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168)
신들의 구독자 168화
168화. 정령사의 탑 (1)
“당연히 받아들이겠지. 볼 필요도 없어.”
유라한 백작은 현명한 사람이다.
에단은 그 현명함을 믿었다.
‘지금 당장 영지에 남아서 할 일은 없다. 어서 빨리 다른 일을 하러 가야지.’
영지에서의 일을 끝낸 에단은 곧바로 남부로 향했다.
“퀘스트를 진행해야지. 꽤 오래 미뤄 뒀던 퀘스트 말이야.”
프로체슈트.
이곳은 남부에서도 꽤나 유명한 도시였다.
남부의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바다를 끼고 있고 사시사철 날씨도 좋아 모두가 이곳으로 휴양을 하러 오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 프로체슈트는 남부에서도 유독 유명한 곳이었으니, 일반적인 남부 도시에는 없는 특별한 곳이 있었다.
‘남부 제일의 마탑. 게다가 남부에 유일한 정령사의 탑이 있지.’
프로체슈트 마탑이라 불리는 곳으로, 정령사의 탑과 마법사의 탑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그 두 개의 탑을 거대한 정령 숲이 감싸 안고 있는 형태로, 그 규모는 단연 남부 제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프로체슈트 마탑은 그 규모와 달리 그다지 명성이 높은 마탑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프로체슈트 마탑이라고 하면 다들 알아줬다고 하던데 말이야.’
마법사의 탑은 아직 건재했다. 문제는 정령사의 탑이었다.
‘어느 사건이 터졌고, 그 일을 기점으로 정령들이 이 정령 숲을 찾지 않게 됐어. 그 후로 새로운 정령사들이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가 없게 됐지.’
그 때문에 정령사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이 이곳에 오길 꺼리게 됐고 마탑 역시 자연스럽게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기존의 정령사들이야 이미 정령과 계약을 맺었으니 상관없겠지. 하지만 새로운 정령사들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정령들과 계약하지 못하게 됐으니.’
그랬기에 정령사의 탑은 점점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고, 프로체슈트 마탑 또한 마법사의 탑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본래 정령사들의 힘이 강했던 곳.
정령사의 탑이 힘을 못 쓰니 예전과 같은 힘이 나오지 않았고, 그 규모와 역사에 걸맞지 않게 점차 다른 정령사의 탑에 밀리기 시작했다.
‘프로체슈트는 결국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계속해서 쇠락을 거듭한다.’
그로 인해 메판에선 프로체슈트의 부흥을 이끄는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난이도가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보상이 워낙 좋아 필수 퀘스트 중 하나였다.
‘그 보상 중에 유독 큰 게 있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있기에 다들 이 프로체슈트 부흥 퀘스트를 했었다.
‘그 보상을 제쳐 두더라도, 일단 여기서 정령을 얻는다.’
그럼 두 가지 일이 처리된다.
하나는 에단 휘커스로 살아남기 세 번째 퀘스트.
그리고 두 번째는 절멸증의 단점 보완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정령 계약을 맺으러 왔습니다.”
“예?”
에단의 말에 정령사의 탑 문지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자신이 제대로 들은 건가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저, 저, 예비 정령사님, 불쾌하게 여기지 말고 들으십시오. 솔직히 말씀드려 저희 남부 정령사의 탑에선 정령과 계약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문지기가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령사의 탑의 탑주였던 사람이 대정령과 트러블이 생긴 이후로 정령들은 이제 더 이상 여기에 오지 않습니다. 중급 이상의 정령은 기대할 수도 없고 그나마 발견되는 초급 정령도 대부분 힘이 약하고 다루기 어려운 정령만 옵니다.”
계약을 맺는 게 오히려 해가 될 정도의 정령만이 이곳을 찾는다는 말.
“솔직하시군요.”
에단의 말에 문지기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라고 제 고향을 이렇게 말하는 게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보아하니 앞날이 창창해 보이시는 분 같아서 걱정되어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문지기가 정령을 소환해 냈다.
아주 자그마한 크기에 소통이 힘들어 보이는 초급 정령이었지만 확실히 정령이었다.
“정령사시군요?”
“정령사라고 불릴 정도는 아닙니다. 정령을 좋아할 뿐이죠. 재능은 없습니다만, 그래도 저는 정령사들을 항상 동지라고 생각합니다.”
문지기가 슬쩍 미소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남부 정령사의 탑에서 정령 계약을 맺는 초급 정령사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재능이 어떻든 간에 다른 정령사의 탑을 이용하면 더 괜찮은 정령과 계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에단은 그런 문지기를 보며 미소 지었다.
“걱정 마십시오.”
“네?”
의아한 표정의 문지기.
에단은 확신을 담아 말했다.
“다 알고 왔습니다.”
이미 다 알고 왔다.
* * *
“죄송한 말씀이지만…….”
정령사의 탑 1층.
초급 정령사는 모두 떠나서 없고, 사실상 이곳에 남은 대다수의 정령사들이 중급 이상의 정령사들이었다.
1층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레제르비 또한 10년의 경험이 있는 중급 정령사였다.
그런 레제르비는 오랜만에 찾아온 손님에게 문지기와 같은 말을 내뱉었다.
“좋은 정령과 계약하시려면 중앙 쪽으로 가시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추천드리는 정령사의 탑은…….”
“어?”
그때 탑 안쪽에서 걸어 나오던 한 소녀가 에단을 보았다.
“오랜만이구나, 로안나.”
에단이 인사를 건넸다.
로안나 프로체슈트.
