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05)
신들의 구독자 305화
305화. 다 외울 수 있습니다
가주 자리를 이어받기 전.
체른카스텔 재상은 가문 내에서 그리 강한 권력을 쥐고 있지 못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애초에 권력이나 명예에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이미 어린 나이부터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아이도 있었으니,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의 소소한 목표였다.
“평화롭게 살고 싶었지. 하지만 내게는 형제들이 많았어. 형제들은 조용히 살고 싶다던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지. 하지만 나는 형제들과 살육전을 벌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세력을 만들거나 권력을 쥐려고 하지 않았지.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것들이 아니라 내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들이었으니까.”
하지만 형제들은 그런 체른카스텔 재상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의심했다.
“내겐 재능이 있었네. 우리 영지의 마법 요새를 봤는가? 그걸 다 내가 만들었지. 그 때문에 내 형제들은 줄곧 나를 견제하고 있었어. 내가 가만히 있어도 세력이 만들어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일부러 권력 구도에서 벗어나려고 했네. 이곳에서 떠나 수도로 향했지. 수도에서 일할 생각이었어.”
하지만 그 모습 또한 형제들에겐 좋게 보이지가 않았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체른카스텔 재상이 가문 내의 권력 다툼에서 벗어나 수도에서 세력을 키울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때문에 체른카스텔 재상이 수도로 가려는 걸 곱게 놔두지 않았다.
“결국 일이 터졌네. 내 보물이자 내 가장 큰 약점…… 내 자식들을 볼모로 잡았지. 브렌든이 큰 상처를 입고 만 거야. 나는 절망해 울부짖었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느냐며 소리쳤어. 하지만 나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네. 나와 내 아내는 울 수밖에 없었지.”
브렌든이 입은 상처는 어떤 신의를 데려와도 어찌 손을 쓸 수가 없는 상처였다.
그는 그저 무력감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
“놈들이 다가왔다네.”
-당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걸 우리가 지켜 주겠소.
-대신 당신은 우리의 간단한 부탁을 들어주면 되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렸소.
-당신의 선택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될 거요.
-우린 당신이 현명한 결정을 하리라 믿소.
“새벽을 열고 새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자들이었네. 당시엔 새벽회라 자신들을 칭하던 이들로, 이제는 달의 추종자라 불리는 그들이 내게 와서 손을 내밀었지. 그때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네. 정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체른카스텔 재상은 달의 추종자와 손을 잡고 말았다.
당장 브렌든을 살리는 게 더 중요했기에.
“손을 잡고 난 이후로 그들은 내게 부탁을 해 왔네. 아주 간단한 부탁이었지. 귀족 몇 명의 정보를 알려 달라고 했어. 어렵지 않았지.”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담스러운 부탁들이 이어졌다.
“쉬지 않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줬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지만 결국 한계가 찾아왔지. 거절을 해야 할 때, 그때 내 지병이 터지고 말았네. 생각해 보면…… 그 지병을 악화시킨 타이밍이 묘했지.”
에단에게서 이야기를 듣고 나니 타이밍이 상당히 미묘했다.
“그들은 내 지병을 고칠 수 없다고 했지. 대신 억제할 수는 있다고 했네. 죽을 때까지 병을 억제할 수 있다면 사실상 그게 치료라는 말과 함께 말이야.”
체른카스텔 재상은 그 약을 받았다.
그게 자신을 오래토록 얽맬 목줄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잘못된 선택임을 알고 있었네. 하지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네.”
“이해합니다, 재상님. 그 당시 재상님께서는 스스로 옳다 여기신 대로 선택하셨습니다. 누구도 그 선택에 뭐라 할 수 없을 겁니다.”
“명예롭게…… 죽었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숱하게 후회하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스스로를 합리화해 왔다네. 그리고 이제야 용기가 생겼지.”
“이번에도 타이밍이 굉장히 묘했습니다, 재상님.”
“그런 것 같군. 마치 뭔가에 계속해서 홀려 있던 것처럼.”
