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58)
16화 시혈곡(尸血谷) (3)
기세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말이 있다.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년은 목경운의 잔인한 손속에 완전히 기세가 꺾여 덤벼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두려움과 공포심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옳았다.
이런 소년에게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걸 찾지 못할 텐데요.”
목경운이 피에 젖은 쇠구슬을 흔들어댔다.
이를 본 우락부락한 인상의 소년이 순간 아차 싶었는지 몸을 돌려서 계곡을 향해 달리려했다.
그러나 이내 다리가 풀렸는지 넘어지고 말았다.
몇 번을 그렇게 넘어진 소년은 겨우겨우 힘을 주고서 계곡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첨벙첨벙!
한데 이렇게 몸을 돌리고 있는 소년은 그만이 아니었다.
세 명 정도가 놀란 얼굴로 계곡으로 돌아가는데, 그들 역시도 우락부락한 소년처럼 첫 번째 쇠구슬을 노린 이들이었다.
하나 이들도 마찬가지로 목경운에게 겁이 질리고 말았다.
‘…….완전 미친 놈이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 살자고 망설임 없이 죽여서 빼앗다니.’
게다가 죽이는 방식 또한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다.
괜히 잘못 덤볐다가 자신들 또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새겨졌다.
“하……..”
이 광경을 지켜보며 탄성을 흘리는 이가 있었다.
그는 붉은 혁대의 무사들에게 곡주라 불리는 악귀 가면의 사내였다.
이런 악귀 가면에게 옆에 있던 무사가 말했다.
“…….이거 물건 하나가 들어왔군요.”
“그렇군.”
“이런 식으로 진행된 건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저 쇠구슬 하나로 진짜 솎아내기가 시작됐어야 했는데.”
이것은 단순히 누가 먼저 쇠구슬을 찾느냐만이 관건이 아니었다.
쇠구슬의 양을 인원보다 적게 둔 것도 횃불을 끈 것도 전부 계산되어서 이뤄진 것들이었다.
첫 번째 쇠구슬은 솎아내기의 신호탄이었다.
저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싸움이 벌어지고 이걸로 인해 모두가 깨닫게 된다.
쇠구슬을 찾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것을 어떻게 지켜서 향로까지 가지고 가느냐가 진짜 관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데 그 시작 양상이 달라졌다.
“그나저나 손속도 그렇지만 힘이 보통이 아닌 녀석이로군요. 금문쇄로 기문을 봉했는데 저리 쉽게 울대를 뜯어내다니.”
대부분의 무사들은 목경운의 잔인한 손속과 힘에 놀라워했다.
하나 악귀 가면은 이와 다른 관점에서 흥미로워했다.
‘옷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쇠구슬을 얻어내다니.’
시혈곡을 맡고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예 물에 들어가지도 않고 쇠구슬을 얻은 경우는 말이다.
본보기로 한 명을 죽이고 향초를 태워서 시간제한까지 두었기에 아무리 영악하다고 해도 일단 계곡물에 뛰어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녀석은 모두가 달리는데도 혼자 그 자리를 지켰다.
‘처음부터 노렸다는 건데……재밌군.’
여태까지 이 관문을 진행하는 내내 이렇게 영악한 녀석이 있었던가?
어지간한 배포가 없이는 못할 짓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녀석의 잔인한 손속도 전부 의도적으로 계산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겨졌다.
그러는 사이 목경운이 향로 앞까지 다가왔다.
“이거면 됐나요?”
목경운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는 악귀 가면에게 피가 묻은 쇠구슬을 보였다.
이에 악귀 가면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네놈……이름이 무엇이냐?”
‘!!!’
그 물음에 주변에 있던 무사들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작 시혈곡의 일관문에서 악귀 가면, 즉 곡주가 이름까지 물어보며 관심을 보인 경우는 상당히 드문 일이었다.
그때 목경운이 답했다.
“목경운입니다.”
그 말에 가면의 틈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가늘어졌다.
‘목경운?’
자그마치 팔백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기에 개개별이 어떤 누군지는 정확하게 숙지가 되어 있지 않던 그였다.
한데 목경운이라는 이름은 기억했다.
뒤늦게 합류시키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 볼모로 데려왔다던 목가의 두 명 중 한 녀석인가.’
이거 또 다시 놀랐다.
당연히 비경문과 주살곡, 모화방 혹은 차출된 단체 중에서 악명 꽤나 넘치는 곳 출신이라 여겼다.
그런데 정도의 명문 무가라 불리는 연목검장 출신이라니.
