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16)
신들의 구독자 216화
216화. 검성의 수업 (4)
-자, 이게 네 검이다, 카이.
펠릭스 가문은 오래 전부터 신성 제국 십이성의 한 축이었다.
그 거대한 가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카이 펠릭스는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의 뜻에 따라 검을 쥐었다.
처음엔 아주 자그마한 검이었다. 그 자그마한 검으로 검술을 배우고 체력을 단련했으니, 검은 어렸을 적부터 카이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가문에서 가르쳐 주는 검술은 무척이나 난이도가 높았다.
한 번 배운 걸로는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 만큼 검술을 펼치기 힘들었다.
하지만 카이는 매일 같이 검을 휘둘러 왔다.
그렇게 검을 휘두르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검술 동작이 하나하나 자연스레 펼쳐지곤 했다.
그렇게 열 살이 되었을 무렵엔 가문의 검술 하나를 완벽히 익히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가문의 어른들은 카이를 칭찬했다.
-대단하구나!
-재능이 있어! 펠릭스의 혈통이라면 응당 이래야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검에 흠뻑 빠지게 된 것은.
타고난 재능과 거기에 더해진 노력은 카이에게 큰 성취감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성공했을 때의 즐거움이 컸기에, 카이는 한계를 모르고 성장했다.
가문 내에서 시행했던 검술 대회는 물론 가문 간에 펼쳐졌던 검술 교류전에서도 우승했다.
-넌 천재다, 카이.
-네가 자랑스럽구나, 카이.
어느새 돌아보니 가문 내에선 또래의 그 누구보다 강해진 상태였다.
검을 휘두르면 행복했다. 검을 휘두를 땐 그 어떤 고민도 들지 않았다.
검은 무척이나 정직해서 휘두르는 만큼 결과가 돌아왔다.
검술에 대해서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었고 검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매일 반복한 수련으로 몸에 붙은 근육들이 카이의 정직함을 증명했다.
어제 하지 못한 걸 오늘 성공했을 때 카이는 보람을 느꼈다.
나는 아직 더 강해질 수 있겠구나. 또 칭찬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제 더 열심히 안 해도 된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더 안 해도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정도면 충분해.
충분하다고?
분명 잘하면 칭찬을 받았었는데.
강해지는 건 좋은 게 아니었나?
-저는 아직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혹시 실수한 게 있나요?
카이가 물었다.
-너는 네 형보다 강해졌다. 그래선 안 돼.
잘못이 있었다. 그 잘못은 형보다 강해졌다는 것이었다.
-카이, 너는 둘째답게 있으면 된다. 위대한 펠릭스 가문의 둘째답게 말이다. 모든 건 네 형이 알아서 할 것이다. 이대로 가만히 지내되 가문에 누가 되는 행동은 하지 마라.
둘째답게.
이미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는 한계가 정해졌던 것이었다.
자신이 그은 한계가 아니다.
물려받은 혈통이 그어 준 한계였다.
카이는 절망했다.
혈통이 가로막는 진한 한계에 절망해, 자신은 절대 그 한계를 넘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매일 밤을 고민하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포기했다. 아니, 타협했다.
더 강해져선 안 된다면 그들이 정한 한계에 자신을 가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무언가가 속에 콱 막힌 것처럼 답답함이 가시지 않기 시작했던 게 말이다.
그건 꿀꺽 삼키려 들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기가 커질 뿐이었다.
결국 카이는 그 답답함마저 무시했다. 그저 가문이 요구하는 작은 액자에 자신을 구겨 넣으려 노력할 뿐이었다.
그들이 정해 준 틀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검은 더 이상 카이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니었다. 언젠가부터 검을 잡는 게 재미가 없었다.
기대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어릴 적 작디작은 카이가 아니었으니까.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눈앞에 있는 사내를 만났다.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처음 본 그 사내는 자신을 보자마자 왜 그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자신을 아주 바보 취급을 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헛소리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러나 에단은 그런 카이 앞에서 보란 듯이 자신의 재능을 뽐냈다.
너도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으면서도 안 하고 있잖아?
마치 살살 속을 간질이면서 자극하는 모양새였다.
넌 도망쳤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평소답지 않게 굴었다. 그런 그에게 에단은 아주 심플하게 답을 주었다.
카이가 평생 바꿀 수 없다 생각했던 걸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거대하다 생각했던 가문이 별거 아니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대련이라는 걸 기억하도록. 하지만 가진 바 능력을 마음껏 펼쳐도 된다. 여차하면 내가 알아서 막을 테니.”
검성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로 가까이에 있으면 그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막을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다른 교사들도 이 대련을 잘 지켜보도록. 내가 이 대련을 통해서 어떻게 자네들에게 도움을 줄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꿀꺽, 누군가 마른침을 삼켰다.
누가 이길지 섣불리 확답할 수 없는 대련이었다.
본래라면 카이가 이길 확률이 높았을 테지만 연수회 내내 겪은 에단 휘커스는 카이 못지않은 괴물이었다.
반면에 카이는 그런 에단에 밀려 생각보다 큰 임팩트를 보여 주지 못했다.
하지만 엘리트 교사는 엘리트 교사. 수업이라면 몰라도 대련에서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을 터.
다들 기대하며 대련을 지켜보았다.
“시작!”
카이는 검을 강하게 쥐었다.
하늘은 무척이나 푸르고 넓었다.
사실은 저 하늘에 닿고 싶었다.
하지만 그 하늘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카이가 천천히 검을 눈 윗부분까지 들어 올렸다.
그러자 검이 하늘을 가렸다. 하늘을 가리니 남은 건 오로지 검과 자신뿐이었다.
