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심상치 않은 사진
원래는 하루만 투자하려고 했으나.
“아, 생각보다 어렵네.”
“궤에에.”
언제나 계획은 생각할 때가 가장 완벽한 법.
실제로 해 보니 제작이라는 건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삼 일을 꼬박 제작에 몰두하고 나서야 성과가 보였다.
[어설픈 상급 포션]-중급보다는 낫지만 상급 포션이라기에는 양심이 없습니다.
-좀 더 잘 만들어 보는 게 어떨까요?
그래도 일단 상급 포션이라는 타이틀은 따냈다.
이걸 만들기 위해 재료값으로만 3,000포인트는 쓴 거 같은데.
가끔 덤벼드는 터렛을 해치울 때 빼고는 모든 마력을 제작에 사용했다.
덕분에 스킬 레벨도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물약 제조 (B) Lv.5]자그마치 5레벨까지 올릴 수 있었다.
장시간 집중했기 때문인지 머리가 다 아프다. 눈도 침침한 거 같고.
중간중간 짧게나마 수면을 취하기도 했지만.
[수면 전투 복기 (A) Lv.4]알리오스가 준 스킬 덕분에 편하게 잠들지도 못했다.
수면 중에는 가상의 상대와 전투를 하느라, 깨어 있을 때는 제작을 하느라 한시도 편할 때가 없다.
“알리오스 미친놈. 어떻게 매일 밤 이 짓을 한 거지?”
역시 하나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딘가가 맛이 가야 하는 건가.
그가 주었던 전투 기억은 평상시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잠들었을 때만 떠올랐지.
일종의 배려였을 거다. 자신이 아닌 남의 기억을 머리에 심는 것이니 뒤섞일 가능성도 있었고 혼란에 빠질 수도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 피곤한 것과는 별개로 알리오스가 일평생 겪어 온 전투는 어마어마했고, 그 전투를 꿈속에서 재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경지가 올라갔다.
부수적인 효과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칼날이 달린 거라면 뭐든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서걱
-까각, 까가각
포션을 제작한 후에는 터렛의 부품을 이용해 총기를 복구했다.
단검을 이용해 이음새를 자르고 새로운 부품을 가공하고 조립한다.
생김새는 달랐지만 총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비슷비슷한 구조를 가지게 마련이라 몇 번 해 보니 어렵지는 않았다.
[장비 제작 (C) Lv.6]덕분에 레벨도 가장 빨리 올랐고. 등급이 다른 것에 비해 낮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물론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삼 일 동안 제작한 총기가 서른 개.
그중 열 개는 몇 발 사격하고 난 이후 노리쇠가 아작 나서 버렸고, 남은 것 중 다섯 개는.
[쏠 수는 있는 터렛 라이플]-터질까요, 안 터질까요?
-당신의 운을 시험해 보세요!
영 쓰기 불안한 설명이 달렸다.
결국 쓸 만한 물건은 열다섯 자루뿐인데.
[그럭저럭 쓸 만한 터렛 라이플]-1성급 몬스터는 잡을 수 있습니다.
-2성급은 글쎄요?
아직 레벨이 낮아서 그런지 2성급 몬스터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딱히 상관은 없지만. 어차피 내 목적은 튜토리얼 구간과 10층대를 무사히 통과하도록 돕는 거다.
“딱 열 개만 더 만들고 올라갈까?”
“그에에.”
김소담도 총기를 만들고 있으니 내가 계속해서 작업할 필요는 없다.
효율성의 문제기도 하고, 나도 할 일이 있다.
“슬슬 공략을 올려야 한단 말이지.”
그저께 23층 공략까지 올렸으니 오늘은 24층. 내일은 25층 공략법을 올릴 예정.
[공략자-칭호(성장형)]-올 스텟 +10
-행운 스텟 +15 (행운 스텟은 일반 스텟과 별개로 적용됩니다.)
-신성력 스텟 +20
-현재 공헌도: 143점 (다음 보상까지 200점 남았습니다.)
57점만 더 오르면 다음 보상을 얻을 수 있다.
이번에 새내기들이 탑에 들어오면 공략 점수가 꽤 쌓일 거 같은데.
즐거운 고민을 하며 다시 총기 제작에 집중했고.
약 10시간이 지난 시점.
“으아아아. 다 만들었다.”
목표치를 채울 수 있었다.
기지개를 켜자 뚜두둑, 뼈 소리가 난다.
그럼 올라가 보실까.
-철컥
[전기가 가동됩니다.] [전력 공급 (2/3)] [중앙 비상구가 열립니다.]작업실로 썼던 전기실의 버튼을 누르자 불이 들어온다.