악귀 가면은 불과 반 시진 전이 떠올랐다.
[네? 볼모로 데려온 연목검장의 녀석들도 시혈곡에 투입시키라 말입니까?] [회주님의 명이오.] [명이라면 당연히 받들겠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정도의 유약한 녀석들이 견딜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니 명대로 하시오.] [알겠습니다.]적당히 괴롭히다 죽일 작정이면 상관없다고 여겼다.
한데 이걸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역시 회주가 아무 이유 없이 보낼 리가 없었다.
‘이런 거였나. 하나 의외군.’
연목검장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절대로 정파 출신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을 거다.
그만큼 풍기는 분위기부터 모든 게 오히려 이쪽에 가까웠다.
‘지켜보면 알겠지.’
이쪽에 가까운 녀석이라면 지옥이라 불리는 시혈곡에서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것이다.
목경운을 빤히 쳐다보던 악귀 가면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더니,
“받아라.”
그것을 목경운에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슉!
손가락으로 튕긴 그것은 정확하게 목경운의 가슴 쪽으로 날아왔다.
목경운이 이를 한 손으로 낚아채며 받아냈다.
‘이건?’
그것에는 일(一)이라 새겨진 얇고 둥근 은패였다.
“이번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한 증패다. 가지고 온 쇠구슬과 함께 가지고 있어라.”
‘관문? 수석?’
목경운의 은패를 보며 속으로 의아해했다.
수석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에서 한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었다.
‘경쟁인가?’
[잘 들어라. 시혈곡에 가서 멀쩡히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은 일 할도 되지 못한다.]방사 조의공이 했던 말까지 토대로 짐작해보면 경쟁을 통해서 살아남는 구조인 듯 했다.
지금도 벌써 둘이나 죽었다.
아니 아마도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이제 곧 피 튀기는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첨벙첨벙!
그런 목경운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또 다른 누군가가 쇠구슬을 찾아냈다.
첫 번째로 찾아냈던 소년이 멍청하게도 환호성을 쳤다가 사달이 난 것을 일부가 보았기에 이번에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발견하는 그 순간 냅다 계곡물 밖으로 달렸다.
분명 옳은 선택이긴 했으나,
“저놈 발견했나보다!”
“잡아!”
너무 튀었다.
혼자서 계곡물 밖으로 달려가니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잡기 위해 열 몇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도망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누군가 물속에서 튀어나와 녀석의 목을 잡고서 그대로 목경운이 했던 것처럼 부러뜨렸다.
-우드득! 첨벙!
그렇게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죽은 녀석에게서 쇠구슬을 뺏고는 달려드는 소년들을 향해 손짓을 하며 경고했다.
“죽고 싶은 놈들은 와라.”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18세의 소년은 다부진 몸이었는데, 상반신 전체에 기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알아본 소년들이 분해하면서 달려들지 못했다.
“젠장!”
“주살곡이야.”
주살곡(朱殺谷).
천지회 산하의 단체들 중 가장 악명 높은 세 곳 중 하나다.
그 문도가 고작 삼십여 명밖에 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 한 명이 대단한 고수들이고 독특한 무공 비술로 모두가 께름칙하고 두렵게 여기는 곳이었다.
“배알도 없는 것들이군.”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긴 소년이 실망이라는 투로 말하고는 향로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년이 목경운을 스쳐지나가며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다음 관문에도 앞설 거라 생각하지 마라.”
명백한 선포였다.
이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였다.
굳이 쓸데없는 걸로 힘을 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귀찮게 굴면 뭐……’
구미가 돈다는 듯이 윗입술을 혀로 핥았다.
여긴 참 좋은 것 같다.
연목검장에 있을 때처럼 굳이 죽이는 걸로 눈치를 볼 일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목경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주살곡의 소년은 향로 앞으로 가 악귀 가면을 향해 쇠구슬을 보였다.
“통과!”
그러는 사이에 계곡물 쪽의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다.
쇠구슬을 찾은 이들이 우후죽순으로 나타났고 그들이 향로를 향해 달리니, 찾지 못해서 안달이 난 소년들이 달려들면서 싸움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싸움은 단순히 제압하는 수준을 넘어서 죽고 죽이는 상황을 만들었다.
“시작됐군요.”
무사의 말에 악귀 가면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이미 두 명이 죽은 시점에서 더 이상 소년들은 서로를 해하고 죽이는데 망설임이 사라졌다.
계곡물 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푸푸푸푸푹!
“커컥!”
