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65)
쇠구슬 쟁탈전이 벌어졌던 계곡과 깃발 전이 벌어지고 있는 산에서 멀지 않은 곳.
그곳에 또 다른 동굴 하나가 있었다.
-끼리릭! 끼리릭!
그런 동굴로 다섯 대의 수레 행렬이 이어졌다.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수레를 끌고 횃불로 밝혀놓은 동굴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동굴 안으로 들어간 수레들이 어느 곳에서 멈춰 섰다.
그곳에는 수많은 소년들의 시신이 눕혀져 있었다.
“후우. 이게 마지막인가. 그럼 옮겨볼까.”
수레를 끌고 온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시신들을 그 옆으로 나란히 갖다놓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어서 도착하는 남은 수레들도 마찬가지였다.
-탁!
“늦게 꺼내서 그런가 몸이 불었군.”
한 붉은 혁대의 무사가 물에 퉁퉁 불은 시신을 보며 혀를 찼다.
얕은 계곡 물이었지만 깊이가 있는 곳도 있다보니 몸 전체가 담가졌었나 보다.
그때 음양이 그려진 도복을 입은 한 중년인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건 빼시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소?”
“이걸로는 작업을 할 수가 없소이다.”
“허참.”
이에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시신을 동굴 좌측편의 수레로 옮겼다.
수레로 시신을 옮기는데 무사 한 명이 참지 못하고 토악질을 올리고 말았다.
“으웩.”
이런 무사를 보며 다른 무사들이 혀를 찼다.
“쯧쯧.”
“누가 신입이 아니랄까봐.”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사실 이해는 간다.
그나마 저기 눕혀져 있는 시신들은 상처가 적어서 사람의 형태는 갖추고 있다.
그러나 수레에 있는 것들은 ‘낙오’된 것들이다.
이것들은 멀쩡한 게 없다.
머리가 으깨진 것은 다반사였고 다리 한 쪽이 없다든지 장기가 뜯겨진 것들도 많았다.
보기만 해도 토악질이 절로 나올 만큼 끔찍했다.
“적당히 해라. 신입.”
“아, 알겠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낸 무사가 겨우 몸을 일으키며 답했다.
그렇게 시신의 선별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자 낙오된 것들이 세 수레 가까이 나왔다.
그러자 아까 전 도복의 중년인이 다가와 무사들에게 말했다.
“자 갑시다.”
도복의 중년인이 앞장 섰고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시신이 쌓인 수레를 끌었다.
수레는 좁은 비탈길을 따라 이동했고 반 시진 만에 산기슭 절벽 앞에 도착해서야 멈췄다.
도복의 중년인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한가득 꺼냈다.
그것은 부적이었다.
[쇄(鎖)]라고 적혀 있었는데, 도복의 중년인이 수레에 실려 있는 죽은 시신들에게 하나하나 부적을 붙이며 말했다.
“던질 때 절벽 아래는 보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익숙하다는 듯이 부적을 붙인 시신을 차례로 절벽 아래로 던져버렸다.
이를 보며 신입 무사가 속으로 이해할 수 없어했다.
써먹을 수 없는 시신이라면 그냥 태워버리는 것이 깔끔할 터인데, 이런 곳에다 전부 던지면 아래 쪽은 그야말로 사체로 넘쳐날 것이 아닌가.
대낮이라고 해도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끔찍할 것이다.
신입 무사가 같이 시신을 나르는 사수에게 물었다.
“선배. 그냥 태우면 되지 굳이 이곳 절벽에 던지는 이유가 뭡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할 것이지 뭘 궁금해 하는 거냐?”
“소, 송구합니다.”
의기소침해져서 입을 다무는 신입을 보며 사수가 혀를 차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듣고 한 귀로 흘려라. 몰라 듣기로는 이곳 절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동굴의 지류 아래로 이어진다더라.”
“그게 이것과 무슨 관계입니까?”