이제 하나만 더 하면 포탈이 열린다.
왼쪽 통로는 끝냈고 오른쪽도 갔으니 남은 건.
“첫날에 갔던 가운데 방인가.”
분명 안에 비상구가 있었다. 그곳을 따라 내려가면 되겠지.
그동안 만들었던 포션과 총, 창고에 박혀 있던 탄알 박스를 보물 주머니에 챙기고 걸음을 옮겼다.
이미 25층에 있던 터렛은 모두 파괴한 상황. 방해물은 없다.
“역시 사람이 빛을 봐야 해.”
전력기 두 개가 가동된 덕분인지 아이스 쉘터는 밝았다.
여전히 난잡하기는 했지만 처음 왔을 때의 음산함은 사라진 상황.
기분 좋게 중앙으로 방으로 들어가자 굳건히 잠겨 있던 비상구가 열려 있는 게 보인다.
양쪽 전기실 먼저 공략하는 것이 정답인 모양. 이것도 적어 둬야지.
“궤에에.”
“이곳은 아직 어둡네.”
비상구 안으로 진입하자 시커먼 공간이 날 반겼다.
철제 계단은 녹이 슬어 있었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걱정은 들지 않았다.
[야간 시야 (E) Lv.6]레벨이 하나 오른 야간 시야도 있고, 혹여나 바닥으로 추락해도 충분히 버틸 거 같았으니까.
역시나 별다른 이변 없이 지하로 이동할 수 있었고, 관리실인 것 같은 공간에 발전기 스위치가 보였다.
-우우우우웅
[전력 공급 (3/3)] [포탈이 생성됩니다.]비상구가 있던 곳으로 포탈이 생성됐다.
이제 올라가면 끝.
이곳에서는 보물 지도 조각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른 수확이 있었기에 아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여기는 발전기를 가동했는데 불이 안 켜지냐.”
이상하지 않은가.
이전 두 개의 발전기는 작동되자마자 불이 들어왔는데.
발전기에 손을 댔다. 손바닥을 통해 진동이 느껴진다. 발전기 자체는 문제없고.
그럼 여기서 만들어지는 전기는 어디로 가는 거지?
슬쩍 포탈을 바라봤다.
한번 의구심이 들자 포탈이 생성된 위치까지 수상하다.
유일한 출입구를 막고 있지 않은가. 바로 위로 올라가라는 것처럼.
내가 이런 건 또 못 참지.
“덕춘아, 뒤져 보자. 여기 뭐가 더 있는 것 같다.”
“그에에엑.”
겉으로 보기에는 창고 같은 곳.
냉기가 스며든 벽면은 차가웠지만 이상하게 서리가 끼어 있지는 않았다.
가만히 벽에 귀를 가져다 댔다.
-우우우우
미약하게 들리는 소음.
조금씩 자리를 옮기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고.
“환풍구였군.”
천장 부근에 설치된 환풍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직접 들어가기는 힘들 것 같은데.
슬쩍 덕춘이를 바라봤다.
“그, 그에에?”
“아름답고 스트롱 하고 멋지신 영물 덕춘 님이 도와주면 좋겠다!”
지을 수 있는 가장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덕춘이를 바라봤다.
부담스러운지 주춤하는 녀석. 더 부담스러우라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찰싹!
“그에에에!”
뺨을 한 대 때린 덕춘이가 환풍기를 뜯고 안으로 들어간다.
해 줄 거면 그냥 해 주지 뺨은 왜.
“손 되게 맵네.”
얼굴을 문지르며 수색을 이어 나갔다.
겉으로 드러난 통로는 없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행운 스텟이 발동합니다.]-스스스스
15로 수치가 올라간 행운이 나를 도왔다.
구석에서 번지는 빛무리.
벽에 걸린 액자에서 반응이 오고 있다.
딱히 특별해 보이지는 않는다. 뒷면에 뭐가 있는 걸까.
액자를 들춰 봤지만 꿈쩍도 안 한다.
보통 액자는 적당히 걸어 두지 않나? 이렇게 완전히 고정할 리가 없는데.
아무래도 단서를 찾은 것 같다.
-끼릭
액자를 당기고 밀고 누르다 돌리니 기계음이 들렸다.
역시. 이게 스위치였군.
시계 방향으로 계속해서 액자를 돌리자 숨겨진 문이 열렸다.
덕춘이가 들어간 곳 옆.
문을 지나자 견고하게 닫힌 문이 하나 더 존재했는데.
“못 같은 거로 긁은 건가.”
