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35)
신들의 구독자 235화
235화. 치료
‘그때는 몰랐는데. 이거 생각보다 더 심각한데?’
3황녀에게 병이 있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그때의 에단에게는 지금과 같은 치료 기술 같은 게 없어, 3황녀의 병은 손도 대지 못하고 넘기는 이벤트에 불과했었다.
‘이 정도면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해 보면 황궁에서 태어나 수많은 치료를 받아 왔을 텐데. 이때까지 병을 달고 사는 걸 보니 쉽게 치료할 수 있을 리 없어 보였다.
-치료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병입니다.
참담한 진맥 결과였지만 에단은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3황녀는 재능이 넘친다. 이런 병을 안고도 후계자 싸움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섰어.’
특히 그녀는 사람 보는 눈이 좋았다. 단순히 좋은 놈과 나쁜 놈을 가리는 안목이 좋은 게 아니다.
‘능력이 있다면 쓴다. 쓰레기 같은 자도 갱생시켜서 쓰는 게 3황녀야.’
때문에 3황녀 밑에는 수많은 인재들이 있었다.
물론 에단은 3황녀의 바구니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태생이 태생이다 보니 좋은 재능을 발견하면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같은 혈통을 제외하면 전부 다 아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니까.’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고귀한 혈통. 만인의 위에 서서 군림하길 업으로 타고나는 이들이기에 모두를 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검성 같은 불세출의 인물도 제국의 충실한 신하 중 하나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이 중요했다.
대등한 관계에 서기 위해서는 이쪽이 다른 이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는 걸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본래 르기아에게 바로 갔어야 할 테지만 상황이 변했다.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말에 혹한 3황녀는 에단을 곧장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곳이었다. 얼추 보자니 집 하나를 방으로 쓰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에단과 두 호위가 3황녀의 뒤를 따라 방 안에 들어섰다.
“에반젤린입니다.”
“에단 휘커스입니다, 황녀님.”
에반젤린 새크리드. 신성 제국의 현 황제인 카이로디아스 새크리드의 셋째 딸이었다.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한 3황녀가 편히 앉으라며 자리를 권했다.
‘대단한데. 방 안에 숨어 있는 호위만 열두 명이 넘어.’
모습을 감추고 기척을 숨긴 열두 명의 호위들.
에단이 혹여나 불순한 움직임을 보이면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호루스의 눈만으로는 움직임을 예상하는 게 어려울 정도로 실력들이 높아.’
물론 에단에게는 와룡시가 있었으니, 만에 하나 호위들이 전부 덤벼 온다고 해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한 명은 빼고.’
3황녀의 뒤엔 아무런 기운도 방출하지 않고 조용히 서 있는 사내가 있었다.
3황녀의 직속 호위이자 암검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검성보다 살짝 아래.’
물론 둘이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에단은 검성과 검을 맞대 봤고 저 암검과도 싸워 봤다. 그렇기에 둘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할 자신은 없군.’
“제 뒤에 있는 사람이 제 호위 기사예요.”
“저는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저 암검도 호위로 삼을 수 있었지.’
영입 시기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다 보면 3황녀가 죽는다. 병 때문에 죽는 건 아니었으나 굳이 따지고 보자면 병 때문에 죽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당장 병을 앓고 있으니 독살하고 처리하기가 쉬워. 문제가 생겼을 땐 병이 갑자기 악화됐다고 해 버리면 되니까.’
3황녀가 죽고 나면 그녀가 데리고 있던 수많은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둘 생각이 없었다.
‘3황녀와 인연을 맺게 됐으니 3황녀를 중심으로 황궁의 일을 시작한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선 3황녀가 살아 있는 쪽이 나아.’
굳이 3황녀의 부하들을 빼 오려 할 필요가 없었다.
3황녀만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두면 그 휘하의 인재들도 영입하는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럼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지요. 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하셨죠? 그 말, 장담하실 수 있으십니까?”
3황녀에게선 황족 특유의 오라가 풍겼다. 그 따끔따끔한 오라에 뒤에 서 있던 예리카와 슈들렌의 표정이 아주 살짝 변했다.
그러나 에단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3황녀는 에단이 황궁에 들어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르기아에게 직접 에단의 마중을 나가고 부탁했다. 르기아는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그녀가 졸랐기에 어쩔 수 없이 허락했다.
에반젤린은 에단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오랜 세월 황궁 바깥으로 잘 나가지 않던 르기아의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게 한 사람이었다.
물론 단순한 관심은 아니었다. 그녀는 몹시 화가 난 상태로 에단을 맞이하러 나갔다.
솔직히 말하자면 에반젤린은 르기아가 에단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돌아온 르기아는 오히려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워낙 표정 변화가 없고 진중한 사람이기에 다른 이들은 다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서 오래 배운 에반젤린은 그 미세한 표정 변화를 감지했다.
르기아는 마치 소년 같아 보였다.
슬며시 짓는 미소며 생기 가득한 눈빛까지.
그 모든 것이 자신이 알던 르기아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에단 휘커스가 도대체 누구길래. 뭐 하는 작자길래 르기아의 마음을 저리 뒤흔들어 놓은 것인지.
그래서 마중을 나갔다. 에단의 경계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변장까지 했다.
입구에서 기다린 이유도 있었다. 대개 황궁에 처음 들어오는 자는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황궁의 위용에 놀라기 마련이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눈이 멀고 감각이 흐려진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황궁에서는 절대 함부로 굴면 안 되겠다고.
