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32)
신들의 구독자 32화
32화. 시작하고는 늦는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압도적이었어.”
“저, 정말 에단 공자님이 맞으신가?”
“맞아, 분명히 에단 도련님이야. 그것도 옛날 느낌 그대로의 도련님이라고.”
에단이 검술 천재라 불릴 무렵.
휘커스 기사단은 매일 에단과 함께 수련을 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에단을 보며 기사단도 한껏 자극을 받던 시기였다.
그때의 에단은 지금처럼 병약한 미청년 느낌이 아니라 매섭고 날카로워 말이라도 잘못 걸면 그대로 베이거나 찔릴 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었다.
지금의 에단에게서 그 시절의 모습이 보였다.
“승자! 에단 휘커스!”
총관이 손을 들자 대련이 그대로 종료됐다.
레트라 훈타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다.
“자, 잠깐! 맨 마지막은 뭐였지?”
그는 뒤돌아 대련장을 내려가려는 에단에게 다급하게 물었다.
“휘커스 검술 6식.”
마지막 공격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게 6식이었다고? 7식도, 8식도 아닌 6식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한편 놀란 건 레트라 훈타만이 아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훈타 백작의 표정이 굳고 가신들 역시 경악했다.
“공자님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지시다니.”
“도대체 에단 공자는 뭘 하고 있었던 거지? 분명 병이 악화되면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건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병을 앓는 바람에 휘커스 백작령의 경제가 휘청거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직접 확인한 이들도 많았다.
당장 이 자리에도 에단이 한창 병치레를 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았으니까.
지금 봐도 허약해 보이는 몸이 아닌가.
걸음걸이는 분명 인상적이었으나 그것만으로 병이 나았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 상태인데도 져 버린 것이다.
“…….”
레트라 훈타는 고개를 떨어트렸다.
에단은 그런 레트라를 보았다.
‘여기가 분기점이다.’
에단은 훈타 백작령의 지원들을 확실히 끊고 자립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방 백작령 중 세력이 큰 훈타 백작가와 척을 지는 건 멍청한 일이었다.
‘아까 축제 대련을 잊지 않았다고 했었지.’
물론 에단은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레트라가 적개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했다.
‘적개심이라고 보기엔 어려우려나?’
그렇다면 아마도 레트라가 느낀 감정은 실망감인 듯했다.
‘그 마음 이해하지. 나도 목표로 삼았던 플레이어가 접는 걸 보고 실망했던 적이 있으니까.’
“꽤 실력이 늘었는데, 레트라.”
슬쩍 축제 대련을 기억한다는 투로 말하자 레트라가 놀란 눈으로 에단을 보았다.
“그날, 너 말고 다른 놈들은 형편없어서 기억이 난다.”
그 말에 순간 레트라의 눈이 빛났다.
에단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사실 하나가 레트라를 기쁘게 만들었다.
-생존 확률이 올라갑니다.
‘응?’
그리고 그게 에단의 생존 확률을 올렸다.
레트라는 에단을 보며 씩 웃었다.
“역시 강했다, 에단 휘커스. 널 목표로 더 정진하겠다.”
레트라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후련한 표정으로 내려갔다.
“더 열심히 수련해야겠습니다, 아버지. 훈타 검술을 대성했다고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네요.”
그리 좋지 않은 표정을 짓던 훈타 백작도 후련해 보이는 레트라의 표정을 보고 아들이 벽 하나를 깼다는 것을 알아챘다.
“훌륭했다, 에단 공자. 무슨 의미로 철수를 말한 건지는 대략적으로 이해가 간다.”
훈타 백작이 에단에게 다가왔다.
“철수 건과는 별개로, 나는 자네를 보고 휘커스 백작령에 투자를 하겠네. 그건 괜찮겠지?”
“물론입니다. 8:2로 하시죠.”
날강도 같은 말이었지만 훈타 백작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훈타 백작 일행이 떠난 이후, 휘커스 백작은 이게 정말 현실인지 두 눈을 계속 끔뻑거렸다.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었다.
