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81)
사람이 극한으로 공포심에 빠지게 되면 괄약근이나 방광이 조절되지 않다고 했던가.
눈이 뒤집혀 거품을 물고서 기절한 능화양은 오줌까지 지려버렸다.
-주르르륵!
이를 보며 목경운이 혀를 찼다.
“흐음. 통증을 못 느끼는 것과 공포는 별개인가 보네요.”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목경운의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생 네 녀석의 천직을 알 것 같다.
“네?”
-딱 고문지기를 하면 될 것 같구나. 그런 식으로 겁을 주면 누구라도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아니. 고문을 하기도 전에 전부 불지도.
“그런가요?”
-아주 겁을 잘 주더구나. 하여간 이런 것에는 도가 텄어.
“겁만 주려고 했던 건 아닌데요.”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뭐야?
그럼 진짜로 살 껍데기를 전부 벗기는 모습을 제 눈에 보여줄 생각이었나?
그런 거라면 정말 악취미다.
이에 청령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하여간 제정신이 아니구나.
이런 그녀의 반응에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에요. 농담.”
-퍽이나.
“아뇨. 아무리 피를 보는 게 좋다고 해도 그런 비효율적인 짓을 할 리가 없잖아요.”
-비효율?
“네. 시간 낭비라고 해야 할까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요. 그리고 피부를 벗기는 도중에 죽으면 맥이 빠지잖아요.”
-………
기회만 된다면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뭘까?
의구심이 든다.
이 녀석의 눈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동물이나 벌레, 사물들과 차이가 있기는 한 걸까?
중생 이 녀석은 죽음에 대한 관념이 다른 이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러고 있는데 목경운이 말했다.
“그래도 한 가지 사실은 알았네요.”
-뭐가 말이냐?
“통증이 없다고 해도 공포까진 어찌 할 수가 없나보네요.”
고통이 없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기에 과연 두려움이나 공포심도 없을까 시험했었다.
만약 그게 정말로 가능하다면 꽤 재미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경운의 바람과 달리 능화양은 공포심을 이겨내지 못하고 기절했다.
이에 청령이 말했다.
-살아있는 존재에게 있어서 감정은 아무리 단련해도 어찌 해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부정할 수 없었다.
꼭 두려움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속내에 잠재된 분노는 시간이 흘러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것은 들끓어 오르는 용암과도 같았다.
이런 기세라면 언제 자신이 어떤 짓을 벌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아아. 그나저나 이 분은 왜 제 방에 와서 이런 짓을 하려던 걸까요?”
-뭐? 중생 네놈과 번식 행위를 하려 했던 걸 말이냐?
“……..참 직설적이고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뭘 새삼 순진한 척 하는 게냐.
청령의 말에 목경운이 어깨를 으쓱했다.
이에 그녀가 비아냥거리 듯이 말했다.
-어쨌든 번식 행위이든 뭐든 간에 미인계를 한 거라면 정말 헛수고를 한 셈이구나.
그간 지켜본 중생 녀석은 이런 게 통할 인간이 아니었다.
늘 모든 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사심이 전혀 없는 선의라고 해도 목경운은 이것에 깊은 의구심을 품는다.
어떤 의미로는 속이는 것 자체가 꽤나 힘든 유형이었다.
“아무튼 간에 깨워서 왜 이런 짓을 했는지 물어봐야겠군요. 왜인지 그냥 이런 짓을 벌이진 않았을 것 같네요.”
-그건 동의한다.
이름을 알고서 접근한 것부터가 목적을 띄고 있었다.
그 목적은 절대로 육체적인 대화가 아니었다.
-꽉!
목경운이 그녀의 가슴 중앙을 발로 세게 눌렀다.
“자. 일어날 시간이에요.”
그러자 기절했던 그녀가 이내 기침을 하며 깨어났다.
“쿨럭쿨럭!”
깨어난 그녀가 한순간 멍하게 앞을 보았다가 목경운과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화들짝 놀라서 시선을 회피했다.
한 번 가지게 된 두려움은 가슴 깊숙이 박힌 듯 한순간에 가시질 않았다.
그녀가 황급히 손으로 자신의 피부를 만졌다.
그리고는 안도했다.
‘하아.’
눈을 떴을 때 전신의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면 정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아직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그녀를 내려다보며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인 것 같나요?”
-흠칫!
“깨어있어야 피부를 벗겨냈을 때 당신이 짓는 표정을 볼 수 있죠.”
