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62)
-중생 하여간 네놈은.
청령이 혀를 내둘렀다.
어울리지도 않게 조원으로 들어가기에 왜 그러나 싶었다.
한데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더냐?
“이렇게 편한 기회를 놓칠 수가 있나요?”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마지막 남은 단 한 사람, 아니 한 시체에게로 다가갔다.
그 시체는 가장 먼저 목경운이 목을 꺾어 죽인 소화라는 소녀였다.
소녀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댄 목경운은 머릿속으로 착(着)의 식(式)의 구결을 외우며 남아있는 사기(死氣)를 흡수했다.
-슈우우우우우!
흡수된 사기는 체내 전체로 퍼져나갔다.
쇠구슬 쟁탈전 때 허공으로 흩어지려 하던 것보다 역시 직접적으로 흡수하는 편이 더 많은 양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만,
‘앞으로는 먼저 죽은 순으로 해야겠네.’
가까이 있는 사람 순으로 흡수했더니 소화라는 소녀의 사기가 많이 소실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다른 이들보다 부족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군.’
이미 연목검장 때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사기를 확보했다.
기문에 박혀있는 금문쇄만 제거한다면 운기를 통해 단전을 훨씬 키울 수 있을 듯 했다.
“여기 오길 잘한 것 같군요.”
-잘했다고? 너 설마…..
그러고 있는데 어디선가 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이윽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소년이었다.
익숙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소년의 모습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냥 죽였어도 됐는데 빙의를 했네요?”
“필요할 듯 해서 가져왔습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쿵!
소년의 몸이 쓰러지며 흐릿한 형태의 마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목경운이 흡족해하며 말했다.
“참 고맙군요.”
하나를 시켰는데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다니.
참으로 훌륭한 식신이 아닐 수가 없다.
목경운이 쓰러진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소년의 목을 비튼 후에 죽음의 기운을 흡수했다.
그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를 전부 마친 목경운은 개운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피며 근육을 풀었다.
“후우. 좋네요.”
-중생. 어쩔 작정이냐?
“어쩌다뇨?”
-보아하니 이 녀석들만으로 만족할 것 같지 않은데.
이런 청령의 말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산 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동이 틀 때까지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져야죠. 최대한.”
어차피 통과 기준대로라면 최대 일곱 명 이상만 남겨놓으면 그만 아닌가.
* * *
산의 초입에 있는 한 습하고 어두운 동굴.
-화르르륵!
동굴의 입구 쪽으로 횃불을 든 무사 둘과 함께 악귀 가면이 걸어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무사 둘의 표정이 잔뜩 경직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굴에 들어온 순간부터 기묘한 기운이 기감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인기척이나 사람의 기운과는 사뭇 달랐다.
불쾌하면서 닭살이 돋게 만들었다.
‘답답하다.’
무사 둘의 심경은 그러했다.
하나 악귀 가면은 익숙하다는 듯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그러는데 동굴 깊숙이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혈곡주이십니까?”
“그렇다.”
“불이 밝습니다.”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악귀 가면이 무사 둘에게 손을 내밀며 멈추라했다.
“네?”
“너희들은 여기서 기다려라.”
“하오나……”
“기다려라.”
“충!”
이런 그들을 남겨둔 채 악귀 가면이 혼자 동굴 깊숙이로 들어갔다.
안에서 음양이 그려진 도복을 입은 누군가가 서있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두 손을 모아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이런 그에게 악귀 가면이 물었다.
“준비는 됐나?”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번엔 뭐지? 지난번보다 제법 위험한 것들이라 들었는데.”
이 말에 도복을 입은 자가 웃으며 답했다.
“그냥 풀면 당연히 위험하지요.”
“그렇겠지. 뒤에 철창에 있는 것들인가?”
“그렇습니다.”
도복을 입은 자의 대답에 악귀 가면이 뒤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특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꿕꿕!
‘흠.’
흡사 돼지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설마 정말로 돼지가 있을 리가 만무할 터인데 대체 어떻게 생긴 거지?
악귀가면은 호기심에 쇠창살이 있는 곳을 들여다보려 했다.
그러자 도복을 입은 자가 막아서며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무리 통제되었다고 해도 성체가 되지 못한 것들조차 흉수(凶獸)입니다.”
“흉수…….”
짐승 그 이상의 것이라고 했던가.
악귀 가면이 도복을 입은 사내의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쥐 같은 안광의 위험한 무언가가 자신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저것이 뭐라고 했지?”
“갈저(羯狙)입니다. 북호산 부근의 북해에서 데려온 것입니다.”
갈저라……
이름만 들어도 참 흉흉하다.
악귀가면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좋아. 신호를 보내면 풀어라.”
* * *
깃발 사수전이 시작된 지 반 시진이 지났다.
