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38)
신들의 구독자 138화
138화. 마법 협회 (3)
“할게요.”
스칼렛이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옆에 있던 예리카는 스칼렛이 계약 내용을 들어 보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에단이 만들어 냈으니 말이다.
항상 그렇지만, 예리카가 스칼렛의 상황이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계약 내용은…… 들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미르학이 자신도 모르게 끼어들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에단 님.”
“상인이시니까요.”
에단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단도 동의하는 바였다. 계약 내용은 들어 봐야 한다.
“제가 하자는 계약을 들어 보셔야죠, 스칼렛 님.”
“노예 계약만 아니면 돼요.”
스칼렛이 환하게 웃었다. 아직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었지만 그녀는 상쾌한 기분이었다.
“노예 계약일 수도 있는데.”
예리카가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다행히 스칼렛은 못 들은 듯했다.
“그래도 일단 들어 볼게요.”
“제가 마법을 되찾아 드리겠습니다. 마법 협회가 등록한 다른 마법사의 이름을 지우고 스칼렛 님의 이름으로 염색 마법을 등록시킬 수 있게 하겠습니다.”
“조건은요?”
“저와 그 마법으로 사업을 하시죠.”
에단이 말했다.
미르학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초보 상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다.
그게 바로 마법사들에게 사업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그 마법사와 수많은 인맥을 쌓고 여러 번의 접대를 통해야만 간신히 꺼낼 수 있는 말이야.’
그런 말을 오늘 처음 본 마법사에게 건넨다?
좋은 분위기는 싹 날아가고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아니, 불편한 분위기 정도면 웃으면서 넘길 수도 있다. 불편한 분위기를 넘어 아예 관계가 단절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힘겹게 마법사를 대접하고 친근감을 생성했는데, 그 말 한마디로 확 상황이 변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마법사들은 마법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저, 에단 님.”
미르학이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가 생각하던 분위기가 아니었다.
“네, 그렇게 할게요.”
염색이라는 마법에 어마어마한 자부심을 가진 스칼렛이다. 잠깐의 대화로도 그녀가 염색 마법에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고개를 끄덕인다고?
마법사가?
미르학이 당황하며 에단과 스칼렛을 번갈아 보았다.
슈들렌이 그런 미르학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한잔하실까요, 미르학 님?”
“아, 예, 알겠습니다.”
에단은 이미 스칼렛이 받아들이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마법 협회에 등록하러 온 이유는 단순히 마법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니까.’
그녀는 여타 마법사와 다르다.
자신이 걷는 길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마법사들이 생각하는 모든 걸 버린 사람이다.
‘그러니 대륙 굴지의 염색 마법 공방을 만들어서 부자가 됐지.’
그녀는 애초부터 이 마법 협회에서 마법을 등록하고 사업을 벌일 예정이었을 터.
그런 상황에서 에단이 사업을 제시하니 바로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그런데 에단 님. 제 마법이 정말 가치가 있나요? 사업을 한다고 했을 때. 그게 정말 성공할 수 있는 걸까요?”
긍정적으로 반응하긴 했으나, 불안감을 완전히 없애진 못한 듯했다.
그럴 만하지.
지금까지 그녀의 마법은 쓸모 없는 마법 취급만 당했다.
그런 마법이 과연 사업적인 가치가 있을까?
‘불안해하는 것도 당연하지. 그러니 여기서 확신을 준다.’
에단은 이미 알고 있다. 이 사업이 무조건적으로 성공할 거라는 걸.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걷고 있는 마법사일 뿐이다.
“스칼렛 님의 염색 마법은 분명히 시장에 먹힐 겁니다. 우선 제가 어떤 식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지부터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에단은 스칼렛에게 경량화 공방과 속성 부여 마법을 판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네!?”
경량화 공방에서 한 번 놀라고 속성 부여 마법의 이야기에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속성 부여 마법을 연구하던 마탑의 마법사들은 스칼렛과 비슷한 마법사들이었다.
비주류 마법을 연구하며 그 연구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 믿는 이들이었다.
물론 스칼렛은 이미 염색 마법을 완성한 상태였으니, 그들과 비교하기엔 이쪽이 더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특수 골렘 마법까지. 지금까지 마법을 이용한 사업은 모두 다 성공했습니다.”
에단의 말에 스칼렛은 뿌듯함을 느꼈다.
저런 사람이 자신의 색을 높게 평가해 주었으니까.
이제야 제대로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경량화 공방과 특수 골렘을 이쪽에 계신 예리카 님이 담당하셨다니.”
스칼렛은 예리카를 보았다.
“아까는 제 염색 마법을 그저 색을 바꾸는 게 아니냐고 하셔서, 이런 쪽엔 아예 조예가 없으신 줄 알았는데요.”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긴 해요.”
