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41)
신들의 구독자 441화
441화. 성녀 조우
콰앙-!
인간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길이 생겨났다. 물론 병사들이 그 앞을 막고 전진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나 그것도 잠깐.
인간은 닫힌 길을 힘으로 열고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엄청난 속도로 병력을 뚫고 전진하니 요새까지의 거리가 크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거 위험한데.”
만약 저 인간이 암흑 사도가 보낸 히든카드라면.
이 전장은 패배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즉시 퇴출이었다.
이 신들의 도시는 승리자들의 도시가 될 것이다. 패배한 자신들은 그들이 허락해 주기 전까진 절대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다.
이건 그런 대결이었다.
“…….”
하지만 신들은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가 없었다.
이미 모든 걸 성녀에게 맡겨 두었다.
암흑 사도 쪽 신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도 이 싸움에 직접적인 개입은 불가할 터.
신들이 할 수 있는 건 병사를 통해 자기 능력을 빌려 주는 것뿐이다.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저 인간이 성녀의 적이 아니기를 말인가?”
“아니, 성녀가 저 인간을 막기를.”
콰앙-!
그러나 그 염원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길이 생겼다.”
괴물 같은 인간이 다시 길을 열어 요새 앞에 도착한 것이다.
“저게 정말 인간인가?”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은 저런 힘을 낼 수 없어. 신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인간의 몸에는 한계가 있잖나!”
수많은 인간을 봐 온 신들이 보기에도 어처구니가 없는 모습이었다.
신들은 빠르게 그 인간에게 다가갔다.
“……뭐야?”
그리고 지금껏 놀란 것보다 몇 배는 더 놀라게 되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데?”
괴물 같은 모습을 보였던 그 인간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온몸에 새카만 뭔가가 끈적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심지어 몸속엔 수십 가닥의 쇠사슬이 도사리고 있었다.
“저건.”
“……의식인데? 인간들이 우리를 강림시키려고 할 때, 그에 걸맞은 육체를 만들어 주기 위해 벌이는 의식이야.”
“근데 저 의식…… 인간이 버틸 만한 의식이 아니야. 저건 이미 죽었어야 돼.”
미친 인간에게 깃든 의식은 인간에게 걸 만한 의식이 아니었다.
애초에 의식을 건 인간이 죽어 버리면 의식에 의미가 없다.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의식을 완성시켜야 하는데, 저 미친 인간의 몸에 있는 건 의식을 시작하자마자 인간을 부숴 버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뭔데?”
“어떻게 저 의식을 버티고 저만큼이나 성장한 거냐?”
그러나 저 미친 인간은 신들이 예상한 모든 것을 걷어차고 이 자리에 있었다.
“육체의 제약이 저리 심한 상태인데도…… 저 정도로 강하다고?”
놀라던 신들은 이제 에단의 육체 상태를 보고 감탄하기 시작했다.
“죽었어도 진작 죽었어야 할 몸뚱이에 강함을 쌓아 올렸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더 높은 상황에서 최대한 안정을 추구하면서 저만큼이나 이룩해 내다니.”
“역시 인간이란 우습게 볼 수 없는 존재들이야.”
에단의 저 끔찍한 육체와 그에 반하는 미친 퍼포먼스야말로 신들이 인간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는 이유였다.
저 미친 인간이 이곳에 모인 신들보다 부족한 게 무엇인가?
인간들이 저 인간을 본다면 그를 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경이롭군. 가히 경이로워. 가능성에 가능성을 더해 살아남은 지금 저 모습이야말로 예술 작품이 아닌가!”
“지금 감탄할 땐가?”
“그러다가 눈물이라도 흘리겠는데? 지금 그럴 때가 아니오!”
쿠웅-!
에단이 결국 막혀 있던 길을 뚫었다.
“이런…….”
저 막혀 있던 길이 뚫리면 남은 건 딱 하나뿐이다.
“……요새 앞까지 당도했다.”
이제 남은 건 요새뿐이었다.
* * *
“도착했다.”
마지막 방어선인 요새. 지켜보고 있던 신들은 마지막 방어선만이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에단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거나 다름없었다.
‘저 안에 성녀가 있다.’
에단이 들고 있던 두 검을 바닥에 강하게 박아 넣었다.
쑤욱-.
두 검이 정확하게 에단의 앞에 가지런히 들어갔다.
이제부턴 더 검을 휘두를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 주는 행동이었다.
에단이 행동을 취하자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던 병사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홀리라이트 교단의 성녀님!”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에단 휘커스라고 합니다! 성녀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저는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 병을 치료하고자! 오랜 세월 성녀님을 찾아다녔습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다.
