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8)
신들의 구독자 48화
48화. 승냥이들
이베카 아카데미 교장실.
교장은 이번 기부 입학 명단을 살피던 도중 따로 빠져나온 양피지를 발견했다.
“응? 이건 왜 따로 빼놓았나, 입학처장?”
이번에도 수많은 이들이 기부 입학을 요청했다.
교사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이들이 지원을 했는데, 그들이 보낸 수많은 편지들 사이로 따로 빠져 있는 양피지가 있었다.
“이 지원자는 다른 지원자와 달리 꽤 큰 돈을 기부 입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무려 금액이 그 천만 골드입니다.”
입학처장이 따로 빼 놓을 만큼 큰 금액.
평균은 2백만에서 3백만 골드 정도였다.
“오호, 천만 골드? 가벼운 돈이 아닌데. 어느 귀족가의 자제지?”
“휘커스 백작의 첫째입니다.”
“휘커스? 처음 들어 보는데.”
“서부에 위치한 백작 가문인데, 프레이야 아카데미에 있는 나단 휘커스의 형이라고 합니다.”
“오, 그 나단 휘커스 공자의 형이라! 근데 나단 휘커스의 형이면 나이가 꽤 있는 거 아닌가? 스물은 넘었을 텐데?”
“학생으로 신청한 게 아닙니다. 교장님.”
그 말에 흥미로워하던 교장의 표정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럼 명예 교사직을 얻으려는가 보군.”
“그게…… 조금 다릅니다. 편지를 따로 보내왔습니다. 게다가 여기, 이걸 보시면 더 이해가 가실 겁니다.”
입학처장이 교장에게 양피지를 건넸다.
에단 휘커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는 양피지였다.
“흐으음, 스물한 살이라. 얼마 전까지 검 하나 들지 못했다고? 병약한 걸로 유명해서 병약 공자라는 별명도 있었고?”
에단 휘커스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부정적이었다.
한창 성장하고 강해져야 할 시기에 병약 공자로 유명했으니,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휘커스 백작가 또한 그리 명성이 높은 가문은 아니었다.
“나단 휘커스가 프레이야에서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훌륭하다곤 하지만 가문 내에서 홀로 빛나고 있어. 가문이 제대로 된 배경이 되어 주지 못하는군.”
휘커스 백작령의 영광은 대부분 과거에 있었다.
이제는 영광도 명예도 빛이 바랜 상태였고, 근방 다른 영지와 비교하기에도 그다지 경쟁력이 없는 상태였다.
“아무리 우리 이베카에 명예 교사직이 있다곤 하지만, 기본 실력도 안 되는 자를 교사로 임명할 순 없다. 실력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명예 교사 제도는 말이 많이 나오는 제도였다.
하지만 이베카 입장에선 여러모로 이득이 되는 제도였다.
재정적으로도 크게 도움이 됐고 명예 교사직을 준 귀족 가문과 인연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에게 명예 교사직을 줄 순 없었다.
그 명예 교사직을 받은 자가 함부로 행동하면 그게 곧 이베카의 흉이 될 테니 말이다.
“맞습니다. 그런데 한때는 검술 천재라고 불렸다고도 합니다.”
“그래 봤자 이론뿐이겠지. 그것도 반토막 난 이론이다. 실전 경험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안 그런가, 입학처장? 거기다 중앙도 아니고 지방 귀족이니, 뭐. 말 다한 셈이지.”
“예, 맞습니다.”
“그래도 뭐, 천만 골드나 보내왔으니 거절하기엔 뭐하고, 일단은 초대장을 보내게. 명예 교사직을 줄지 말지는 그때 결정하겠네.”
“교장님, 보내온 편지 내용이 더 있습니다.”
입학처장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교장은 살짝 이마를 찌푸렸다.
“더 있어? 청탁이라도 해 온 건가? 그런 거라면…….”
“명예 교사직 지원이 아닙니다.”
“응? 학생 지원도 아니고 명예 교사 지원도 아니라면……?”
“정식으로 교사직에 지원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천만 골드로?”
교장이 인상을 썼다.
