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85)
목경운의 의도를 눈치 챈 청령이 속으로 혀를 찼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대를 넘어서 아직까지 자신에게 충정을 지킨 이가(李家)다.
한데 그 충성심을 이런 식으로 낚아채려는 것을 지켜보자니 노기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봉인시켜놓은 목각 인형을 부수고 튀어나가 중생 녀석의 머리통을 곰방대로 마구 내려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화는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뭘 어쩌자는 거냐? 중생.’
오히려 목경운이 의도가 궁금해졌다.
자신을 통해서 이가(李家)의 힘을 빌릴 수도 있는 것이었는데, 그걸 도중에 이런 식으로 낚아챌 필요가 있었을까?
그때 목경운이 입을 열었다.
“제가 그분이고 그분이 저라는 걸 알았는데 왜 가만히 있으시죠?”
“그건……”
이 말에 시혈곡주 이지염이 순간 멈칫했다.
빙의(憑依)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귀신에 씌이는 것이지 않는가.
‘그분의 빙의체라고?’
그럼 목경운 이 녀석은 월맥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천지회에 자문 방술사들이 있었으나 이런 괴이에 대해 큰 신뢰도가 없었던 그였기에 뭔가 망설여졌다.
묘하게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그러자 목경운이 말했다.
“영체를 직접 보았는데도 아직 믿기지 않는 건가요?”
-분위기부터 전부 다른데 갑자기 빙의했다고 거짓말을 치면 믿겠냐?
청령이 혀를 차며 끼어들었다.
이에 목경운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세대를 뛰어넘어 충성을 이어갔을 거라 확신했고 그렇기에 이렇게 비밀까지 밝혔는데 실망스럽군요.”
“나, 아니 속하는 그게…..”
“하면 그때의 약조를 지키면 믿음이 갈까요?”
“그때라 하시면?”
“적염검법.”
“설마?”
이지염의 눈동자가 떨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조부에게 적염검법을 배울 당시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대염공(待炎功)은 본시 그분과 이 할애비가 함께 운기 구결을 창안했다. 적염검법에 가장 어울리는 심공을 만들려 했었지. 하나 그것을 미처 완성하기도 전에 그런 비극이 일어났구나.]이런 그와 마찬가지로 목경운도 청령이 한 말을 떠올렸다.
[한때 본좌는 이가(李家)의 가주, 저 녀석의 할애비 되는 이화문이라는 자와 약조를 하였다. 미완의 대염공을 함께 완성하기로 말이다.]그러나 그 약조는 살아서는 이뤄지지 못했다.
죽음 후에 이뤄진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원혼으로 격이 높아지게 되면서 그녀는 이성을 찾게 되었고, 살아생전에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었다.
그것 중 하나가 적염검법의 대염공이었다.
목경운이 이지염에게 미소와 함께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렇게 한이 많은 원혼이 되어 돌아왔지만 다시 한 번 이가(李家)가 저를 따라준다면 죽어서야 깨닫게 된 대염공의 완성된 운기구결을 알려드리죠.”
‘빌어먹을 중생!’
이런 목경운의 말에 청령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녀석에게 아까 구결의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알려준 상태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를 한 번 듣고 잊겠지만,
‘이 자식은 외웠을 거 아냐?’
목경운의 기억력은 상식을 넘어섰다.
화가 나서 자신의 도움 없이 어떻게 설득하나 지켜보려고 했다.
그런데 정말로 충성심을 가로채게 생겼다.
‘완성된 운기구결…….’
이런 목경운의 말에 이지염의 눈이 더욱 떨려왔다.
조부 때부터 자신까지 삼대가 구결을 어떻게든 완성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사실 애초에 이것은 완성하기가 힘들었다.
체내의 열양지기를 혈자리로 보내가면서 직접 확인해야 하는 큰 위험부담을 져야 하기 때문에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서였다.
[그분과 함께 였다면 완성했을 지도 몰랐겠구나.]‘조부님……’
[하나 너라면 할 수 있을 게다.]또 다시 조부를 떠오르니 가슴이 짠해지는 이지염이었다.
이에 목경운의 얼굴을 바라보며 찌릿해지는 자신의 가슴을 쿵쿵 치며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속하는 구결의 완성 때문에 꿇는 것이 아닙니다.”
“하면 무엇 때문이죠?”
“당신께서 조부님, 아니 저희 가문과 했던 약조를 잊지 않으셨기 때문에 이렇게 다시 한 번 충성의 맹세를 하려는 것입니다.”
“약조……”
“원혼이 되어서까지 이렇게 돌아오셔서 조부님과 저희 이가의 숙원을 풀어주시려 하는 당신께 어찌 속하가 함부로 의심하겠나이까.”
-팍!
그러더니 이지염이 완전히 바닥에 엎드렸다.
“이가의 가주이자 시혈곡주 이지염은 다시 한 번 월맥의 주인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부디 속하의 절을 받아주시옵소서!”
그와 함께 이마를 바닥에 세 번 찧으며 충성의 예를 표했다.
이를 내려다보는 목경운은 만족스러운 듯이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러자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울렸다.
-미친 중생 놈아. 충성 가로채기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냐?
“……..”
-죽은 마당에 어차피 본좌가 언제까지 끌고 다닐 것도 아니고, 직전 제자도 되었으니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물려받을 충성을 강제로 빼앗으니 속이 시원하더냐?
꽤 많이 화가 났나 보다.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청령은 처음 본다.
하긴 원한과 별개로 100년이나 자신을 기다린 충신의 충성을 가로챘으니 화가 안 난다고 하면 이상한 일이다.
아마 자신을 쓰레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나,
‘뭐 심정은 이해가지만 제 목적은 청령의 손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서요.’
