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54)
신들의 구독자 254화
254화. 시나리오 (1)
에단은 우선 교황의 움직임에 놀랐다.
‘뒤에 오기까지 눈치를 못 챌 정도라고?’
에단은 오늘 교황과 처음 만났다. 그랬기에 소문으로 접한 정보만 몇 가지 알고 있을 뿐, 교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홀리라이트 교단의 성직자니, 강함으로 따지자면 그리 대단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교황이라는 거대한 이름답게 실력도 대단했다.
‘추기경들과는 실력 차이가 엄청나게 나. 그보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진짜 에단 휘커스냐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당신은 진짜 에단 휘커스 군이 맞습니까? 에단 군은 분명 유망한 인재지요. 많은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어떻게 이곳까지 오신 건지요? 그것도 너무나도 공교로운 타이밍에 말입니다.”
교황의 의심은 합당했다.
에단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황제의 서한을 꺼내 교황에게 건넸다.
“인장을 확인해 보시면 될 겁니다. 황제 폐하께서 직접 인장을 찍어 주셨으니까요.”
교황은 에단이 내민 황제의 서한을 꼼꼼히 확인했다.
서한에는 분명 황제의 인장이 찍혀져 있었다.
그 누구도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황제의 인장. 그 인장을 오래토록 봐 온 교황이었기에 금세 에단을 향한 의심을 풀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에단 군을 제게 보냈군요. 그렇다는 건 워터피아를 돕겠다고 이곳에 온 건 아니라는 거고.”
직접 서한을 확인해 본 게 아니라 에단도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교황의 반응을 보니 아마도 에단이 교황을 만나야 하는 이유가 적혀 있는 듯했다.
“네, 사실 성하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나 뵈러 온 겁니다. 오는 길에 워터피아에 변고가 생겼다는 어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조금 들었습니다만, 본래의 목적은 성하를 뵙는 겁니다.”
에단의 말에 교황이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인다는 듯 안도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교황은 에단의 몸을 위아래로 쓱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허어…… 어찌 그런 몸으로 버텨 오셨습니까? 지금 에단 군이 이룩한 그 경지는 본래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경지입니다.”
교황이 품에서 성수 하나를 꺼내선 에단에게 뿌려 주었다.
샤아아악-.
일전에 받았던 축복들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축복이었다.
에단은 절멸증을 품고 살면서 항상 꺼림칙한 이물감을 느껴 왔다. 이 이물감의 영향인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미세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후로는 부담이 줄었으나 미세하게나마 움직임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감각이었으나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매일 같이 노력했다.
그런데 교황의 축복을 받은 순간 그 이물감이 완벽하게 사라졌다.
“잠깐이나마 괴로움이 가실 겁니다.”
교황은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한번 에단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흐으으음, 이거…… 일반적인 절멸증이 아니군요. 상당히 깊군요. 무어라 판단하기 어려울 만큼 깊어요.”
교황 역시 에단의 몸속에 있는 절멸증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했다.
“음…….”
교황은 에단의 어깨, 명치 부근, 그리고 허리 부근을 검지로 쿡쿡 찔러 보더니 눈을 감았다.
“제 능력으로 치료가 가능했더라면 어떻게든 치료를 해 드렸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이건 일반적인 절멸증이 아닙니다.”
교황 역시 성녀만큼은 아니지만 강력한 치료의 권능을 가지고 있었다.
명색이 홀리라이트 교단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이다. 성녀가 홀리라이트 여신의 재림이라면 교황은 홀리라이트 여신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이였다.
그것도 여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그 때문에 교황의 권능 또한 상당히 강력했다.
“이건…… 음, 저조차도 손을 대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교황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단 군, 당신의 안에 있는 이 절멸증이 일반적인 게 아닙니다. 혹시 그걸 느끼고 있었는지요?”
“네, 이미 황제 폐하께 들었습니다. 교황 성하와 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제 안에 있는 절멸증은 일반적인 절멸증이 아니라, 대륙에 퍼진 모든 절멸증의 원본이라고.”
“……딱 적합한 표현이군요. 절멸증의 원본. 맞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러합니다. 에단 군의 몸속에 있는 절멸증은 그 원본이고, 그걸 알 수 있는 요소가 있습니다.”
이쯤 되니 에단도 궁금했다. 황제도 그렇고 교황도 그렇고, 무엇을 근거로 이걸 절멸증의 원본이라고 생각한 것인가.
일반적인 절멸증과 크게 다른 게 있다는 것인가.
“깊고 깊은 원념이 느껴집니다. 에단 군의 몸에서 뿜어지는 그 오라. 거기에 끝을 알 수 없는 악의가 새겨져 있습니다.”
깊고 깊은 원념이라는 말에 에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벽회에서 떨어져 나온 놈들이 판을 뒤집으려고 만든 거니까.’
끝을 알 수 없는 악의가 계속해서 오라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하니, 강자들이 그걸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일 터.
‘강자들은 특히 그런 것에 민감하니까.’
에단은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교황의 인증까지 받았다.
사실상 에단의 절멸증은 그 원본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에단의 절멸증을 알아 본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큰 페널티를 안고도 어떻게 이 수준까지 올라왔느냐고.
‘나도 놀라워.’
신세계에서 배운 힘도 큰 영향을 줬지만 지금까지 생존하는 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건 에단의 신중함이었다.
에단은 메판을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플레이해 본 적이 없었다.
최대한 리스크를 피하고, 죽을 가능성이 있다면 모든 위험 요소를 배제하며 최대한 안전하게 플레이해 왔다.