제아무리 기부 입학금을 많이 낸다고 해도 정식 교사직은 다른 이야기다. 정식 교사는 기본적으로 시험을 보고 들어오는 자리다.
단순히 이름만 교사인 명예 교사직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이베카를 너무 우습게 보고 있군.”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고위 귀족부터 하위 귀족까지, 재능 있는 수많은 귀족가의 자제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이베카다.
그런 이베카이기 때문에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최고의 인재들이어야 했다.
허투루 가르쳤다가는 도리어 먹힌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그 실력이 부족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잠재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지. 몇몇 아이들 중엔 스스로 깨우쳐 잠재력을 실력으로 바꾼 아이들도 있어. 그런 학생들만 있는데 어중간한 선생이 들어오면 스스로 괴롭기만 할 테지.”
입학처장도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섣불리 말을 꺼낼 순 없기에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느 과에 지원했나?”
“검술과입니다.”
“나 원…….”
검술과는 이베카에서도 쟁쟁한 곳이었다.
교사는 물론이고 학생들도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진 이들만 있다.
창술과나 궁술과의 교사들보다도 그 경쟁력이 수 배는 더 높아야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만큼 대우도 최고였다.
“우리 이베카의 자랑이 검술과인데, 천만 골드의 기부 입학금을 내고 검술과의 교사직 시험을 보고 싶다니. 정말 간 큰 친구로군.”
“시험을 볼 수 있는 권한이면 된다고 합니다. 천만 골드는 그대로 기부 입학금으로 내겠다고 적혀 있습니다.”
이쯤 되니 꽤 재밌게 느껴졌다.
편지 내용에 따르면 천만 골드를 그저 시험을 보는 용도로 쓴 것 아닌가.
천만 골드는 쉽게 턱턱 내놓을 만한 작은 금액이 아니건만.
지방 백작가의 금력으로는 쉬이 내놓기 힘든 금액이다.
“천만 골드면 시험 기회 정도야 줄 수 있지. 답신을 보내게. 날짜에 맞춰 이베카 아카데미 검술과 교사 시험에 출석하라고 말이야. 대신 명예 교사직이 아니라 검술과 교사 지원으로 생각하겠다고 보내게. 그 수준이 아니라면 절대 채용할 수 없다고 말일세.”
* * *
“이렇게 직접 찾아오시다니. 반갑습니다, 유라한 백작님.”
“휘커스 백작님이시군요. 반갑습니다. 마르타 유라한입니다.”
휘커스 백작령 응접실.
유라한 백작과 휘커스 백작이 서로 인사를 나눴다.
“우선 크나큰 성공을 거두신 걸 축하드립니다. 한때 휘커스 백작령은 지방 영지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곳이었죠.”
“과찬이십니다. 유라한 백작령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위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저희 영지와는 비교하는 것이 결례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이었다면 이런 굴욕에 얼굴이 붉어져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터. 하지만 근래의 휘커스 백작은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유라한 백작은 그런 휘커스 백작의 변화를 눈에 담았다.
지금의 휘커스 백작은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에단 휘커스, 그 병약 공자가 이렇게 만든 건가?’
눈앞의 제임스 휘커스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저희 첫째를 만나러 오신 거겠죠?”
“네, 저희 유라한 상단이 에단 공자의 사업에 가능성을 느껴 투자를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유라한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웃고는 있었으나 말에 비수가 담겨 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은 유망한 사업을 벌이는 초짜 에단에게 투자를 하러 왔다는 입장이었다.
명확한 상하 관계를 드러내는 그 말에 휘커스 백작은 같이 미소를 지어 주었다.
“꽤 가능성 있는 사업을 하고 있지요. 그래서 에단이 좀 바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유라한 백작은 내심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껏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면 기다리게 했지, 기다린 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로 여기서 바보처럼 일을 그르칠 사람은 아니었다.
“예, 괜찮습니다. 오늘은 시간을 많이 비워 두고 왔습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에단 휘커스입니다. 유라한 백작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주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기억하나 에단 공자?”
“예, 기억합니다. 백작님.”
유라한 백작이 에단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분명 보고 받은 대로 병약한 느낌은 그대로였다.
아련한 눈빛에 약간은 마른 듯한 몸, 거기에 유해 보이는 인상까지.
