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11)
신들의 구독자 211화
211화. 르기아의 방식
르기아의 방은 신입 교사들이 배정받은 방보다 훨씬 컸다. 화려한 장식과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가구들.
그 가운데 짙은 갈색의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다른 화려한 가구들에 비하면 굉장히 소박한 디자인이라 이질적인 감각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르기아는 그 의자에 앉은 채 탁자 위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옆모습으로 힐끗 보이는 새하얀 머리칼과 새카만 수염.
메판에서야 수없이 봤지만 이 세계에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재밌는 일이군. 설마하니 자네가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르기아는 들고 있던 깃펜을 내려놓고 천천히 에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젊군.’
꼬장꼬장한 눈과 큰 코, 그리고 깊게 파인 팔자 주름까지.
에단이 기억하는 모습보다는 훨씬 젊었지만 눈앞의 노인은 분명 르기아 말체르였다.
이렇게 실제로 보니 굉장히 반가웠다. 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은 그리 반갑지가 않았다.
‘눈빛만 봐도 알겠군. 전혀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있어.’
예상했던 대로 르기아는 에단에게 그리 긍정적인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개인 탁자와 의자를 챙겨 온 걸 보니 황궁의 일이 여러모로 바쁜 것 같고. 근데도 날 보러 여기까지 왔다는 건…….’
여기서 확실하게 처리하고 갈 생각이라는 뜻이다.
‘이거, 대충 넘기려다간 큰일 날 뻔했군.’
에단은 이어 와룡시로 르기아를 관찰했다.
르기아에게는 특유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는 항상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을 보였는데, 전에는 그저 높은 경지라 생각만 했을 뿐이었으니, 정작 그가 얼마나 높은 경지에 올라 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메판에서 본 르기아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은데? 아니야,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거군.’
지금 에단은 절멸증 때문에 육체가 약할 뿐, 상대의 수준을 간파하는 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 향상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메판에선 볼 수 없었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고 있었다.
르기아가 오른 경지는 에단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황궁의 수많은 실력자들 사이에서 어중간한 힘으로는 살아남기 힘들 테지. 아무리 뒷배가 든든해도 정작 본인이 힘이 없으면 갑작스런 위험에 대처할 수 없을 테니까.’
순간 긴장이 되긴 했지만 에단은 태연했다.
어차피 눈앞의 르기아는 젊긴 해도 에단이 아주 잘 알고 있는 르기아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니 자신이 잘 대처한다면 절대로 르기아에게 죽을 일은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르기아 님. 에단 휘커스라고 합니다.”
에단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양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제 동기 중에 선생님 중에 시론 램스데일이라는 선생님이 계십니다. 램스데일의 가주님이신 검성님의 손자분이신데, 그분을 통해 르기아 님이 저를 만나러 이번 신입 교사 연수회에 참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르기아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얼마나 영광이던지요. 황궁까지 제 이야기가 퍼졌나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르기아 님께서 저를 만나러 여기까지 와 주셨다 하니 가슴이 참으로 두근거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인 것 같아 이렇게 왔습니다.”
정말 신입 교사처럼 보이는 말투와 태도였다.
르기아는 분명 에단을 두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
적어도 이베카 아카데미의 신입 교사가 진짜 신분이 아니라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그 의심을 푸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에단은 우선 자연스럽게 칭찬으로 시작했다.
“르기아 님,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뻔한 이야기로 칭찬해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도서관의 사서 중에 르기아 님의 업적을 엮여서 책으로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는 르기아 님의 업적이 담긴 그 책들을 읽으면서 교사의 꿈을 키워 왔습니다. 혹시나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이 굉장히 아팠었거든요.”
르기아가 지금 자신을 의심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르기아는 본인의 교육 방식이 유출됐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에단이 그 방식을 빼돌려 마음대로 사용한다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마따나 에단이 달의 추종자 혹은 마도 제국의 끄나풀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 여기에 오면서 에단에 대한 정보들을 싹 다 수집했을 터. 그러니 확실한 진실에 은근한 거짓을 섞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르기아 님의 책을 구해 읽었습니다. 그 책 중 하나엔 르기아 님이 고기 파이를 굉장히 좋아하신다고 적혀 있더군요. 그래서 저도 안베리 마을에 가서 르기아 님이 극찬하신 고기 파이를 직접 먹어 보기도 했었습니다.”