간절히 원하는 걸 말하면 된다.
성녀에겐 그 정도면 충분했다.
에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조용한 요새. 주변에선 병사들이 무기를 들고 에단을 공격할 기색이었지만 에단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침묵이다.’
턱 끝까지 병사들의 무기가 쇄도했다.
그러나 에단은 아예 팔짱을 낀 채 요새에 시선을 고정했다.
쿵-.
병사들이 더 움직이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큰 소리와 함께 요새의 문이 열렸다.
요새의 문 안쪽에는 에단이 찾던 그 사람이 있었다.
“절 만나려고 이곳까지 오신 건가요?”
홀리라이트 교단의 성녀.
‘드디어 만났다.’
“성녀님을 만나기 위해 정말 오랫동안 노력했습니다.”
에단이 웃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성녀님.”
구원자가 눈앞에 있다.
* * *
성녀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병이 있으시군요.”
성녀는 새하얀 사람이었다.
마치 백색증에 걸린 것처럼 머리칼도, 눈썹도, 피부도 모두 다 하얀색이었다. 유일하게 색이 다른 건 보라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뿐이었다.
성녀는 이곳에 있는 수많은 신들보다도 더욱 더 신 같은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것 이전에 무척이나 성스러웠다.
“일단 들어오세요, 어서. 요새 문을 오래 열 순 없어요. 상황은 아실 거라 생각해요.”
에단이 잠시 그 자리에 섰다. 그러고는 활을 꺼내 뒤로 쏘았다.
쐐애애애액-!
화살이 정확히 뒤에 있던 사도의 병사들에게 꽂혔다.
“고맙소, 선생!”
“낭만 찾다가 죽을 뻔했거든! 그것도 파묻혀서!”
“함께 온 동료들입니다.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뒤늦게 쇼프로브 하이어도 나타났다. 물론 그의 병사들은 전부 녹아 사라진 상태였다.
“……네. 일단 어서.”
* * *
-홀리라이트 교단의 성녀와 만났습니다!
-[성스러운 만남] 업적 달성에 따라 좋아요를 얻었습니다.
-좋아요를 ‘30’만큼 얻었습니다.
압도적인 업적이었다.
‘황제를 만났을 때보다도 더 좋아요 수가 높아.’
황제보다 만나기 힘든 상대. 게다가 일전에 클리어한 고난이도의 퀘스트들만큼이나 난이도가 높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결국 만났다.
‘아주 길고 길었어.’
자신에게 걸린 병이 절멸증이라는 걸 알았을 때도 치료법 자체는 알고 있었다.
‘성녀에게 치료를 받는 것.’
그 성녀를 이제야 만나게 된 것이다. 에단은 상당히 뿌듯했다. 아직 치료가 된 건 아니었으나 만나기 어렵다는 성녀를 만났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깊었다.
‘해냈다.’
성취감을 느끼는 에단 뒤에서 쇼프로브 하이어가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진짜 성녀가 있는 요새까지 들어오는 데 성공할 줄은…… 엄청난 대군이었다고, 허 참…….”
쇼프로브 하이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
그런 상황을 뒤로하고 성녀가 에단에게 다가왔다.
“에단 휘커스 님,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꽤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에단이 그리 대답하며 요새 안을 자세히 살폈다.
요새는 바깥에서 본 것보다는 작았다. 하지만 여기까지 들어오면서 본 마법만 해도 서른 가지 이상이었다.
그 많은 마법들이 요새 안으로 적이 들어오는 걸 막는다.
거기에 최종적으로 성녀에게서 느껴지는 신성한 오라.
‘교황한테도 느껴지던 거였는데. 교황과는 비교 자체가 안 되는군.’
여신의 축복이 성녀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저 정도 축복이라면 액운이든 저주든 그 어떤 것도 그녀를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제가 성녀님의 적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알고 있었어요. 저도 에단 휘커스 님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목소리를 들었을 때.”
성녀가 말했다.
“그리고 침묵하셨을 때 문을 열어 드린 거예요.”
성녀는 에단 휘커스를 알고 있었다.
그에게 병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여신께선 많은 걸 알고 계시니까요.”
그가 간절하게 병을 치료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았다.
자신이 요새 안에 있다는 걸 안 에단이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기다릴 때, 성녀는 확실하게 알았다.
에단이 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 제가 어떤 이유로 성녀님을 찾아왔는지도 알고 계시겠군요.”
“네, 설마하니 여기까지 찾아오실 줄은 몰랐지만요. 지금껏 제가 머물던 곳 중 가장 깊숙하고 가장 찾기 어렵운 곳이죠. 게다가 마침 가장 곤란한 상황이거든요.”