“내가 하늘이 되면 돼.”
파악-.
금이 갔던 작은 액자가 그대로 산산이 부서졌다.
액자가 부서지니 그제야 그 액자가 걸려 있던 새하얀 벽이 보였다.
저 높이 올려다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새하얀 벽이었다.
철퍽-.
자그마한 액자에 갇혀 있었던 거대한 재능이 넘치더니 새하얀 벽 전체를 뒤덮고 무언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건 거대한 검이었다. 카이 펠릭스가 가지고 있던 진정한 재능의 꽃이었다.
지금 이 순간, 카이 펠릭스의 재능이 만개했다.
에단은 그 모습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까앙-!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카이가 검을 휘둘렀다.
그 움직임에 모두 깜짝 놀라 탄성을 내질렀다.
“안 보였어!”
“뭐야, 저 속도!”
시론은 눈을 크게 뜨고 대련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까앙-! 까앙-!
보고 있던 이들 중 검성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카이가 전진하는 속도를 눈으로 쫓지 못했다.
카이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굉음과 함께 그 충격파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저 정도였다고……?”
신입 교사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이었다.
교사들이 입을 떡 벌리며 경악했다.
함께 대련을 지켜보고 있던 램스데일 분가의 일원들 또한 한껏 인상을 썼다.
“약하다며? 소문보다 별로라며?”
“덕분에 우린 개고생했다.”
“아, 아니, 진짜…… 소문보다 별로였는데…….”
“저게 별로면? 도대체 네가 생각하는 대단한 게 어느 정도인데?”
까앙-! 까앙-!
점점 더 과열되는 대련에 각기 입을 열던 이들이 점차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카이 펠릭스의 검술은 대련을 지켜보는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 정도였다.
처음엔 무척이나 거칠었던 검술이었건만.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빠르게 정확도와 정교함을 갖춰 가고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검술이 정교해지고 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거칠었는데.”
정교함.
적절한 타점을 정확한 힘으로 타격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속도도 점차 빨라지고 있었으니.
계속해서 막기만 하는 에단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에 반해 검을 휘두르는 카이 펠릭스는 흡사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팔짱을 끼고 지켜보던 검성이 씩 미소 지었다.
유칼리스에게 들었을 땐 카이 펠릭스가 완전히 망가졌다고 생각했다.
펠릭스 가문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검성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른 가문의 일이라 개입은커녕 무어라 평가할 순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카이 펠릭스가 스스로 이겨 내지 못하면 결국 누구도 그를 도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겨 냈군.”
자신을 억압하고 있던 장애물을 부쉈으니, 이제 남은 건 자기 재능이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확인하는 일뿐이었다.
까앙-! 까앙-!
카이 펠릭스는 본능에 몸을 맡기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옛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검에 정신을 맡긴 채 검이 자신이 되고 자신이 검이 된 것처럼 움직였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후로 카이는 이성적으로만 움직이고 있었다.
더 이상 강해질 필요가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는 말이었다.
둘째로 태어났으니 첫째인 형에게 모든 걸 양보해야 한다고?
그게 룰이니까?
엿이나 먹으라지.
카이는 흐릿한 기억 속 감각에 따라 검에 온몸을 맡겼다.
“훨씬 보기 좋습니다, 카이 선생님.”
에단이 그런 카이를 보며 말했다.
까앙-!
에단의 말에 한층 더 카이의 검에 힘이 실렸다.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작은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하늘을 가릴 수 있다.
그렇다면 그보다 훨씬 더 큰 검으로는 무엇이든 가려 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뭐든지 될 수 있다.
스스로 하늘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곤 에단이 씩 웃었다.
‘투자가 성공했군.’
그가 모든 상념을 떨쳐 내고 펠릭스 가문의 둘째가 아닌 천재 카이 펠릭스로 돌아왔으니.
‘투자는 성공했다. 그럼 그 배당금을 받아 볼까.’
에단이 검을 강하게 쥐었다.
그러고는 한 차례 호흡한 후 검을 휘둘렀다.
에단 검술 1식
서리천뢰
까앙-!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윽, 하는 신음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에단을 몰아붙이던 카이 펠릭스가 순간 엄청난 고통에 뒤로 물러난 것이다.
에단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앞으로 나아가며 에단 검술을 이어 갔다. 1식의 기세를 고스란히 살린 서리검이 카이의 검을 한 번 더 노렸다.
쨍강-!
딱 두 번.
제대로 휘두른 두 번의 공격에 카이 펠릭스의 검이 박살이 났다.
충격에 밀려난 카이가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마 이렇게 압도적으로 진 건 처음일 것이다.
그 증거로 카이는 손을 덜덜 떨며 두 동강이 난 자기 검을 쳐다보고 있었다.
‘힘 조절이 완벽했어.’
사도를 상대했을 때처럼 검을 휘둘렀다면 카이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검성님.”
사실상 대련은 끝이 났지만 에단은 여기서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이제 막 재능이 만개한 카이다. 그렇다면 경험을 계속 쌓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휘커스로 데려왔을 때 제대로 써먹을 수 있지 않겠어?’
“그래, 대련을 끝…….”
“남는 검 하나만 주십시오.”
그 말에 검성이 옆에 있던 램스데일 분가의 일원을 불러 카이에게 검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엉덩방아를 찧은 채로 주저앉아 있던 카이가 검을 쥐고 천천히 일어섰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십시오.”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다는 에단의 자신감이었다.
에단이 지금까지 자신이 펼쳤던 검술 모두를 받아 준 거라는 걸 알게 되자 카이는 불현듯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이윽고 카이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호승심이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이는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 이 은혜는 확실히 갚겠노라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