목경운이 이곳에 온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것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인 자에 대한 복수.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를 귀검(鬼劍)이라는 자를 찾기 위해서 온 것이다.
하나 청령이 전면에 나서서 자신의 옛 수하들을 움직이고 그 권력을 휘두르게 되면 그녀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된다.
목경운은 그런 식으로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저한텐 부수적인 것이죠.’
청령의 원한을 푸는 것은 절대로 자신에게 우선이 아니었다.
그녀 또한 식신 관계가 아니었다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했던 원혼이었다.
지금이야 연이라는 절대적인 관계로 인해 사제의 관계까지 맺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목경운은 절대로 누구를 믿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도권을 청령에게 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 * *
“이게……주군께서 완성시킨 구결입니까?”
시혈곡주 이지염이 떨리는 손으로 목경운이 적어준 구결을 받았다.
자그마치 삼대에 걸쳐서 구결을 완성하려고 했고 가문의 숙원 중 하나였기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구결을 읽어 내려가는 이지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운기법을 접근할 수 있었던 거지?
이지염이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속하는 격유에서 양강까지 곧바로 열양지기를 선회하는 방식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한데 이게 된다면 9성으로 진입하는 기운을 제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걸 이리 쉽게 고안하시다니.”
-쉽게 고안하긴. 죽어서 귀안(鬼眼)이 열리고 나서야 깨닫게 된 건데.
청령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는지 화가 난 목소리로 툴툴거렸다.
애초에 대염공 같이 열양지기를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심공은 그 위험부담이 크기에 수많은 시행착오와 희생을 거쳐야 완성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이지염의 입장에서는 기연을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구결을 읽어 내려가던 이지염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다 목경운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하온데 주군. 구결을 전부 적어주시지 않은 듯 합니다.”
“맞아요.”
“네?”
“절반만 적었어요.”
그 말에 이지염이 어째서 그랬냐고 물으려다 이내 입을 다물었다.
웃고 있는 목경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어떤 의도로 그랬는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그러신 것입니까?”
“맞아요.”
“어째서 그러신…..”
“구결을 완성시켰다고 하나 조심해야죠. 혹시나 이 곡주님이 너무 서두르시다 또 화를 입을 것 같아서요.”
“아……”
이런 목경운의 말에 이지염이 작게 탄성을 흘렸다.
완성된 구결을 무리해서 익히려다 자신이 열양지기에 먹히는 상황을 초래할 것을 우려해서 그런 것이었나.
아무래도 오해한 것 같다.
혹시나 자신을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청령이 콧방귀를 뀌었다.
-충성 맹세까지 받아놓고 어지간히 믿지 못하는구나.
그녀는 목경운을 잘 알았다.
구결을 전부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절대로 이지염을 걱정해서가 아니라고 확신했다.
‘네. 정답.’
물론 그것은 정확했다.
목경운은 충성 맹세를 했다고 해도 이지염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적당히 먹잇감만 제공한 것이었다.
-적당히 의심해라. 본좌가 장담하마. 이가는 믿어도 좋다.
이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옛 충신에 대한 신뢰는 그녀의 자유였다.
그러나 자신은 아니었다.
확신이 들 때까지는 어느 정도 경계심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때 이지염이 품속에 구결이 적힌 종이를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하온데. 주군.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백 년 전 그날 회령대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속하 감히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회령대전?’
그게 뭐지?
이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시혈곡주 이지염이 갑자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청령의 일을 물을 줄은 몰랐다.
이에 청령이 이죽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해봐라. 다른 건 몰라도 이가와 관련된 것은 절대 중생 네놈을 돕거나 훈수 두는 일은 없을 게다.
이가의 충성심을 가로챘으니 정보를 알려줄 생각이 없는 그녀였다.
곤욕 한 번 제대로 치러보라는 소리였다.
‘회령대전.’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그 기억이 발로가 되어 원혼이 되었다.
애초에 중생 이 녀석에게도 당장에 알려줄 생각은 없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러고 있을 때였다.
목경운이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
“그게 알고 싶나요?”
이에 청령이 기가 찼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뭘 알고 싶냐는 건가?
그러는데 이지염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속하, 아니 저희 조부께서는 주군을 끝까지 믿으셨지만 그날의 사건으로 왕에서 곡주로 강등되고, 본가는 성에서 축출되어 이곳 시혈곡에 삼대 째 계속 갇혀 있습니다.”
‘아아아.’
이런 이지염의 말에 청령이 쓰라려했다.
이가(李家)는 천지회를 세운 개파 가문이건만 이런 식으로 치욕을 주다니.
어디까지 자신을 능욕하고 천지회를 망칠 작정이었나.
역시 놈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 목경운이 말했다.
“그날 회령대전에서 있었던 일을 이 곡주는 어떻게 알고 있죠? 저는 당신이나 회에서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하아!?’
이런 목경운의 물음에 청령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여간 이놈은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를 찾는다.
도리어 이런 식으로 질문을 던질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전혀 어려워하지 않으니 어떤 식으로든 말을 지어낼 수 있어서 이러는 것인가?
‘중생 네놈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하는데 곡주 이지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송구한데 이걸 그대로 말씀드려도 될지.”
“괜찮아요. 있는 그대로 얘기를 해줘야 제가 그날 회령대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드릴 수 있죠.”
목경운이 개의치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품속에 있을 목각인형 쪽을 힐끔 쳐다보며 입술을 실룩거렸다.
‘차라리 훈수를 두지 그러셨어요.’
그럼 이렇게 유도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 이로써 청령이 천지회와 어떤 관련이 있고 무슨 비밀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되는 건가?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