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60)
17화 깃발 (1)
왜인지 모르게 같이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묘한 께름칙함.
그것 때문에 목경운과의 공조를 포기한 주살곡의 소년은 옆에 있는 비경문의 소년에게 속삭이며 말을 걸었다.
“너 비경문이지?”
“그렇다.”
“그냥 본론만 얘기하마. 괜히 힘 빼지 말고 이번 관문은 함께 하자.”
“……..”
이런 주살곡 소년의 제안에 비경문의 소년이 고민하는지 미간을 찡그렸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제안이기는 했다.
좀 더 능력 있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것이 수월하게 관문을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으음.’
비경문 소년은 아까 전 이 주살곡 소년이 물속에 숨어 있다가 다른 소년을 덮쳐서 쇠구슬을 빼앗는 모습을 보았었다.
나름 훌륭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쇠구슬 쟁탈전 때보다 좀 더 전략적으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이번 관문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한데,
‘…….이 다음 관문에 부딪치게 될지도 모를 녀석에게 굳이 내 비전을 조금이라도 보일 필요가 있을까?’
세 시진 동안 함께 한다면 꽤나 많은 것을 보이게 될 거다.
자파의 무공 비전은 보일수록 손해였다.
이 시혈곡에서 자신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버틸 확률이 높은 주살곡, 모화방 녀석들과는 공조를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득이라 판단되었다.
이에 비경문의 소년이 말했다.
“거절한다.”
“…….후회할 거다.”
“누가 후회할지는 해보면 알겠지.”
호전적으로 답하는 그 모습에 비경문의 소년이 코웃음을 쳤다.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모화방 출신의 단발의 소녀에게 넌지시 물었다.
“이봐. 모화방. 넌 어떻게…..”
“꺼져.”
“………”
묻기도 전에 거절이다.
비경문의 소년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래도 이것들과의 공조는 애초부터 무리였을지도 몰랐다.
* * *
“후우….후우…..”
소년들이 긴장된 얼굴로 계곡물 너머의 산을 바라보았다.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앞서 있었던 쇠구슬 쟁탈전보다도 체력적으로 더 힘든 세 시진이 시작된다.
눈과 귀가 집중하는 그 찰나였다.
“시작하라!”
악귀 가면의 외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년들이 일제히 계곡 물을 향해 달렸다.
앞에도 그랬지만 이번 관문도 서두르는 편이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첨벙첨벙!
죽은 시신들로 인해 온통 피로 물든 계곡물.
이런 계곡물에서 흘러나오는 혈향은 다시 한 번의 시련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무사가 악귀 가면에게 말했다.
“앞의 관문이 그나마 편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겠군요.”
“……..”
어느 관문이든 힘들지 않은 것은 없었다.
하나 이번 관문은 그저 입맛에 맞는 조원들을 구해서 깃발을 사수하는 것만이 다가 아니었다.
‘빠르게 깃발을 찾는 게 좋을 거다.’
눈치가 있는 자들이라면 깃발이 가진 의미를 곧 알게 될 것이다.
* * *
시작 신호가 떨어지고 나서 산으로 진입한 468명의 소년들.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보이지 않게 되자 소년들이 취한 행동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멈추지 않고 산을 향해 무조건 달리는 이들이었다.
‘깃발…..깃발을 찾아야해!’
이들은 깃발부터 찾아야 한다고 여기는 유형이었다.
깃발의 숫자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조원을 구하는 것보다도 그게 우선이라고 여긴 이들이었다.
물론 이것도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조원을 구했는데 깃발을 구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이런 유형이 거의 절반인 200여 명 가량은 되었다.
여기에는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비경문의 소년, 모화방의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유형.
“야. 나랑 손잡자.”
“……함께 하자는 거냐?”
“그래. 저것들처럼 깃발 먼저 차지해봐야 의미 없어. 미리 조를 짜고서 깃발을 강탈하는 편이 나아.”
“아?”
“그래야 깃발 사수에도 편하고.”
이런 식으로 멈춰 선 소년들은 각자 마음에 맞거나, 도움이 될 만한 조원을 짰다.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그것은 빠르게 이뤄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조를 짜는 동안에는 서로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조가 형성되고 나서부터 산속 깊이 진입하는 순간부터는 체력 고갈이 더욱 심할 것을 알기에 암묵적으로 이곳에서 싸우는 것을 피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 이렇게 되어야 정상이지.’
주살곡의 소년이 속으로 피식거렸다.