‘이, 이 미친……’
이런 목경운의 말에 그녀는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된 후로 두려움이라는 것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놈은 정말 정상적인 범주를 넘어섰다.
사고가 완전히 남다르다.
-쿵! 쿵! 쿵!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자 목경운이 피식거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또 기절하면 곤란한데요.”
이 말에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뱉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말았다.
“제, 제발!”
‘엇?’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거지?
설마 애원을 한 건가?
암천의 요원이 되는 과정에서 그렇게나 훈련을 받았다.
만약에 적들에게 사로잡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어떤 고문을 받더라도 절대로 입을 열어선 안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자결을 한다.
그것이 갑을병정을 막론하고 암천 요원들의 기본 지침이었다.
-꽉!
능화양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수치스러웠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 몸이 되고나서 감정이 메말라 갔고, 그것을 타인의 고통이나 죽음을 통한 희열로 채워나갔다.
그런 와중에도 자신은 고통도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여겼었다.
한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가슴 한구석에 그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숨어있었던 것 같다.
‘결국 다를 바가 없었네.’
자신도 특별할 게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멍한 표정을 짓던 그녀가 이내 목경운을 바라보며 마음의 정리라도 했다는 듯이 말했다.
“그냥 죽여.”
“그러기는 힘들 것 같네요. 이번 관문의 제약이 살인 금지라서요.”
“………”
“대신 한 가지 약조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네요.”
“약조?”
“묻는 말에만 답변해주시면 이 즐거운 과정을 생략하고 그냥 보내드리도록 하죠.”
선심을 쓰는 듯 한 말투.
한순간 혹할 것만 같은 제안이었다.
그러나 능화양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목경운이 피식하고 웃으며 물었다.
“질문은 간단해요. 자발적으로 오신 건가요? 아니면 누가 보내서 오신 건가요?”
“……..”
“갑자기 입이 무거워지셨네요.”
“…….”
겨우 두려움을 극복하고서 마음을 정리했는데 쉽게 입을 열 것 같은가.
암천의 요원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정보를 발설하지 않는다.
그녀가 독기에 찬 눈으로 입을 말했다.
“지옥에서 기다릴게.”
그 말과 함께 입을 벌리고서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물려고 했다.
그러나,
-차캉!
“업!”
뭔가 단단한 것이 이빨 사이에 휘감기며 혀를 깨물지 못하도록 막았다.
‘뭐, 뭐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빨 사이에 물려져 있는 이것은 너무도 단단했다.
대체 뭐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데 목경운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소하. 몸이 가지고 싶다고 했었죠?”
‘!?’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여기에 자신들 이외에 누가 있기라도 한 걸까?
아무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오싹!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오한이 일어났다.
무언가가 싸늘하고 소름 돋은 무언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는 것 같은데, 경기가 일어났다.
그 순간 능화양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스멀스멀!
눈앞에 흐릿한 형태의 무언가가 거꾸로 나타났다.
그것은 반백의 머리카락을 한 소녀였는데, 눈동자의 동공이 하얗게 보이는 것이 너무도 섬뜩했다.
이렇게 거꾸로 내려오던 소녀와 점점 가까워져갔는데, 그 모습이 아무리 봐도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귀…귀…..’
“읍읍!”
능화양이 몸을 비틀며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나 목경운이 발로 밟고 있는 것도 있었고, 전신을 무언가가 구속하고 있어서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지 마! 오지마아아아아!’
얼마나 공포심이 극대화되었는지 실핏줄이 터져서 흰자가 붉게 물들었다.
-스르르륵!
이윽고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무언가가 자신의 몸에 깃드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오감으로 느끼는 감각과는 차원이 달랐다.
“으극….으그극.”
얼마 있지 않아 전신의 핏줄이 검게 울룩불룩 튀어나오며 전신이 격렬히 경련을 일으켰다.
* * *
복보를 빠르게 걷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목유천과 정의맹 암천의 간자인 마상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서둘러서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목경운의 방이었다.
“젠장. 늦지 않아야 할 텐데.”
마상이 짜증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이런 그의 말에 목유천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마상에게 결국 목경운이 자신의 배다른 형제라는 사실을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차마 녀석이 근맥과 단전이 파훼되어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만은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해서 마상에게 엎드려서 사죄까지 하면서 사실을 고백했다.
처음에 마상은 분노를 금치 못했었다.
