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7)
신들의 구독자 167화
167화. 동맹
“저희가…… 주인이요?”
“그래.”
에단의 답에 마라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저희는…….”
“마라칸, 속성 부여에 관해선 당신이 최고 아닌가?”
“……그런 자신감은 있습니다.”
“스칼렛, 염색 마법에 관해선 스칼렛이 제일 아닙니까?”
잠시 고민하던 스칼렛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륙에 저보다 색과 염색 마법에 능통한 마법사는 없다고 생각해요.”
에단이 다른 마법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다들 마찬가지로 자신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럼 답이 나왔지. 여러분이 에단 공방의 주인이 되어야겠지. 공방의 주인이니 그 권한은 전적으로 여러분에게 돌아가게 될 거야.”
“저희가……주인이 되는 겁니까? 공방 하나를 이끌어 가는 주인이……?”
다들 어리벙벙한 얼굴들이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군요. 그래서 저희에게 기대하시고 계셨던 거군요.”
마법사들도 에단의 뜻을 이해했다.
그는 지금의 규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법사들 개개인의 기준에서 엄청난 결과였지만, 에단의 기준에서 이건 첫걸음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걸음은 자신들과 함께 걸으려 하고 있다.
“주신 기회를 절대 허비하지 않겠습니다.”
“공방, 맡겨만 주십시오!”
마법사들이 결심을 다졌다.
* * *
“알겠소, 그렇게 합시다.”
“좋은 선택을 하신 겁니다, 훈타 백작.”
휘커스 백작과 훈타 백작이 손을 맞잡았다.
협상은 꽤 길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휘커스 영지는 주변 영지로 퍼져야 할 유동 인구를 전부 다 흡수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주변의 영지들이 저마다 곤란을 겪고 있었다.
작은 영지들이야 휘커스 백작과 총관의 수완으로 아예 휘커스 영지에 편입시킬 수 있었지만 큰 영지들은 그러기가 힘들었다.
특히 훈타 영지가 그랬다.
훈타 영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휘커스 영지보다 급이 높았던 영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작은 영지들처럼 흡수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랬기에 휘커스 백작은 거래 조건을 내걸었다.
이들이 지금 걱정하고 있는 건 계속해서 줄어드는 영지의 수입이었다.
그러니 영지 내에 경량화 공방의 분점을 내 주는 조건으로 일정 수익을 분배하기로 했다.
‘속성 부여와 염색 마법은 오로지 휘커스 영지에서만 할 수 있으니까.’
“급하긴 급한가 봅니다. 가지고 있던 땅들을 다 내주다니.”
“당연한 일이야. 훈타 백작이 대놓고 우리를 삼키려 든 건 아니지만 우리가 고꾸라지면 언제든지 영지를 흡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때문에 훈타 백작은 휘커스 영지 근처 여러 땅을 사 놓은 상태였다.
휘커스 백작은 이번 거래를 통해 그 땅들을 전부 양수했다.
덕분에 영지의 규모를 한층 더 키울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훈타 백작이 준비하던 것을 이쪽에서 진행하기에도 유리해진 상태였다.
“최종적으로는 그 땅에 길을 뚫어 훈타 백작령과 연결할 생각이었겠지.”
그게 훈타 백작의 최종 목표였다.
하지만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두 영지의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었으니, 훈타 백작의 오랜 계획은 고스란히 휘커스 백작령의 발전을 위한 발판이 되었다.
“우리 영지가 훈타 백작령과 연결되는 거지. 그렇다면 오래지 않아 훈타 백작령은 우리 휘커스의 아래로 들어오게 될 거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필시 주변에서 견제가 들어올 겁니다.”
휘커스 영지 주변에는 대영주가 둘 있었다.
막대한 부를 자랑하는 유라한 백작가.
그리고 십이성의 일원인 드렌 후작가.
“드렌은 어차피 하늘 위에 하늘이니 제쳐 둔다고 해도, 저희가 훈타 영지를 흡수하게 되면 유라한 영지 못지않은 규모가 됩니다. 필시 견제가 들어올 것입니다.”
“그렇지, 그러니 미리 준비를 해 둬야 해. 영지로 돌아가자마자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유라한 백작을 어떻게 구워삶을지 말이야.”
이후 영지로 되돌아 온 두 사람은 반가운 얼굴을 맞이했다.
“에단!”
“오랜만입니다, 아버지, 총관님.”
“언제 오신 겁니까? 하하하! 마침 좋은 소식이 생긴 참에 오시다니.”
총관이 밝게 웃으며 이번 성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럼 영지의 규모가 유라한 영지만큼 커지겠군요. 유라한 백작은 그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거고.”
에단의 말에 휘커스 백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견제 없이 무척 순조롭게 성장해 왔지만, 이제는 달랐다.