“하지만 실력은 대단합니다. 제가 본 마법사 중에 예리카만 한 사람은 없거든요. 오늘도 사실은 마법 협회에 예리카의 새로운 마법을 등록하러 온 겁니다.”
“와…… 대단한 실력이시군요!”
“음…… 뭐, 하하.”
예리카가 머쓱하게 말했다.
에단 말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받는 게 흔하지 않아 기분이 간지러웠다.
“익숙해져야지, 예리카.”
“……전 에단 님이 칭찬해 주시는 걸로 충분해요.”
예리카가 머쓱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 * *
스칼렛은 마법 협회로 가면서 에단과 색에 대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색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었으니, 다른 사람과 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일 자체가 없었다.
“보시면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죠. 붉은색이면 다 같은 붉은색인 줄로만 아는데……어떻게 이리 색에 대해서 조예가 깊으신 거죠?”
에단은 지금껏 10년 동안 색을 연구해 온 스칼렛마저 놀랄 정도로 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색을 판단하는 눈이 탁월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구별조차 하지 못하는 거라고요.”
에단은 놀라워하는 스칼렛을 보며 미소 지었다.
‘룩을 꾸미는 데 있어 색깔은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거든.’
에단은 메판을 하는 내내 룩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었다.
일종의 컨셉 플레이였지만, 메판을 하는 사람들 중에 컨셉 플레이를 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정도였다.
‘스칼렛의 상점에서 정말 많이도 샀었지. 그러다 보니 색을 보는 눈도 좋아졌고.’
에단도 처음엔 왜 같은 색깔인데 이름을 다르게 설정해 놨을까 의문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눈에 계속 익히다 보니 그 미세한 차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염료 중에도 주황빛이 도는 게 있어. 그 주황빛이 도는 염료를 검에 사용하고 거기에 속성을 부여하면.’
그럼 완벽하게 불이 흐르는 불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 진짜 불 속성은 없다. 겉으로 그렇게 보일 뿐.
아마 예리카는 이 불검이 가진 가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겠지.
‘의미는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멋이었다.
‘멋있으니까.’
그러니까 하는 것뿐이다.
“저도 색을 많이 신경 썼었습니다. 자주 보다 보니 색의 차이가 보이더군요.”
그 말에 스칼렛은 크게 감동했다.
색의 마법을 연구하던 그녀의 삶에서 유일한 이해자가 나타났으니, 감동에 입을 다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에단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들어 주면서 이동했다.
“어? 마법 협회로 가는 것 아니었나요?”
“미르학 님.”
“예, 에단 님.”
에단은 미르학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사람 하나를 수배해 주십시오.
마법 협회에 가기 전에 빠르게 증거 하나를 수집할 생각이었다.
‘이미 많이 해 먹고 있을 테니까.’
에단이 댄 이름은 마법 협회 인증 심사관의 여러 일을 처리하는 자의 이름이었다.
“바로 수배하겠습니다.”
“힘을 써서라도 데리고 와 주셔야 합니다. 좋은 놈은 아닙니다. 정중하게 데려올 필요가 없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미르학이 곧장 뛰어가더니 이내 다시 돌아왔다.
“협회로 데리고 오도록 처리했습니다.”
“그럼 가시죠.”
마법 협회.
에단 일행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미르학이 앞장을 섰다.
“가넷 상단에서 온 미르학입니다.”
“오, 미르학 님이시군요. 일전에 말씀드렸던 재료를 주러 오신 겁니까?”
“아, 그건 따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로 온 게 아니라서요. 오늘은 마법 인증 등록을 하러 온 겁니다.”
“뒤쪽에 계신 분들이 손님이신가 보군요.”
협회의 마법사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15층으로 바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거기에 가시면 저희 마탑의 마법사가 친절하게 안내해 드릴 겁니다.”
마탑 15층.
이곳이 마법 등록 전반을 맡고 있는 곳이었다.
에단은 들어가기 전에 예리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기선 본명보다는 가명으로 가는 게 나았다.
“예카테리나로 가자.”
“네.”
에단은 대충 예리카의 가명을 지어 주었다.
15층에 올라서며 미르학은 에단에게 자신 있다는 듯이 말했다.
“담당자가 까다롭다고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제가 있으니까요.”
“아마 잘 안 될 겁니다.”
“예?”
“제가 아는 사람이 인증 심사관으로 있는 거라면, 아마 가넷 상단의 이름을 대도 잘 안될 겁니다.”
“아, 아니요. 그럴 리가요? 가넷이 지금 마법 협회에 대는 물건들만 해도 수십 가지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협회에 꼭 필요한 것들이죠! 저희 가넷이 직접 보증하는 사람의 마법 등록입니다. 정말 타당한 이유가 아닌 이상 무조건 허가해 줄 겁니다.”
