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76)
촛불로 밝히고 있는 붉은 방안.
이곳은 천지회의 외성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기방이었다.
탁자 위에는 붉고 하얀 분부터 화장을 하기 위한 붓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를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녀는 삼대 살수 집단 중 하나인 비살문의 문주 후보인 하채린, 아니 그 몸에 빙의해 있는 고찬이었다.
-탁!
깍지를 낀 두 손으로 턱을 포갠 고찬.
동경 속에 비치고 있는 얼굴은 고혹적이라 할 만큼 아름답다.
하나 이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런 짓까지 해야 하는 건가.’
고찬은 탁자 위에 있는 화장 도구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졌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식신인 그는 목경운과 연이 이어져있기에 그를 따라서 천지회까지 쫓아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연이 이어진 주인 목경운에 의해 생사가 달려있기에 선택권이 없었다.
‘젠장.’
고찬이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천지회의 외성까지 오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천지회 내부로 잠입하려 하니 이렇게까지 경비가 삼엄할 줄은 몰랐다.
‘무리야.’
살수 시절에도 투입 임무가 종종 있기는 했다.
아니 살행을 해내려면 대부분이 은밀한 잠입을 요했다.
그러나 현 중원 무림을 삼분하고 있는 천지회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고, 그가 여태껏 침입했던 중소 문파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아.”
떨리는 손으로 고찬이 분을 칠하는 붓에 손을 갖다댔다.
그가 이렇게 화장 도구를 손에 쥐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것은 천지회 내부로 잠입하기 위해서였다.
-흠칫!
붓을 손에 쥔 고찬은 전신에 닭살이 돋았다.
그의 원혼 깊숙이 내재되어 있는 거부감 때문이었다.
남자인 자신이 이런 기방까지 와서 기녀로 분장할 생각을 하니 강한 거부감으로 경기마저 일어났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고찬은 안으로 잠입하기 위해 천지회 외성 주위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비품이나 식량을 들이는 수레에 몰래 들어가서 잠입하는 방법도 강구했지만, 천지회의 성문에서 철저히 검사를 하기에 불가능했다.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내부인과 접촉해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호오. 그러니까 소저께서는 혼기도 찼겠다 천지회의 영웅 분들과 만나고 싶으시다 이거 아니신가?] [그….그렇소.]정보 수집을 위해서라지만 그딴 소리까지 하게 되다니.
그 말을 하면서도 속이 거북했었다.
[한데 천지회의 말단 무사들도 아니고 대주나 단주 급 정도 되는 양반들을 만나려면 쉽지 않을 게요.] [방법이 없을까요?] [알고 싶소? 흠흠.]은근슬쩍 손을 내민다.
정보를 취급하는 장물아비가 아니랄까봐 어지간히 돈을 밝혔다.
이에 손에 은전을 쥐어줬다.
은전을 받고나니 술술 방법을 일러주는 장물아비였다.
[홍혜방 아시오?] [홍혜방?] [그렇소. 외성 동쪽 외곽에 자리한 기방인데, 그곳에……]-쾅!
[지금 나더러 기생이라도 되라는 소리더냐!]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장물아비에게서 돈을 도로 뺏을 뻔했다.
그런 고찬을 장물아비가 달래며 말했다.
[허어. 사람 말은 끝까지 들으시게. 홍혜방이 기방이기는 해도 평범한 유곽 같은 곳이 아니오.] [기방이 유곽과 무슨 차이라고….] [그곳의 기생들은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학문과 예악, 기예가 출중하고 품격을 갖췄기에 성내 높으신 양반들도 드나든다고 하네.] [……그게 사실이오?] [은전까지 받은 마당에 내가 거짓을 말하겠나. 소저 정도 외모라면 홍혜방에서도 쌍수를 들고서 환영할 것이네.]이 말을 믿고서 결국 홍혜방에 잠입한 그였다.
장물아비의 말대로 우려는 했지만 홍혜방에 들어오는데는 성공했다.
할 줄 아는 기예가 있냐기에 살수 시절에 악공으로 분했던 기억을 떠올려 호금을 탔더니 정말로 격하게 환영했다.
[예능이 가능하다니! 여악(女樂)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란다.]그렇지 않아도 기생 몇 명이 천지회 단주들의 애첩으로 들어가서 결원이 생겼다고 말했다.
‘애첩…..하!’