“모른다고 했잖냐. 뭐 양분이 되니 어쩌고 하는데 우리 같은 말단들이야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다. 괜히 의문 가졌다가 사달만 날뿐이다. 알겠냐?”
“…….알겠습니다.”
‘양분?’
대체 무슨 양분이 된다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나저나 시혈곡의 관문이 진행될 때마다 이 짓거리를 했다는 건데, 이 절벽 아래에는 대체 얼마만큼의 사체들이 버려진 거지?
지금만 해도 백여 구가 넘는다.
-오싹!
무심결에 아래를 쳐다봤는데, 순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어둠 속에서 기분 나쁜 흉흉한 무언가가 스멀스멀거리고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탁!
“헉!”
그때 누군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부적을 붙이던 도복의 사내였다.
화들짝 놀라하는 신입 무사에게 도복을 입은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뭐라고 했소?”
“네?”
“내가 아까 전에 뭐라고 했냐고 했소.”
“저, 절벽 아래는 쳐다보지 말라고……”
“하면 절대로 쳐다보지 않는 게 좋을 거요.”
“네네?”
당황해하는 그에게 도복의 사내가 의미심장한 어조로 경고했다.
“홀릴 수도 있소.”
홀린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 * *
깃발 사수전이 시작된 지 한 시진하고도 이각 가량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시간이 상당히 경과된 상태였기에 절반 가까이의 깃발이 소년들에 의해서 발견이 되었고 사수하고 탈환하려는 싸움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깃발 사수전 내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벌어졌다.
그것은,
-꿕꿕!
이매망량인 갈저의 등장이었다.
안 그래도 맹수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만큼 흉폭한 놈이었는데, 내공까지 금제되고 아무런 병장기가 없는 소년들에게는 최악의 변수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조원들이 없이 혼자서 깃발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수색 중이던 소년들은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콰득!
“끄아아아악!”
산의 중턱 한 가운데 또 한 명의 소년이 갈저에게 당했다.
갈저는 인간의 머리통을 좋아해서 잡는 족족히 흉악한 이빨로 으깨서 먹어치웠다.
다른 부위는 먹지도 않았다.
그로 인해 산의 곳곳에 머리가 으깨진 시신들이 발견되면서 소년들의 경계심을 극도로 높이고 있었다.
“제기랄. 이게 뭐야? 이거 정말 싸워서 이렇게 된 거 맞아?”
아직 깃발을 찾지 못한 한 조가 시신을 발견하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싸워서 죽은 흔적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공이 금제되었어도 그렇지 설마 맹수한테 당하기라도 한 거야?”
“맞네. 이거 이빨 자국이잖아.”
“아니. 아무리 맹수라고 해도 머리를 통째로 씹어 먹을 수 있나? 대호라고 해도 머리뼈는 발라먹었을 거 아냐?”
머리가 통째로 없는 시신.
아무리 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과 함께 하고 있는 목유천의 눈밑이 퀭했다.
‘하아…….’
여긴 정말 지옥 같았다.
깃발 탈환전을 펼치다가 동료였던 소년 세 명을 잃고서 다섯이서 다른 깃발을 찾아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스무 구가 넘는 시체를 봤다.
그 중 세 구 정도만이 깃발을 두고 격렬히 싸우다가 죽은 걸로 보였고 나머지는 기괴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 시신처럼 머리가 없는 시신이 열 구.
그리고 깔끔하게 죽어있는 시신 일곱 구를 발견했다.
‘…….대부분이 목이 꺾였었어.’
전부 목이 꺾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한 듯 했다.
뭔가 육탄전을 벌이거나 격렬히 싸운 게 아니라 어떤 누군가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죽은 것 같았다.
‘뭐지? 대체?’
이렇게 죽인 이들은 깃발과는 무관하게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문제는 이것에 있었다.
깃발 전만으로도 모두가 눈의 불을 켜고서 고생하고 있는데, 알 수 없는 무언가들이 닥치는 대로 소년들을 죽이고 있는 듯 했다.