미르학이 힘주어 말했다.
“그리고 전 가넷 상단을 대표해서 왔습니다. 가넷이 마법 협회에 행사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대리해서 온 겁니다.”
“다행이군요. 그러면 뒷감당을 부탁드립니다.”
“뒷감당이요?”
에단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다시 15층에 돌아온 스칼렛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의 마법을 훔치고 내쫓았던 마법사들이 그대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에단은 스칼렛의 시선을 따라갔다.
‘역시 저놈이 담당자로군.’
말총머리에 화살표 같은 수염을 가진 마법사였다.
외눈 안경을 끼고 있어 꽤나 인텔리한 모습이었지만 에단은 그의 본성을 알고 있었다.
‘도둑놈.’
저 자리에 앉아 수많은 마법들을 빼앗고 뒷돈을 챙기는 놈이었다.
에단은 그를 보며 씩 웃었다.
“하, 이거 참. 도대체 이번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몇 번이나 쫓아냈는데. 아니, 말했잖나! 당신 마법은 이미 있는 마법이라니까? 이미 등록된 마법에 수준도 낮은데, 우리가 빼앗긴 뭘 빼앗아?”
말총머리 마법사가 한숨을 내쉬며 스칼렛을 보았다.
그대로 흥분을 토해 내려던 스칼렛이 꾹 참고 뒤로 물러섰다. 협회에 들어오고 난 이후 모든 건 에단이 맡아 처리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저 마법사의 헛소리만 듣고 데리고 온 건가? 당장 나가도록! 우리는 확실한 마법이 아니면 절대 등록해 주지 않아.”
“에단 휘커스라고 합니다.”
본래라면 이름 모를 귀족인 에단을 콧방귀를 뀌며 함께 내쫓았을 말총머리 마법사다. 하지만 무언가 떠오른 듯,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에단을 보았다.
“혹시 그 에단 휘커스 님이십니까?”
에단의 높은 명성이 작용했다.
아카데미에서 꽤 쌓아 놓은 명성 덕분에 말총머리 마법사가 금방 에단을 알아본 것이다.
에단이 짤막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이어 미르학을 소개했다.
“이쪽은 가넷 상단에서 오신 대리인이십니다.”
“오, 가넷 상단에서 오신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마법 협회에서 마법 등록을 맡고 있는 인증 심사관 트레시스라고 합니다.”
미르학을 소개하자 그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미르학은 그제야 잘 안될 거라던 에단의 말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저희 가넷의 손님께서 협회에 마법을 하나 등록하려고 오셨습니다.”
“그럼 저 애송이 마법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신 거지요?”
“마법을 빼앗겼다 들어 그 사정을 들어 볼까 하고 왔습니다.”
“거참, 여긴 마법 협회입니다, 마법 협회. 수많은 마탑이 속한 협회고, 협회장님께서는 7서클의 대마법사이십니다. 그 미친 마법사 헤카테를 벌할 때도 그 선봉에 섰던 게 우리 협회인데,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 말에 예리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한 방 갈기고 싶은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오해라는 거군요.”
“오해고말고요. 후, 일단 데리고 들어오셨다니 당장 쫓아내진 않겠는데. 저런 질 나쁜 것들에게 걸려들지 마십시오.”
트레시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등록하시려는 마법은 어떤 건지요? 서류는 다 가지고 오셨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에단이 곧바로 양피지를 내밀었다. 클린 마법이 상세하게 적혀 있는 양피지였다.
트레시스는 에단이 건넨 양피지를 상세히 읽었다.
“응? 모든 오염 물질을 지워 준다고……?”
트레시스의 눈이 빛났다. 한없이 탐욕에 물든 눈빛이었다.
“으으음, 일단 인증 심사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마시길. 이 정도의 마법은 어디에나 있고, 특히 이런 클린 마법은 너무 흔하니까요. 인증이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하시지요.”
에단은 그 눈빛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해 먹겠군.’
척 봐도 알 수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시지요.”
마법 인증 심사는 두 번의 과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서류 심사고 두 번째는 실기 심사였다.
서류 심사에 제출할 서류엔 마법의 내용과 술식에 대해서 자세히 써야 했기에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당연히 훔치기가 용이했다.
‘기대하마.’
* * *
“크크크크, 염색 마법에 클린 마법이라. 이런 좋은 마법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면 돈방석에 앉는 건 시간문제지. 거기다 이 마법들을 제대로 팔면…… 협회에서 더 높은 자리를 약속받을 수 있다.”
트레시스는 단꿈을 꾸며 비열하게 웃었다.
“그래도 의심을 받을 것 같긴 한데.”
바로 직전에 스칼렛 생 피에르의 뛰어난 염색 마법을 일부러 거절했다.