그러는 와중에 눈에 띄는 몇몇이 있었다.
새하얀 얼굴의 단발의 아름다운 소녀가 어디서 날카로운 형태의 돌멩이를 찾아서는 그걸로 달려드는 이들을 거침없이 찌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내공을 쓰지 못하는데도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달려드는 소년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저 계집 누군지 알겠군요.”
“모화방이군.”
“알아보셨군요.”
못 알아볼 리가 있겠는가.
저 쾌속하고 급소만을 노리는 효율적인 단검술.
모화방(帽花房)의 연살(聯殺)이다.
지금은 삼대 살수 집단이라 불리지만 한 때 모화방은 사대 살수 집단이라 불렸었다.
하나 살수업을 그만두고서 천지회의 산하로 들어왔다.
“훌륭하군요.”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만 쥐었을 뿐인데 저 정도면 내공의 금제를 풀었을 때도 기대할 만 했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손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저 녀석이 비경문인가 보군.”
“허어?”
무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근육질의 우람한 체구의 소년이 황소처럼 앞으로 돌진하는데, 부딪친 족족 소년들이 견디질 못하고 튕겨나가고 있었다.
-퍼퍼퍼퍼퍽!
비경문(比景門)은 철현공이라는 외공으로 명성이 높았는데, 확실히 내공이 아닌 외공을 단련해서인가 그 신력이 굉장했다.
“후우후우.”
그렇게 달려드는 수많은 소년들을 전부 뿌리치고서 도착한 비경문의 소년.
“통과!”
그리고 뒤이어 모화방의 소녀도 도착했다.
“통과!”
이렇게 그들 이외에도 하나둘씩 뒤이어 소년들이 쇠구슬을 차지하기 위한 혈투를 펼치며 향로 앞으로 도착해갔다.
그들 중에는 이 순간을 노린 한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은 사실 누구보다 먼저 쇠구슬을 얻었었지만, 괜히 아무도 찾지 않았을 때 나섰다가 표적이 될까봐 혼전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차였다.
소년이 가까스로 향로 앞에 달려가 쇠구슬을 들어보이며 소리쳤다.
“찾았습니다.”
소년이 입 꼬리를 실룩거리며 좋아했다.
사실 소년은 쇠구슬 찾기가 시작되기 전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악귀 가면에 의해 죽은 소년의 미간에 박혀있던 것을 슬쩍했었다.
‘멍청한 것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는데 말이야.’
아무도 이를 의식하지 못한 걸 보면 바보 같았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소리쳤다.
“불통!”
“네?”
“말 그대로다.”
이게 무슨 소리지?
왜 통과가 되지 않았다는 거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 어째서입니까? 분명 쇠구슬을 찾았는데 왜…….”
-촥!
그때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윽고 소년의 머리통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명 의문을 제기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찰캉!
목을 벤 붉은 혁대의 무사가 중얼거리며 허리춤의 도집에 도를 집어넣었다.
-쿵!
목이 잘려나가면서 넘어진 소년의 손에서 쇠구슬이 떨어지며 바닥을 굴러갔다.
굴러간 쇠구슬은 가장 먼저 통과해 향로 가까이에 앉아 있던 목경운의 앞에서 멈췄다.
이를 본 목경운이 자신이 들고 있던 쇠구슬을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六十三]목경운의 쇠구슬에는 육십삼이라고 작게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한데 목이 잘린 소년의 구슬에는 아무 것도 새겨져 있지가 않았다.
잔머리를 굴렸다가 운이 없게도 목이 달아난 것이었다.
반면,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사실 목경운 역시도 시작 전에 의문을 제기하다가 죽은 소년의 이마에서 쇠구슬을 빼내려고 했었다.
한데 이미 누군가가 그 짧은 사이에 가져갔기에 방법을 바꾼 것이었다.
덕분에 행운을 누렸다고 할 수 있었다.
하나 이런 감정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목경운은 눈앞에 펼쳐지는 진수성찬에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셨다.
-스멀스멀!
쇠구슬로 인한 혈투로 죽는 자들이 속출하면서 사방에 죽음의 기운이 넘쳐났다.
금문쇄로 기문을 막지만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역행의 운기를 했을 것이다.
‘흠.’
한데 꼭 운기로 이 기운을 모을 필요가 있을까?
목경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기가 흘러오는 방향의 허공을 향해 작게 팔을 뻗고서 머릿속으로 구결을 외웠다.
‘무절망려서…….이형위심양……’
그것은 착(着)의 식(式)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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