재상이 몸을 일으켰다. 완치된 재상은 더 이상 죽어 가던 노인이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대 밖으로 발을 내딛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순간 재상의 몸이 일순 커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런 철혈의 재상이 달의 추종자에게 휘둘려 살았으니.’
참 재미난 일이었다.
동시에 달의 추종자들이 얼마나 작업을 잘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저 체른카스텔 재상을 이렇게 만들었을 줄이야.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상위 3사도가 한 일이야.’
“고맙네, 에단 군. 내 실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베풀어 준 그 은혜, 내 절대로 잊지 않겠네.”
재상이 심호흡했다.
“브렌든! 아이들을 모두 모아 들어오거라!”
번개가 내리친 것처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밖으로 터져 나갔다.
“예, 예!”
그리고 곧 브렌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모든 걸 바로잡을 시간이네. 달의 추종자 놈들과의 추잡한 거래도, 내가 손을 놓아 벌어진 가문의 일도.”
재상이 에단을 보았다.
“정말 고맙네, 에단 휘커스 군. 이 은혜, 절대 잊지 않겠네.”
-생존 확률이 상승합니다!
-생존 확률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내려갔던 생존 확률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 * *
이후의 상황은 일사천리였다. 힘을 되찾은 체른카스텔 재상은 집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특히 브렌든 체른카스텔이 한 짓을 크게 꾸짖었다.
“사과를 받았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절대 같은 혈통끼리는 그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그건 당신의 대에서 모두 다 끊겠다고 하셨어요.”
나디아는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사과 한번으로 끝날 일은 아니겠지만, 에단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되었네요!”
일이 전부 다 말끔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어도 한시름 놓은 건 확실했다. 나디아의 표정이 상당히 밝아 보였다.
“이제 마음 놓고 아카데미에 집중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교류제에 나가서 다 때려눕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죠! 이젠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고, 정말 마음이 편해졌어요.”
나디아가 후우, 하고 속을 콱 막고 있던 뭔가가 내려간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하루 사이에 다 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네요.”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가시죠.”
“그 전에 약속하셨던 거 있었죠? 이쪽으로 오세요, 에단 선생님.”
에단은 나디아와 함께 체른카스텔 가문의 거대한 회랑으로 향했다.
“이곳이 저희 마법 요새의 중심이 되는 곳이에요. 이곳에 계신 마법사분들이 할아버지와 함께 이론을 정립하셨고 지금도 요새를 운용하고 계시죠.”
“오오, 에단 휘커스 백작님이시군요. 안녕하십니까.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체른카스텔 재상보다는 젊어 보이지만, 분명 노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마법사들이 여럿 있었다.
몇몇은 에단에게 호의적으로 보였지만 또 몇몇은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체른카스텔의 핵심인 마법 요새 제작법을 알려 줘야 하다니.”
“알려 준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쓸 수 없을 텐데. 헛수고가 될 수도 있소.”
에단이 그런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마법사를 다루는 건 내 전문이니까.’
“할아버지의 생명의 은인이세요! 너무 무례하게 하시면…….”
“이게 마법 요새의 중심이군요. 흠.”
이곳에는 수많은 아티팩트와 마법진이 있었다. 때문에 꽤 실력 있는 마법사라고 해도 이 마법 요새의 핵심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에단은 곧바로 평범해 보이는 책으로 다가갔다.
누가 이 책을 이 거대한 체른카스텔 영지에 퍼진 마법의 총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에단의 눈을 벗어날 순 없었다.
‘이곳의 톱니바퀴처럼 얽힌 마법들이 모두 이 책으로 이어진다. 평범한 책이 아니야.’
마법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책 형태의 아티팩트라고 보는 게 훨씬 더 확실했다.
“이렇게 복잡한 마법이 완벽하게 돌아가고 있다니. 전부 다 여기 계신 마법사님들께서 만드신 겁니까?”
에단에게 호의를 가진 이들도, 에단을 경계하는 이들도 에단에 대해선 꽤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둘러싼 소문과 더불어 높은 명성 때문이었다.
