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311
310화 빛의 도시
빛의 도시가 나타난 뒤, 난 휴식에 집중했다.
유적이다. 그것도 65층에서 나타난 유적.
안에 뭐가 있을지 몰라도 상당히 괜찮은 물건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먼저 가는 사람이 더 좋은 보상을 얻을 기회가 있다만…….
“최초 발견도 아니잖아.”
이미 위로 올라간 헌터들은 다 겪었을 유적이다.
쓸 만한 건 거의 다 쓸어가지 않았을까.
굳이 서두르지 않는 이유다.
급하게 가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고.
여명의 오망성의 제작법.
이건 있어야 한다.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든 만큼 다른 재앙들도 탑 밖에서 나타날 수 있으니까.
현재 밖에 있는 헌터들의 능력으로는 어쩌기 힘든 것들이 다수 있다.
레비아탄은 잡지도 못했고, 아프리카 쪽은 뭔지도 파악이 안 됐다.
그나마 잡은 거라고는 메스토카뿐인데.
“그것도 사실 한 마리만 잡은 거지.”
원래는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는 게 메스토카다.
당장 한 마리 잡는 데만도 피해가 엄청났는데, 수십 마리가 한 번에 나타나면 어떻게 되려나.
더 큰 문제는…….
“상위층에 오른 헌터 중에 밖으로 나간 사람이 아직 없다는 거지.”
“그에에.”
한두 명이라도 있었다면 걱정이 살짝 줄어들 거다.
기본적으로 재앙을 겪었던 이들이니까, 해답도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전력이 부족해서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재앙은 단순히 강력한 괴수만 있는 게 아니다.
무너지는 돌탑이나, 소원 들어주는 연못과 같이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 분란을 조장하는 것들도 있지.
이런 것들은 방법만 안다면 비교적 쉽게 없앨 수 있다.
내가 열심히 공략을 올리게 된 이유 중 하나.
재앙을 직접 겪지 않았더라도 공략을 읽은 누군가가 나가면 알려 줬으면 해서.
이번에 여명의 오망성 제작법을 알게 되면 그것도 커뮤니티에 뿌릴 예정이다.
바닥에 누워 청명한 하늘을 바라봤다.
낮이 찾아온 필드는 경관이 꽤 좋았다.
“상위층에 있는 사람들은 왜 밖에 안 나가는 걸까.”
최근 들어 자주 드는 의문.
층이 높아질수록 퇴출당하는 사람은 늘어난다는 건 상식이다.
그만큼 위험하고 어려우니까.
당장 50층도 뚫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몇 명인가.
60층대를 오르고 있는 사람은 손에 뽑힐 수준일 거고.
그나마 내가 공략법을 올리고 있어서 생존율이 올라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식으로 올라가는 건가?”
“궤엑.”
탑은 10층 단위로 테마를 가진다.
튜토리얼, 성장 구간, 환경 적응, 협력전, 선택, 죽음.
60층에 이르러서는 재앙.
70층부터는 상위층으로 분류된다. 커뮤니티 제한까지 생겨 버리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80층은 진입 조건 자체가 붙어 버려, 999스텟을 찍지 못하면 79층에 머물러야 한다.
어쩌면 79층에 머무느라 밖에 나가지 못한 상위층 헌터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러 잡념이 스쳐 가는 시점.
-터벅터벅
인기척이 들려왔다.
머리만 들어 살짝 바라보니 햇빛을 밭아 반짝이는 은갈치 헬멧, 그 옆에는 초록 쫄쫄이.
정체는 말할 것도 없이 핥짝이와 탈모맨이다.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저 옷차림들은 볼 때마다 해괴하다.
읏차. 몸을 일으켜 세웠다.
상처는 어느 정도 회복된 상황.
“뭐야, 너희 안 들어갔냐?”
“의리가 있지. 어떻게 혼자 냉큼 들어가냐!”
“당연한 말씀. 또 모르잖아. 너 이렇게 퍼져 있는 동안 이상한 놈이 덤벼들 수도 있다고.”
자식들, 그래도 날 생각해 주는 건 이 녀석들뿐이다.
“궤에에.”
“그래그래, 우리 덕춘이도 있지.”
자신은 왜 빼냐고 우는 덕춘이의 머리를 긁어 줬다.
단순히 주인과 펫 사이를 넘어 최고의 파트너다.
핥짝이가 턱으로 날 가리킨다.
“몸은 좀 어때?”
“만신창이기는 한데 지금은 좀 괜찮네, 탈모맨은?”
“하하! 빈사 상태에서 살아 돌아왔지!”
-짜악!
