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289)
신들의 구독자 289화
289화. 궁금한 게 많아
“빨리! 빨리 대피소로 대피하시오!”
지상.
리무 영지의 영지민들이 황급히 대피에 나섰다. 헨단 남작이 전면에서 직접 지휘했기에 인명 피해는 적었지만 금전적 피해는 굉장히 컸다.
평생 동안 살아온 터전이 전부 다 무너졌다. 게다가 지금까지 쌓아 온 자산도 무엇 하나 제대로 들고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건 목숨이니까.
“남작님, 지금이라도 후작가에 지원 요청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게 안 된다면 주변 영주들에게라도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반드시 지원을 받아 오겠다고 하셨던 대주교님도 오시지 않은 듯합니다!”
“…….”
헨단 남작이 침묵했다.
“허억…… 허억…… 저는 저 광산의 독기 근처에 있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포그는 지하 광산 쪽 지원도 함께 나갔다 왔지요.”
“그리고 당장 지하 광산에 파견된 용병단들이 어떤 용병단들입니까, 남작님? 퇴마로 유명한 용병이 단장인 이들이 아닙니까.”
“잘 알고 있다. 그의 퇴마봉도 내 두 눈으로 봤으니.”
남작의 부하들은 다급했다. 저 독기들은 빠른 속도로 지상까지 올라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든 집어삼키고 있다.
아직까지 죽은 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실종된 이들이 꽤 있었다.
그들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현재 알 수 없는 상태.
이대로 가다간 저 독기가 금세 영주성까지 닿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상황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이다.
졸지에 영지를 버리고 도망치는 영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다.
“난 믿어 보겠다. 에단 백작님께서 실패했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하실 때까지는 그분을 믿어 볼 생각이다.”
“오늘 처음 뵌 분 아닙니까! 거기다 아직 젊습니다. 제가 알기에 그분은 실패를 모르는 분입니다. 지금껏 성공 가도만을 달려왔으니…….”
“그건 실언이구나.”
헨단 남작 또한 에단에 대해서 보고를 받은 바, 그에 대해 꽤 자세히 알고 있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그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곧 죽을 사람이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성공 가도를 달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따지고 들자면 성공보다 실패에 익숙하신 분일 거다.”
그랬기에 헨단 남작은 오늘 처음 에단을 보고 대화를 나눴음에도 왠지 모를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실패를 알기에 비로소 성공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믿기로 결정했으면 계속 믿는 수밖에 없다.”
현재 헨단 남작에게 있어서 구원자는 오로지 에단 휘커스뿐이었으니까.
남작의 확고한 의사 표명에 부하들은 더 이상 조언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변이 일어났다.
“여, 영주님!”
“영주님! 독기가 멈췄습니다!”
파도처럼 넘쳐 광산 밖으로 흐르던 독기가 어느새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독기가 꿈틀거리며 뒤로, 광산 안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설마!”
영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독기가 멈췄다는 건 지하 광산에 들어간 에단 일행이 뭔가를 해냈다는 뜻이었다.
파스스슥-.
팍-!
독기가 꿈틀거리더니 이내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곧 거짓말처럼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사,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하 광산으로 간 에단 백작님 일행이…… 해낸 듯합니다!”
“보입니다, 남작님! 독기 속에 갇혔던 영지민들입니다.”
“빨리 구하라!”
독기가 사라지자 그 안에 갇혀 있던 영지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남작은 명령을 내리자마자 앞장서서 영지민들을 구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네 명의 모습이 보였다.
한 사람은 피가 묻고 넝마가 된 로브를 입은 홀리라이트 교단의 대주교였다.
그리고 나머지 셋은 에단 일행이었다. 에단 일행은 복장이 상당히 깨끗한 게 대주교의 모습과 대비되었다.
“에단 백작님!”
헨단 남작이 다급하게 뛰어가 에단을 맞이했다.
“괜찮으십니까!”
“헨단 남작.”
에단이 말했다.
“대피는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군.”
“그 말씀은…….”
“지하 광산의 악령은 처리했소.”
그 말에 남작의 표정이 보기 좋게 밝아졌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은 남작의 부하들도 미소 지었다.
“에단 백작님께서 독기를 없애셨다!”
영지민들이 환호했다.
-업적을 달성하셨습니다.
-[리무 영지의 구원자] 업적 달성에 따라 좋아요를 얻었습니다.
-좋아요를 ‘10’만큼 얻었습니다.
-당신을 향한 리무 영지민들의 신뢰도가 100퍼센트가 되었습니다.
“에단 님 만세!”
“에단 백작님 만세!”
더 이상의 반발은 없다. 이번 일로 리무 영지는 휘커스 백작령으로 완벽히 편입된 거나 다름없었다.
