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uck in the Tower RAW novel - Chapter 345
344화 14번 방
안전지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번까지 합쳐 봐야 8번째 안전지대니까.
겪어본바 모든 안전지대가 그런 건 아니지만 특별한 이벤트나 퀘스트가 있는 경우가 제법 됐다.
70층도 예외는 아닌 모양. 60층에서 결투를 통해 초월석을 얻었던 것처럼 이곳에서는 한계 돌파 스킬북을 얻을 수 있다.
등반을 하며 쌓인 피로를 풀고 다시 모인 멤버들.
릴카의 안내에 따라 움직이는 우리를 따라 NPC들의 시선이 모였다.
“음? 제네타랑 같이 있군.”
“화해한 건가.”
올라온 첫날 약간의 소동이 있었으나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모습.
그저 보기 힘든 등반가들이 있어 관심이 쏠렸을 뿐이다.
봐라. 지금도 평화롭지 않은가.
“정말 우리밖에 없는 거 같은데?”
“네 꼬락서니 보고 숨은 건 아닐까.”
“무슨 소리, 이 정도면 양반이지! 은갈치 주제에!”
“때밀이같이 생긴 게!”
“악! 때리지 마!”
탈모맨과 핥짝이가 잡담을 하고.
“부, 부활 사업? 나도 할랭!”
“화조국은 안 된닷!”
“일단 이거 먹으면서 생각해 봐.”
“으음, 맛이 좋네. 헤헤.”
“그치, 그치? 어구구. 어깨가 뭉쳤네. 얍! 얍!”
냥펀은 부활 사업에 대해 듣고는 돈 냄새를 맡았는지 열심히 릴카를 구워삶고 있었다.
사탕 하나 물려 주니 알아서 방실거린다.
어깨까지 주물러 주니 표정이 사르르 녹네. 쉽다 쉬워.
“골격이 나쁘지 않은 게 헬스 하면 딱 좋겠네요. 어때요? 이따 저녁에 같이 운동할래요? 어릴 때부터 해야 나중에 커서도 근손실이 준다고요!”
“…나 다 큰 거임. 안 자람.”
“하하하! 저도 어릴 땐 더 안 자랄 줄 알았죠. 편식 안 하고 잘 자면 돼요.”
“안 자란다고.”
보송송이는 제네타를 헬창의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 중.
호문쿨루스도 운동하면 근육이 붙나? 안 붙을 거 같은데. 애초에 생체가 아닌, 모르겠다. 숨도 쉬는데 근육이 붙지 말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다 온 거 같다, 얘들아.”
난 안전지대 북부에 위치한 건물을 보며 주목시켰다.
릴카에게 대강 설명을 들었다. 한계 돌파 스킬북을 얻기 위해서는 60층 때처럼 등반가끼리 싸울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조절한 거겠지. 70층에는 등반가가 얼마 없으니까.
탑도 그 사실을 아는지 다른 방법을 준비했으니…….
‘혼돈의 파편 체험판 같은 거라고 했었지.’
입가를 비틀었다.
혼돈의 파편. 그래, 당연하다면 당연한 수순이다.
60층대는 재앙 구간. 70층부터는 상위층.
당연히 재앙보다 강력한 괴물이 나올 때가 됐다. 이번 시험은 그때를 대비하는 거고.
위에 이런 놈들이 나오니 준비하라는 거지.
이럴 때는 탑도 참 친절하다니까.
쯧. 혀를 차는 타이밍.
“오? 릴카!”
“나 왔엉! 에헤헤.”
한 NPC가 릴카를 보며 손을 흔든다.
모습을 보아하니.
“드루이드?”
“어머, 화관 예쁘네요.”
[NPC 아이사의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밝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내가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에 반응한 모양.
하기야 다른 존재도 아니라 눈의 정령 여왕이 준 물건이니까.
눈의 정령이 드루이드와 엘프의 근원이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릴카가 70층 너머에 엘프가 있다고 했던 거 같은데.
드워프도 보기 힘들었지만 엘프도 아직 본 적이 없다.
‘이상한 건 아니지.’
따지고 보면 거인족도 본 적 없는데. 아, 한 명 있기는 하다. 54층 벨자트. 걔는 해골이었으니까 넘어가자.
여기에 하나 더. 드래곤이 있다는 소문이 있다. 용종 몬스터는 여럿 겪었지만 진짜 드래곤은 아직까지 만난 적이 없다.
릴카를 따라오기 전에 상위층 커뮤니티를 살펴봤는데 드래곤이 NPC로 존재한다는 썰이 있어서. 어디쯤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거야 나중에 알게 되겠지.
