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74)
주둥이가 찢어져 죽어 있는 괴물 늑대, 아니 괴수(怪獸) 갈저.
이것은 죽이라고 풀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으로부터 살아남으라고 풀어놓았던 것이었다.
한데 이것이 죽어 있다니.
‘하……’
참으로 기가 찼다.
한순간 모두가 이 광경에 입술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한 붉은 혁대의 무사가 지쳐 있는 소년들에게 물었다.
“누가 했지?”
그런 그의 질문에 자연스럽게 소년들의 시선은 어떤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모두가 비슷했지만 유독 전신의 피로 범벅이가 된 미형의 소년.
그는 목경운이었다.
‘……..또 저 녀석인가?’
붉은 혁대의 무사들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쇠구슬 쟁탈전에서 보였던 모습 때문에 관심을 가지긴 했지만 이번 것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배……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한 무사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속삭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정도 크기의 괴수라면 내공이 금제되지 않았어도 어지간한 무위로는 대처조차 힘들어 보인다.
한데 기문이 막힌 상태로 저걸 저리 만들었다고?
‘아무리 외공을 단련한다고 해도 저건……’
무리다.
제대로 무장을 해도 상대할 수 있을까 말까다.
붉은 혁대의 무사들 중 가장 선임 무사가 목경운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다른 소년들은 피폐하다 못해 지쳐 보이는데, 유독 눈이 살아있다.
아니 지쳐 보이지 않는다.
‘설마?’
선임 무사의 눈매가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이에 말했다.
“너. 이리 와봐라.”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건가요?”
“말대답을 누가 해도 된다고 했지?”
“……..”
어깨를 으쓱한 목경운이 선임무사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선임무사가 거칠게 목경운의 손목을 낚아채고는 이내 체내의 상태를 살폈다.
기문이 막혀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데,
‘…….막혀 있다.’
설마 기문을 녀석이 풀어버린 건가 했는데 아니었다.
그대로 막혀 있었다.
이를 확인하고 나니 더욱 기가 막히다.
‘고작 연목검장 따위에서 이런 놈을 키웠다고?’
아무리 명문 무가라고 해도 구파일방이나 같은 대문파도 아니었다.
이거 꽤나 논란이 될 것 같다.
시혈곡이 운영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 * *
주둥이와 대가리가 뜯겨나가 하관과 완전히 분리된 괴수 갈저의 사체.
이를 보고 있는 도복의 방사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동이 트는 순간에 맞춰서 방술로 갈저에게 신호를 보내 돌아오도록 조치를 취했었다.
한데 놈이 돌아오지 않아 이상함을 느껴 이곳까지 올라온 방사였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이게 가능한가?”
“네?”
“가능하냐고 물었네.”
질문을 한 자는 다름 아닌 악귀 가면을 쓴 시혈곡주였다.
뒤늦게 산을 오른 그는 붉은 혁대의 무사들에게 보고를 받고서 이곳에 도착해 갈저의 사체를 확인했다.
그 역시도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괴수 갈저의 역할을 소년들에게 있어서 시련이었다.
더욱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만들어 살아남고자 하는 생의 의지를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걸 죽이다니.
“이게……하……”
도복의 방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무공을 익힌 무인이 이랬다고 하면 참 대단한 무위를 지닌 것 같습니다 하고 답변이라도 했을 것이다.
한데 이건 정말 예상 밖이었다.
‘이걸 말해야 하나.’
더욱 곤란한 것은 갈저의 상태였다.
‘…….성체가 되다니.’
그렇지 않아도 슬슬 성체에 가까워졌다고 여기긴 했다.
하나 아직은 아니고 두어 달은 더 있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놈을 투입했었다.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완전한 성체가 되었다.
흉수가 아닌 괴수가 된 것이었다.
‘미치겠군. 이걸 어떻게 한 거지?’
흉수조차 훈련 받은 방사나 삼류, 이류 무사들은 감당하기 힘들다.
그런데 괴수 급이 되면 일류 고수들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잡기 힘들 터인데, 이걸 기문이 막힌 소년들 중에 누군가가 잡았다는 건 차마 믿기지가 않았다.
이걸 얘기해야 했지만 방사는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흉수만으로도 극한의 시련이라 할 만한데, 아무리 깃발이라는 보호 공간이 있다고 해도 괴수 정도면 거의 학살 극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이놈이 더 사고를 치기 전에 죽임을 당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만 이 사실을 완전히 고하긴 힘들었다.