첫째 아들의 병이 다 낫기를.
아니, 낫지 않더라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정도만이라도 되기를.
그런데 그걸 넘어선 현실이 보였다.
“이제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언제든 죽음의 위협을 받겠지만, 적어도 어처구니없이 죽게 될 일은 없었다.
“걱정해 주신 덕분입니다.”
에단의 말 한마디에 백작은 지금껏 했던 고생들이 씻겨 나가는 것만 같았다.
“이젠 아프지 말거라.”
* * *
“이쪽은 예리카라고 합니다. 이번 외출 중에 만난 사업 파트너죠.”
“안녕하세요, 백작님. 예리카라고 합니다.”
예리카가 미소를 지으며 예를 차렸다.
그녀는 어린 시절 도망자로 살았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를 통해 확실한 예절 교육을 받았었다.
게다가 아름다운 외모까지 받쳐 주니, 휘커스 백작은 흐뭇하게 그녀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우리 에단과 어울려 줘서 고맙소. 워낙 병약한 터라 믿음직스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병약해 보이는 외견뿐이지, 사실은 든든한 아이라오.”
“잘 알고 있습니다, 백작님. 정말 엄청난 검술 실력을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게다가 생각보다 더 강인하시기도 했고요. 그 엄청난 야수…….”
에단이 예리카를 슬쩍 보았다. 이만 입 다물라는 뜻이었다.
예리카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기에 빠르게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예리카와 함께 사업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원래는 아버지께 자금을 조금 더 빌리려고 했는데, 훈타 백작이 꽤 많은 돈을 지원해 주기로 했으니 굳이 돈은 가져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무슨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사업을 시작하면 꽤 오래 영지에 있어야 할 텐데, 상인이 되려는 건 아니겠지?”
뭘 하든 응원을 할 테지만, 설마하니 에단이 상인을 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베카 아카데미에 가려고 합니다.”
“아카데미에? 하지만 나이가…….”
“학생이 아니라 선생으로 갈 생각입니다.”
“……!”
에단의 말에 휘커스 백작이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베카 아카데미라면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 사업을 발판으로 삼아서 기부 입학을 하려는 게냐?”
기부 입학은 학생에게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고용되길 원하는 교사들도 기부 입학을 통해서 아카데미 교사로 채용될 기회가 있었다.
물론 제대로 교편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베카 아카데미 교사 출신이라는 꼬리표다.
이 꼬리표만 가지고 있으면 어디든 쉽게 갈 수 있었다.
당장 왕립 기사단 같은 곳에 지원할 때도 가산점이 붙었다.
“아카데미의 이름이 필요한 이들이 명예 교사직을 찾곤 하니까. 흠, 나쁘지 않구나. 이베카 아카데미 교사 출신이라고 하면 어디든 자리가 있을 테니 말이야.”
“아니요, 명예 교사는 관심 없습니다. 진짜 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응?”
순간 휘커스 백작이 당황했다.
“정말 교사가 되겠다고?”
“예.”
‘이베카 아카데미는 곧 몰락한다. 수많은 이벤트가 거기에 몰려 있다는 소리야.’
그 말인즉슨 그곳에서 명성을 크게 쌓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내가 제일 잘 아는 곳에서 말이지.’
에단은 몰락한 이후의 이베카 아카데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게임이 시작될 땐 이미 몰락한 상태라, 그 몰락한 이베카 아카데미를 재건하는 것도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든 결국 메인 시나리오와 연결되기 때문에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했으니, 아카데미 플레이는 정석 중의 정석이었다.
때문에 에단은 그곳에서 명성을 크게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명성이 올라가면 자연히 성녀와 만날 수 있게 된다.
‘성녀라면 분명 이 저주를 풀 수 있을 테고.’