볼을 긁적이며 손을 내밀었다.
“이블아입니다.”
“반가워요, 아이사예요.”
악수를 나눈 아이사가 싱긋 웃는다.
호감도가 올라가서 그런지 원래 성격이 온화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친절하게 다가온다.
릴카가 꼬리를 흔드는 걸로 봐서는 후자인 것 같다만.
하는 짓을 보면 꿀밤 마렵지만 의외로 사람 보는 눈은 좋은 편이라. 자신이 진상짓을 해도 받아 주는 NPC들을 찾다 보니 안목이 생긴 건가.
아무튼.
“저를 찾아온 걸 보니 한계 돌파를 하기 위해서 오신 거겠죠?”
“응. 이 몸이 직접 데리고 왔다는 말씀!”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녀석. 누가 보면 네가 대신 시험 받는 줄 알겠다.
“이쪽으로 오세요.”
아이사가 우리를 이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특별한 것 없었으나 내부는 살짝 달랐으니…….
“원하시는 방으로 들어가면 돼요.”
정중앙으로 쭉 이어진 복도. 양옆으로 문이 여러 개 있다.
그 수만 대충.
“14개? 이렇게 많다고요?”
분명 릴카가 이번 시험은 혼돈의 파편을 맛보는 단계라고 했는데…….
놈들이 이렇게 많다는 건가. 재앙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은 모양이네요. 혼돈의 파편이란 건 그 수가 일정치 않답니다. 새로 생겨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죠.”
“제멋대로라는 거네요. 누가 혼돈 아니랄까 봐.”
“그렇죠. 여기는 그동안 나타났던 혼돈의 파편의 흔적을 모아 둔 곳이에요.”
“흠흠. 덧붙이자면 보통 한 세상에 4개, 많아야 6개 정도 나타날 거얌.”
“운이 나쁘다면?”
“그땐 망하는 거징!”
아, 그러냐. 그것참 힘이 되네.
멸망의 과도기에 접어든 만큼 쉽게 웃어넘길 수는 없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 밖의 상황은 어떠려나.
조금씩 이변을 눈치챘을 거다. 당장 탑으로 소환되는 사람이 줄었으니까.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재앙이 추가로 등장하지는 않았다는 거 같은데 지금은 또 어떨지.
쁘찡 연합이 탑 내부에서는 가장 큰 집단이지만 밖에서는 아니다.
코인을 모두 소모해서 밖으로 나간 인원도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따로 규합했는지도 의문이고.
탑 밖으로 나간 자들은 한 장소로 떨어지며 정부와 대형 길드는 의무적으로 백환을 먹인다.
백환의 정체를 아는 만큼 거부하기는 할 테지만…….
‘놈들은 무력을 써서라도 먹이려 들겠지.’
그들의 근간이 무너지는 일이니까.
대형 길드와 정부 소속 헌터들이 덤벼들어도 어쩌지 못할 수준의 연합 사람이 나가지 않는 이상 그 룰을 깨기는 힘들 터.
물론 튜토리얼 구간 기억이 희미해져도 연합 활동을 한 기억은 남았으니 세력을 모을 수는 있겠지.
그래 봤자 세가 약할 게 뻔하다.
바깥 정보는 이미 영향력 있는 빅스타 길드를 통해 듣는 편이 낫겠다.
노블 나이트와 빅스타도 오래지 않아 60층대를 돌파할 거 같고. 오징혁과 이상옥 등, 연합 사람들도 60층대 후반을 달리고 있다.
“안에 들어가서 파편의 흔적을 이겨 내면 한계 돌파 스킬북을 얻을 수 있어요.”
“질문. 못 잡으면 어떻게 되나요!”
냥펀이 손을 들었다.
“죽어도 코인은 차감되지 않습니다. 대신 혼돈 수치를 소량 잃게 되죠. 위험하면 제가 들어가서 막을 거예요. 기껏 얻은 혼돈 수치를 잃으면 안 되니까요.”
“오오! 믿습니다!”
가장 먼저 안전을 확보받은 냥펀이 고개를 끄덕인다.
죽으면 혼돈 수치를 가져가는 형식이라. 나름대로 페널티를 주긴 했네.
보통은 모으기 힘든 거니까. 100층에 진입하려면 100점이 필요하기도 하고.
“나타나는 존재는 랜덤입니다. 무운을 빌어요. 여러분의 싸움을 지켜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아이사는 복도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우우우웅.
그녀의 주변에 떠오르는 홀로그램.
저걸로 방 내부를 보는 거 같다. CCTV 같은 느낌.