워낙 산이 크기도 했지만 깃발을 꼼꼼 숨겨놨는지 아직까지 이를 발견한 이들이 없었다.
그러나 이를 첫 번째로 발견한 이가 있었다.
그것은 비경문의 소년이었다.
소년의 이름은 연무웅으로 깃발을 발견하자마자 희열에 차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찾았다!’
깃발이 좀 더 밝은 색이었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었겠지만, 색이 검어서 어두웠고 위치도 교묘하게 수풀에 가려져 있어서 찾기 어려웠다.
하나 쉬지 않고 샅샅이 뒤진 보람이 있었다.
‘대가 꽤 길구나.’
깃발의 가까이로 다가간 연무웅이 깃발의 대를 붙잡았다.
깃발을 뽑아서 적당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응?’
쉽게 뽑힐 거라 여겼던 깃발이 땅에서 뽑히지가 않았다.
대 자체가 그리 무겁지 않은데 왜 그런 거지?
의아해하던 연무웅이 그 이유를 곧 알 수 있었다.
‘뭐야?’
깃발의 아래쪽이 커다란 쇳덩어리와 연결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크기도 꽤 컸는데 외공을 익혀서 근육질에 힘이 장사인 연무웅이 들기에도 꽤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를 잡고 이동하면 더 무겁다.’
그렇다면 아래 쪽 쇳덩어리를 들고 이동해야 했다.
처음에는 왜 이런 식으로 깃발을 만들어놓은 거지 했던 그였지만 이내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무거우면 다른 녀석들은 깃발을 옮기기도 힘들 것이다.
내공이 금제되었으니 말이다.
‘이번 관문은 예상보다 수월할지도.’
깃발을 발견한 녀석들 중에는 악의적으로 다른 깃발을 없애려거나 빼앗아서 통과 인원을 줄이려는 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깃발이 이런 식이라면 들고 이동이 힘들 테니, 무리해서 다른 누군가의 깃발을 빼앗으려는 자는 드물 것이다.
‘잘됐군. 그럼 조원을 모으고 위치를 사수해야겠다.’
동이 틀 때까지만 버티며 된다.
한편,
비경문의 연무웅이 있는 곳에서 서북쪽으로 200여장 떨어진 산등성이.
그보단 늦었지만 또 다른 깃발을 발견한 이가 있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모화방의 소녀였다.
소녀의 이름은 모하랑.
“아……..”
깃발을 발견해서 좋아했던 것도 잠시였고 그녀 또한 깃발의 대 아래쪽에 연결된 쇳덩어리를 보고서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무거워.’
쇳덩어리는 그녀가 들기에는 굉장히 무거웠다.
기문이 막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고, 그녀가 익힌 무공 자체가 쾌속함을 바탕으로 하기에 근육양이 두껍지 않아 더욱 어려웠다.
‘이동은 무리야.’
설령 깃발을 들고 좋은 위치를 선점하려 한다면 조원이 필요했다.
혼자서 깃발을 사수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대를 부러뜨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깃발은 온전한 상태여야 한다.]라는 경고가 사전에 있었기에 쇳덩어리도 깃발과 한 몸이었다.
결국 기다리는 것만이 답이었다.
그런데,
‘응?’
우연히 깃발 위쪽 대를 만지작거리던 모하랑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은 깃발 위쪽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횃불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풀 사이사이로 비추는 달빛만으로는 이를 눈으로 보긴 어려웠지만,
-슥슥!
손으로 만지니 대충 뭐라 적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원검세 지우역현……!?’
만지작거리며 새겨진 문구가 뭔지 추측해나가던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것은 검법의 기수식이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검법과는 조금 달랐다.
‘설마 이거?’
아무래도 추측이 맞다면…..
-툭!
‘어?’
모하랑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문구의 구결이 끝났다.
여기까지도 크게 이상한 게 없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아니었다.
‘모자라.’
그녀가 볼 때 구결이 모자랐다.
검법의 기수식이 맞다면 여기서 끊길 리가 없었다.
대부분의 무공은 상대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죽이기 위함이지만 반대로 자신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다.
모하랑이 눈을 감았다.
-촥촥!
머릿속에서 검법이 그려진다.
상승 검법이라고 하기에는 수준이 떨어지지만 그럭저럭 검초가 나쁘진 않다.
한데 이 구결대로라면 네 곳의 틈이 생긴다.
가지고 있는 검식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부위가 정확히 네 곳이라는 의미였다.
‘……불완전한 검법.’
이것이 뭔가 이상했다.
그냥 넘어가자면 넘어갈 수 있었다.
한데 얼핏 별 생각 없이 지나칠 수 있는 깃발의 바로 아래쪽 대 부근에 검법의 구결을 새겨 넣었다.
그것도 불완전한 구결을 말이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녀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아니길 바랐지만 아무래도 확인해봐야 할 듯 했다.