앞에 나타나는 모든 분기점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에단 휘커스였다.
‘나도 발버둥 친 거거든. 내가 가진 모든 걸 써서.’
때문에 그 성과를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몹시 좋았다.
심지어 이를 인정한 것은 신성 제국의 정점인 황제와 교황이다. 그 두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태로 여기까지 온 거냐고 에단의 성취에 놀라니 말이다.
‘노력한 보람이 있군.’
어차피 교황이 이 절멸증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교황을 만나러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혹시 성녀님이라도 이걸 치료하는 건 불가능할까요?”
에단은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간접적으로라도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만약 교황이 불가능할 거라 대답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빨리 선회해야 해.’
이 질문에 교황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꽤 오랜 시간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교황이 장고 끝에 입을 열었다.
“제가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해 드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교황은 단어 하나하나를 고르듯 신중하게 대답했다.
“일반적인 절멸증이라면 치료할 수 있다 확답할 수 있지만, 에단 군의 절멸증은 일반적인 게 아니니 섣불리 확답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오직 성녀뿐일 겁니다. 성녀에게 깃들어 있는 여신님의 권능은 한계가 없다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에단의 질문은 교황에게 있어 꽤나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성녀는 홀리라이트 여신의 권능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이다.
성녀도 불가능할 거라 이야기하는 것은 홀리라이트 여신에게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당연히 교황으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터.
에단은 속으로 혀를 찼다.
‘확실한 대답을 듣긴 어렵겠군.’
결국엔 성녀를 직접 만나 보는 수밖에 없었다.
“성녀에 대해선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없겠습니다만.”
그때 교황이 말했다.
“제 이야기라면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절멸증은 저로서는 완치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나은 상태로는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교황의 말에 에단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고?
‘일부나마 치료가 가능하다는 건가?’
그 말에 순간 에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도 지금까지 수많은 방법을 강구해 왔습니다만 당장 손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몸 상태를 억지로 끌어올린 상태입니다.”
그 말에 교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그 병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안 됩니다.”
교황이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샤아아악-.
그 손에서 연노랑색의 구가 만들어졌다.
“생명 전환을 사용하면 됩니다. 이걸로 에단 군의 절멸증을 조금이나마 약화시키는 겁니다. 병의 근원을 잘라 내도 어차피 재생을 할 테니, 몸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약화시키는 겁니다.”
“……생명 전환이요?”
교황의 말에 에단이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썼다.
생명 전환은 말 그대로 생명력을 담보로 힘을 증폭시키는 기술이었다.
생명이라는 강대한 대가를 담보로 하기에 증폭되는 힘이 굉장히 컸다.
특히 교황 같은 강자의 생명력이라면 평범한 이들의 생명력보다 훨씬 더 강하기에 그 효과가 엄청날 터.
교황의 말대로 한다면 에단은 이 절멸증의 증상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게 된다.
대신 교황은 영구적으로 그만큼의 생명력을 잃는다.
‘나를 치료하겠다고 자기 수명을 쓰는 거야.’
“그걸 왜…….”
이래선 정상적인 치료 방법이라고 볼 수 없다. 말 그대로 수명을 바쳐야 하는 일이니까.
수명을 바쳐서 자신을 치료해 주겠다니.
에단은 당황스러웠다.
아니, 혼란스러웠다.
“에단 군, 당신은 믿는 신이 많군요. 당신의 뒤로 그들의 그림자가 보입니다. 참으로 재밌는 일이지요. 그들은 하나같이 당신의 등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힘을 빌려주고 있는 거지요.”
홀리라이트 교단의 신도들을 이끄는 교황 프레데릭은 홀리라이트 여신의 말을 널리 퍼트린다는 중대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이 홀리라이트 여신을 믿게끔 포교해야 한다.
다른 신을 믿는 에단을 위해 수명을 바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홀리라이트 여신의 품으로 개종하라며 목숨을 바쳐 에단을 치료하려는 것도 아닐 텐데.
‘이해가 안 되는데.’
에단이 당혹감과 의아함이 뒤섞인 눈으로 쳐다보자 교황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군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렇습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입니다. 저는 신의 대리인입니다.”
교황이 말했다.
“여신님께서도 응당 이리 하셨을 테니, 그분의 종인 저 역시 이렇게 하는 겁니다.”
프레데릭 교황은 여신의 대리인이다. 그는 몸소 선을 실천하고 나아가 선을 퍼뜨리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제가 할 수 있으니 하는 겁니다.”
교황의 말에 에단이 침묵했다.
“하지만 압니다. 조건 없는 선에 부담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표정을 보아하니 에단 군도 그런 사람이군요. 그렇다면 조건을 걸겠습니다.”
교황이 에단의 어깨를 위로하듯 툭툭 쳤다.
“선을 행해 주십시오.”
선을 행하라.
교황의 조건은 심플했다.
“그게 조건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선을 행해 주십시오. 여신님의 이름 아래 하는 일이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선을 행함에 있어서 어떤 신을 믿는가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에단의 눈에 이채가 깃들었다. 교황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에단과 교황은 오늘 처음 만난 사이였다.
과연 에단도 그처럼 할 수 있을까?
‘한 종교의 수장이라는 건 이런 느낌인가.’
황제를 대면했을 때의 느낌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교황이 말했다.
“제가 어째서 에단 군에게 진짜 에단 군이냐고 물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에단 휘커스 군, 혹시 완벽 의태에 대해서 들어 봤습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