‘대체 누가 이런 짓들을 하는 거지?’
목유천이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이백여 장 정도 떨어진 산 중턱.
그가 궁금해 하는 진범 중 하나가 머리통이 없는 한 시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서 사기(死氣)를 흡수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목경운이었다.
빠르게 사기를 흡수하던 목경운이 이내 손을 뗐다.
그리고 불쾌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적네요.”
-사기 말이냐?
“네.”
-당연하겠지. 이매망량에 당한 시신들은 요기에 침식되어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기운들이 빠르게 소진된다.
청령의 그 말에 목경운이 혀를 찼다.
죽으면서 나오는 기운마저도 이렇게 빠르게 소진 되다니.
꽤나 난감했다.
“흐음.”
부지런히 움직여 이매망량인 갈저보다 더 많은 소년들을 죽여서 사기를 얻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뒤처지고 있었다.
“조금 짜증나려고 하네요.”
사기를 흡수해야 해서 시간이 걸리는 자신과 달리 이 갈저라는 이매망량은 머리만 쏙 먹고서 또 다른 사냥감을 노렸다.
이 정도면 배가 부를 만도 할 터인데 끊임없이 먹는다.
“남이 남겨놓은 찌꺼기를 먹는 기분이군요.”
-흐음.
“왜 그러시죠?”
-한데 이놈…….생각보다 많이 먹는 것 같구나.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배가 부르지 않은 모양이죠.”
-아니. 그런 것 치고도 많아. 이 정도면 배가 부를 만도 한데 상당히 많이 먹고 있어.
“한참 자라나는 시기라 그럴 수도 있겠군요.”
-……..알겠다.
“뭐가요?”
-어쩌면 성체가 되기 직전의 녀석일지도 모르겠구나.
“성체요?”
-그래. 이매망량들 중에는 번식을 위해서나 성체가 되기 위해 많은 기운을 필요로 하는 녀석들이 있다.
“갈저도 그런 유형이라는 건가요?”
-아마도?
이런 청령의 말에 목경운이 곤란하다는 듯이 턱을 쓰다듬었다.
계속 이 녀석이 이런 식으로 먹어치우면 자신의 몫이 현저히 적어진다.
이에 목경운은 방향을 선회하기로 결심했다.
“안되겠군요. 그냥 갈저란 녀석부터 잡아야겠어요.”
내버려두면 주변에 혼란을 줘서 오히려 자신에게 득이 될 거라 여겼었다.
한데 지금 상태로는 오히려 방해만 된다.
그렇기에 갈저를 먼저 죽이기로 마음먹은 목경운이다.
-어떻게 말이냐?
“도와주실 수 있나요?
-혼자서 할 수 있다고 하더니 중생 너도 이 상황에서는 별 수 없나보구나.
청령이 코웃음을 치고는 말했다.
-그럼 이 비좁은 곳에서 빼내다오.
이에 목경운이 그녀가 들어가 있는 목각인형을 들고서 수인을 맺으며 주술을 외웠다.
“연원지세 구환도원 해(解)!”
-스르르르르!
이윽고 목각인형에서 큰 그림자가 생겨나더니, 이내 그 위로 청령이 곰방대를 쥐고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밖으로 나온 그녀가 기지개를 피며 개운하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갇혀 있는 것보다 훨씬 좋구나. 후우.
청령이 곰방대를 한 입 물고서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 그녀에게 목경운이 말했다.
“놈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아니 청령 선에서 없앨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아요.”
-보채지 않아도 그럴 참이다. 기다리거라.
-팟!
청령이 이내 하늘 위로 솟구쳤다.
마승과 달리 격이 높은 그녀였기에 육신에 빙의해 있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는 반경 범위가 굉장히 넓은 그녀였다.
그렇게 나무 꼭대기 보다 높게 날아오른 청령이 주변을 살폈다.