이에 이것은 배제한 채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체 어떻게 잡은 건지 저조차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인간이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부위가 어디 같습니까?”
“…….입을 말하고 싶은 건가?”
“맞습니다. 무는 힘이 가장 강합니다. 하물며 짐승이나 이런 이매망량이라고 다를 것 같습니까? 짐승이라 불리는 것들은 인간과 달리 야생의 삶을 살아왔고 그에 맞춰서 뼈마저 씹어먹을 수 있는 치악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은 딱딱한 뼈를 발라서 먹는다.
그러나 짐승들의 상당수는 뼈째로 먹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그에 맞춰서 치아의 형태나 치악력(齒握力)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운이 좋아서 이놈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핵(核)을 날카로운 것으로 찔렀다거나 그런 거라면 이해가 가지만 이건 힘이 조금 세다로는 불가능합니다.”
괴수 갈저의 치악력을 능가하는 힘이 있어야 찢어뜨리는 게 가능하다.
이에 악귀 가면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군.”
“대체 누가 그런 건지 말씀해주….”
“됐네.”
“네?”
“못 들었나 이제 됐다고 했네. 저것의 사체를 들고 가보게.”
원했던 것은 들었다.
그렇기에 굳이 더 언급할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하면 몇 명만 빌리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게.”
그렇게 방사가 몇 명의 무사들과 함께 사체를 챙기자, 그를 보좌하는 대주 급의 선임 무사가 다가와 인상을 쓰며 말했다.
“확인해봤습니다.”
“금문쇄는 그대로인가?”
“그렇습니다. 기문이 막혀서 진기가 체내에 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데 저리 했다라.”
“힘이 장사란 말로도 부족하군요. 오히려 비경문의 그 아이보다 힘이 셀 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이게 힘이 세다는 것으로 납득할 일일까?
악귀 가면은 지금보다 애송이 시절 이매망량이라 불리는 것과 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참고한다면 여전히 의문이다.
내공도 없이 이랬다는 게 말이다.
‘지켜봐야겠군.’
보통 녀석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이걸로 더 관심이 갔다.
정도 명문 문가 출신이라는 걸로는 설명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악귀 가면이 화제를 돌렸다.
“나머지는 전부 모였나?”
“네.”
“총원은?”
“살아남은 인원은 총 259명입니다.”
총원 468명 중에 절반 가량이 죽었다.
이런 대주 급 선임 무사의 보고에 악귀 가면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산등성이 위쪽으로 올라가자 큰 터가 있었고 그곳에 오와 열을 맞춰서 앉아 있는 소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살아남은 숫자였지 여기서 또 반이 갈려 있었다.
259명 중 우측 편에 200명, 그리고 좌측 편에 59명이 있었는데, 다수인 200명은 편해보이는 얼굴이었고 남은 59명은 하얗게 질려서 떨고 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은 동이 틀 때까지도 깃발을 찾지 못한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렇게 죽는 건가.’
그렇기에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미 결과가 예고되었었다.
그것은 죽음이다.
이들의 앞에 선 악귀 가면이 입을 열었다.
“깃발 사수에 성공한 것을 축하하는 바이다. 좌측 편의 쉰아홉 명의 쓰레기들도 밤 사이에 이도저도 못했으면서 살아남느라 고생했다.”
지극히 대우해주는 말도 달랐다.
사실 59명의 소년들에게 이것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는 악귀 가면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쿵! 쿵! 쿵!
그들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악귀 가면이 명을 내리는 순간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자신들의 목을 당장에라도 베어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쉰아홉 명의 쓰레기들은 저기 방사를 따라서 내려가라.”
‘!?’
이런 그의 명에 59명의 소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이 자리에서 죽이리라 여겼는데, 저 도복을 입은 방사를 따라 산을 내려가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살려주는 건가?
-웅성웅성!
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사를 따라가라고 하는 건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목숨을 연명한다고 저리 좋아하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싶진 않았다.
“입 다물고 꺼져라.”
좋아하던 그들이 이내 악귀 가면의 다그침에 입을 다물었다.
물론 히죽거리는 것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59명이 수레를 끌고서 갈저의 사체와 죽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는 행렬을 따라 산을 내려갔다.
