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77)
신들의 구독자 277화
277화. 첫 번째 복수
“그놈.”
세이프 룸 안의 드렌 후작은 의자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그년.”
드렌 후작은 헤카테를 떠올렸다.
처음 헤카테를 봤을 때, 드렌 후작은 그 빛나는 재능에 눈이 멀었다.
마법을 한 번 보면 모두 이해했고 그대로 흡수했다.
그야말로 마법사들이 바라던 이상적인 모습이었으니.
엘리트 교육을 통해 검술도 마법도 전부 다 섭렵한 드렌 후작에게 있어 헤카테의 재능은 경외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동시에 후작은 그 재능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막 피어나려는 헤카테를 자신의 품고 함께 도약하고 싶었다.
그러나 헤카테의 이 무한한 재능은 너무나도 커서, 그 누구의 품에도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저것을 품으려면 하늘이 되어야 했다.
“내가 그 하늘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헤카테는 자유를 원했다. 강한 힘이 있으니 자신의 신념을 따라 원하는 대로 살겠다며 후작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말하며 헤카테는 맑은 눈으로 드렌 후작을 보았다.
맑고 자유로운 눈.
분명 헤카테는 의도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 눈을 보며 드렌 후작은 부끄러워졌다. 자신은 맑지도, 그렇다고 자유롭지도 않았으니까.
자신에게 없는 두 가지를 가진 헤카테가 마치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문이다.”
다른 십이성 가문이 함께하자고 했을 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제안을 받아들인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빌어먹을 눈빛이, 그 말투가 거슬렸다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자신감으로 쳐들어온 건지는 몰라도 드래곤 나이츠를 이겨 내긴 힘들 것이다.
만에 하나 드래곤 나이츠가 지더라도 그사이면 성의 모든 병력이 집결해 에단이 도망갈 길을 모두 막아 둘 테니.
동이 트는 것과 동시에 다른 십이성 가문과 좋은 관계를 맺어 둔 귀족 가문에 이 사실을 전달한다면 사실상 상황은 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놈들의 기세도 꺾일 거고. 우리는 이 일을 명분으로 삼아 놈들이 더 커지려는 걸 막을 수 있겠지.”
물론 황녀와 교황이 동시에 봐주는 이와 대립해 본 적이 없어 상황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른다. 하지만 후작은 자신이 있었다.
그때 바깥쪽에서 신호가 왔다.
순간 후작이 미소를 지었다.
시간을 보니 확실하게 생포까지 한 모양이었다.
“이러면 또 말이 달라지지. 놈들이 도망치지 못했다면.”
후작이 허리춤의 검을 만지작거렸다.
“빌어먹을 초승달 놈들이 해내지 못한 걸 내가 하는 수밖에.”
오늘부로 에단 휘커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덕분에 배부르게 먹겠군.”
찝찝하게 남은 예리카 폰 하이드도 확실히 처리하고 휘커스 가문이 하나로 만들어 둔 영지도 꿀꺽 삼킬 수 있다.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겠구나. 하하하핫-.”
이렇게 생각하니 그 건방지고 오만한 에단 휘커스가 복덩이처럼 느껴졌다.
세이프 룸 문 앞으로 다가간 후작이 곧바로 손을 내밀었다. 마법진이 활성화되더니 이내 세이프 룸 바깥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뭔가 바깥이 흐리게 보였다.
“뭐지?”
눈을 가늘게 뜨고 바깥을 보려던 후작이었으나 갑자기 들리는 굉음에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샤라라라라락-!
세이프 룸 바깥쪽에서 마치 책 수천 권의 페이지가 동시에 넘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대체…….”
세이프 룸에 걸린 마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이 흔들리고 벽이 흔들리더니 이내 천장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래곤 나이츠! 지금 바깥에 무슨 일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큰 소리로 외쳐 봤지만 마법진이 흔들리는 탓에 세이프 룸 안에 있는 후작의 말은 바깥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젠장!”
후작이 급하게 온몸에 마나를 순환시켰다. 그러고는 다급히 외눈 안경을 꺼내 쓰고는 세이프 룸의 문을 보았다.
“……누군가 밖에서 세이프 룸의 마법을 해제하고 있다.”
이 외눈 안경은 마나의 흐름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아티팩트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후작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쪽에 유리한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에단 휘커스가…….”
쿵-! 콰가각-! 콰직-!
무언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구우우웅-.
세이프티 룸 전체에 퍼져 있던 마나가 순간 사라졌다. 외눈 안경에 더 이상 마나의 흐름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쿠구구궁-!
이 안은 더 이상 안전 지역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문이 천천히 열리고, 바깥에 있던 이들이 모습을 보였다.
“후작가의 주인께서 거기에 계셨군요.”
후작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에단을 보았다.
그리고 그 뒤에 예리카가 있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죠. 너에게까지 이 증오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가능하면, 정말 가능하다면 용서하라고. 그래서 저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모든 걸 다 용서하기로.”
예리카가 드렌 후작을 보며 말했다.
“죽음으로 용서해 드리겠습니다. 자비롭게.”
“복수? 복수를 하겠다고?”
드렌 후작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나는 위대한 십이성 가문을 이끌어 가는 드렌 가문의…….”
후작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채앵-!
예리카가 쏜 불의 화살이 후작의 말을 막은 것이다.
물론 이 화살은 후작에게 닿지 못했다. 후작의 아티팩트가 바로 반응하여 방어했으니.
“이, 이게 무슨……! 감히, 감히!”
하지만 다친 것과는 별개로 이건 후작에게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렇게 정면에서 공격을 당해 본 게 얼마 만이던가.