하지만 본질적으로 다른 느낌이 들었다.
유라한 백작의 앞에 에단이 자연스럽게 앉자 곧바로 휘커스 백작이 일어섰다.
“저는 일이 바쁜 터라…… 이만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에단, 백작님께 결례를 범하지 말거라.”
“예, 백작님.”
에단과 휘커스 백작이 눈을 마주쳤다.
무언의 신호가 오가고 에단과 유라한 백작, 그리고 서로의 호위만이 남았다.
로브를 입은 예리카는 조용히 후드를 뒤집어쓰고 에단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자리에 앉은 에단은 침묵했다.
본래라면 에단이 먼저 입을 열어야 했지만 에단은 자신의 위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부탁하러 온 게 상대라는 것도 더없이 잘 알고 있었다.
‘이제야 알겠군.’
유라한 백작이 이가 드러날 정도로 크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휘커스 백작의 여유는 사업 이익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여유는 에단 휘커스. 휘커스 백작가의 첫째 아들, 그 자체에서 나오고 있었다.
“에단 공자, 내가 자네를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자네의 그 훌륭한 사업 때문일세. 잠깐 살펴봤는데도 엄청나더군!”
“칭찬 감사드립니다. 이제 막 시작한 터라 거대한 상단을 운영하시는 백작님께 선보이기엔 조금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유라한 백작은 이런 놈들을 수없이 많이 구워삶아 본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에단은 초짜였다.
그것도 초짜 중의 초짜. 지금까지 영지 바깥으로 나가 본 경험도 없거니와 사업 또한 이번이 처음일 터.
‘초심자의 행운으로 큰 보물을 얻게 된 거지.’
초심자의 행운은 적당해야 한다.
처음부터 감당하지 못할 보물을 얻게 되면 그건 보물이 아니라 재앙으로 변하고 만다.
“그런 사업을 더 크게 만든다면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을 벌게 될 거야. 이야기는 들었네. 자네가 더 이상 검을 들지 못한다는 이야기. 참 안타까운 일일세. 그런데 상재까지 재능을 보일 줄이야. 그 재능이 어디 도망가는 건 아니군!”
에단이 웃으며 반응했다.
그러자 유라한 백작은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은근하게 에단을 칭찬하는 말들이었다.
듣고 있노라면 진짜 유라한 백작이 자신을 인정하는 말 같아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작은 성공일 뿐입니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고요.”
“알고 있네, 알고 있어. 돈이 부족하다는 거겠지? 자네는 뛰어난 상재를 가지고 있으니까. 반드시 성공할 이 사업을 더 키우고 싶겠지. 그래서 내가 찾아온 걸세. 에단 공자, 우리 유라한 상단이 그 돈을 지원하겠네.”
“정말이십니까?”
에단이 관심을 보이자 백작이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갔다.
“얼마가 되든 상관없네. 우리 유라한 상단은 자네의 사업이 무조건적으로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우린 자네와 같은 인재를 기다려 왔네. 우리가 그 재능을 키워 주겠네. 실패해도 상관없어. 실패한다 해도 우린 지원했던 돈을 갚으라고 하지 않을 테니. 대신 성공할 경우에 그 이익을 조금만 나눠 주면 되네.”
무척이나 달콤한 제안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아주 좋은 제안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을 터.
“이제 내가 직접 찾아온 이유를 알겠지? 우리 유라한 상단이 자네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싶네. 나는 자네에게서 큰 가능성을 봤어. 그러니…….”
유라한 백작은 다시금 에단과 눈을 마주했다.
하지만, 순간 백작의 등에 소름이 돋았다.
오싹.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자신이 왜 에단 자신을 지원하기로 했는지, 어째서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있는지를 다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
‘알고 있다. 다 꿰뚫어 보고 있어.’
백작은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저 에단 휘커스는 자신이 경량화 공방을 삼키려고 왔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다.
이미 그에겐 보물을 지킬 힘이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 또한 함께 들었다.
저 눈빛에 놀라 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의 생각에 당황하기 시작한 백작에게 에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제안입니다, 백작님. 정말로요.”
유라한 백작은 더 이상 에단의 눈빛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