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59)
16화 시혈곡(尸血谷) (4)
목경운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기가 흘러오는 방향의 허공을 향해 작게 팔을 뻗고서 머릿속으로 구결을 외웠다.
그것은 착(着)의 식(式)이었다.
[느껴지나? 그게 착(着)의 식이 가진 묘리다. 무엇이든 당겨서 붙게 할 수 있다. 그것은 기(氣)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다.]분명 청령이 그렇게 말했었다.
거리가 멀다고 하나 워낙 많은 소년들이 죽으면서 죽음의 기운이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할 지도 몰랐다.
‘무절망려서 이형위심양 무오전거상 무상형위전 마가량해거 역해무극혈.’
비록 금문쇄로 기문이 봉해졌어도 착의 식은 내공으로 펼치는 개념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구결 자체에서 오는 특수한 힘이다.
빈 허공을 향해 뻗은 손.
집중하는 목경운의 입 꼬리가 실룩거렸다.
-수우우우우!
안 된다면 별 수 없지라는 가벼운 마음에서 시작된 확인.
그것은 운이 좋게도 들어맞았다.
사방에 넘실거리는 사기들이 목경운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굉장한 양의 사기(死氣)였다.
‘흡착하고 있다.’
원래라면 근방에 있는 사기만 빨려 들어오리라 여겼다.
한데 공교로운 일이 벌어졌다.
목경운의 주변에 있던 사기가 빨아들여지면서 생겨난 특유의 흐름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던 것들이 그 흐름을 탔다.
어쩌면 연목검장 이상으로 더 많은 사기를 얻을 수 있을 듯 했다.
목경운은 아직도 피 튀기는 쟁탈전을 벌이는 소년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말했다.
‘더 죽이고 죽여라.’
저들이 서로를 죽일수록 이득이었다.
이런 목경운을 바라보며 의아해하는 눈빛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악귀 가면이었다.
‘…….뭐 하는 거지?’
대부분의 시선이 쟁탈전이 벌어지는 계곡 쪽에 있었다.
하나 악귀 가면은 무심결에 향로 앞쪽을 쳐다보았다가 혼자 계곡을 향해 작게 손을 뻗고 있는 목경운을 발견했다.
‘흠.’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해서 기감을 높여서 목경운을 바라보았다.
한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과민반응인가.’
하긴 금문쇄로 기문이 봉해졌는데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운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행동이 꽤나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무사가 말했다.
“향초가 거의 다 타갑니다.”
이제 시간이 다되어갔다.
그 사이에 들어온 소년들의 숫자는 400여 명을 살짝 넘겼다.
아직도 저들끼리 싸워서 죽은 소년들만 하더라도 200여 명에 가까웠고 나머지 200여 명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치이이이!
향초가 아슬아슬하게 아래 선까지 타들어가고 있었다.
악귀 가면이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계곡의 가장 자리를 둘러싸고 대기하고 있던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일제히 허리춤에 차고 있던 병장기를 뽑았다.
-스릉! 스릉!
이 광경에 쇠구슬 쟁탈전을 벌이고 있던 소년들이 더욱 조급해졌다.
서두르지 않는다면 죽는다.
그것은 소년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근성과 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일깨웠다.
“죽어죽어!”
-콰직! 콰직!
“비켜라고!”
-꽉!
“아악! 이, 이 자식 깨물어?”
돌로 머리를 내려찍고 안 되면 이를 써서 물고 늘어지기마저 한다.
그것은 처절하기마저 했다.
지켜보는 이들도 사투를 벌여가며 향로 앞에 앉게 되었지만 이를 마냥 남 일처럼 쳐다볼 수가 없었다.
이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이들 중에서 눈에 띄는 한 소년이 보였다.
“으아아아아아!”
-우드득!
“컥!”
마치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다가 마구잡이로 주변의 소년들을 죽여나가는 그는 바로 목유천이었다.
서로 원한 관계도 아닌데 죽인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었던 목유천은 어떻게든 쇠구슬을 찾아서 향로 앞에 서는 것만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상황은 이런 목유천을 절벽까지 몰아붙였다.