특히 헨단 남작의 표정이 볼만했다. 그는 이제 에단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이제 다음 스텝은 헤라 드렌의 몫이다.’
헤라 드렌이 성공한다면 나머지 땅도 확실하게 휘커스 백작령에 들어올 것이다.
‘그 이후엔 드렌 후작가가 가진 것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는 거지.’
“슈들렌.”
“예!”
영주성의 가장 높은 곳.
그곳에 휘커스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꽂혔다.
* * *
드렌 후작령.
후작의 대대적인 장례식에 후작령 소속의 수많은 영주들이 참석했다.
후계자 후보인 후작의 자식들은 그 영주들을 포섭하느라 바빴고, 헤라 드렌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휴우.”
장례식 마지막 날. 헤라 드렌의 방에서 은밀한 회의가 열렸다.
“시선이 이쪽으로 굉장히 몰려 있는 상황입니다, 헤라 님. 다른 십이성 가문의 눈이 굉장히 매섭습니다.”
“공통적인 평가는?”
“후작가를 누가 정리하든 돌아가신 드렌 후작님이 계셨던 때와는 위상 자체가 틀릴 거라는 평가가 다수입니다.”
“정확하네. 장례식이 끝나는 직후, 아니, 지금쯤이면 이미 보고가 들어갔을 테고. 이젠 십이성 가문이 적이 되겠어. 우리가 가진 것들을 빼앗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
헤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예, 문제는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희 걸 다 빼앗기는 그 순간에도 후계자 싸움은 계속될 겁니다.”
“거기에 각 영주들은 쥐고 있는 걸 쉽게 내주지 않을 테고. 독립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겠어.”
“이미 움직임이 있습니다.”
헤라의 참모가 말했다.
“저희 쪽엔 거의 없지만…… 이미 많은 영주들이 다른 도련님과 아가씨에게 접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현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들어보고 싶다며 말입니다.”
“괜찮아. 그렇게 나오면 오히려 좋지.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딱 보이니까. 급할 게 없어. 일단은 언니에게 가야겠어. 동맹을 맺는 것부터 시작하면 돼.”
똑똑-.
그때 누군가가 헤라의 방으로 찾아왔다.
“누구냐?”
“헤라 님, 급한 일입니다.”
“급한 일? 들어와라.”
부하가 다급하게 들어와 보고했다.
“윌라스 님이 오셨습니다.”
“……!”
“……!”
윌라스 드렌.
드렌 후작가의 전대 가주로 헤라의 할아버지, 죽은 드렌 후작의 아버지였다.
“아니, 갑자기 왜? 분명 잠적했다고 했잖아. 어디 계신지조차 몰라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전달조차 못했다고 했잖아?”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오셨습니다.”
“혼자 오신 거야?”
“아닙니다. 그, 떠나실 때 데려간 인원들을 이끌고 오셨습니다.”
“망할.”
윌라스는 은퇴하면서 자신과 함께 후작가의 전성기를 만들었던 이들을 모두 데리고 갔다.
그들이 있으면 괜히 귀찮은 일만 많아지고 아들에게 불편한 일이 될 거라며 말이다.
그들이 되돌아왔다는 건 곧 강력한 권력의 축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러면 상황이 달라진다.
윌라스가 모든 걸 정리하게 되면 헤라가 에단과 맺은 동맹은 의미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아니, 거기에 더해 헤라가 완전히 끝장날 가능성이 높았다. 에단과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 까발려진다면 윌라스는 절대 그녀를 후계자 자리에 앉히려 하지 않을 테니까.
헤라가 다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나가자마자 볼 수 있었다. 영주성 안뜰에 있는 윌라스 드렌과 그 식솔들이 서 있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후작가의 전대 최강자들이었다.
순간 윌라스가 고개를 위로 들었고, 위에 있던 헤라와 눈이 마주쳤다.
어렸을 적에 봤던 할아버지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새카만 머리칼.
힘 있는 눈동자.
그리고 눈부터 입까지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긴 상처.
“할아버지.”
“헤라, 내려오거라.”
이미 윌라스 앞엔 형제들이 모여 있었다. 헤라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눈동자들도 흔들리고 있었다.
각자 짜 놓은 판이 윌라스의 등장으로 전부 다 깨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후작령의 각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들 또한 상당히 긴장했다. 그들 중 몇몇은 윌라스가 직접 뽑은 귀족들이었다.
그런 만큼 윌라스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기에, 그들은 이렇다 할 움직임 없이 조용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유스타 그놈이 자식 교육은 제대로 못했구나. 천년만년 살 줄 알았나 본데. 허허, 참.”