그런 에단이 마법을 한눈에 알아본 데다가 칭찬까지 하자, 마법사들 모두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대놓고 웃고 있는 이도 있었다.
“세상에. 이걸 이렇게 돌아가게 만드는 건 보통 일이 아닌데.”
에단은 비장의 한 수를 사용했다.
“혹시 이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흥미 분야에 에단이 한 걸음 깊게 들어갔다.
“흠흠! 젊은 나이에도 엄청난 성과를 내서 십이성으로 가문을 끌어올렸다 하더니, 그 명성대로구려! 곧바로 그걸 알아볼 줄이야!”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만스런 표정으로 에단에게 헛수고라 했던 마법사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다가왔다.
그가 앞으로 나오자 다른 마법사들이 가만히 있는 걸 보니 이 사람이 이곳의 책임자인 듯 보였다.
에단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에단 휘커스입니다.”
“마르테리스라고 하오. 재상님과 함께 이 마법 요새를 설립한 마법사요.”
딱딱했던 분위기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 마법진을 겹치는 기술 말입니다. 특히 이 부분. 본래라면 서로 어긋나야 하는 건데…….”
에단은 곧바로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호라, 그걸 바로 알아보시다니. 훌륭하시군! 맞소, 거기는 그래서 의도적으로 아티팩트를 배치해…….”
신이 난 마르테리스가 설명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도 입이 근질거렸는지 마르테리스의 설명에 한두 마디씩 계속 덧붙였다.
“그건 술식을 아예 변경해서 반만 쓴 겁니다!”
“저 부분은 2종 변형 술식으로…….”
처음에는 에단을 경계하고 꺼리던 이들까지 완전히 에단에게 빠져 신이 나 이야기하니, 그 모습에 나디아는 두 눈만 깜빡거렸다.
“대단해…… 까다롭기로 소문난 분들인데…….”
대개의 마법사가 그렇듯 마법 요새를 담당하는 마법사들 또한 상당히 까다로웠다. 애초에 거둔 성과가 대단하니 이들의 자존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고고했다.
하지만 그런 고고한 자세가 이해가 갈 정도의 성과에, 이들 없이 마법 요새가 돌아가지 않으니 누구도 뭐라고 하지 못하긴 했다.
때문에 나디아는 솔직히 걱정이 많았다.
재상의 명령이 떨어졌지만, 이들은 아니다 싶으면 재상의 명령에도 반발하는 이들이다.
마법 요새의 제작법을 쉽게 알려 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아! 이건 이렇게 한 거군요? 대단하십니다. 2종 변형 술식으로 쓰실 생각을 하시다니.”
“허허, 별거 아닙니다! 꽤 오래 시간이 걸렸지만 이만한 마법 요새를 만들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요. 이걸 알아 본 에단 백작님의 안목이 더 훌륭하군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게 아닌데.”
다들 에단에게 푹 빠진 상태였다.
“다행이네.”
나디아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은인인 에단과 얼굴 붉힐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나서서 이들을 설득할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역시 재상님의 눈이 틀리지 않으셨어. 이 마법 요새는 전수한다고 해서 다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오. 하지만 에단 백작께서는 당연히 가능하시겠군! 바로 알려 드리지. 이쪽으로 오시게. 여러모로 복잡하여 우리가 이론서를 만들어 놨는데, 그 이론서가 사실 실물이 있는 게 아니거든. 우리의 머릿속에 있소. 그걸 지금 우선 실물화해 드릴 테니 에단 백작께서는 영지로 가져가셨다가 설치 이후엔 꼭 소각해 주시길 바라오.”
“아, 그럼 실물로 만들면 안 되겠군요. 유출될 수 있으니.”
에단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괜찮소. 우리는 에단 백작께서 유출하실 분이 아니라는 걸 믿소. 그리고 이 마법 요새의 제작 방법이 상당히 방대한 양이라.”
“괜찮습니다.”
에단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다 외울 수 있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