“하아….하아….”
쇠구슬을 찾는 순간부터 이를 빼앗으려고 자신을 죽이려드는 소년들과 그리고 거의 다타들어간 향초.
이런 상황은 결국 목유천마저 이들과 같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몇 명을 죽였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목유천은 자신의 쇠구슬을 노리는 모든 소년들을 물리치고서 향로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향로로 도착한 그는 피로 물든 구슬을 위로 들어올렸다.
“통과!”
그 외침을 듣는 순간 모든 긴장감이 풀리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저앉은 목유천이 처음 드는 생각은 이것이었다.
‘살았어…..살아남았어.’
시릴 만큼의 안도감.
지옥 같은 순간에서 기어코 살아남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살고자하는 지독한 치열함을 가져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윽고 피로 물든 손바닥을 보며 자괴감마저 찾아왔다.
‘…….내가…..뭘…..한 거지?’
분명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고 하나 이게 뭔가.
인간이 아니라 한순간 짐승이 된 기분이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외침이 들렸다.
“향초가 전부 탔다. 죽여라.”
“충!!!!”
그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얼마 있지 않아 계곡 물 쪽에서 비명소리가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단전이 금제된 소년들은 아무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 * *
무사들이 향로 앞에 오열을 맞춰서 앉아 있는 소년들의 숫자를 셌다.
그리고 그 숫자가 파악되었다.
살아남은 소년들의 숫자는 총원이 468명이었다.
거의 4할 가까이가 죽었다고 할 수 있었다.
‘6할……나쁘지 않군.’
하나 악귀 가면은 죽은 자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일관문에서 6할 정도가 살아남은 거라면 첫 솎아내기 치고는 나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숫자 파악이 끝난 악귀 가면이 향로 앞에 있는 소년들에게 말했다.
“일관문에 통과한 이들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바이다.”
“………”
소년들은 조용히 듣기만 했다.
고작 이각에 불과했지만 살아남기 위해 별짓을 다했기에 지친 상태였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악귀 가면이 말을 이어갔다.
“쇠구슬을 얻었으니 아마 알게 되었을 거다. 쇠구슬에 적혀 있는 숫자는 각각 다르다. 그것을 잘 숙지하고 있어라. 그것이 이곳에서의 너희들의 호칭이다.”
“……..”
“그럼 곧바로 이관문을 시작하겠다.”
-웅성웅성!
이런 악귀 가면의 말에 숨을 돌리고 있던 소년들이 술렁였다.
이제 좀 쉴 수 있는 건가 싶었던 그들이었다.
한데 일관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두 번째 관문을 이어간다고?
특히나 향초가 거의 다 탈 무렵에 늦게 통과한 이들은 당연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목유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자괴감은 둘째치고 아직 체력조차 회복하지 못했는데, 또 다시 이런 짓거리를 해야 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이들의 반응을 개의치 않고서 악귀 가면이 손으로 계곡 너머의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관문은 지금부터 동이 틀 때까지 저 산에서 버티는 것이다.”
‘동이 틀 때까지?’
지금은 늦은 밤이다.
그들이 이곳으로 출발할 무렵이 해가 질 때였다.
세 시진 가량 쉬지 않고 걸어오고 나서 이각 동안 일관문을 치뤘다.
이를 고려하면 동이 틀 때까지 대략 세 시진 가량이 남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번엔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건가?’
그런 거라면 쇠구슬 찾기보다는 무난하다고 할 수 있었다.
경쟁에 미친 놈들이 있기는 했어도 적당한 장소를 찾아서 숨어있기만 해도 체력도 보존하고 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아직까지 금문쇄가 박혀 있어서 기감을 활용할 수 없을 테니 충분히 가능했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안도의 눈빛을 보였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할 리가 만무했다.
악귀 가면이 말했다.
“거기에 따른 제약 조건을 말한다.”
