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scriber of the Gods RAW novel - Chapter (63)
신들의 구독자 63화
63화. 네가 필요하다
홀로 남은 유나 가넷은 생각에 잠겼다.
“거절할 이유가 없을 텐데.”
마음에 파동이 일었다.
이건 그녀의 기준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예측한 그 어떤 것도 에단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수업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부탁까지 전부 다 예상을 벗어났다.
“거절할 수 없을 텐데.”
그녀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신기한 사람이야.”
유나의 눈빛이 변했다.
지금까지 사람에게 그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유나였으나, 어쩌면 에단은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냐, 그럴 리 없지.”
하지만 들뜬 것도 잠시, 그녀는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믿으면 배신만 당할 뿐이야. 믿어야 할 건 사람이 아니야.”
돈이다.
* * *
“신입 교사가 처음 맡은 수업에서 강의실을 꽉 채운 건 이번이 처음이라죠?”
“그 클라우디 선생님도 저렇게 꽉 채우진 못했다고 하던데.”
“도대체 첫 수업 때 어떻게 했길래 저런 걸까요? 듣기로는 첸 가르시아 군을 거칠게 교육했다고 들었는데. 그럼 더 신청을 안 해야 할 텐데.”
교사들 사이에 에단의 수업이 화두로 올랐다.
교사들에게는 맡은 수업이 곧 자부심이었다.
어떤 평가를 받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수강을 신청하는지에 따라 강사의 가치가 결정되곤 했다.
때문에 아카데미의 교사들은 수업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수업을 들으면 어떤 걸 가져갈 수 있는지 첫 수업에서 어필하고, 수업을 들은 학생들을 통해서 새로운 학생들을 모집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신입 교사는 불리한 구조에 놓인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에단은 그 불리함을 그대로 박살을 내 버렸다.
“75명이 정원이라죠?”
“아직 정정 기간이니까 중간에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나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나 봐요.”
“근데 첫 번째 수업보다는 뭔가 이야기가 덜 나오네요.”
첫 번째 수업 땐 첸을 과격하게 교육한 것과 동시에 어떤 수업을 할지를 직접 보여 준 에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왔다.
주 내용은 에단이 어떤 식으로 검로의 이해를 가르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이야기가 없었다.
그저 정원을 꽉 채웠다는 것과 한 명도 중간에 수업에서 나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상류층 학생들이 잠자코 있었다는 이야기밖에 없었다.
수업 내용에 대해선 거짓말처럼 이야기 하나 돌지 않았다.
교장실.
“그래서, 이렇게 조용한 이유가 있다고?”
“네.”
교장의 앞에 3학년 학생이 서 있었다. 교장 장학생으로, 1학년 때부터 교장의 눈과 귀가 되어 준 아카데미 학생회의 임원이었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저도 같은 생각을 했기에 가감 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에단 휘커스 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이 수업을 자신만 독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독점?”
“선생님은 이제 막 첫 수업을 맡으셨으니까요. 이 정도의 실력이면 다음 수업도 금방 맡을 텐데. 그렇게 되면 인원이 빨리 찰 겁니다. 신청하기도 어려울 만큼.”
학생회 임원이 말을 이어 갔다.
“에단 선생님의 수업은 엄청났습니다. 그, 대단했다고밖에 말이 안 나옵니다.”
“도대체 어떤 수업을 했길래?”
“그러니까…….”
그가 에단의 수업에 대해서 설명했다.
“열 명을?”
“예, 거짓말처럼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가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과장도 없고 제 사견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열 명을 세워 놓고 각자의 검술을 한차례 펼치게 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한 명씩 피드백을 주었습니다.”
“허.”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충격적인 수업 내용이었다. 열 명의 검술을 동시에 펼치게 해 놓고, 그걸 보고서는 곧바로 검로를 교정해 줬다고?
“한 번만 봤다는 거지?”
“예.”
그럼 그걸 다 기억했다는 거다. 시험 때 뤼비네이드 개량 검술 교본 때와 비슷했다.