그래서 황궁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에단은 확실히 달랐다.
함께 온 두 호위가 크게 놀란 데 반해 에단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분명 처음 들어오는 것일 텐데, 익숙한 곳에 들어오는 양 이렇다 할 반응 하나 보이지 않았다.
황궁의 위용에 압도되지 않은 사람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뿜어내는 오라에도 에단은 한없이 냉정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치료할 수 있습니다.”
에단이 힘주어 말했다.
“수많은 이들이 그런 말을 했죠. 알다시피 이 황궁에는 대륙 최고의 치료사들이 모여 있어요. 그들은 제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죠. 결과는 보시다시피 이렇고요.”
“저도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네?”
“저도 병을 앓고 있거든요.”
한 번 확인해 보겠냐는 듯이 에단이 손을 내밀었다.
에반젤린은 그 손을 잡고는 눈을 감은 채로 자신의 마나를 에단에게 밀어 넣었다.
샤아악-.
“으윽!”
순간 에반젤린이 크게 뒤로 물러났다. 어느새 암검이 검을 뽑아 에단에게 겨누고 있었다.
물론 그건 슈들렌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검을 뽑은 슈들렌은 암검의 목 가까이에 검을 대고 있었다.
예리카의 손에도 마법진이 만들어져 있었다. 암검이 살짝만 움직이면 강력한 파괴 마법이 그 머리를 날려 버리리라.
“그, 그만. 멈춰요, 암검.”
“예, 에반젤린 님.”
에반젤린의 손짓에 암검이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도대체 그런 걸 몸 안에 두고 어떻게…… 어떻게 살아 계신 거죠?”
마나를 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에단의 몸 안에는 끔찍한 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살짝 엿본 것뿐인데도 온몸에 식은땀이 흥건하게 날 정도였다.
에반젤린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에단을 바라보았다. 에단의 손을 잡았던 손이 아직까지도 떨렸다.
“이전에는 더 심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잘 걸어 다닙니다. 검도 쓸 만하게 휘두르고, 몸 안의 마나도 전보다 늘어났습니다.”
에단이 말했다.
“저 스스로 병을 치료했기 때문입니다.”
“……!”
이런 병을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에반젤린이 경악한 얼굴로 에단을 보았다.
“물론 완벽한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하지만…… 황녀님이 가지고 계신 그 병은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정말…… 정말 가능한가요?”
에반젤린의 목소리가 떨렸다.
“가능합니다.”
“그럼…… 그럼 저를 치료해 주십시오.”
그 말에 에단이 씩 웃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 * *
에단이 내건 조건은 간단했다. 하지만 3황녀라도 섣불리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황실의 인장 말인가요?”
“예, 제가 운영하는 공방이 하나 있습니다.”
에단은 에단 공방에 대해서 설명했다.
어떤 걸 취급하는지,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간략한 내용이었다.
에단의 설명을 들은 에반젤린은 어째서 그가 황실의 인장을 원하는지를 깨달았다.
“확실히, 황실의 인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증이 되겠죠. 경쟁자들에게도 아주 강력한 경고가 될 테고요.”
“예, 워낙 빠르게 성장한 참이다 보니 부작용이 꽤 많습니다. 게다가 저희 영지 근처에 막강한 힘을 가진 영지가 있다 보니, 이래저래 골치가 아픈 상황입니다.”
“…….”
에반젤린은 에단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순전히 공방의 안전을 위해 인장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건 파악했다.
황실의 인장을 얻는다는 건 공식적으로 황실의 눈 아래에 섰다는 뜻이었다.
그런 곳을 상대로는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거기에 한 가지 더. 황실의 인장을 가진 자는 행동에 제약을 받을 일이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황실의 보증을 얻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황실의 인장은 쉽게 내줄 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에반젤린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에단이기 때문이었다.
정말 자기 병을 치료할 수 있다면야 황실의 인장 정도야 얼마든지 내줄 수 있었다.
“좋아요, 그 조건을 받아들이죠.”
에반젤린은 더 고민하지 않았다.
“그럼 거래 성립입니다, 황녀님.”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에반젤린 님.”
“들어오세요, 르기아.”
안으로 들어온 르기아가 곧장 에단을 알아보았다.
“설마하니 오자마자 일을 터뜨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왜 여기에 있나?”
에단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리는 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의문이 가득해 보였다.
“제가 에단 님의 재능을 찾아냈습니다, 예리카 님.”
“저도 그 재능이 뭔지 알 것 같은데요. 어딜 가든 어떤 사람이든 저런 표정을 짓게 만드는 거, 맞죠?”
“압도적인 재능이십니다.”
“대회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예리카와 슈들렌이 목소리를 낮추고는 근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르기아에게는 다 들렸다.
르기아게 호위 둘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에단이 먼저 입을 열었다.
“3황녀님께서 병을 앓고 계시더군요.”
“그래, 병이 있지……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된 병이고, 그 병은 목숨엔 지장이 없어.”
“하지만 치료하기만 하면 3황녀님의 재능을 폭발시킬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에단의 말에 르기아가 인상을 썼다.
3황녀 에반젤린은 확실히 그 재능이 출중했다. 여러 황족을 가르친 르기아가 보기에도 가장 특출한 재능이었다.
하지만 강력한 병이 그 재능을 막고 있었다.
르기아가 침묵하자 에반젤린도 르기아를 보았다.
“하지만 자네가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진정으로?”
“만약 안 된다면.”
에단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황궁에 제 목을 놓고 가겠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