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st, Might, Mayhem RAW novel - Chapter (91)
천지회의 내성으로 돌아가는 길.
산을 걸으며 자신보다 앞서 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방사 조의공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말없이 걸어가고 있는 저 노인은 자신의 스승이자 원살각의 각주인 인서옥이었다.
“하아.”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그 무섭던 스승이 이제는 자신의 명대로 움직인다.
그 이유는 목경운에게서 일부 통제권을 이양 받았기 때문이었다.
[약조대로 명령할 수 있게 해드리죠.]목경운이 유일하게 지킨 대가였다.
다른 조건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았다.
두 번째로 제안한 육인강령술(六人降靈術)의 비밀은 알려줘도 절대로 할 수 없을 거라며 가르쳐주지 않았고 세 번째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되었다.
-찰랑!
손목에 주언의 사슬로 인해 도리어 노예가 되고 말았다.
이젠 의지와 상관없이 녀석을 따라야 했다.
[저는 시혈곡에 남아있을 테니 사부님께서는 돌아가서 원살각의 각주가 되어주세요.]‘빌어먹을.’
아무렇지 않게 자신에게 그런 명령을 내렸다.
생시귀가 된 스승님 인서옥에 대한 통제권을 받기는 했지만 무작정 자리를 물려받을 수는 없었다.
절차라는 게 있었고 적당한 명분이 필요하니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대사형 조태청이었다.
원살각은 대대로 수인을 바탕으로 한 방술과 죽은 시신을 이용한 시귀술에 능했다.
한데 대사형 조태청은 수인을 이용한 방술 이외에도 식신술에도 능했기에 스승님조차 가지지 못한 요수(妖獸) 급의 이매망량을 굴복시켰다.
‘……괜히 차기 원살각주라 불리는 게 아니다.’
이런 대사형에게 스승님이 생시귀가 된 것을 들키게 되면 큰 사달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아니 순식간에 요수에게 사지가 찢겨질 수도 있다.
뭔가 대사형을 자연스럽게 속일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골머리가 아프군. 한데……’
아까부터 뭔가 이상하다.
뭔가 하나가 기억나지 않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목경운이 주언으로 자신에게 무슨 명을 내렸기에 기억의 일부가 소실된 것 같지?
‘찝찝하군.’
그게 대체 뭐지?
* * *
‘그런 식으로도 활용이 가능하구나.’
목경운은 아까 전 방사 조의공에게 내렸던 명이 제대로 통용된 것에 쓸만하다고 여겨졌다.
목경운이 내린 명은 간단했다.
[주언의 맹세를 할 때 제 진짜 이름을 들었던 것을 잊으세요. 저를 계속 연목검장의 셋째 아들로 기억하세요.]이런게 과연 통할까 싶었는데 정말로 됐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을 속박하는 것이 원리였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이 주언의 사슬을 몇 개 더 구하고 싶어졌다.
[더 구할 수 있나요?] [나도 그러고 싶지만 힘들다.]방사 조의공에 말에 의하면 주언의 쇠사슬은 육방신 중 한 사람인 금원(金元) 대법사 명률이 만든 법구로 스승인 인서옥이 방원육십사각의 총회에 참석했다가 선물로 받은 네 구 중 하나라고 한다.
스승인 인서옥 역시도 이 비밀을 알아내고 싶어서 십여 년을 연구를 했지만 이 원리를 구현해내는데 실패했다고 했다.
‘아쉽네.’
하나 조의공이에게 채운 것 이외에는 세 구가 더 있다니 기회가 된다면 구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덕분에 방사 조의공의 기억 속에서 진명을 얘기했던 것을 지웠다.
그것이 문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아까 하던 얘기를 계속 해볼까요?”
목경운이 시혈곡주 이지염에게 말했다.
이곳은 이지염의 집무실이었다.
곧바로 이곳에 돌아온 목경운은 하던 얘기를 마무리도 짓고 궁금했던 것을 물을 참이었다.