내성으로 잠입이 어떻게 가능하긴 한가보다.
고찬이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은 붓을 들고서 얼굴에 분칠을 시작했다.
얼마 있지 않아 방문 밖에서 홍혜방의 여행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어어….그, 그게…..”
입술에 붉은 분을 바르고 있던 고찬이 허둥지둥거렸다.
그러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여행수가 답답했는지, 결국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르륵!
“무슨 화장 하나 하는데 이리 오래 걸리느냐? 본판이 예쁘니 적당히 해도 될 게다. 어디 보자. 얼마나 잘했는지.”
이 말에 고찬이 동경 속의 자신의 얼굴을 보며 난감함을 금치 못했다.
고채린의 기억을 더듬어 어떻게 해보려고 했는데, 본능적으로 형성되는 거부감에 손을 너무 많이 떤 것 같다.
여행수가 가까이 다가와 고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분을 어찌나 많이 칠했는지 시체처럼 하얀 얼굴.
눈을 진하게 하는 작은 붓으로 먹을 어찌나 새게 먹였는지 눈 밑으로 검은 눈물이 흘려져 있었고, 입가의 붉은 분을 너무 길게 그려서 귀까지 입이 찢어진 것 같다.
“아주 흉신악살을 만들어놨구나.”
미녀가 아니라 흉신악살(凶神惡煞)의 얼굴이 된 고찬이었다.
혀를 차는 여행수의 모습에 고찬은 이를 악물었다.
어쩌다 자신이 이런 짓까지 하게 된 걸까.
‘미인계는 개뿔.’
차라리 목숨을 걸어 안으로 침입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 * *
방문 앞에 웃는 얼굴로 서있는 목경운.
그런 그의 모습에 염가는 순간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웃음 속에 가득한 악의(惡意).
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염가는 등골이 싸늘해졌다.
‘이게…….’
금제가 풀려서 내공을 자유로이 쓸 수 있는데, 왜 이 녀석에게서 풍겨지는 이 흉흉함에 기세가 밀린 거지?
순간 염가는 이를 악물었다.
놈을 반병신으로 만들겠다며 나서려 했는데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기세에도 밀리고, 선수를 빼앗긴 기분이다.
불쾌함이 강해지자 염가가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같은 생각이라는 게 대체 뭐지?”
“다른 이유가 있나요?”
“뭐?”
“쓸 만 해보이는 게 조원으로 받을까 해서요.”
-으득!
염가가 이를 갈며 내공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그리고 목경운에게 고조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놈이 나를 조원으로 받겠다고?”
“네. 사실 어제부터 계속 죽이고 싶었는데, 이번 관문의 제약에 살인 금지가 포함되어 있어서 그냥 부려 먹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요.”
염가의 눈이 매섭게 돌아갔다.
이 시건방진 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건가?
뭐 죽이고 싶었는데 부려 먹는 편이 낫겠다고?
-으득!
이가 절로 갈렸다.
내공 제약이 풀린 시점에서 소년들 중에 자신과 겨룰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염가는 더는 참지 못했다.
-팟!
이미 전신으로 내공의 순환을 마친 염가가 목경운의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른손으로는 목을 움켜쥐고 왼손으로는 순시기간에 혈도를 제압하고서 방안으로 끌어당길 작정이었다.
그런데,
-퍽!
“컥!
그러기도 전에 염가의 복부로 목경운의 발이 꽂혔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서 보지도 못했다.
염가의 얼굴에 핏대가 서며 피부가 탈 것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이……이 개자식이……”
“팔보다 다리가 길지 않나요?”
-팍!
염가가 배에 힘을 주고서 목경운의 장지신근을 향해 발끝을 차올렸다.
이에 목경운이 다리를 접으며 뒤로 살짝 물러섰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반대 발을 박차며 염가가 몸을 회전시켜 목경운의 정수리를 내려찍으려고 했다.
‘회영각.’
주살곡이 자랑하는 주천각법(朱天脚法)의 3초식이었다.
상단으로 올리는 각법의 식으로 경로를 속인 후에 순식간에 몸을 회전시키며 하단으로 내려찍는 초식이었다.
워낙 쾌속하고 허초가 섞였기에 피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슥!
목경운이 가볍게 반 보만 움직여 몸을 틀어 회영각을 피했다.
‘!?’
염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이걸 이리 가볍게 피할 줄은 몰랐다.