그녀는 과감하게 겨우 발견한 깃발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있는지 모하랑은 깃발을 한참 바라보다, 이내 구결이 새겨져 있던 대의 윗부분을 부러뜨렸다.
-챙강!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면.’
다른 녀석들이 가지게 할 필요도 없었다.
모하랑은 부러뜨린 깃발의 윗부분을 보이지 않게 땅에 묻어두고는 달렸다.
* * *
그렇게 이각 가량이 지났다.
그 전과 다르게 여기저기서 깃발을 발견한 이들이나 조원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당연히 이관문에서 의도한 대로 두 조에서 한 깃발을 동시에 발견하는 바람에 접전 역시도 일어났다.
두 조는 깃발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혈투를 벌였다.
내공은 없어서 거의 박투에 가까웠으나 결국 승패는 갈렸다.
“헉헉……”
이긴 조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내공이 금제되어서 싸우는 것이 이리 힘들다는 것은 새삼 깨닫게 되는 그들이었다.
한 소년이 몸을 겨우 일으키며 주변을 살폈다.
‘아……’
여덟 명의 조원 중에 다섯 명만 살아남았다.
누구 하나 죽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건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깃발을 사수했고, 세 명의 조원을 구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게 쉬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하지?”
“깃발을 사수하면서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그야 그렇지. 괜히 돌아다녔다가 깃발을 빼앗길 수도 있으니.”
모두가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한 소년이 다른 의견을 냈다.
“잠깐만. 여기서 마냥 깃발을 사수하고 있다가 멀쩡한 다른 조가 나타나면 우리가 불리해지는 거 아냐?”
“아……”
그 말도 맞았다.
참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겨우 차지한 깃발을 포기할 수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고 있는 차였다.
“깃발을 찾으셨네요?”
-흠칫!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해졌다.
그곳에 서있는 누군가의 모습에 다들 긴장했다고 한순간 안도했다.
단 한 명만이 서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이다.’
다른 멀쩡한 조였으면 낭패를 볼 뻔 했다.
그러고 있는 그 한 명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얼굴이 드러나자 안도했던 조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바로 목경운이었다.
조원으로 받아들이기 꺼려했던 그 손속이 잔혹한 녀석이 나타나다니.
“잠깐 멈춰! 거기서 움직이지마! 너 뭐야?”
한 소년이 목경운이 다가오지 못하게 제지하며 물었다.
“뭐냐뇨?”
“너 어떤 여자가 있던 조에 들어가지 않았어?”
이 소년은 목경운이 홍일점인 소화의 조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었다.
해서 이를 묻는 것이었다.
이에 목경운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아. 전부 당했어요.”
“당해?”
“네.”
목경운이 눈동자를 움직이며 주변의 시신들을 슬쩍 훑어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저희 조도 여러분들처럼 다른 조와 깃발을 두고 싸우다, 전부 당해서 겨우 도망쳤어요.”
“너 혼자 도망친 거냐?”
“네. 지친 몸으로 혼자서 넷을 상대할 순 없었거든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소년들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나 마냥 의심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자신들도 방금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들에게 목경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로 조원을 잃은 처지이니 이가 맞다고 보는데, 민폐가 아니라면 받아주실 수 있나요?”
“………”
이 제안에 그들이 망설였다.
처음에 조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저놈이 께름칙해서였다.
그 경계심이 쉽게 희석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이 조심스럽게 속삭이며 상의했다.
“어떡하지?”
“저 자식 좀 그런데 그냥 보낼까?”
“한데 그럼 깃발은 어쩌려고? 이제 겨우 한 시진이 다 됐어.”
아직도 동이 틀 때까지 두 시진이 넘게 남았다.
그 사이 다른 녀석들이 공격한다면 꼼짝없이 깃발을 빼앗기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럼 또 다시 깃발을 찾아야 하는데, 다섯 명으로는 무리였다.
“……받아들이자.”
“받아들이자고?”
“그래. 어차피 저 녀석도 이번 관문만큼은 통과하려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 거 아냐?”
“그야 그렇지. 여덟 명이 있어야 통과가 되니까.”
아무리 막나가는 녀석이라고 해도 생각이란 건 할 거다.
힘을 합쳐서 이 깃발을 사수해야 이 관문에서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를 따진다면 아무리 저 녀석이라고 해도 자신들에게만큼은 절대로 해코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확신하게 된 그들 중 한 소년이 목경운에게 말했다.
“좋아. 대신 동이 틀 때까지는 우린 하나라는 걸 명심해. 서로가 서로를 배신하면 죽은 목숨이다. 명심해.”
그런 소년의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그 입술은 웃음을 참는 것 마냥 실룩거리고 있었다.
‘아아. 너무 좋은걸.’
알아서 식탁을 차려주는 기분이다.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