과연 청령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때 목경운의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이. 중생.
‘죄송한데 지금은 답변하기 힘들 것 같네요.’
시혈곡주 이지염이 자신의 맞은 편에 앉아있기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는데 그녀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으로 부탁한다. 지금은 묻지 마라.
‘………’
왜지?
복수를 위해서 원혼이 되고 자신을 싫어하는데도 제자로 받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이것을 듣고 싶지 않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의아해하는데 청령이 말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때가 되면 결국 알게 되어있다. 대신 본좌의 말대로 한다면 파사팔식(破思八式)의 한 식(式)을 가르쳐주마.
그런 그녀의 말에 목경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다른 것은 몰라도 파사팔식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며 식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주지 않는 그녀였다.
그런데 그녀가 깨달은 하나의 식(式)을 알려준다라.
귀가 살짝 솔깃해지는 이야기였다.
-본좌의 말에 동의한다면 검지와 엄지로 원(圓)을 만들어라.
이에 목경운 허벅지에 올려놓았던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
청령이 기가 차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목경운이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 게 아니라 검지와 중지를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을 알려달라는 소리였다.
‘…….한사코 손해를 보지 않는구나.’
파사팔식은 하나의 식만 알아도 그 효용성과 가치를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녀가 깨달은 식들은 지금 목경운이 알게 되어도 도움보다는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여겨서 알려주지 않았었다.
해서 한 식도 그나마 무난한 것을 알려주려 했던 것인데,
-약은 놈. 좋다.
결국 그녀는 이를 알려주기로 약조했다.
과연 자신이 깨달은 것을 체화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에는 이 일을 목경운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자신 또한 어떻게 알려졌는지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짐작 가는 바가 있으니 말이다.
‘준비가 되었을 때……’
그때 들어도 늦지 않다.
이렇게 서로 간의 합의가 끝나자 목경운은 이야기를 하려고 운을 떼려하는 시혈곡주 이지염에게 말했다.
“그 날…..”
“잠깐 멈춰주시겠어요.”
“네?”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어도 되겠나요?”
“나중에…..들으시겠다고요? 하나 회에 어찌 된 일인지 아셔야 그때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이 이야기는 조금 더 자리가 잡힌 후에 하도록 하죠.”
“자리가 잡힌 후에라면?”
의아해하는 시혈곡주 이지염에게 목경운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회주께서 보시기에 지금 제 수준이 어느 정도로 보이죠?”
“수준이라면?”
“무위요.”
“무위. 흐음.”
이 말에 이지염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이내 목경운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었다.
그리고는 확신이 가지 않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네.”
“기감만으로는 일류 정도로 느껴집니다.”
‘일류?’
그런 그의 말에 목경운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아직까지 확실하게 절정의 경지에 해당하는 기(氣)에 대한 깨달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지닌 사기(死氣)의 양은 절정의 극에 이르렀다.
게다가 개방된 중단전 역시도 응축된 기운이 절정의 극에 이르러, 같은 수준의 고수보다도 두 배는 더 기운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건가?’
의아해하고 있는데 청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응?’
-애초에 죽음의 기운은 인간이 체내에 쌓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것이다. 많이 느껴봐야 소름 끼치다거나 싸늘하다 정도가 다일게다.
‘………’
-그런데 하물며 그런 사기(死氣)를 단전에 모았다고 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그것을 정확히 느끼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런 건가?’
청령의 말대로 사기는 일반적인 기운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기에 이 정도 대단한 고수인 시혈곡주 이지염조차도 파악하기 힘든 건가?
아니 생각해보니 이건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상대가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모른다면 속일 수 있겠구나.’
이것만으로도 상당히 활용가치가 있었다.
방심이야말로 상대의 허점을 만들어내는데 유용하니 말이다.
그러는데 시혈곡주 이지염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주군께서는 기운을 일부러 갈무리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지염이 조부께 들었던 ‘그 분’의 강함은 역대 천지회의 강자들을 통틀어도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정도가 다가 아닐 거라 여겼다.