성녀가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신성력이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저렇게 생겼을 것 같군. 방금 미소 봤어, 메리?”
“미련 없이 검에서 떠날 뻔했어. 정말 아름다운데!”
로디튼과 메리가 흐뭇하게 이쪽을 쳐다보았다.
“긴 이야기 전에 잠시 요새 문 좀 열어 주시겠습니까? 제가 빠르게 해결하고 올 테니.”
“아니요.”
성녀가 말했다.
“이야기를 못 할 정도로 여유가 없는 건 아니에요.”
성녀가 천천히 눈을 감자 이내 그녀로부터 강렬한 파동이 퍼져 나왔다.
“전장판.”
에단은 곧바로 전장판을 사용했다. 아직까지 전장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전장의 상황이 훤히 보였다.
‘오.’
성녀의 병사들이 밀고 들어오던 1, 2사도의 병사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에단과 로디튼, 그리고 쇼프로브 하이어와 병사들이 어느 정도 구멍을 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진형은 빠르게 복구되었고, 전장은 다시 이전과 같은 흐름을 되찾았다.
‘다시 밀어내고 있어. 이러면 다시 또 고착 상태다.’
오히려 에단의 참전이 단순히 성녀에게 안 좋게 작용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갑작스런 에단의 참전을 보고 성녀 쪽에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판단한 건지, 1, 2사도의 병사들이 상당히 신중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성녀는 오히려 회복할 시간을 벌고 적 병력을 밀어붙일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은 정리됐어요. 그럼 이야기를 부탁드릴게요.”
성녀가 뒤에 있는 쇼프로브 하이어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전부 다, 그리고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건지도 전부 부탁드릴게요.”
* * *
“……뭐지? 누군가가 개입했다.”
“신들의 개입이 아닙니다, 1사도. 뭔가 다릅니다.”
“…….”
1사도는 눈을 감았다.
분명 누군가가 전장에 개입했다. 하지만 신은 아니었다.
신이 개입한 거라면 자신들이 무조건적으로 알아야 했다.
이 전장의 룰이 그러했으니까.
“다른 누군가 들어온 겁니다.”
“이 신들의 도시에 말인가?”
“지금껏 조용히 있던 마황일 수도 있습니다.”
“……마황은 결정적인 순간에 모습을 보일 터. 아마 마황은 아닐 거다, 2사도.”
“그럼…… 누가 들어온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1사도는 혀를 찼다.
“회주와의 연결이 끊겼다. 문 마더께서 강렬한 반응이 있으셨고, 이상한 신탁을 내리셨다.”
“……회주가 죽었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그래, 만약 회주가 죽었다면 그를 죽일 수 있는 건 딱 한 명밖에 없어.”
“…….”
2사도가 고개를 떨궜다.
“에단 휘커스.”
“그래, 우린 잘못된 선택을 했다. 모든 걸 제쳐 둬서라도 성녀가 아닌 에단 휘커스를 최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했다.”
1사도의 말에 2사도가 인상을 썼다.
“하지만 아직 개입한 게 에단 휘커스라고 밝혀진 게 아닙니다. 거기다 만약 에단 휘커스라고 한들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이곳에 온 것 자체가 그의 패착입니다.”
2사도의 말에 1사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게 잘 풀린다면 전부 다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안 풀리게 된다면…….
1, 2사도는 굳이 실패를 떠올리지 않았다.
회주가 죽었다고 판단이 되는 지금, 이 일을 실패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더 이상 돌아갈 길은 없다.
남은 건 오로지 전진뿐이었다.
* * *
에단은 차근차근 설명했다.
찾아온 이유는 이미 알고 있으니 제외하고, 지금 그녀가 하려는 일, 그리고 1, 2사도의 목적.
문 마더와 문포스.
복잡한 이야기였지만 배경 지식이 있는 성녀는 금세 이해했다2.
“거의 다 알고 계셨군요.”
“네, 상황을 파악해야 했으니까요.”
“우선 정말 고생하셨다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에단 휘커스 님은 홀로 많은 걸 짊어지고 계셨군요. 악독한 병을 가지고 있음에도 운명을 거슬러 악을 멸하고 선을 행하셨어요.”
성녀가 말했다.
에단은 감사하다는 듯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물었다.
“성녀님께 제 병을 치료해 달라 부탁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성녀님, 제 안의 절멸증, 치료가 가능합니까?”
에단 휘커스로 살아남기.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었다.
에단의 질문에 성녀가 잠시 생각하는 듯 눈을 감았다.
그리곤 눈을 떴다.
보라색 눈동자가 순간 에단을 향했다.
“네, 가능합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