[그 미치광이 놈이 연목검장의 셋째라고?]심지어 어처구니가 없어하기도 했다.
그러나 목유천의 계속되는 사과에 그런 감정을 겨우겨우 억눌러냈다.
설마 암천의 요원들을 사지로 내몰았던 자가 명문 정파의 자제일 거라고 누가 알았겠는가.
마상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목유천. 네가 한 말을 지킬 수 있겠나?”
“…….어떻게든 해볼게.”
“어떻게든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사정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네 부탁과 상관없이 임무의 방해요소라 판단하고 배제시켰을 거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정파인이었든 아니든 간에 목경운으로 인해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놈은 매우 위험했고 향후를 위해서라도 제거하는 게 옳았다.
그러나 암천의 남은 요원은 고작 넷.
임무를 달성할 수 있는 확률이 너무나도 낮아졌다.
“목경운 그놈을 반드시 설득해라. 녀석의 손에 희생된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기위해서라도 말이다.”
“알겠어.”
목유천이 굳은 목소리로 다짐했다.
마상, 아니 암천의 간자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목경운의 진심 어린 사과 이런 것이 아니라 그들 형제가 자신들과 함께 암천의 임시 간자가 되어서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었다.
‘설득할 수 있을까?’
솔직한 심경으로는 반신반의도 아니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해내야만 했다.
녀석이 예전과 다르게 변했다고 해도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흐려졌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랬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거다.
‘변했어도 녀석도 정파인이다.’
그 뿌리마저 잊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목유천은 이 점을 강조해서 설득해야겠다고 여겼다.
어쩌면 이것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정의맹의 간자들인 암천을 도와서 천지회 몰락이라는 중대한 역할을 해내게 된다면 연목검장의 봉문이라는 수치를 벗겨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녀석도 그걸 원할 거다.’
목유천이 머릿속으로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갈지 정리해나갔다.
그러는 사이 목경운의 방 앞에 당도했다.
그런데,
‘응?’
방문 앞에 선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의아해했다.
방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에 목유천이 물었다.
“……..이미 요원 중 하나가 움직였다고 하지 않았어?”
“움직였다. 그래서 서두른 게 아니더냐.”
복도에서 경공을 펼치면 너무 눈에 띌까봐 빠른 걸음으로 서둘러 온 그들이었다.
의아해하던 이들은 일단 방문을 열었다.
‘어?’
역시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방안에 침상이 부서져 있었고 상당히 엉망이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를 본 목유천이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설마 늦은 거야?”
“………”
그 물음에 마상이 방안을 살피다가 답했다.
“아직 확실하게는 모른다. 그 여자가 임무를 완성했다면 목경운 그놈은 침상 위에서 반병신이 되어 있어야 해.”
“한데 둘 다 없잖아.”
“……..어쩌면 대장에게 데려갔을 수도 있다.”
“대장?”
“그래.”
암천의 살아남은 간자들 중에는 그들을 통솔하는 대장이 있었다.
목경운을 처리하라고 명을 내린 것도 그였다.
마상이 조금은 미안하다는 투로 말했다.
“아직 모르는 거니까 조금만 참아라. 대장한테 가보자.”
“………알겠다.”
그들은 목경운의 방문을 닫고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곳에 잠입한 암천 간자들의 대장은 2층의 우측 끝 방에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4층이었다.
그렇게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웅성웅성!
아래층 중앙쪽에 소년들이 몰려나와 있었고 뭔가 어수선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있는데, 마상이 멈칫하고서 당황한 표정으로 내려가질 못했다.
“왜 그러는 거야?”
“이런 빌어먹을…….”
“뭐?”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피투성이가 된 한 소년을 끌고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라 한쪽 다리가 잘려나간 한 소년 역시도 붉은 혁대의 무사들에 의해 양 팔이 붙잡혀 있었다.
마상이 그들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에 목유천이 속삭이며 물었다.
“대체 뭐야?”
그 물음에 마상이 이를 악물고서 속삭였다.
“………둘 다 우리 요원들이다.”
‘!?’
저 두 사람은 다름 아닌 암천의 요원들이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가?
하고 있는데,
“하하하하하핫! 간자를 찾아내다니 이 모든 게 네 공이다!”
저들을 붙잡은 붉은 혁대의 무사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누군가의 등을 툭툭 치며 치켜세워주는 것이 보였다.
그는 바로,
‘목경운?’
목유천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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