“그 미친 수업을 당연하다는 듯이 했다 이 말인가?”
“네, 에단 선생님은 그게 그다지 특별한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이 더 난리입니다. 에단 선생님에겐 이게 평범한 수업이라면, 이후 선생님이 힘을 준 수업에선 얼마나 더 대단한 걸 배울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전부 다 입을 다물고 있다?”
“예, 독점하기 위해서입니다. 소문이 나면 에단 선생님의 수업을 듣기가 정말 어려워질 테니까요.”
학생들은 이미 조만간 에단 휘커스가 전공 수업을 맡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몇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께서 키워 온 이베카 아카데미의 비밀 병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실력이었으니까요. 지방 귀족가인 휘커스 가문에서 온 에단 선생님은 여기 이베카에 오기 전까진 병약해서 아무 일도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대외적으로 알려진 정보였다. 거짓인가 싶어 재차 체크했지만 분명 사실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정보에 혼선을 주려 한 게 아닐까 생각했고, 그게 교장이라고들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 혹시 맞습니까?”
“내가 몰래 키워 온 비밀 병기냐고?”
어이없다는 듯이 교장이 되물었다.
“비밀 병기가 있었으면 작년에 이미 썼을 거다.”
작년은 최악의 한 해였다.
이베카 아카데미는 라이벌인 프레이야 아카데미에게 패배했다.
교류제에서 지켜 왔던 1위를 내주었고, 친선 학생 대전에서도 패배했다.
게다가 이어진 교사 간의 대결에서도 완패하며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그렇게 내가 욕을 먹었는데 말이야.”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게 이번 일의 전말입니다, 교장 선생님.”
학생회 임원이 빠르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
이야기를 다 들은 교장은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에단 휘커스가 돌풍을 일으킬 거라곤 예상한 바였다.
면접에서 보였던 그 모습. 기사학부 학부장에게 임팩트를 줬던 그 모습에 교장은 수석 자리를 내주었다.
사실 검성이 시론에게 수석 자리를 줄 것을 은근한 말로 부탁까지 했었다. 그러나 교장은 에단에게 더 기대를 걸었다.
분명 어떤 방식으로든 새바람이 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태풍이 불 줄은 몰랐다.
교장은 결과가 심히 당황스러웠다. 이건 잘돼도 너무 잘됐다.
“그래. 고생했다. 계속 수업을 듣고 보고해 주도록.”
“그, 혹시 에단 선생님이 전공 수업을 언제쯤 맡으실까요?”
그가 슬쩍 빛나는 눈으로 물었다.
만약 예정이 있다면 가장 먼저 신청할 생각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교장은 그런 학생회 임원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학생회 임원이 그 표정을 보고 다급하게 교장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은 교장은 본래라면 두어 달 뒤에 치러져야 하는 학부모 참관 수업의 일정을 빠르게 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내 안목이 대단했다는 걸 더 어필해야겠지.”
그리고 올해 교류제는 다를 것이라고 미리 선언해 두는 것도 좋을 듯했다.
“짜릿하구만.”
크게 베팅한 도박판에서 크게 먹은 교장은 강하게 주먹을 쥐었다.
* * *
메이슨은 분명 이베카 아카데미 검술과의 망나니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저리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홀로 에단을 찾아왔다.
수업 시간에 했던 그 말.
그는 뭔가 알고 있다.
하지만 중앙도 아니고 지방의 귀족일 텐데. 어째서 이런 이야기를 알고 있는지 도저히 메이슨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 갔다.
“뭡니까, 선생님?”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는 불러 주는구나, 메이슨 옐로우드. 이거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할 판이군.”
에단이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앉아라, 메이슨. 개인 면담이라면 해 줄 수 있다.”
메이슨이 혀를 찼다.
시종일관 주도권을 빼앗기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왔지?”
메이슨은 아무런 말없이 에단을 쏘아보았다.