자식의 죽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인상과 달리 윌라스 드렌은 그저 조용하게 분노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아들을 죽인 그놈의 이름이 에단 휘커스가 맞느냐?”
“예, 예, 맞습니다, 할아버님.”
한순간에 모든 입지를 잃게 된 파리스 드렌이 고개 숙여 말했다. 윌라스 드렌이 뿜는 오라는 도저히 그가 은퇴한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가 이곳에 온 순간 후계자 싸움은 끝난 셈이었다. 자신들끼리 싸우는 건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되었다.
후계자가 되고 싶다면 그에게 잘 보여야 한다.
윌라스 드렌의 등장으로 다 무너져 가던 후작가는 완전히 급변했다.
다른 영주들 또한 그 분위기를 십분 느꼈다. 그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머릿속에 몰래 품고 있던 엄한 생각을 버렸다.
“그런데도 그냥 가만히 놔뒀단 말이냐?”
“그게, 그 증거가 없어서…….”
“확실한 물증이 없을 뿐이지, 유스타를 죽인 게 그놈이란 건 분명할 텐데.”
“…….”
“네 아비가 죽었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 상대를 눈앞에 두고서도 아무것도 못한 게냐?”
윌라스의 말에 누구 하나 대답하지 못했다.
“허울뿐인 십이성이구나. 누구 하나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 복수하려 하는 놈이 없어.”
“그게…… 할아버님, 에단 휘커스는 3황녀님과 교황 성하, 어쩌면 황제 폐하의 은혜까지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놈입니다. 지금 당장 복수할 수 없었을 뿐이지, 복수를 포기한 건 아닙니다.”
파리스의 말에 윌라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황녀? 교황? 휘커스라는 이름을 난 오늘 처음 들어봤다. 그런데 그 가문이 3황녀와 교황의 비호를 받고 있다니, 그게 무슨 뜻이지?”
“그게 사실은…….”
파리스가 빠르게 에단 휘커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흠.”
윌라스 또한 놀랄 정도의 인물이었다.
단기간에 치고 올라온 이들이야 대륙의 역사 속에 수없이 많았고, 윌라스 또한 그렇게 튀어나오는 이들을 밟은 게 여러 번이었다.
윌라스의 입장에서 그런 놈들은 잡초나 다름없었다.
빠르게 성장한다고 해도 결국 그 근본은 잡초.
그런데 에단은 뭔가 달랐다.
“걱정할 것 없다. 이번 일,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그리고 후계자 문제도 내가 처리할 터이니.”
윌라스의 말에 후계자 후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헤라는 그런 윌라스를 보며 에단을 떠올렸다. 상황이 너무 안 좋게 돌아가고 있다.
* * *
“에단 님, 보고가 들어왔어요. 드렌 후작가의 전대 가주인 윌라스 드렌이 돌아왔다고 해요.”
“올 게 왔군.”
에단은 리무 영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이제 확실한 휘커스 백작령이 되었다. 에단은 곧장 주변 영지에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 더해 완전히 마음을 바꾸게 된 헨단 남작을 가장 앞에 세웠다.
“이러면 윌라스 드렌이라는 구심점이 생겨서 저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니, 받아들이게 될 거야.”
에단이 말했다.
“윌라스 드렌을 살려 둘 생각이 없잖아?”
“…….”
에단의 말에 예리카가 침묵했다. 긍정의 의미였다. 윌라스는 헤카테의 죽음에 드렌 후작보다 더 깊게 관여된 인물이었다.
잠적해서 그 복수의 칼날을 들이밀지 못했지만 다시 나타났으니, 그를 죽일 이유는 충분했다.
이 복수는 이미 에단의 손을 떠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판을 깔아 놨으니 그 판에서 춤을 추든 판을 접든 모든 건 온전히 예리카의 몫이다.
‘나는 휘커스 가문을 십이성에 올리는 작업에 힘을 주면 돼.’
나머지 복수는 예리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예리카가 떠난 후. 에단은 복구 작업에 한창인 영지민들 사이를 지나 지하 광산으로 향했다.
지하 광산 쪽은 아직 헨단 남작이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지하 광산 깊숙한 곳.
임시 봉인되어 있는 체자레를 지나, 에단은 장미십자회의 간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잘 자고 있군.”
짝-!
에단이 강하게 뺨을 때렸다. 그 매서운 손속은 장미십자회의 간부가 일어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되었다.
“억!”
얼굴이 퉁퉁 부운 채로 일어난 장미십자회의 간부가 혼란스러운 눈동자로 에단을 보았다.
“궁금한 게 많다.”
에단이 그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자리를 좀 옮겨서 이야기하자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