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78)
-꽉!
모화방의 모하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몸을 감싸고 있는 흐릿한 형태의 쇠사슬은 환상처럼 보였는데, 몸을 움직이려고 하니 더욱 조이며 구속해왔다.
내공을 끌어올리려고 하는데, 목경운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원하는 걸 본 대가는 꽤 비쌀 텐데 괜찮겠어요?”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
그런데 저 웃음은 정말 악의(惡意)로 가득했다.
살기(殺氣)가 실려 있지 않은데 어떻게 저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걸까?
순간 그녀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천, 수만 명 중에 한 명 꼴로 살성(殺性)을 타고난 자들이 있다.] [그게 뭐죠?] [죽음과 소멸에서 즐거움과 쾌락, 그리고 존재의 이유를 느끼는 성품이다.] [……..위험하지 않나요?] [위험하지. 하나 제대로 길들일 수만 있다면 최고로 살수의 재목이라 할 수 있지.] [최고라고요?] [그래. 살성은 누군가를 죽이는데 흔들림이 없다. 그렇기에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않지.] [그런 게 재능이 될 수 있군요.]그것은 아직까지 모화방이 사대 살수 집단이라 불리던 시절이다.
그녀는 어쩌면 목경운이 그 시절의 부친이 말했던 살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자신은 위험한 것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
하나 이는 상관없었다.
모하랑이 목경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대가는 얼마든지 치르겠어.”
“얼마든지요?”
“비밀을 들춘 것이라면 각오는 되어 있어.”
“각오라…..한데 목숨은 하나뿐인데 얼마든지가 될 수 있나요?”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목경운.
하지만 나오는 말은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주인님. 저한테 이 인간의 육신을 주세요.
녹령인 규소하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이 목소리가 들리는지 모하랑이 흠칫 놀라며 규소하를 쳐다보았다.
이에 규소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중얼거렸다.
-인간. 너 내 목소리도 들리는 거냐?
-호오.
그 말에 청령도 관심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모습을 일부러 드러내기는 했으나 목소리까지 들리도록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영안이 열렸나보군.
“영안?”
-그래. 너처럼 이면의 본질을 바라보는 귀안(鬼眼)에 눈을 뜬 건 아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혼(魂)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 같구나.
청령은 그것을 영안(靈眼)이라고 했다.
그녀의 목소리까지는 들리지 않는지 모하랑은 규소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모하랑이 조심스럽게 입술을 뗐다.
“당신……정말 귀신이야?”
-왜? 내가 한낱 인간으로 보이느냐?
규소하가 입 꼬리를 올렸다.
살아있는 인간의 공포심은 원혼에게 있어서 양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모하랑은 공포심과는 다른 감정을 보였다.
“아아아.”
뭔가 고조된 것 같다.
마치 찾고 싶었던 것을 보게 되었을 때의 그런 감정에 가까웠다.
이에 목경운이 그녀에게 말했다.
“재미있는 반응을 보이시네요. 망자를 보는 게 소원이라도 되었나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모하랑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가 고개를 돌려 목경운을 바라보더니 결단이라도 내린 사람처럼 목에 힘을 주고서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가는 무엇이든 치를게. 설령 그게 내 목숨이라고 해도.”
“………”
그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눈빛에서 흥미가 식어버렸다.
수많은 죽음을 보아왔기에 정말로 죽음을 각오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녀는 전자에 가까웠다.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목숨을 걸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 목경운에게 그녀가 말을 이어갔다.
“대신 도와줘.”
“………흐음. 도와달라라.”
목경운이 성가시다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목줄기를 향해 손가락을 가져가며 말했다.
“제가 왜 그래야 할까요? 귀찮기만 하네요.”
-꾹!
손가락이 그녀의 목젖이 있는 곳을 눌러 들어갔다.
이에 그녀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말했다.
“육체…….그쪽 귀신이 육체를 원한다고 했잖아. 부탁을 들어주면 이 육체따윈 얼마든지 줄게.”
“초를 치는 것 같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금이라도 육체는 가져갈 수 있어요.”
이런 목경운의 말에 모하랑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그 순간 그녀의 몸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퍼져 나왔다.
-채캉! 채캉!