기득권을 가지고 있던 대영주들이 순순히 자리를 내놓을 리가 없으니까.
한편 총관은 곧바로 상황을 꿰뚫어 보는 에단에게 감탄했다.
“예, 맞습니다. 그때부터는 꽤나 힘들어질 겁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요. 과거의 전통과 힘을 그대로 지금까지 이어 온 가문이니, 저희 같은 경쟁 상대가 생기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렇게 되면 지금 같은 성장 속도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거다, 에단.”
“그것 때문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아버지.”
“응? 그게 무슨? 설마 방도를 생각해 둔 거냐?”
“네.”
에단이 씩 웃으며 말했다.
“간단한 방법입니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거죠.”
* * *
유라한 영지.
에단이 경량화 공방 사업을 막 진행했을 때 발톱을 드러냈던 유라한 백작이 다스리는 곳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라한 백작님.”
“오랜만일세. 이거 참, 완전히 달라졌군, 에단 공자!”
유라한 백작이 에단을 반갑게 맞이했다.
“칭찬 감사드립니다, 백작님.”
“그 짧은 사이에 휘커스 영지를 그렇게나 크게 끌어올리다니! 백작의 공도 컸겠지만 자네의 사업 수완이 대단했어! 경량화 공방에 이어서 속성 부여에 염색 마법까지!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어찌 그리 잘 사업을 진행하는지! 하하하-!”
유라한 백작은 완벽한 표정 관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속은 쓰렸다.
에단은 그런 유라한 백작의 속내를 아주 잘 알았다.
‘그럴 수밖에. 훈타 영지와 마찬가로 유라한 백작령도 우리 영지에 유동 인구를 흡수당하고 있으니까.’
본래 들어와야 할 세금이 절반, 아니, 그보다 더 줄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악순환이 계속된다.
‘유라한 백작은 드렌 후작 가문과 좋은 관계를 맺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태여서야 드렌 후작 가문에선 거들떠보지도 않겠지.’
드렌 후작 가문과 좋은 관계를 맺고, 나아가 십이성의 일원 혹은 그에 준하는 가문이 되는 것.
그게 바로 유라한 백작의 야망이었다.
‘그럼 그 야망을 건드려 주면 되는 거야.’
그가 가지고 있는 야망을 희망으로 바꿔 주면 된다.
그 희망의 끈은 에단이 쥐고 있으니까.
“유라한 백작님, 저희 영지 때문에 골머리가 아프시지요?”
에단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유라한 백작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대답하기가 상당히 애매했다.
휘커스 영지 때문에 세금이 줄었다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하고, 아니라고 하기엔 뻔히 눈에 보이는 게 있으니.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에단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미소에 유라한 백작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휘커스 영지는 최근 들어 유례가 없다 할 만큼 급성장하고 있다. 그 주역이 바로 눈앞에 있는 에단 휘커스.
반짝하는 정도가 아니다. 에단의 사업은 이 지방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 덩치는 유라한 영지와 비슷해질 터.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두 영지는 경쟁 구도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유라한 백작은 현재 이 지방의 맹주라는 입지를 공고히 다지고 보다 위로 올라가길 원하고 있었다.
그런 유라한 백작의 입장에선 바짝 뒤를 추격해 오는 휘커스 백작령과의 싸움은 필연적인 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 직설적으로 말하며 웃는다고?
유라한 백작은 순간 등 뒤에 식은땀이 났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첫 만남에서도 느꼈지만 에단은 정말 예측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유라한 백작을 앞에 두고 에단은 상황을 심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에단의 사업은 순풍에 탄 돛단배처럼 훨훨 날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변 영지의 수익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영지와의 문제는 휘커스 백작이 잘 해결해 왔지만, 유라한 백작과의 문제는 쉽사리 해결할 수 있을 만한 게 아니다.
하지만 에단은 애초에 그런 상황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
‘유라한 백작과 정면 대결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아니, 상대가 누구든 쓸데없이 싸우는 건 이득이 되지 않아.’
해 봐서 안다.
싸워서 쟁탈하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모든 걸 삼키는 게 훨씬 더 크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물론 유라한 백작 가문과 싸운다 해도 휘커스 영지가 질 일은 없다.
‘당연히 이기겠지. 하지만 싸워서 이기는 건 얻는 게 너무 적다.’
유라한 백작은 절대로 쉽게 모든 걸 내줄 사람이 아니다. 승리해도 얻을 수 있는 게 적다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
‘그 저력은 내가 잘 알아.’
유라한 백작 가문은 메판이 끝나는 시점에도 온전히 유지되는 가문이다.
‘오랜 전통을 이어가는 가문들의 특징이지.’
그렇기 때문에 에단은 유라한 백작을 이쪽으로 확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적을 만들지 않는 플레이가 가장 현명하지만, 중립이었던 세력이 적으로 돌아설 기미가 보인다면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편이 좋았다.