그녀가 바로 이 프로체슈트 부흥 퀘스트에서 얻을 수 있는 크나큰 보상 중 하나였다.
아카데미 쪽으로 시작하지 않았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마법사 동료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게 바로 그녀니까 말이다.
갑작스런 에단의 등장에 로안나 드 프로체슈트가 당황한 듯 발을 동동 굴렀다.
왜 에단이 여기에 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왜 선생님이 여기에 계세요?”
“선생님?”
레제르비가 에단을 보았다.
몰락한 남부 정령사의 탑을 찾아와 정령 계약을 맺겠다고 한 사람이 로안나의 선생님이라니?
그렇다면…….
“혹시……!”
레제르비의 말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 휘커스입니다.”
에단이 자신을 소개하자, 레제르비가 놀라서 다급히 말을 쏟아냈다.
“로, 로안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이베카에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는데 엄청난 분이시라고 로안나가 엄청 칭찬하더군요! 본래 아카데미 얘기를 하는 편이 아니던 애인데 말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로안나가 저에 대해서 좋은 말을 많이 했나 봅니다.”
에단이 슬쩍 로안나를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여기는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선생님? 혹시.”
“가정 방문은 아니다.”
이곳은 로안나의 집이었다.
“정령 계약을 맺으러 왔거든.”
“네? 저희 마탑에서 정령 계약을요?”
로안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로 오셨어요?”
프로체슈트 가문의 일원인 그녀였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저희 마탑 망했는데요…….”
로안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레제르비 또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기에 무어라 변명할 구석도 없었다.
“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러 왔는데.”
“네?”
“탑주님을 뵐 수 있을까, 로안나?”
* * *
“정말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에단 선생님.”
프로체슈트 마탑의 주인이자 프로체슈트 영지의 주인인 미카엘 프로체슈트가 정중하게 에단을 맞이했다.
“저희 로안나가 폐를 끼쳤다고 들었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셨다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드리죠. 따님은 굉장히 훌륭한 학생입니다. 탁월한 재능, 이해력, 그리고 도전 정신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그런 로안나를 이베카 아카데미에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로안나는 이베카 아카데미의 새로운 희망이 될 겁니다.”
에단은 로안나에 대해서 꽤나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공치사가 아니라 사실에 기반한 칭찬을 계속하니 인자해 보이는 미카엘 탑주의 입꼬리가 씰룩대더니 이내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하하핫-! 과찬이십니다, 과찬!”
그렇게 말하면서도 굉장히 뿌듯해 보였다.
“흠흠, 가정 방문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이렇게나 제 딸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주시다니.”
미카엘 탑주는 이베카 쪽 이야기를 다 알고 있었다.
딸인 로안나에게 들은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따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있었다.
아카데미에 자식을 보낸 학부모 입장에선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에단이 이베카에서 어느 정도 위치인지도 잘 알았다.
신입 교사 중 제일.
아니, 이베카 역사에 길이 남을 정도로 대단한 교사라고 들었다. 그런 교사가 로안나를 이리도 특별히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로안나가 아마 이야기했을 테지만, 로안나 양을 제 다음 수업의 조교로 삼기로 했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희 딸아이를 그렇게 좋게 봐주시다니.”
흐뭇하게 웃으며 답하던 탑주가 이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저희 마탑에 정령 계약을 맺으러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정도 다 알고 오셨다죠. 다 알고 오셨다면 더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군요. 저희 마탑은 일련의 사건 때문에 더 이상 좋은 정령이 오지 않는 죽은 땅이 되었습니다.”
탑주가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프로체슈트엔 더 이상 정령과 계약을 맺고자 하는 이들이 오지 않습니다. 전문 정령사도, 마법사도 이젠 오지 않지요. 죽은 땅이라는 소문에 혹여나 어둠 계열의 정령과 계약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 찾아오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이곳은 말 그대로 정령들이 찾지 않는 땅이라…….”
어둠 계열이든 무슨 계열이든 정령이 찾지 않는 곳이라 아예 정령 계약 자체가 불가능했다.
“망해 버린 정령 탑의 주인입니다만, 그래도 아직 이름값은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 추천서 정도는 써 드릴 수 있습니다. 정령 계약을 원하신다면 중앙에 있는 탑으로…….”
“프로체슈트 탑주님.”
에단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이 죽은 땅을 되살리러 왔습니다.”
“……예?”
눈이 휘둥그레진 프로체슈트 탑주.
하지만 그는 이내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
이미 뭔가를 하기에 늦어 버린 상황이라며 탑주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에단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어째서 이 땅이 죽은 땅이 되었는지.
그 일련의 사건을 수습하고 이전과 같은 땅으로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단은 메판을 플레이하면서 이 프로체슈트 마탑 부흥 퀘스트를 수없이 많이 깨 보았기에 자신감이 넘쳤다.
‘여기에도 업적이 굉장히 많아.’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요……?”
여전히 프로체슈트 탑주는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가능하다 말했다. 하지만 전부 불가능으로 끝이 났다.
“예전처럼 정령들이 가득한 땅으로 되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고 했던 이들은 싹 다 사기꾼들이었다.
몇 번 속다 보니 프로체슈트 탑주는 이 건에 대해서 무척이나 예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에단이 로안나의 선생이 아니었다면 이야기를 들어 보지도 않고 쫓아냈을 것이다.
“……어떤 방법입니까?”
“물론 그냥 해 드리는 건 아닙니다.”
물론 이 모든 걸 그저 선의로만 행할 생각은 없었다.
“제가 원하는 건…….”
에단의 말을 들은 프로체슈트 탑주가 입을 쩍 벌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