“어흑!”
핥짝이가 당당히 외치는 탈모맨의 등짝을 때린다.
“자랑이다. 내가, 어? 아니다 싶으면 바로 튀라고 했지? 그러다 한번 죽어 봐야 정신을 차려. 그냥.”
“아직 한 번도 안 죽었는데? 호오오옥시? 코인 쓰셨나 봐요? 핫하하하!”
“나도 안 썼거든!”
“오, 그럼 냥펀만 한 번 쓴 건가. 공듀는?”
나?
천 단위로 썼는데. 프램버그에서 혼돈의 파편이랑 내기할 때 몇 번을 죽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쓰긴 썼지.”
“천하의 공듀도 별수 없구만!”
“인간미라고 하자.”
정확 답은 회피했다.
무한 코인은 버그로 주어진 히든 퀘스트로 인해 생겨났다.
정상적인 퀘스트가 아닌 만큼 몇 가지 제약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남에게 무한 코인인 것을 발설하지 못하는 거란 말이지.’
발설할 경우, 나뿐만 아니라 정보를 들은 사람도 피해를 본다.
그것보다…….
“어째 탈모맨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아직 다 안 나아서. 포션을 좀 먹기는 했는데, 아고고. 나이를 먹었나.”
“에휴, 덕춘아.”
내 불음에 덕춘이가 폴짝 뛰어올라 탈모맨을 핥아 준다.
덕춘이의 회복 특성은 S급. 힐러로서의 능력이 대단했으니.
“오오오오!”
오래지 않아 탈모맨의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걸로 대충 준비는 끝.
“들어가기 전에 말할 게 있어.”
난 파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탑 숭배자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이지키일을 보조해 그 배경을 알아보기로 한 것까지.
“등반가 숭배자는 아직 본 적 없는데.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글세, 알아봐야지.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일단 몇 대 쥐어박으면 입이 트이지 않을까?”
“오. 웬일로 맞는 말을 하네, 탈모맨?”
“그치? 괜찮지?”
“응, 딱 대.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핥짝이가 주먹을 흔들자 탈모맨이 살짝 피한다.
쿵짝이 잘 맞는구만. 진짜로 맞을 것도 같고.
“일단 가자.”
“오케, 너 사고 치지 마라.”
“솔직히 사고는 나보다 공듀가 더 많이 치지 않나?”
탈모맨의 말에 핥짝이 잠시 말을 멈춘다.
“…그런 것도 같고.”
핥짝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왜요, 내가 뭘 했다고.
“생각해 보면 공블아이가 가장 요주의 인물이기는 한데.”
“너희도 똑같아. 잔말 말고 가자. 먼저 들어간 녀석들이 보상 다 챙겼을라. 유적이니까 뭐라도 있겠지.”
“그건 안 되지. 뛰어! 다 나았으면 뛰라고 무지개 쫄쫄이들아!”
“으악!”
“억!”
보상이라는 말에 눈을 반짝인 핥짝이가 나와 탈모맨의 등짝을 때린다.
화들짝 놀라서 달려가는 탈모맨.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얜 손이 왜 이렇게 매워.
* * *
유적, 빛의 도시.
안에는 예상대로 선객들이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이지키일과 그의 동료가 입구에 서 있었는데…….
“오우 갓, 벌써 눈이 아프군.”
“이지키일, 이 사람들 뭐야? 뉴 타입 몬스터? NPC? 사이코?”
“아냐, 브레드. 선량하고 이상한 한국계 등반가일뿐이야.”
“어메이징 코리안. 문화 충격. 한국 사람 처음 봐서 그러는데 다들 그래요?”
우리를 보고 여러 의미로 충격을 받은 거 같다.
시작과 동시에 한국 이미지를 이상하게 심어 준 거 같다.
오해하기 전에 설명을…….
“물론이다!”
“아냐. 닥쳐 줘, 탈모맨.”
탈모맨의 얼굴을 밀어 치운 뒤 최대한 선량한 표정을 지었다.
무해하고 이성적인 사람의 얼굴을.
“보시다시피 우리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오, 오우.”
신빙성 없는 대답인지 브레드가 한발 물러선다.
이게 아닌가.
멋쩍은 마음에 머리를 긁적이는데 핥짝이가 나섰다.
“다 너희 때문이잖아. 핥짝이라고 해, 만나서 반갑다.”
당당히 브레드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 뭐랄까.
이상한 애들이 말 걸어서 난감했지? 난 얘네와 달라! 하고 말하는 듯한 느낌.