그러자 규소하의 영력으로 만들어진 쇠사슬이 잘려나갔다.
어느새 모하랑의 양손에 날카로운 단검이 들려있었다.
단검에는 일렁이는 예기가 실려 있었는데, 그것은 주살곡의 염가보다도 훨씬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물러나라.
청령이 경고했다.
이에 목경운이 반 보 정도 물러나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저었다.
그 순간 눈앞에서 여러 궤적이 선을 그리며 아슬아슬하게 목경운을 주위를 스쳐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턱을 비롯해 몸의 일부가 베여나갔을 것이다.
아니 살짝 베였다.
-주르르륵!
궤적이 지나간 곳으로 피 한 방울이 타고 흘러내렸다.
‘실?’
그것은 실보다 훨씬 가늘었지만 탄력이 있었다.
바닥에 박혀 있는 단검의 검병 뒤에 묶여 있는 이 실 같은 것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모하랑이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날 너무 우습게 보지마.”
그녀의 목소리에서 살기가 풀풀 풍겨지고 있었다.
이에 목경운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말했다.
“숨겨놓은 한수가 있었네요.”
그러고 있는데 청령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많이 본 단검술이라 했더니 살왕의 계보를 이었군.
“살왕의 계보?”
목경운의 반문이 끝나기 무섭게 모하랑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을 꺼냈다.
“당신 뭐야?”
모하랑은 진심으로 놀라워하고 있었다.
설마 목경운의 입에서 살왕의 계보라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연살(聯殺)과 섬영비도술(剡影飛刀術)을 보고도 살왕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지.
청령의 그 말에 목경운은 그것을 그대로 내뱉었다.
“연살과 섬영비도술을 보고도 살왕을 떠올리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죠.”
‘!?’
그 말에 모하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연살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서 이를 모르는 이가 드물었다.
그러나 섬영비도술은 달랐다.
이것은 모화방의 방주만이 익힐 수 있는 비전이었다.
말 그대로 비전이고 반드시 죽여야 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상대가 아니면 꺼내지 않기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살왕(殺王)은 본 방의 전신. 본 방에도 구전으로만 내려와 방주와 그 후계들만 아는 이야기인데 이 자가 어떻게 아는 거지?’
그녀가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그 틈이었다.
목경운이 바닥을 강하게 밟았다.
그러자 목판이 아래쪽으로 눌리며 단검이 박혀 있던 부분이 위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팽팽하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얇은 실이 헐거워졌다.
-팟!
이 찰나에 목경운은 단숨에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려 목을 움켜쥐었다.
물론 모하랑이라고 가만히 있던 것은 아니었다.
목경운이 달려드는 그 순간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서 수천, 수만 번을 연습한 대로 목경운의 심장부를 향해 단검을 찔렀다.
아니 정확하게는 단검의 끝 부분만이 살짝 파고들었다.
‘빠르네.’
-꽉!
목경운이 왼손으로 손목을 잡지 않았다면 더욱 깊이 파고들었을 거다.
그만큼 그녀의 움직임은 눈으로 보고도 대응하기 힘들 만큼 쾌속하기 그지없었다.
확실하게 모하랑이 주살곡의 염가보다 훨씬 강했다.
-꽈아악!
-파르르르!
목경운이 손에 더욱 힘을 주자 그녀는 손목이 부러질 것만 같은 고통에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와중에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 걸 보며 목경운이 피식 웃었다.
“강하시네요. 이건 언제 제 목에 맨 거죠?”
-스르르!
목경운의 목에 어느새 은빛 실이 걸려 있었다.
바닥에 박혔다가 위로 튕겨나갔던 단검이 천장에 걸려 있었고 모하랑이 손을 잡아당기기만 목이 조여졌을 것이다.
“왜 잡아당기지 않는 거죠?”
“너도….목을…..조르고 있지….않잖아.”
그 말대로 목경운은 오른손으로 모하랑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지만 힘을 주진 않았다.
이에 그녀 역시도 실을 잡아당기지 않은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것을 잡아당기면 목경운의 목이 잘려나가기에 참은 것이기도 했다.
이 이상은 정말로 서로를 죽이는 영역이었다.
‘죽이면 이번 관문의 제약 위반이야.’