‘왜 저런 표정들을 하는 거지?’
‘뭔가 있군.’
내려간 이들은 모르겠지만 붉은 혁대의 무사들의 표정을 보고서 대충이나마 상황을 짐작한 200명의 소년들은 내려가는 이들을 보며 다행이라 여겨졌다.
저기에 포함되지 않은 것을 말이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여기에 있는 녀석들이 깃발을 찾은 녀석들인가?”
“………”
“이제 좀 쓸 만한 눈빛들을 하고 있구나.”
악귀 가면이 흡족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년들의 눈빛은 어젯밤과는 확연히 달랐다.
쇠구슬 쟁탈전을 하기 전만 하더라도 어리숙한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하나 같이 지쳐있어도 눈빛은 날 것에 가까워졌다.
손에 피를 묻히고 고생을 하니 사나워졌다.
‘골라낸 보람이 있군.’
시혈곡을 다른 의미에서 골라내는 작업이라고 하는데는 여기에 있었다.
한데 이런 이들 중에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
그것은 바로 목경운이었다.
얼마나 피를 많이 묻혔는지 옷이 검붉게 변해있었다.
그런데 다른 소년들은 초췌하다 못해 아직도 숨을 고르고 있는 이들이 상당수였는데, 유일하게 평이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표정 또한 유독 다른 이들과 비교해 편안하기만 하다.
반면,
-파르르르!
목경운의 주변에 있는 같은 조원들은 유달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뭔가 목경운의 가까이에 있는 것을 꺼리는 듯한 태도다.
‘두려워하고 있군.’
악귀 가면은 저들의 반응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통이라면 서로 협동해서 깃발을 사수하는데 성공했으면 같은 조원들에 대한 신뢰가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저리 두려워한다는 게 특이한 경우였다.
‘무슨 짓을 한 거냐?’
궁금해졌다.
하나 지금은 한 사람에게 유독 관심을 보일 수 없었다.
악귀 가면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좋아. 다시 선별의 시간이다.”
‘선별?’
선별이라는 말에 안도하고 있던 소년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이사이 조들은 이 상황을 짐작이라도 한 것처럼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좌측 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깃발의 진의를 깨달은 녀석들은 좌측으로 가라.”
“진의라니?”
“무슨 소리야?”
-웅성웅성!
소년들이 술렁거렸다.
그러고 있는데 일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좌측 편으로 이동을 했다.
물론 목경운의 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이동을 한 소년들을 보며 영문도 모른 채 있다가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좌측 편으로 몇 조가 이동하려 했지만,
“진의가 뭔지도 모르고 따라서 이동하다 걸리면 즉결 처형이다.”
-흠칫!
이 경고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또 다시 좌측과 우측으로 소년들이 나눠졌다.
200명 중 좌측 편에 80명, 우측 편에 120명의 소년들이 있었다.
‘대체 진의라는 게 뭐야?’
‘우린 통과한 게 아닌 거야?’
우측 편에 있는 120명의 소년들이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선별이라는 표현을 쓴 시점에서 여기서 통과하지 못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였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우측 편에 남아있던 소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까지가 네놈들의 한계로군.”
“………”
“하나 감사히 여겨라. 네놈들은 지금부로 본 천지회의 하급 무사가 되었다.”
‘!?’
이런 악귀 가면의 공언에 소년들의 눈이 커졌다.
설마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서 죽는 건가 하고 두려워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전혀 뜻밖의 결과였다.
하지만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았다는 데서 안도한 이들이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사, 살았어.”
들어가는 대부분이 죽어서 시신으로 나간다고 알려진 시혈곡.
이곳에서 살아남은 희열이 너무도 컸다.
반면 절반 가까이는 그리 기분이 좋지 않은지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빌어먹을!’
‘하급 무사라니.’
시혈곡에 들어오는 이들의 대부분의 목적은 절대 하급 무사 따위가 아니었다.
목숨을 걸고서 관문을 통과하려는 목적은 선택을 받는 것이었다.
하나 그들은 이것에 실패했다.
‘멍청한 것들.’
‘시험을 단순하게 봤구나.’
이런 그들을 보며 관문의 진의를 깨달은 80명은 비웃음이 담긴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더 높은 곳으로 갈 자격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이(二)라고 적혀 있는 은패였다.