‘제약조건?’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산에는 마흔 개의 깃발이 꽂혀 있다. 깃발에 있을 수 있는 수는 총 여덟 명. 동이 틀 때까지 정확하게 여덟 명이 그 장소에 있어야 한다.”
-웅성웅성!
이 말에 모두가 또 다시 술렁였다.
역시였다.
쉽게 쉽게 갈 리가 없었다.
“여덟 명이 넘어서도 줄어서도 안 된다. 만약 그런 경우가 발생한다면 죽는다.”
“………”
정적이 감돌았다.
제약 조건을 듣게 되자 모두가 이 관문의 요지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목유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 있는 사람들만 하더라도 대략 오백 명 가까이 된다. 한데 깃발은 마흔 개면 삼백이십 명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리잖아.’
또 다시 피 튀기는 경쟁을 예고하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존재하기는 했다.
깃발을 찾게 되면 이를 사수하기 위해 여덟 명이 세 시진 가량 동안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단체 협력!’
모두가 이 관문의 요지를 파악해냈다.
당연히 여러 변수가 있겠지만 협력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효율적으로 버틸 수 있는 조건을 가질 수 있었다.
-슥!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모두의 시선이 악귀 가면이 아닌 서로에게로 향했다.
괜히 깃발을 찾아서 거기서 조(組)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가장 강하고 쓸 만한 조원들을 찾아서 뭉치게 된다면 이 관문을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이들의 시선은 향로의 맨 앞쪽에 있는 이들에게로 향해졌다.
일관문을 가장 먼저 통과하고 체력이 넘친다.
이들의 산하로 들어가거나 이들을 섭외하는 것만이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흠.’
이렇게 고민하는 것은 뒤늦게 통과한 이들만이 아니었다.
먼저 통과한 이들도 각자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 통과한 주살곡의 소년 역시도 주변을 둘러보며 고민을 했다.
‘일관문은 빨리 통과해서 체력 안배에 성공했지만 이관문이 바로 이어진다. 제약 조건대로라고 하면 한시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 되면 밤새 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깃발 숫자가 작고 인원을 유지하려면 여러 가지로 성가신 상황이 벌어질 게 틀림없었다.
‘밤을 새야 하는 상황이군.’
한데 여기서 만약 삼관문이 곧바로 이어진다면 관건은 역시 체력 보존이었다.
운기 조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건 굉장히 컸다.
내공이 금제되지 않았다면 서로 교대로 운기를 하면서 체력을 다시 회복해나갈 수 있겠지만 지금은 거의 극한의 상황이었다.
‘…….쓸데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을 피해야 할지도.’
그래야 체력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었다.
역시 그런 면에서 본다면 가장 쓸 만한 녀석들과 한편을 먹는 게 나았다.
주살곡의 소년이 자신의 양옆을 바라보았다.
목경운과 근육질의 비경문 소년.
‘흠.’
자신과 더불어 가장 먼저 일관문을 통과한 이들이다.
굳이 멀리서 찾는 것보다 가장 체력이 넘쳐나는 이들끼리 뭉쳐서 이번 관문은 손쉽게 통과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이관문에서 먼저 끝낼까 했지만…….’
이번만큼은 손을 잡는 편이 나을 듯 했다.
주살곡의 소년이 자신의 왼쪽에 있는 목경운을 슬며시 바라보았다.
먼저 손을 내밀어 협력 관계를 구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
목경운이 입술을 실룩거리는 것이 보였다.
흥미롭다는 듯 한 저 눈빛도 그렇고 마치 이 상황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기분 나쁘게 여겨질 정도였다.
‘…….안되겠어.’
도저히 이놈에게만큼은 손을 내밀기 싫었다.
이상하리만큼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여기 있는 녀석들 중에 가장 먼저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될 녀석이라고 말이다.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먼저 속삭이며 말을 걸었다.
“저랑 함께 할래요?”
뭐지?
이 녀석도 자신과 한편이 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 건가?
한데 방금 전 그 얼굴을 보니 도저히 같이 하고픈 마음은 사라졌다.
“………싫다.”
이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이며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제일 먼저 죽이고 싶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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