그는 자신을 필두로 다섯 번째에서 열다섯 번째로 들어온 이들을 자신의 조원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아니 애초에 그들이 알아서 산하로 들어왔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원래라면 열한 번째까지가 함께 하면 여덟 명의 조원이 되지만, 그들 중 몇 명은 깃발을 먼저 찾는 쪽이라 멈추지 않고 달렸기에 이렇게 조가 형성되었다.
‘됐어.’
가장 압도적인 조라 할 수 있었다.
쇠구슬 쟁탈전을 상위로 통과했기에 실력이나 전략 전부를 갖춘 이들로 구성되었다.
그렇기에 깃발만 구하면 체력을 최대한 보존하는데만 신경 쓰면 될 것이다.
“자 가자!”
그렇게 가장 먼저 조를 형성한 주살곡의 소년이 산으로 향했다.
다른 소년들도 빠르게 조를 만들어 이동했다.
이런 이들 중에는 목유천도 있었는데,
‘……..저 자식은 아니야.’
목유천이 멀리서 보이는 목경운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배다른 형제라고 해도 형제였기에 같이 힘을 합치자고 할까 고민했던 그였다.
그러나 도저히 그러기가 싫었다.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꼼짝없이 점혈을 당하는 바람에 정이 떨어질 때로 떨어졌다.
‘죽든 말든 내 알 바가…….아냐.’
일단은 자신이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 목유천은 근방에 있던 녀석들이 함께 하자고 제안을 줘서 그들에게 합류할 수 있었다.
정도 계열이 아니라 께름칙하지만 살아남으려면 별 수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아야 했다.
‘살아남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말이다.
그렇게 속으로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목유천도 조원들과 함께 출발했다.
그러는 사이,
-뭐 하려는 거냐? 중생.
목경운의 품속에 있는 청령이 물었다.
이에 목경운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조용히 답했다.
“조원을 구해볼까 해서요.”
-……뭐 하러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거냐? 그냥 깃발이나 구하면 알아서 붙을 것을.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그녀의 말도 맞았다.
아직까지 초반인데다 깃발의 위치를 모르는 상황이니, 먼저 그것을 선점하기만 하면 이렇게 미리 조원을 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붙을 것이다.
-혹시 체력 안배라도 하려는 거냐?
조원을 미리 구하는 것은 힘을 합쳐서 위험부담을 줄이고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관문을 미리 대비하는 거라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고요.”
-뭐?
그것도 아닌데 뭐 하러 지금 조를 구하려는 거지?
청령으로서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남과 뭔가를 공조하는 성격도 아닌 녀석인 걸 잘 아는데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외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 목경운이다.
“난감하네요.”
-풋.
청령이 비웃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의외로 조를 구하기 위해 목경운이 다가가자 소년들이 경계라도 하듯이 떨어졌다.
가장 먼저 통과했지만 목경운의 잔인한 손속을 일부가 보았다.
그래서인지 목경운과 한 조를 형성하려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작게 수군거렸지만 목소리가 들렸다.
“저 녀석 지금 떨어뜨리는 편이 나을 수도 있어.”
“봤어? 목울대를 뜯어서 삼킨 쇠구슬을 빼내는 거 말이야.”
“완전 미친 새낀데.”
그런 점이 목경운을 꺼리게 만들었다.
상당수가 이런 성향의 목경운과 같이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차라리 혼자 고립되게 만들어서 탈락시키는 편이 낫다고 여기고 있었다.
이런 판단 때문인지 몰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피하기 급급했다.
-어지간히 밉보였구나. 중생.
“그런가 보네요.”
-괜히 시간 낭비만 한 셈이구나.
“흐음.”
청령의 말대로 이런 식이라면 조원을 구하는 건 힘들지도 몰랐다.
시작은 좀 더 편하게 하고 싶었는데 방식을 바꿔야 하나?
라고 여기고 있던 차였다.
한 짧은 머리의 소년이 목경운을 향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혹시 조원이 필요해?”
“네. 그런데요.”
“우린 일곱 명인데 함께 할래?”
그런 소년의 제안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수군거렸다.
대체 누가 저 녀석을 끌어들이려는 거지?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다면 나중에 가서 경쟁하기 껄끄러운 저 녀석은 지금 미리 배제시키는 편이 나을 텐데 말이다.
그것은,
-슥!
목경운을 향해 손을 내밀며 흔들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상당히 미색이 뛰어난데, 그 주변에는 다섯 명의 소년들이 호위 무사처럼 함께 하고 있었다.
홍일점인 소녀를 중심으로 형성된 조였다.
한 소년이 작게 속삭였다.
“소화. 괜찮겠어? 저 자식은 좀 그런데.”
“맞아. 다른 녀석들도 같은 조로 안받아주는 건 그냥 미리 배제시키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 같은데.”
다른 소년도 동조했다.