거대한 문에는 쇠로 긁어 적은 단어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권능, 별을 주시하는 눈이 발휘됩니다.]-희망
-새로운 시대
-빌 자매슨
-디고라스 폴
-긴 여정
-세상이 녹을 때를 위하여
사람 이름과 몇 가지 문구.
문에는 손잡이가 없었다. 카드키를 찍을 단말기도 없었고 사람을 인식할 센서도 보이지 않았다.
안쪽에서만 열 수 있게 만든 모양.
-궤에에에
문 너머에서 덕춘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덕춘아! 어딘가에 스위치가 있을 거야. 열 수 있겠어?”
-궤엑!
걱정 말라는 듯 덕춘이가 자신감 넘치게 답했고, 약 10분이 흐른 후.
-쿠궁, 구구구구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문이 열렸다.
나를 반기는 건 빛.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수정관.
“이건.”
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지막 세 번째 전력 공급. 전기가 향한 곳은 이곳이었다.
거대한 방을 따라 설치되어 있는 수정관은 액체로 가득 차 있었으며, 유리 안으로 보이는 곳에는 내 명치에나 닿을까 싶은 크기의 사람들이 잠들어 있었다.
이미 부패해 흐려진 모습으로.
방 가운데 적힌 팻말.
[새로운 삶이 함께하기를]-멸망한 소인국 사람들은 훗날을 기약하며 생명 유지장치에 들어갔습니다.
-자동 복구 시스템이 가동되어 쉘터가 되살아나기를 바라면서요.
-전력이 끊기며 그들의 소망은 사라졌습니다.
난 미간을 좁혔다.
이게 멸망한 사람들의 결말.
천천히 방 안을 걸었다.
공동묘지처럼 늘어선 수정관의 수만 수백 개.
손으로 쓸어내리자 뽀얀 먼지가 묻어나온다.
정면에 놓인 모니터에 불이 들어온다.
수정관을 표시하는 칸이 모두 붉게 칠해져 있었다.
생존자는 없었다.
[멸망한 세계의 파편을 보았습니다.] [5,000포인트가 지급됩니다!]발랄한 효과음과 함께 메시지가 떴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난 잠시 침묵했고.
“올라가자, 덕춘아.”
“궤에에.”
포탈을 타고 26층에 진입했다.
* * *
20층대는 냉기가 테마인 곳. 26층 역시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
다행히 냉기 내성이 많이 올라서 버틸 만하기는 했지만.
“아. 이거 골치 아픈데.”
26층의 최소 공략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26층] [세미 뱀파이어 숙주 처치 (0/1)]처치라길래 단순 사냥을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풍경을 보아하니 그게 아니었다.
오로지 얼음. 빙하의 내부가 26층의 정체였다.
빙하 안에는 몬스터들이 얼어붙어 있었는데 눈알이 굴러가는 걸 보아하니 죽은 건 아닌 모양.
저 중에 세미 뱀파이어 숙주가 있다.
도대체 어디에 얼려져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문제지.
“세미 뱀파이어라.”
난 손에 입김을 불며 기억을 되살렸다.
뱀파이어는 유명한 몬스터다. 전설이나 도시 괴담의 단골 소재인 만큼 많은 사람이 알고 있었고, 실제로 나타난 놈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름다운 외모. 흡혈. 태양 빛에 약한 거.
뱀파이어는 기본적으로 4성급 이상으로 분류되는데 귀족 같은 경우는 5성급이 되기도 한다.
당연하게도 20층대에 나올 만한 놈들이 아니다.
“세미 뱀파이어는 양산형이야.”
뱀파이어가 수족을 늘릴 때 만드는 하수인.
감염된 피를 가지고 있는 개체를 숙주라고 부른다.
숙주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폭사하고, 그때 뿌려진 피가 묻어 감염되면 또 다른 숙주가 된다.
사실상 생화학 무기나 다를 바 없는 몬스터.
영 건드리기 껄끄러웠지만 할 건 해야 한다.
난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인간형 몬스터를 찾아야 해.”
숙주는 인간형 몬스터만 될 수 있으니까.
대부분 짐승형. 어디 오크나 고블린 같은 놈 없나. 있으면 그놈을 잡으면 되는데.
“그냥 파이어 밤으로 싹 쓸어버릴까.”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기는 한데. 이런 식으로 클리어해 버리면 공략을 올릴 게 없다.
조금만 더 모으면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상황. 좀 아쉽단 말이지.
-띠링
홀로 고민하고 있던 때 커뮤니티 알람이 울렸다.
냥펀이다.
이제 막 20층에 도착한 모양. 여기까지야 뭐 문제 될 게 없는데.
“저게 뭐야.”
냥펀이 함께 올린 사진이 심상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