“우린 공방으로 갈까? 사업을 한 이상 넌 내 노예, 아니 동업자라구!”
“방금 본심을 말한 거 같은데.”
“아냐! 잘못 들은 거야!”
릴카는 제네타를 등쳐 먹기 위해 시험장을 빠져나갔다.
남은 건 멤버들과 보송송이.
“난 1번으로 간다. 1등으로 나올 거니까.”
핥짝이가 고민 없이 첫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으으. 4번. 아, 아냐. 불길한 숫자야. 11번으로 가야징. 저는 선생님만 믿고 있어요. 위험하면 저기 초록 탈모는 버려도 되니 저한테 와 주셔야 합니다.”
냥펀은 아이사와 가장 가까운 방을 골랐다. 뇌물성 팝콘과 콜라를 건네주는 건 덤.
이어서 탈모맨과 보송송이가 5번과 9번 방으로 진입했다.
“음하하! 이따 보자!”
“파이팅이에요.”
나도 마저 손을 흔들었다. 이걸로 남은 건 나 혼자.
“이블아이는 안 들어가나요?”
“들어가야죠. 그전에.”
톡톡. 손가락을 두들겼다.
“이거 한 번만 할 수 있나요?”
“예?”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
남은 방은 10개. 어떤 재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상황.
쉽게 쉽게 가면 좋을 거 같기는 한데.
‘대충이라도 어떤 느낌인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말이지.’
보나 마나 위로 올라가면 마주칠 놈들인데. 조금이나마 미리 겪어 두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게다가 그동안의 경험상…….
“탑은 과정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죠.”
결과가 같더라도 어떤 식으로 진행했느냐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된다.
당장 60층대만 해도 재앙을 극복한 건 똑같지만 남들보다 많은 혼돈 수치를 얻지 않았는가.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일종의 감이었고.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내 말을 들은 아이사의 눈꼬리가 휘었다.
“같은 말을 한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방 8개까지 클리어했죠. 나머지는 포기했지만요. 혼돈 수치를 좀 잃었거든요.”
“이미 도전해 본 사람이 있었네요.”
“스마일캡이라고 하면 알까요?”
알다마다. 헬다잉 키친 모임에서 만난 상위층 헌터인데.
요리에 미친 놈 아니지, 박재경과 아는 사이였다. 당시에도 84층을 오르고 있었지. 지금은 어디까지 올라갔으려나.
“14개 방 모두 클리어하면 특별한 선물이 있을 거예요. 아직 받아 간 사람은 없지만 말이죠.”
“그거 제가 받아 가겠습니다.”
옳은 비교는 아니지만 84층까지 올랐던 녀석도 못 한 걸 해내면 나도 80층대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는 거 아닐까.
-끼이이익
망설임 없이 맨 끝 방으로 들어갔다.
* * *
[14번 방에 입장했습니다.] [혼돈의 파편의 흔적과 마주합니다.] [승리 조건] [1시간 동안 생존] [흔적 파괴]알림창이 떠오른다.
승리 조건에 생존이 걸렸다. 본체가 아닌 흔적임에도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건가.
-파하아아앗!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혼돈검을 꺼내 들었을 때 방이 밝아졌다.
그런 내 눈에 들어온 존재는.
“하얗네.”
“그에에.”
새하얀 몸을 가진 인물이었다.
허공에 떠오른 인형. 등 뒤로 발광하는 여덟 개의 구체.
번데기처럼 팔과 다리가 봉인되어 있는 모습이었으며.
[혼돈의 파편, 하이덴의 흔적을 마주했습니다.]놈의 눈에서 광채가 들더니 똑바로 날 응시했다.
빛의 구슬이 거세게 빛나더니 길게 뻗어 나간다.
순식간에 여덟 개의 칼날로 바뀐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했으나.
‘흔적인데도 불길함은 옅어지질 않네.’
알 수 없는 불안과 기괴함에 식은땀이 흘러나왔다.
그런 내게 놈이 말을 걸었으니.
【목숨을, 귀히 여, 기라. 돌아가, 라.】
나보고 다시 나가란다.
이상한 놈이네. 친절한 건가, 아니면 배려인가.
어이가 없어 삐딱하게 서서 놈을 노려보는 찰나.
-우우우우웅!
놈의 몸이 거세게 진동했다.
발광하는 몸. 여덟 개의 빛의 칼날이 요동쳤고.
【나, 를 보지 말, 라!】
-콰아아아아앙!
한 줄기 빛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런 내게 떠오른 메시지.
[하이덴은 위선과 부끄러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골 때리는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