‘아!’
이것을 알아본 주살곡의 염가를 비롯한 몇 명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것은 관문을 수석으로 통과한 자에게 주어지는 증패였다.
‘수석을 정하려는 건가?’
만약 그런 거라면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저 증패가 있는 것이 마지막에 가서는 상당히 유리하다는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
한데 쇠구슬 쟁탈전과 달리 이번 것은 특별히 우위를 가릴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나마 있는 것은 이렇게 깃발이 두 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는 건데, 이마저도 80명이니 많았다.
‘어떻게 할 거지?’
이렇게 의아해하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중얼거렸다.
“수석을 어찌 정할까? 구결을 외운 자로 할까나.”
이 말에 염가를 비롯한 몇 명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초반에 구결이 있는 깃발 두 종을 확보했기에 이를 미리 외우는데 성공한 이들이었다.
그런 거라면 자신 있었다.
“아니면 구결을 가장 잘 펼치는 자로 할까나.”
이어지는 중얼거림에 들썩였던 어깨의 일부가 가라앉았다.
밤새 이들은 깃발을 사수하고 빼앗는 것을 하느라 구결을 겨우 외우긴 했어도 연습할 시간을 가지진 못했다.
이는 주살곡의 염가나 비경문의 연무웅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장에 외운 구결대로 초식을 펼칠 수 있으나 막 처음 펼치는 것이기에 완벽하게 펼칠 자신은 없었다.
사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조건은 같다.’
일단 초식을 펼치라고 한다면 무조건 해볼 생각이었다.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말했다.
“좋아. 이걸로 해야겠군. 이 중에 깃발에 있는 구결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설명할 녀석이 있나?”
그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가 손을 들고서 가장 먼저 빠르게 일어났다.
-팟!
“검법입니다!”
이 외침에 여기저기서 코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구결을 외우거나 보기라도 했다면 누구나가 검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이냐?”
악귀 가면의 싸늘한 눈초리만 보더라도 자신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소년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때 주살곡의 염가가 손을 들고 일어났다.
“정중선 세 요혈과 육대 요혈을 노리는 공방이 일체화 되고 쓰임에 따라서는 초식의 변화가 다채로운 쾌검술입니다.”
‘아……’
이런 염가의 설명에 비경문의 연우뭉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간결하게 검법이 가진 특징을 정확하게 설명해냈다.
이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했다.
‘어떠냐?’
주살곡의 염가가 목경운과 비경문의 연무웅을 차례로 쳐다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모화방의 모하랑은 치료를 하고 누워있어서 쳐다볼 필요도 없었다.
이번 증패는 자신의 것이라 확신했다.
악귀 가면이 입을 열었다.
“그 와중에 그 정도까지 파악했다니 제법이군.”
‘됐어.’
주살곡의 염가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악귀 가면의 반응을 보아하니 자신이 파악한 것이 어느 정도는 맞는 듯 했다.
목유천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딱히 수석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먼저 말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구결을 보는 눈이 뛰어나구나.’
자신이 파악한 것과 거의 동일했다.
비록 간교한 녀석이지만 확실히 무에 대한 재능은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녀석인 듯 했다.
금문쇄를 뺐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일지 궁금해졌다.
“흐음.”
그러고 있는데 악귀 가면이 대주 급의 선임무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자 선임 무사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세 시진 가까이 깃발 사수전을 벌이며 쉬지도 자지도 못하고서 죽고 죽는 싸움을 해온 이들이었다.
이 정도까지 파악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했다.
악귀 가면이 은패를 내밀며 말했다.
“좋아. 이번 관문은…..”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이었다.
“그냥 검법이 아니라 검진(劍陣)이 아닌가요?”
‘!?’
악귀 가면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그 말을 누가 한 거지?
하고 있는데 그 말을 한 대상자는 다름 아닌 목경운이었다.
‘하!’
이에 악귀 가면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검법은 식(式)이 단순했기에 구결만 봐서는 검진으로 펼칠 수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가능하지 않았다.
적어도 검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검수가 아니고는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한데 새파란 애송이가 구결만으로 이를 구분했다고?
‘뭐, 뭐야?’
목경운의 입에서 뜬금없이 나온 검진이라는 말에 속으로 비웃었던 염가였다.
한데 악귀 가면의 이 반응은 대체 뭐지?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