그리고 아직 목경운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죽일 수는 없….
-슥!
그때 목경운이 잡고 있던 목에서 손을 놓고서 그녀의 실에 손가락을 툭 갖다댔다.
그 순간 팽팽해져 있던 실이 이내 흐물흐물해졌다.
‘!?’
모하랑의 눈이 커졌다.
실로 분명히 진기를 흘려보내고 있는데, 그것이 흩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실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게 대체?’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말했다.
“꽤 쓸 만할 것 같군요.”
“뭐?”
“소하에게 육신으로 줄려고 했는데 그냥 써먹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 무슨 소리를……”
“원하는 것을 위해서 어떤 대가든지 치르겠다고 했죠?”
그런 목경운의 말에 모하랑이 순간 망설였다.
분명 그러기로 했는데, 갑자기 돌변한 목경운의 태도 때문인지 잠시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러는데 목경운이 갑자기 그녀의 멱살을 잡고서 잡아당겼다.
“앗!”
-꽈아아악!
그리고는 단검을 찌른 그녀의 손목을 강제로 움직이며 본인이 있는 방향 쪽으로 꺾었다.
공력을 끌어올려서 이를 막고 싶은데, 손목으로 보내는 진기가 계속 흩어져서 힘이 빠져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꽈아아악!
어느새 그녀가 쥐고 있는 단검이 얼굴 쪽으로 향했다.
설마 자신을 정말 죽이려는 건가?
그러고 있는데 무언가가 떨어지며 그녀의 입술을 적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핏방울이었다.
-뚝뚝!
검 끝에 묻어서 맺혀 있던 목경운의 핏물이 입안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입을 다물려고 하자 목경운이 말했다.
“벌리시죠.”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 그녀가 이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서 입을 벌렸다.
그러자 단검의 끝에 맺혔던 핏방울이 입안으로 떨어졌다.
“삼키세요.”
그녀는 시키는 대로 했다.
그렇게 입안으로 들어온 핏방울을 그대로 삼키는 순간,
“하악!”
가슴이 굉장히 뜨거워졌다.
타는 듯 한 고통이 몸을 잠식하는데,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목경운이 잡고 있던 손을 억지로 뿌리치며 곧바로 가부좌를 틀려고 했다.
‘독…..독이야.’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의 고통.
그녀는 이것이 독이라고 확신했다.
사대 살수라 불리는 모화방의 후예답게 독에도 어느 정도 정통했고, 그에 대한 내성을 기르기 위해 일부 극독을 먹기도 했었다.
그런데 목경운의 피는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됐다.
‘어떻게 피에 이런 독이……’
마치 수많은 독을 응축이라도 시킨 것처럼 그 독기가 너무도 강했다.
극독이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빨리 운기하지 않으면…..’
-팍!
가부좌를 틀려고 하는데, 목경운이 그녀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컥!”
안 그래도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 때문에 괴로운데 복부를 걷어차이자 그녀는 괴롭다 못해서 울컥해서 목경운을 죽여 버리고만 싶었다.
“너!”
-팍!
그때 목경운이 그녀의 어깨 쇄골 쪽을 발로 짓누르며 말했다.
“어떤 대가든지 치르겠다고 했죠. 그럼 이 순간부터 충실한 개가 되어줬으면 하네요.”
“이….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아아아. 안 되죠. 저는 사람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거든요.”
모하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뭔가 크나큰 실수를 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자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뒤틀려 있었다.
살성이니 뭐니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이것은 그야 말로 악(惡) 그 자체였다.
* * *
조원을 모으기 위해 운기와 휴식마저 포기하고서 방들을 돌아다니던 소년들.
그들은 복도를 걸어오는 한 무리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엇?’
‘…….이거 진짜야?’
‘뭐야? 말도 안 돼.’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목경운의 뒤를 양쪽에서 따르고 있는 두 남녀.
그들은 이번 시혈곡의 관문에서 가장 기대주라 불리는 주살곡과 모화방의 후예들이었다.
내공의 금제도 풀렸겠다 모두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연히 조장이 되어서 누군가들을 이끌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설마 조장급의 저 두 사람이 저 녀석의 밑으로 들어갔다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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