“……안베리에 갔다고?”
“예, 직접 가서 향신료 듬뿍 고기 파이를 먹었습니다.”
“……흠.”
안베리는 자그마하지만 유명한 식당이 있는 마을이었다.
르기아는 가끔씩 그 식당에 가서 고기 파이를 사곤 했다.
평범한 고기 파이가 아니라 향신료가 잔뜩 들어간 고기 파이였는데, 취향이 확실히 갈릴 맛이라 에단은 다신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음식이었다.
“몸이 좋지 않다 보니 다들 말리더군요. 하지만 르기아 님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이란 생각에 먹어 봤습니다만…….”
에단이 미소 지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정말 맛있더군요.”
“그래, 그곳의 고기 파이는 정말 맛이 좋지. 그 책을 쓴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내 취향에 대해선 확실하게 알고 있군.”
한때 르기아의 밑에서 그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했던 에단이었기에 그의 취향에 대해선 굉장히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정도 정보야 황궁 내에선 비밀스러운 것도 아니니까.’
르기아의 취향에 맞춰 공감을 조성한 덕분에 르기아의 빗장이 조금은 풀어진 느낌이었다.
에단이 이어서 말했다.
“르기아 님께서 어렸을 적 자라셨던 그 툰린에도 다녀왔었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관광 도시가 되었더군요. 호수 근처에 있는 티 하우스에 갔었는데, 그곳의 티 맛이 정말 좋더군요. 르기아님이 자주 들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책에 나와 있던가?”
“아니요, 이건 정말 우연히 알게 된 겁니다.”
“흐으으음.”
르기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한 번 더.’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었다. 르기아의 표정이 다시 딱딱하게 굳었다.
“잡담은 이쯤 하지. 사실은 이쪽에서 자네를 먼저 찾으려고 했었네.”
“사실 저도 그걸 여쭤보러 온 겁니다, 르기아 님. 저를 찾아 이번 신입 교사 연수회에 오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떤 이유로 저를 찾으신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에단은 르기아의 열성 팬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르기아는 말을 빙빙 돌리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에단 휘커스 선생. 자네의 그 교육 방식, 누구에게 배운 건가?”
찾아온 이유를 확실하게 말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에단이 곧장 대답했다.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다고?”
“예, 제가 스스로 생각해 낸 방식입니다.”
“재밌군.”
르기아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지방의 귀족가에서 태어나 얼마 전까지 병을 앓던 자네가 스스로 그런 교육 방식을 만들어 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르기아는 단언했다.
“르기아 님, 저로서는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자체가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에단이 그렇게 말하자 르기아가 한껏 인상을 썼다.
“제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겁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르기아 님의 이런 태도는 조금 불쾌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르기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내 소문을 접하기를, 에단 선생의 교육 방식이 내 교육 방식과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네.”
르기아는 그렇게 말하며 방금까지 쓰고 있었던 양피지를 쫙 펼쳐 보였다. 르기아의 키 절반 정도는 될 정도로 긴 길이에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양피지였다.
“마침 정리하고 있던 내 교육 방식과 말이지. 나는 누구에게도 이 방식을 전수해 준 적이 없네. 이건 분명 나만의 방식이다.”
르기아가 힘주어 말했다.
‘인정할 수 없는 거겠지.’
에단은 당황하지 않았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였다.
‘르기아의 교육 방식은 그가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 낸 특유의 방식이야. 나도 처음 봤을 땐 깜짝 놀랐으니까. 그전까지 대륙을 통틀어 르기아와 같은 교육 방식을 보인 이는 단 한 명도 없었어.’