흥분한 드렌 후작이 그대로 검을 뽑아 들었다.
“아예 감이 다 떨어졌군.”
그 모습에 에단이 혀를 찼다. 권력을 두르고 안전하게 살아오다 보니 위기의식이 무뎌져 버린 것이다.
“예리카.”
“네.”
에단의 부름에 예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를 죽인 이들에게 복수하는 것. 그건 예리카의 마음 한구석을 지탱하는 것이었으나 동시에 두려운 것이었다.
달성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예리카가 어떻게 십이성 가문에게 복수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이것은 마음속의 두려움을 끊는 일이었다.
‘성취는 무척이나 중요해.’
한 번이라도 성공해 본 사람은 그 성공을 잊지 못하게 된다. 성공 이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성공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또다시 성공에 이르게 된다.
‘그 성취에 따라 한계 또한 재조정되는 거거든.’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그 한계를 모른다.
직접 달성해야 비로소 제 한계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는구나 하고 말이다.
예리카가 손을 들었다.
쉽게 죽이고픈 마음은 없었다.
그와 동시에 드렌 후작이 앞으로 몸을 숙이고는 빛살처럼 튀어나왔다.
드렌 후작은 온몸에 아티팩트를 두르고 있었다.
검 또한 신검이라 불리는 강대한 신성력이 깃든 검으로,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인 골드핸드 중 한 사람이 만든 검이었다.
갑옷 역시 골드핸드가 만든 것으로, 거기에 마탑의 마법사들 중 마법 부여로 소문난 이의 힘을 더해 엄청난 마법 저항력을 갖췄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목걸이와 반지, 팔찌까지 전부 다 방어와 공격, 그리고 버프에 특화된 것들이었다.
그랬기에 후작은 자신만만했다. 상대와의 격차는 몸에 두른 아티팩트로 해결한다.
특히 마법사라면 상대가 누구든 이길 자신이 있었다.
“이 신검은 매직 이터라 불린다. 아마 들어 봤겠지. 네년의 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내 매직 이터에 잡아먹혔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후작이 검을 휘둘렀다.
부웅-!
그러나 예리카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 공격을 피해 냈다. 그러고는 새파란 불꽃 덩어리를 후작에게 쏘았다.
샤악-!
신검은 그 이명답게 예리카가 쏜 불꽃 덩어리를 그대로 삼켜 없애 버렸다.
예리카는 그 과정을 확실히 지켜보았다.
“알겠다.”
이번엔 불꽃 덩어리를 더 크게 만들어 쏘았다.
불꽃은 후작의 매직 이터가 삼킬 수 있는 범위를 넘어 갑옷에까지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후작은 멀쩡했다.
“그것도 이해했어.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네, 드렌 후작.”
예리카는 씩 웃었다. 그러고는 방금 확인한 것들을 토대로 마법진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허세도 지금뿐이다!”
후작이 강하게 땅을 밟고 빛살처럼 빠르게 쇄도했다.
하지만 예리카의 손짓 한 번에 그 움직임이 멈춰 버렸다.
“으, 으으윽! 모, 몸이…….”
“할아버지가 마법에 취해 미쳐 버렸다고 누명을 씌웠지. 그 재능이 탐나서. 할아버지가 말을 듣지 않으니까.”
“어, 어떻게…….”
“한 번 잘 상상해 봐. 내가 어떻게 당신한테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말이야. 물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테지만.”
예리카의 손에 마법진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자, 이게 원하던 할아버지의 마법이야. 줄게.”
콰드드드득-!
흡사 몬스터의 아가리처럼 주변의 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마법이었다. 예리카는 마치 공을 던져 주듯 후작에게 마법을 던졌다.
에단은 슬쩍 뒤를 돌았다. 이제부턴 끔찍한 광경이 벌어질 테니 굳이 볼 필요가 없었다.
콰득-!
콰드드득-.
“끄으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세이프 룸에 비명 소리가 난무했다.
예리카는 그 모습을 끝까지 보았다.
“이제 두 명 남았어.”
신성 제국의 열두 기둥.
드렌 후작가를 이끄는 가주.
유스타 드렌 사망.
***
후작을 처리한 에단은 속전속결로 후퇴했다.
후작을 처리한 에단은 곧장 후작령에서 벗어났다.
성에 모여 있던 병력들에게 직접적으로 얼굴을 보이지 않았으니, 이번 습격은 이렇다 할 물증 없이 심증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심증은 얼마든지 뭉갤 수 있다.’
후작이 할 수 있는 건 이제 에단도 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에단 님?”
“후작을 처리하는 건 시작에 불과해. 내가 말했지? 십이성이 될 거라고. 그러려면 후작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확실하게 챙겨야지.”
“하지만 후작의 후계자들도 있고, 이제 주변의 영주들도 후작이 가지고 있던 걸 탐낼 거예요.”
“그니까 그걸 이용해야지.”
“그걸요?”
“후작의 후계자들과 접촉한다.”
“후계자들이요? 정황상 이번 일을 저희가 했다는 걸 알 텐데요? 증거를 들이밀지는 못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후계자들이 저희를 만나 줄까요?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본래라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드렌 후작가의 후계자들은 그리 사이가 좋지 않거든.”
에단이 드렌 후작을 죽였을 거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
적어도 그들 중 한두 명은 에단의 호출에 응할 것이다.
“각자 야망이 있으니까. 드렌 후작이 죽은 지금이야말로 그 야망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고. 그러니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밖에 없어.”
에단은 확신을 담아 말을 이었다.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후작 가문을 찢어 놓는다. 놈들을 십이성에서 끌어내린 다음엔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정말 무섭네요, 에단 님.”
예리카가 몸을 떨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