마 기운을 통제해주는 술법 덕분에 버티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즉에 목각인형은 부서졌을 거다.
목각인형이 된 청령이 손바닥에 걸터앉고서 말했다.
-그래도 이 술법을 잘만 이용하면 약한 몸에 들어가서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더구나.
그녀가 그나마 위안 삼는 부분은 그것 하나였다.
“네. 하니 조금만 참으시죠. 그곳에 가서 적당한 몸에 들어가게 해드릴게요.”
-알겠다.
“어쨌거나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적당히 수련 장소도 확보했네요.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짐마차 안을 확보한 건 꽤 수확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무 것도 하기 힘들었을 거다.
적어도 이동하는 동안에는 조용히 청령에게 그 검법을 전수 받고 역행의 운기조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다.
-한데 저 녀석은 어쩔 거냐?
-끼기기긱!
청령이 목각인형의 뭉퉁한 손을 움직이며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것은 아직까지 기절해있는 목유천이었다.
이에 목경운이 다가가 풀어졌던 천을 묶어서 눈을 가린 후에
-타타타타탁!
다시 아혈(啞穴)을 점했다.
이로써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 목유천이었다.
“이렇게 두면 조용하겠죠?”
-……..너도 참 어지간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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