왜 본인은 우리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살짝 어이가 없었으나 마음씨가 좋을 것으로 추측되는 브레드는 핥짝이의 손을 마주 잡았다.
조심스럽게 손끝으로만 악수하는 것이 포인트.
브레드가 천천히 우리의 얼굴을 확인한다.
“핥짝, 탈모,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지네요. 브레드입니다.”
짜잔, 여기 쁘띠공듀도 있습니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어째 정상인이 없냐.
예상치 못한 통성명이었으나 문제없이 끝났고.
“파비안은?”
“가장 먼저 들어왔을 거야, 브로. 어디 있는지는 알아봐야지. 바로 위로 올라가지는 않을 거야.”
“일은 내가 벌이도록 하지. 증명패 줘. 그걸로 흔들어 볼 거니까.”
“예쓰.”
이지키일에게서 파비안의 것으로 추측되는 숭배자 패를 받았다.
이거라도 있어야 떠보기라도 하지.
빅스타 길드는 정치적인 이유로 파비안을 건들기 힘들지만 우린 아니니까. 내가 나서기로 합의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덤빌 수는 없으니 상황을 살필 생각.
“각자 움직이고, 위치 파악하면 알려 주자고. 유적은 넓으니까 말이야. 오랜만에 유적인데 즐기기도 해야지.”
이지키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탑 숭배자니 뭐니 해도 우리는 등반가다.
눈앞에 유적이 있는데 무시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노릇.
어차피 파비안과 같은 층에 있으니 접촉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아, 그리고 신성력 있는 물건 가지고 있으면 꺼내 놓으라구. 안 그러며 귀찮은 놈들이 꼬일 수도 있어.”
그 말을 남기고 이지키일과 브레드가 자리를 떴다.
귀찮아진다라.
뭐가 있는가 본데.
봐 보면 알겠지.
“우리도 움직일까?”
“좋지.”
“적당히 둘러보다 중앙에서 모이자고. 중앙에 신전 보이지? 그쪽으로 와!”
그 말을 끝으로 탈모맨과 핥짝이가 도시로 달려 나갔다.
늦게 온 만큼 서두르는 게 좋겠지. 괜히 같이 다녀서 동선 낭비, 시간 낭비할 것도 없고.
나도 적당한 곳으로 뛰며 도시 중앙에 세워진 신전을 바라봤다.
꽤나 거대한 크기. 아마 이번 유적의 메인은 저곳이 아닐까 싶은데 혹시 모르니 주변도 살펴야지.
가장 먼저 확인할 건 여명의 오망성 제작법.
“어디서부터 봐야 하나.”
언뜻 보기에도 상가나 건물이 많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도 있고.
진짜 도시 하나를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
안으로 들어가 봤으나 가구는 딱히 없다. 사람이 산 흔적도 보이지 않고.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천사 조각상이 집마다 있네.”
공원에 나와도 천사상 분수대가 있었으며, 천사의 말을 적어 놓은 듯한 글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하나같이 고결하거나 웅장한 느낌의 조각상들을 보고 있자니 뭐랄까.
“살짝 소름 돋는데.”
“그에에.”
밤에 보면 무서울 것 같다.
사방에 날 감시하는 느낌도 나고.
유독 커다란 동상에는 창을 든 채 날개를 활짝 편 천사를 찬양하는 사람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상하다.
아까부터 드는 생각인데.
“제2 천계의 천사는 날개가 없지 않나?”
62층에서 만난 쉐핀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천사의 모습과 다르게 생겼었다.
외뿔이 있었으며 날개도 없었으니까.
반면에 동상에 있는 천사는 뿔도 두 개고 날개도 있다.
희한하네.
“어, 찾았다.”
잠시 동상을 구경해 볼까 싶어 다가간 난 찾을 수 있었다.
동상을 받치고 있는 네모난 받침대.
그곳에 여명의 오망성에 대한 것이 적혀 있었다.
[여명의 오망성 제작법Ⅰ]-어둠이 두려운 자, 하늘의 뜻을 따라라.
-구원을 받고 싶은 자, 천사의 소리를 들어라.
-숭배하라. 천사의 가호가 그대들을 살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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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뭔 잡설이 이렇게 길어?”
살짝 사이비 느낌 나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앞부분을 스킵하고 중반부부터 읽어내려가려는 그때.
“숭고한, 가르침을, 무시하, 지 말, 라.”
“땅의 존, 재는, 하늘의, 뜻을 따, 르라.”
“스스, 로의 신앙, 을 증명, 하라.”
쇳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색하지만 확실한 문장.
난 고개를 돌렸고.
“오호. 이건 또 신기하네.”
나름 색다른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