그렇게 되면 한시름 돌리게 되는 셈이었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저주를 달고 산다는 건 족쇄 몇 개를 달고서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아무나 교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에단. 기부 입학을 한다면 명예 교사직이 한계야. 교편을 잡으려면 그만한 실력이 필요하다.”
에단은 검술 천재였다. 하지만 그건 휘커스 백작령이 있는 지역에서 한정될 뿐이었다.
대륙은 넓다.
휘커스 백작령은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의 영지로, 중앙으로 가면 에단을 그 누구도 검술 천재라 불러 주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이 근방에서 마법 천재라 불렸던 나단 휘커스도 아카데미로 가서 굉장한 고생을 했다.
아무도 그 실력을 인정해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네 실력은 내가 가장 잘 안다, 에단. 하지만 세상은 넓어. 중앙은 엄청 발전되어 있지. 이베카 아카데미는 중앙 쪽에 위치한 아카데미야. 그게 뭘 뜻하는 건진 잘 알겠지?”
“기라성 같은 강자들이 모인다는 소리겠죠. 학생도, 선생도 말입니다.”
“나단이 있는 프레이야 아카데미도 중앙에 있다. 차라리 프레이야를 노리는 건 어떠니? 나단이 이미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너도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에단은 고개를 저었다.
프레이야 아카데미는 이베카 아카데미와 라이벌 격인 대단한 아카데미였다.
하지만 하필 그곳의 교장이 창왕이었다.
‘창왕은 미친놈이야.’
선과 악으로 따지자면 악에 가까운 놈으로, 프레이야 아카데미를 이어받은 이유가 너무나도 심플했다.
‘더 강한 놈하고 싸우려고. 그걸 위해서 아카데미를 이끌어 나가는 거지.’
강한 놈과 싸우는 것만이 목적인 자. 그렇다면 에단을 주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너무 위험해.’
그 창왕과 가까이하기엔 너무 위험했다.
그러니 조금 어렵더라도 이베카로 가는 게 나았다.
이베카의 교장은 유령검이라 불리는 사람이었는데 적어도 창왕보다는 얌전했다.
“그럼 과목이라도 다른 걸 골라야 한다. 검술 쪽은 실력 좋은 사람이 너무나 많아. 경쟁률이 엄청나게 높을 거다.”
이베카 아카데미는 명색이 최고의 아카데미로 손꼽히는 곳이었기에 지원하는 사람이 무척이나 많았다.
이름 없는 고수들부터 중앙 귀족들의 2세들까지, 굉장히 많은 이들이 교편을 잡길 원했다.
“안 되면 사업에 집중하다가 기사단에 들어가겠습니다.”
에단은 우선 걱정하는 아버지를 진정시켰다.
“걱정하지 마세요. 안 되면 말죠, 뭐.”
그렇게 웃으며 말하자 그제야 휘커스 백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물론 에단은 안 된다고 멈출 생각이 없었지만 말이다.
* * *
“그게 정말 사업이 되겠니?”
에단에게 본격적인 사업 이야기를 들은 휘커스 백작이 다시 한번 의문을 가졌다.
무언가 아들이 새로운 것들을 하려는 것 같은데, 휘커스 백작이 보기엔 전부 다 위험 부담이 있는 것들뿐이었다.
“영지 발전에 대해서 생각해 두신 게 있으십니까?”
“영지 발전?”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었다.
이미 정체기에 들어선 휘커스 백작령은 발전이 멈춘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해서 백작도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우고 싶은 거야 많지. 시장도 조금 더 크게 만들고 싶고, 영지민들을 위한 복지도 늘리고 싶고. 요즘 들어 뒷골목이 시끄럽다고 하더구나. 치안 유지를 위해선 기사단도 더 늘리고 싶은데, 가진 게 있어야 말이지.”
휘커스 백작령에 필요한 것들을 백작도 이미 알고 있다.
“그거, 준비하시면 될 겁니다.”
에단이 말했다.
“사업 시작하고 나서는 늦습니다,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