공작가의 후계자 3형제 중 공작의 피를 가장 진하게 이어받은 메이슨이다. 인상을 쓰자 또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무슨 의미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한 겁니까?”
“메이슨.”
에단이 메이슨을 무감정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말조심.”
순간 에단에게서 느껴지는 힘에 메이슨은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다.
사람을 압도하는 힘.
메이슨은 이런 압박감을 느껴 본 적이 있다. 바로 공작인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말이다.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몸이 굳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의미로 그런 말을 하신 거죠?”
“네 동기 부여를 위해서지. 수업 시간에 말 안 듣는 학생이니까. 수업을 열심히 들으라고 동기 부여를 해 준 거다. 그게 궁금해서 왔나?”
“후계자 얘기를 했던 게, 제 가정사를 이야기한 게 고작 제게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란 말입니까?”
“메이슨 옐로우드, 검술과가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을 테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이베카의 꽃은 검술과라지? 역대 이베카가 배출해 낸 유명한 이들은 거의 다 검술과 출신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근래 들어선 역전되고 있잖나. 마법과나 연금과도 성과를 내고 있지. 무엇보다 지금 아카데미 1등이 어디 소속이지?”
“……마법과입니다.”
“2학년이라고 들었어. 그리고 넌 3학년이고.”
에단의 말은 명백하게 메이슨을 긁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마법과에도 아주 훌륭한 선생님이 들어왔거든.”
마법과엔 대마법사의 손녀가 신입 교사로 들어왔고, 나디아 폰 체른카스텔이 있다.
나디아의 실력은 의심할 바 없이 확실하다. 그렇다는 건 마법과 학생들의 수준이 한층 더 올라갈 거라는 뜻이다.
“…….”
“네게 동기를 부여하는 이유가 뭐냐고? 하나밖에 없지 않나. 나는 검술과를 예전처럼 만들 생각이다.”
현재의 검술과는 과거의 영광에 매여 아카데미의 꽃이라고 불리고 있을 뿐이다.
실상 현재 아카데미의 꽃은 마법과였다.
“클라우디 선생님도 못하신 걸 에단 선생님이 하시겠다는 겁니까?”
“클라우디 선생님은 대단한 사람이지. 아마 나보다 빨리 마스터가 될 거야.”
에단도 순순히 수긍했다.
“하지만 클라우디 선생님에게는 단점이 있다. 바로 될 놈만 끌고 간다는 거야. 안 될 놈은 쳐다보지도 않지.”
그렇게 말하며 에단이 메이슨을 보았다.
순간 메이슨이 울컥했다.
자신이 안 될 놈이라는 것인가?
뭐라 항의하려 했지만, 에단의 말이 더 빨랐다.
“클라우디 선생님이 그렇게 뛰어난데도 검술과를 다시 최고 반열에 올리지 못한 이유가 거기에 있거든. 너무 빨리 될 놈과 안 될 놈을 결정해 버린다는 거지.”
에단이 메이슨을 가리켰다.
“클라우디 선생님은 널 안 될 놈이라고 평가했지.”
“빌어먹을.”
메이슨이 결국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었다. 그러곤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근데 난 아니야.”
그러나 에단은 무심하게 툭 내뱉듯 말했다.
“클라우디 선생님의 패착은 널 안 될 놈이라 평가한 거다. 지금 검술과의 최고 전력이 너인데 말이야. 제대로 써먹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에 가장 강한 패를 버렸다.”
“……제가 최고 전력이라고요?”
메이슨의 목소리가 떨렸다.
메이슨은 자신을 과대평가 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검술과에서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엄청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몇 명 꼽을 정도는 있다.
그런데 자신이 최고 전력이라니?
“물론 지금 너를 보고 말하는 건 아니다. 메이슨, 내 수업을 착실하게 듣도록. 그럼 꽉 막힌 네 한계를 뚫어 주마.”
에단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검술과가 다시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는.”
그 자리에 동상처럼 굳어 버린 메이슨을 두고 에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가 필요하다.”
메이슨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