그리고 새로운 마법사를 대동해서 그 마법의 저작 등록을 완료했다. 마법을 등록한 마법사는 트레시스가 믿을 수 있는 마법사였다.
꽤 오랫동안 이런 일에 함께했기 때문에 그쪽도 이 일로 벌어먹는 게 굉장히 많았다.
“가넷 상단이 조금 걸리긴 하지만…….”
가넷 상단은 마법 협회와 꽤 긴밀한 사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갑은 협회였다.
협회와의 인맥을 통해 가넷 상단이 꽤 얻어 가는 게 많았기에, 이번 일이 크게 잘못되지 않는 이상 가넷도 뭐라 불평하진 못할 것이다.
“어차피 그래 봤자 클린 마법이잖아. 흔하디흔한.”
어차피 클린 마법이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거기다 이런 서류, 믿을 수가 없다고. 어디 마탑 소속도 아니고 호위 마법사잖아. 예카테리나?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야.”
물론 이 호위 마법사가 호위하는 게 에단 휘커스긴 했다.
명성 높은 검사이자 명문 이베카 아카데미의 교사.
혹시 일이 커지면 곤란해질 수도 있긴 하다.
‘그래 봤자 클린 마법이니까.’
마법의 가치를 아는 건 마법사뿐이다.
에단 휘커스가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다곤 하지만 결국 검사 아닌가.
허리춤에 달린 두 자루의 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불합격] 인증 마크를 찍은 트레시스가 곧장 작업을 시작했다. 서류를 준비해서 클린 마법을 깔끔하게 빼앗을 생각이었다.
꽤 오랜 시간을 협회의 인증 심사관으로 보내 왔기에 마법의 저작권을 가로채는 건 아주 쉬웠다.
“심사 결과는 나왔습니까?”
그때 에단이 들어왔다.
트레시스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곤 양피지를 건네며 말했다.
“심사 결과입니다. 클린 마법은 너무 흔한 마법이라 인증이 안 됩니다. 뭐, 대단한 마법이라면 인증이 가능하겠지만, 이 정도 마법은 너무 차고 넘치는지라…….”
“차고 넘친다고? 확실히 읽은 거 맞습니까?”
에단이 목소리를 높이자 트레시스가 손을 휘휘 저었다.
“진정하시지요. 명망 높은 기사께서 목소리를 높이시다니. 여긴 마법 협회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흔한 마법이라 등록이 안 된다는 말입니까?”
“예, 바로 그겁니다.”
트레시스가 안타깝다는 듯 작위적인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안녕히 가시지요.”
에단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트레시스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래 봤자 저 검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설마하니 깽판이라도 치면서 그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진 않을 테니.
생각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뒷감당을 생각하지 않고 움직일 리가…….
“도둑놈답군.”
에단이 씩 웃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뭐, 뭐요? 지금 뭐라고……?”
“슈들렌!”
“예, 에단 님.”
에단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슈들렌을 불렀다. 슈들렌이 일행을 데리고 안쪽으로 들어왔다.
스칼렛까지 들어오자 슈들렌이 자연스럽게 15층 마법 인증 센터의 문을 닫고 잠갔다.
철컥-!
“저 양아치 같은 마법사분께 예의를 좀 주입시켜 드려라. 예카테리나의 이 클린 마법이 평범하다고 하시는군. 분명 수없이 마법을 봐 왔으니 보는 눈은 확실하실 텐데 말이야. 특히 눈 위주로 좀.”
“예!”
슈들렌이 무기조차 뽑지 않고 트레시스에게 다가갔다.
“내가 휘커스 영지의 예의 주입기 슈들렌이다.”
“예, 예의 주입기? 그따위 별명을 누가……!”
“지금, 내가 지었어.”
슈들렌이 미소 지으며 목을 양옆으로 꺾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느낀 트레시스가 곧장 허리춤의 지팡이를 들었다.
방어 마법을 활성화시키려고 했지만 그보다 슈들렌이 빨랐다.
순식간에 멱살을 잡힌 트레시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는 건가! 여긴 마법 협회다! 너희들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미르학 님.”
에단이 미르학을 보았다.
미르학은 에단이 해 달라고 했던 뒷감당이 이런 건지 몰랐다는 듯이 두 눈을 껌뻑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협회도 고작 마법사 하나 정도로 가넷과 척질 생각은 없을 것이다.
가넷 상단과 협회와의 관계는 그리 가볍지 않으니까.
“저희 가넷이 책임지겠습니다.”
“예카테리나, 들었지?”
“네, 들었어요.”
예리카는 아까부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슈들렌, 예카테리나. 딱 죽지 않을 정도로, 예의만 주입시켜 드려라.”
“예!”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