그랬기에 에단은 미소로 모든 걸 숨겼다.
“그래서 찾아왔다니? 그게 무슨 의미지, 에단 군?”
“유라한 백작령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영지. 오래도록 이 지방의 중심이었었죠. 몬스터 침공이 일어났을 때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말입니다. 지금이야 영지 간의 교류가 적어졌지만, 그 당시에는 유라한 백작 가문이 중심이 되어 선봉에 서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직도 이 지방의 맹주는 유라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님이라고 생각합니다.”
훈타 백작가, 휘커스 백작가를 비롯해 이 지역의 여러 가문이 연합했을 때에도 항상 맹주는 유라한 가문이었다.
“드렌 후작 가문은 우리의 정통이 아니지 않습니까? 굴러들어 온 돌이지.”
에단의 말에 유라한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우리의 정통’이라는 말에 유라한 백작 가문과 다른 가문들을 하나로 묶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언제부터 그들이 이 지방을 대표하게 됐습니까? 원래는 유라한 아니었습니까?”
“……사업 얘기를 하러 온 거 아니었나?”
“네, 그 연장선입니다, 유라한 백작님.”
에단의 과감한 말솜씨에 동석한 휘커스 백작과 총관은 절로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무척이나 민감한 주제이거늘.
하지만 마침 백작 자신이 가장 고민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니, 유라한 백작은 섣불리 화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여러 사업을 성공시킨 에단의 명성도 영향을 줬겠지만 그보다도 에단이 짜 놓은 판이 꽤나 훌륭했다.
“그래, 자네의 말대로야. 하지만 다 과거의 일이지. 드렌 후작가는 십이성의 일원일세.”
“하지만 허리를 굽히고 싶으신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에단의 말에 유라한 백작이 한껏 인상을 썼다. 그는 굽힐 생각이었다. 지금 당장의 굴욕이야 어떻게든 버티고 힘을 키울 생각이었다.
그랬기에 에단의 말이 더욱더 비수로 다가왔다. 굴욕을 남이 들추는 것만큼이나 창피한 일은 없었다.
“굳이 굽히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뭐?”
“동맹을 제안하러 왔습니다, 유라한 백작님.”
에단이 손을 내밀었다. 순간 유라한 백작의 심장이 뛰었다.
“저희 휘커스의 목적이 단순히 크게 성장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우리가 친밀한 사이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지방이 공격받을 땐 하나로 뭉쳐서 싸웠습니다. 그러니 함께 가자는 거지요.”
“함께……?”
“예, 함께.”
술술 나오는 말에 유라한 백작의 눈동자가 계속해서 흔들렸다.
“함께 성장해 보시죠, 유라한 백작님. 저희끼리 동맹을 맺어 드렌 후작가에 대항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겠네.”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 * *
유라한 백작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처음 에단 휘커스를 만났을 때, 그는 다비드 상단과 일하게 됐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때 감이 왔었다.
“정말 다비드 상단과 일하고 있었지.”
안 좋은 예감이 그대로 들어맞았으니, 섣불리 건드리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도 했었다.
“드렌 후작가에 허리를 숙이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에단은 연합 동맹을 제안했다. 물론 이 연합 동맹이 단순히 호의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시간을 벌려는 겁니다. 동맹을 맺게 되면 도의상 그들이 성장하는 걸 바라만 봐야 하니까요. 결국 휘커스는 우리보다 덩치가 커질 테고, 그때가 되면 동맹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할 겁니다. 어쩌면…….”
유라한 백작가의 총관이 인상을 썼다.
“드렌 후작가와 휘커스 백작가가 동시에 저희를 압박해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선지 유라한 백작의 감은 이 동맹을 받아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잠시 눈을 감고 고민에 빠졌던 유라한 백작은 눈을 뜨며 결정했다.
“나는 내 감을 믿는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야.”
* * *
“받아들일까 모르겠군.”
영지로 돌아온 휘커스 백작과 그의 총관은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라한 백작은 현명한 인물입니다. 저희가 어떤 의미로 동맹을 제안했는지 간파했을 겁니다.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하지만…… 매력적인 제안인 건 틀림없지.”
“탁월한 제안이었습니다. 에단 공자님이 계속해서 성장하시는군요. 무서울 정도입니다.”
백작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날 닮은 거지.”
총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백작을 보았다.
“양심에 손을 얹고 말씀하십시오.”
“닮긴 닮았잖나.”
똑똑-.
“보고드립니다.”
“들어와.”
들어온 부하가 곧바로 백작에게 양피지를 건넸다.
“유라한 백작님의 서신입니다.”
곧바로 열어 본 백작은 히죽 미소 지었다.
“동맹 계약서로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