그녀의 핏빛 귀안이 산 전체를 천천히 훑었다.
‘흐음.’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던 청령이 한 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정도로 인간을 먹는데 집착할 정도라면 금방 발견할 거라 여겼는데, 예상과 달리 그녀의 귀안에 놈이 보이지 않았다.
괴수(怪獸)가 되기 직전이라 요기가 한참 넘쳐날 터인데 이상하다.
‘대체 어디로 간 거지?’
이 근방이 아닌 건가?
이에 청령이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갈저가 더 먼 곳까지 이동했을 수도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데,
-흠칫!
그녀의 시선이 어딘가로 꽂혔다.
‘하!’
청령의 입에서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목각인형 안에 있을 때는 외부의 기운을 느끼지 못했기에 이것을 알 수가 없었다.
한데 지금은 당연히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 엄청난 것을 보고도 눈과 귀가 가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먼 절벽 쪽에서 헤아릴 수 없는 절규 소리가 퍼져올라고 있었다.
이에 그녀는 곧바로 밑으로 내려갔다.
목경운이 물었다.
“벌써 찾은 건가요?”
-아니.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너 지금 빨리 따라와라.
다소 들뜬 그녀의 목소리에 목경운이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령이 어딘가로 안내하듯이 먼저 날아갔다.
이에 목경운이 그녀를 따랐다.
* * *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다.
이각 정도 떨어진 그곳은 산의 경계면 깊숙이에 자리하고 있는 한 절벽 방향이었다.
바닥을 보니,
‘바퀴자국?’
수레를 끌고 다녔는지 비탈길에 바퀴자국이 가득했다.
의아해하며 가고 있는데,
-흠칫!
목경운은 앞에서부터 퍼져오는 흉흉한 기운에 순간 발걸음이 멈칫해졌다.
‘이건 대체……’
귀안(鬼眼)이 열리고 제 육감이 개방된 후부터 이런 것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어째서 지금까지 이걸 눈치채지 못했던 거지?
이에 의구심을 느끼며 주변을 살폈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아……’
절벽과 나무 사이사이에 붙여져 있는 부적들과 새겨진 주언들.
이것들이 흘러나오는 흉흉함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제어하고 있었다.
한데 이렇게 많은 부적이 붙여졌는데도 가까이에 다가가니, 이런 엄청난 흉흉함이 새어나올 정도면 대체 무엇이 있는 것인가?
그렇게 바퀴자국이 끊긴 곳에 도달하자, 절벽 낭떠러지 앞에 걸터앉아 곰방대를 피우고 있는 청령이 보였다.
-보이느냐?
이런 그녀의 물음에 목경운의 살결이 떨려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
-제발! 제발!
아래에서부터 퍼져오는 끝없는 절규 소리.
그 소리와 함께 살갗이 따갑게 느껴질 만큼 흉흉한 기운이 올라오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위로 부딪쳐오고 있었다.
-더 가까이서 봐라.
목경운이 절벽 끝으로 다가가 아래를 쳐다보았다.
“아아아.”
그것은 마치 무저갱(無底坑)과도 같았다.
헤아릴 수 없는 한이 한데로 어우러져서 끝없는 악의와 흉흉함을 뿜어대고 있었다.
절벽 곳곳에 부적들이 붙여져 있는데도 이 정도라면 어지간히 심력이 약한 자라면 쳐다만 봐도 정신이 아득해질 지도 몰랐다.
-중생. 고독이 무엇인지 아느냐?
“…….모를 리가 있나요.”
약초와 독에 관련해서는 거의 모르는 게 없었다.
물론 고독을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할아버지께 들은 기억은 있다.
남만 지역에서 파생된 비술로 수십, 수백 마리의 독물을 한 항아리에 집어넣고 단 한 마리가 살아남을 때까지 뚜껑을 열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남은 최악의 한 마리를 고독(蠱毒)이라고 한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거죠?”
청령이 입 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
-저 아래 고독이 있구나.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