그만큼 독특한 교육 방식이었으니, 황궁의 사람이 아니라면 르기아의 교육 방식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의 가르침을 받은 직속 제자들만이 르기아의 방식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자신이 만든 기술이 유출됐다고 생각하는 거야. 대륙 내에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사용하는 교육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
어마어마한 자신감이었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오만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런 르기아의 주장에 반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르기아 본인 말고는 누구도 이런 방식을 떠올릴 수도, 행동으로 옮길 수도 없다는 소리니까.’
그러니 확신을 가지고 에단을 추궁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만약 세상에 자신의 방식과 동일한 교육 방식이 있다고 한다면, 유출이 아닌 이상에야 결국 르기아처럼 스스로 생각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젊은 나이에 얼마 전까지 병상에 있었던 에단 휘커스가 스스로 그와 같은 방식을 이룩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리라.
사실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했다.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르기아가 오랜 세월 이룩해 낸 교육 방식을 그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내는 건 말이 안 된다.
르기아의 교육 방식은 그가 살아온 삶의 종합체였으니, 그만큼의 경험이 쌓이지 않은 이상 도저히 구상해 낼 수 없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르기아 님의 교육 방식을 훔쳤다, 이 말씀이십니까?”
르기아에게는 권위가 있다. 권위는 그의 주장에 힘을 싣기도 하지만 이렇게 상대를 짓누르는 것 또한 가능하다.
동시에 그가 뿜어내는 저 오라 때문에 몸이 따끔거렸다.
어지간한 이라면 미처 항변도 하지 못한 채 괴로워하며 용서를 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에단은 그의 권위에도, 오라에도 눌리지 않았다.
그런 에단의 모습에 르기아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반응은 처음이었다.
“그럼 직접 보여 드리면 되겠군요. 제가 정말 르기아 님의 교육 방식을 따라 한 건지 말입니다.”
에단이 그 말과 동시에 목검을 꺼내 들었다.
그 자신감 넘치는 태도에 르기아는 오히려 잘됐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양피지를 꺼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슥-. 슥-. 슥-.
“자네가 진정 천재라면, 내 평생을 바쳐 만든 교육 방식을 그 병약한 몸과 빈약한 경험으로 만들어 낸 거라면.”
르기아가 검술의 이론을 적은 양피지를 에단에게 건넸다.
“이 정도는 바로 이해하고 나를 가르칠 수 있겠지?”
양피지를 본 에단의 표정이 굳었다. 그 굳은 표정을 보며 르기아가 피식 웃었다.
-생존 확률이 일시적으로 하락합니다!
르기아는 이미 에단을 믿지 않고 있었다.
‘이 고약한 늙은이가…….’
에단은 순간 저도 모르게 욕을 내뱉을 뻔했다.
설마하니 이걸 가르쳐 보라고 할 줄은 몰랐다.
양피지에 적힌 검술은 르기아가 황궁에서 주력으로 가르치는 검술 중 하나였다.
익히기가 굉장히 어려운 검술 중 하나로, 에단 또한 어렵고 효율이 나오지 않아 배우는 걸 포기한 경험이 있었다.
‘이건 한 번 보고 절대로 바로 이해할 수 없는 거야. 게다가 이거, 마법 변형까지 되어 있는데? 진짜 미쳤군.’
이 마법 변형은 에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르기아가 생각하는 천재의 기준이 이 정도라는 거지? 이걸 한 번에 보고 이해할 정도라고?’
르기아는 이 정도는 돼야 자신이 평생을 바쳐 만든 교육 방식과 동일한 교육 방식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에단이 인상을 쓰며 양피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르기아는 그런 에단을 보며 확신했다. 놈은 천재가 아니라고.
그러나 르기아가 모르는 사실이 있었으니, 이미 와룡시가 발동되고 있었다.
기존에 익힌 기초 지식에 본질을 이해하고 파악하는 와룡시가 더해지니, 에단은 그대로 양피지 속의 검술을 꿰뚫었다.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불가능하겠지? 당연해. 이걸 어떻게 한번 보고 이해할 수 있겠나. 그거랑 똑같은 걸세. 자네의 교육 방식은 스스로 생각해 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
르기아의 말을 에단이 중간에 끊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뭐?”
에단의 검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전부 다 이해했습니다.”
그 눈에 와룡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