이에 소화라는 소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날 믿어.”
“믿지. 그렇지만……”
“다른 멍청한 녀석들은 그냥 미리 배제시키는 게 답이라 여기는데 아닐걸. 저 녀석을 데리고 있으면 우리한테도 득이라고.”
소화는 고민했지만 목경운을 받아들이는 게 득이라 여겼다.
잔혹한 손속과 별개로 단전이 봉해졌는데도 한손으로 목의 울대를 뜯어낼 만큼 힘이 좋은 녀석이었다.
이 녀석을 데리고 있으면 다른 조에서부터 섣불리 덤비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동이 트기 전에 써먹고 나서 죽이면 그만이야.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혼자서 일곱 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
써먹고 나서 제거할 계획까지 세운 그녀였다.
당연히 이렇게 되면 마지막에 와서 한 사람이 비게 된다.
하나 이를 위해서 한 명이 사전에 거리를 벌려서 따라오기로 했다.
저놈이 죽게 되면 그 빈자리를 채울 것이다.
‘멍청한 녀석들. 쓸 만한 패는 이렇게 써먹고 버리라고 있는 거야. 우리 대신 실컷 싸우게 만들어서 체력도 보존하고 일석이조(一石二鳥)잖아.’
그녀는 같은 조원들도 그렇고 다른 녀석들을 비웃었다.
머리는 쓰라고 있는 것이다.
* * *
그렇게 일 각 안에 대부분이 조를 만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소화라는 홍일점을 필두로 한 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터는 빠르게 깃발을 찾아서 선점하는데 달려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조가 차지한 깃발을 빼앗아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게 이동하는 와중에 소화가 목경운에게 슬며시 다가갔다.
“너 아까 꽤 인상적이더라.”
“그런가요?”
“난 소화라고 해. 이름이 뭐야?”
“목경운이라고 해요.”
“목경운?”
소화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잔혹한 손속도 그렇고 제법 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어디 출신인지 알아볼 겸 물어봤는데, 이름만으로는 모르겠다.
‘무가 중에서 목씨 성을 가진 곳은 정파 쪽에 한군데 밖에 없을 텐데.’
안휘성의 명문 무가인 연목검장.
한데 그 정파의 목가 출신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럼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너 어디 출신이야?”
“그게 중요한 가요?”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건가? 하긴.’
지금이야 협력 관계라고 해도 후에는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
최대한 스스로를 숨기는 게 답이었다.
‘이 녀석…..그런데 꽤 잘생겼네.’
꽤라고 표현하기에 목경운의 외모는 미색이 뛰어나다는 표현이 옳을 만큼 잘생겼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욱 그랬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원래의 계획과 다르게 살짝 관심이 갔다.
‘한 번 꼬셔볼까?’
남정네들이란 단순해서 의외로 여자의 유혹에 약했다.
조금만 관심이 있는 척하면 알아서 넘어오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녀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제거할 필요도 없이 좀 더 이용해 먹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슥!
소화가 자신의 가슴 옷자락을 살짝 보이게 풀고서 목경운에게 가까이 붙었다.
이 나이 때 남자들은 가장 성욕이 왕성했다.
그렇기에 이렇게 풍만한 가슴골을 보여주며 몸이 닿기만 해도 그 효과는 확실했다.
몸을 갖다붙인 소화가 속삭였다.
“있잖아. 난 너 같은 애가 마음에 들더라.”
이에 목경운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렇네요.”
‘훗. 역시.’
잘생기고 자시고 필요 없었다.
자신이 작정하고 유혹하면 어떤 남자든 이렇게 넘어오니까 말이다.
-탁!
그때 목경운이 어깨에 팔을 올렸다.
‘헤. 이거 봐라.’
자신이 유혹하니까 대놓고 자신감을 보인다 이거지.
이러면 생각보다 빨리 꼬실 수 있겠다.
잘 구슬려서 자신의 방패막이로 활용하고 끝까지 살아남는다면 적당히…..
“아까부터 고르고 있었거든요.”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꽉!
어깨를 감싸고 있던 목경운의 팔목이 그녀의 목을 감쌌다.
그러더니,
-우드득!
한순간에 그녀의 목을 비틀어버렸다.
워낙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녀는 비명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며 절명하고 말았다.
‘!!!!!’
모두가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목경운을 구워삶을 거라 여겨서 지켜만 보고 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상황이 벌어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한 소년이 소리쳤다.
“이, 이 미친 새끼가 무슨 짓이야?”
그런 소년의 외침에 목경운이 입 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눈앞에 이들 모두가 사기(死氣)를 채워줄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었다.
산도 넓은데 시작은 편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