하나 초식이라는 것은 연계되기 마련이기에 다음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파팍!
염가가 몸을 틀 목경운의 목젖을 향해 검결지를 찔러넣었다.
절정의 경지에 올랐기에 실제 검만큼은 아니더라도 기(氣)로서 날카로움을 형성할 수 있는 그였다.
이를 두고 예기(銳氣)라고 한다.
-촥!
한데,
-파악!
예기가 목경운의 목젖을 관통할 기세로 찔러 들어왔다.
그런데 그것이 미처 닿기도 전에,
-퍽!
목경운의 발이 전광석화처럼 염가의 다리를 걷어찼다.
단순한 발차기에 불과했기에 염가는 이를 피하지 않고서 다리에 내공을 보내 반탄력을 형성시켰다.
기감 상으로는 자신이 이 녀석보다 내공으로는 우위였다.
그렇기에 내공으로 다리를 보호한다면 충분히 참을 수 있으리라고 판…..
-퍽!
“으헉!”
다리가 차인 염가의 몸이 순식간에 옆으로 반쯤 돌며 바닥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순간 염가는 멍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째서 자신이 이 녀석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빠르기도 했지만 부딪치는 순간 반탄력이 흩어졌다.
‘무슨…….’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약하시네요.”
“이 새끼가!”
화가 머리 끝까지 차오른 염가가 팔을 튕기며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동시에 각법으로 목경운의 목을 노렸는데,
-휙! 팍!
목경운이 이를 가볍게 피한 후에 그대로 염가의 머리통을 잡고서 바닥에 내려찍었다.
-쾅!
목판이 부서지며 염가의 머리통이 바닥을 부수고 파고들었다.
아픈 것도 아팠지만 염가는 수치심을 견딜 수가 없어서 전력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머리를 다시 위로 들어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목과 머리로 집중한 공력이 기이하게도 조금씩 흩어져서 오히려 힘이 빠졌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현상인지 알기 어려웠다.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염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서 잡아당겼다.
-꽉!
박혔던 머리가 빠져나와지며 뾰족해진 나무 조각들이 얼굴 곳곳의 살에 박혀서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런 염가의 얼굴을 보며 목경운이 흡족하다는 듯이 이죽거렸다.
“얼굴이 이제 좀 볼만해졌네요.”
“너……무슨 짓을 한 거야?”
“무슨 짓이라뇨?”
“설마 산공독 같은 걸 쓴 거냐?”
“산공독?”
염가의 말에 목경운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반문했다.
독에 관해서는 어지간하면 모르는 게 없다고 자부하는데, 산공독이라는 명칭은 처음 들어보았다.
산공독(散功毒).
그것은 특수한 제조법으로 만들어져 조건만 갖춰지게 되면 내공을 흩어지게 하는 기이한 독(毒)이었다.
“시치미 떼지마! 산공독이 아닌데 어째서 네놈과 닿으면 내공이 흩어지는 거지?”
목경운과 부딪칠 때마다 그 부위의 내공이 흩어졌다.
처음에는 그저 우연인가 싶었는데 두 번이나 그렇게 되니 산공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흐음. 그런 재미있는 독도 있었나요?”
‘이 자식이 지금 나를 가지고 노나?’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염가가 이내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주살곡의 비기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다.
비기는 무조건 상대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살수였기에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두드득!
염가가 가슴 쪽으로 내공을 집중했다.
그러자 그의 상반신에 그려져 있던 기이한 문양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는데,
-퍽!
“컥!”
목경운이 염가의 머리채를 뒤로 잡아당기며 주먹으로 찍어버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목경운은 염가의 안면을 박살내기라도 할 것처럼 계속해서 주먹으로 내려쳤다.
-퍽!
“켁. 그, 그만…..”
-퍽!
“끕….멈….”
-퍽! 우드득!
콧대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이가 부서지는데도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비기를 쓰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계속되는 안면 타격에 염가는 이미 의식이 사라졌다.
“힉!”
그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목경운이 주먹을 들어올린 채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운기조식을 하다가 싸우는 소리에 눈을 뜬 소년이 있었다.
‘이, 이게 뭔 일이야?’
소년은 목경운의 손에 머리채가 잡힌 채 안면이 피범적이가 된 염가를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소년을 향해 목경운이 피칠한 손을 휘저으며 미소로 말했다.
“아아.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 계속 하세요.”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