그러나,
“아뇨. 보이는 그대로에요.”
“……..그게 사실입니까?”
“네.”
이런 목경운의 말에 시혈곡주 이지염은 다소 실망감이 섞여 있는 신음성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지염은 그 분이 원혼이 되어 이 소년의 몸에 빙의하여 왔다는 것은 복수와 옛 영광과 명예를 되찾기 위함이라 여겼다.
당연히 준비가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대체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어찌할 거라는 거지?
“꽤 실망한 듯한 얼굴이네요.”
“그건…….”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목경운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해요. 한데 제가 이 몸에 빙의한 건 보름 전의 일이고 그때 이 육신은 삼류조차도 못 됐어요.”
‘!?’
이런 목경운의 말에 이지염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 말인즉 고작 보름 만에 일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소리가 아닌가.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굉장한 발전 속도라 할 수 있었다.
“그게…..사실입니까?”
“네. 못믿겠나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저 놀라워서……”
아무리 뛰어난 무재를 지녀도 이 속도는 상식 밖이었다.
이런 이지염의 반응은 당연했다.
이에 목경운이 말했다.
“기대하시는 부분이 있는 건 알지만 아무리 곡주께서 알고 있는 과거의 제 모습과는 다르다고 해도 저 역시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입장이니까요.”
“아아…..”
그 말에 이지염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 조심스레 물었다.
“……..하면 어느 정도 기간이면 주군께서는 원래의 경지로 회복하실 수 있는 겁니까?”
관건은 그것이었다.
이지염은 충성 맹세를 한 후에 상당히 고조된 상태였다.
당장에라도 이 시혈곡을 벗어나 주군의 오른팔로서 함께 명예를 되찾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 그의 물음에 목경운이 찰나에 고민했다.
‘원래의 경지?’
사실 생각해보니 목경운은 그녀가 살아 생전 어느 정도 수준의 무위를 지녔는지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는 늘 본좌는 강하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그것의 기준은 막연했다.
하나 이렇게나 강한 이지염조차도 경외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강한 듯 했다.
‘그럼…….’
어느 정도 목표 기간을 정하는 게 좋을 듯 하긴 했다.
군자보구 십년불만(君子報仇 十年不晩)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하는데, 인내하며 실력을 쌓아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물론 복수를 위해 참을성을 기르는 것은 당연하나 10년은 너무 길다.
이에 목경운이 생각하는 기간은,
-슥!
‘!?’
목경운이 든 손가락에 이지염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미쳤냐?
목경운의 귓가로 청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목경운은 고작 손가락의 두 개만 펴고 있었다.
-하!
청령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차댔다.
그러고 있는데 시혈곡주 이지염이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이십 년을…..”
“아뇨. 그건 너무 길잖아요.”
그 말에 이지염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정말……그게 가능하시겠습니까?”
“못할 것도 있나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이에,
“하……..”
이지염이 진심으로 경외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탄성을 흘렸다.
목표 기간을 최대한 짧게 잡아서 그에 맞추려고 하는데, 이게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보일 일인가?
하는데 청령이 혀를 차며 말했다.
-절정의 경지에 대한 제대로 된 깨달음도 아직 얻지 못한 녀석이 2년 안에 벽을 넘어서 화경의 경지에 이른다고 호언장담을 하다니.
화경(化境).
그것은 벽을 넘어서 삼화취정(三花聚頂),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에 이르러야만 도달하는 지고의 무위라 할 수 있었다.
현 무림에서 최고의 고수들이라 불리우는 육천팔성(六天八星)만이 오직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알려져있다.
한데 목경운은 2년 만에 그들과 같은 수준에 도달하겠다고 공언을 한 셈이었다.
‘힘든 건가?’
이런 목경운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청령이 말했다.
-백 번 죽었다 깨어나봐라. 그게 가능할지. 아니 그게 된다면 본좌가 평생 주인님이라고 부르며 수발을 들어주마.
끝
ⓒ 한중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