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ccessor of the Fallen World RAW novel - Chapter 206
204. 개전
처음의 일격은 사기를 올리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 일부러 시각적으로 뭔가를 볼 수 있는 커다란 공격을 보여준 것이다.
더 강한 공격을 보여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건 시각적인 효과가 별로였다. 이 싸움이 얼마나 길고 잔인하게 흘러갈지 모르겠으나 전쟁 초기의 사기가 중요하다는 것은 굳이 역사나 병법의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것을 끝으로 뒤로 물러났다. 내가 할 일은 잔챙이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내 상대는 교주다. 저 시커멓게 몰려오는 변이체들을 모두 막아낸다고 해도 내가 교주와 싸워서 진다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것을 위해 나는 힘을 아껴두어야 한다.
내가 뒤로 물러나자 1차 방어선을 맡고 있는 병력이 앞으로 나섰다. 임시로 지어졌다고는 하나 마법으로 만들어낸 높이 30m 정도의 튼튼한 성벽 위에서 수평선을 검은색으로 가득 채우며 달려오고 있는 변이체들을 기다렸다.
“발포 준비! 발포 준비!”
변이체들이 가까워져 오자 1차 방어선 총사령관인 에인프라흐 공작의 명령에 따라 부관들이 큰 목소리로 명령을 전달했다.
성벽 위를 빼곡히 가득 채운 수백기의 대포들이 다가오는 변이체들을 겨냥했다. 속칭 천골포다. 한 발 쏘는데 천골드가 들어간다고 하는 어마어마한 유지비가 들어가는 무기지만, 그 효과만은 확실하다.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는 전쟁이 사라지게 만든 아노더스 최강의 무기다.
크리스티 변경백의 맡고 있던 국경의 성벽에도 3기 밖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이곳에 수백기가 모여있었다. 오늘의 결전을 준비하며 국가 단위로 인력과 돈을 쏟아부은 결과다.
이제 보통 사람의 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온갖 형상의 변이체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천골포를 맡아 가장 앞에선 기사와 병사들이 다가오는 변이체들을 보며 떨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해한다. 전생의 나라면 진즉에 도망갔을 것이다. 인간의 냄새를 맡고 광분하여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수만의 변이체들은 보통 사람이 볼 때는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너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발사 명령이 나오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드디어 에인프라흐 공작의 손이 앞을 향했다.
“발사! 발사!”
부관들이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발사 명령이 떨어지자 긴장하고 있는 천골포 담당 병사들은 발작하듯이 방아쇠를 당겼다.
쾅! 쾅! 쾅! 쾅!
대기를 울리는 굉음을 내며 수백기의 천골포가 일제히 불을 뿜으며 선두의 변이체들의 휩쓸었다. 천골포의 위력은 명불허전이었다.
선두에서 달려들던 변이체 수천마리가 일격에 사라졌다. 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뒤따라온 변이체들은 멈추지 않았다. 순수한 변이체들은 공포라는 감정이 없는 놈들이다. 천골포의 화력으로 생긴 커다란 구덩이와 동료들의 시체를 뛰어넘어 달려왔다.
상대가 반마였다면 동요했겠지만, 지금 상대는 순수한 변이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치 지구에 처음 변이체가 발생했을 때처럼 그리 강하지 않은 개체라는 것이다.
“마법부대 준비!”
공작의 명령에 따라 천골포가 재장전에 들어가는 동안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이 나섰다. 소속을 떠나 세상의 모든 마법사가 참전했다. 국가 간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마탑의 규율은 이곳에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앞에 선 마탑주를 필두로 그 옆에 선 스테이시가 이미 대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탑주의 주변으로 수백개의 마법진이 나타나며 뭔가 엄청난 것을 보여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스테이시에게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스테이시가 약한가 하면 그것은 아니다. 오히려 스테이시는 스승인 마탑주를 진즉에 뛰어넘었다.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초월의 영역에 닿았다.
시간이 부족해 초월의 경지에 닿은 힘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힘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우우우우웅!
대기가 흔들릴 정도의 힘이 모이고 있었다. 어지간한 기사나 마법사는 근처에는 다가가기도 힘든 무시무시한 마나가 스테이시의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저 먼저 갑니다!”
스테이시가 먼저 마법을 발동했다. 스승인 마탑주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느긋하게 마법을 준비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급 마법사가 펼치는 대마법이 펼쳐졌다. 내가 보여줬던 퍼포먼스 이상의 이적이 펼쳐졌다. 하늘이 반으로 갈라지고 그곳에서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덩어리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집채만 한 불덩어리들은 가까이 다가온 변이체들뿐만 아니라 광활한 대지 위를 가득 채운 변이체들에게 무차별로 쏟아졌다.
불의 비가 내리자 눈앞의 모든 것이 폭발하고 타오른다. 그런 표현이 딱 맞았다. 눈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다만 지옥불에 타오르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는 악마라 불리는 변이체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변이체들은 멈추지 않았다. 함께 달리던 동료가 타오르고 터져나간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저 앞에 맛있는 인간이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말이다.
불의 비를 피한 변이체들에게 마법사들의 일제사격이 쏟아지며 성벽으로의 접근을 차단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이었다. 아군의 사기가 치솟기 시작한다. 이거 생각보다 할 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저 멀리 열려았는 통로에서는 아직도 끊임없이 변이체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저것들은 대체 어디서 준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충분히 여력이 있어 보였다.
끝도 없이 달려드는 변이체들에게 재장전을 마친 천골포가 다시 발사되며 전방을 날려버렸다. 이미 수만에 이르는 변이체들을 처치했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래도 라이브러쉬쪽은 아직 여유가 있어보였다.
“나는 잠시 자칼에게 다녀오마.”
라이브러쉬에는 초월급에 닿은 절대자가 나를 제외하고도 세 명이나 있다. 그래서 자칼을 제멜아크 방면으로 파견해두었다.
“보아하니 그쪽은 좀 어렵겠는데?”
슬라이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알잖아?”
3년간 그 지옥 같은 전투에서도 버틴 것이 슬라이트와 자칼이다. 이 정도로 끝없이 변이체들이 튀어나오는 통로를 뒤에 두고 싸운 적은 없지만, 단순하게 많은 변이체와 싸운 적은 수도 없이 많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한번 가보려고.”
“그래 이쪽은 내가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을게.”
“무리할 필요는 없어. 너도 힘을 최대한 아껴라. 이유는 알지?”
아직은 일반적인 화력으로도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아직 몰려오고 있는 변이체들이 약하다. 더 강한 놈들이 나오리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초월급의 힘이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올 것이다.
나는 일부러 통로를 열지 않고 하늘로 날아올라 제멜아크 방면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개미떼처럼 몰려들고 있는 놈들 위를 날아가자 저 멀리에서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는 놈들이 보였다.
비행형 변이체가 나오고 있었다. 비행형 변이체는 막아내기가 까다롭다. 물론 준비는 해놨지만, 그 수를 조금 줄여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날아오르고 있는 녀석들을 향해 손을 뻗어 충전되어 있는 레이저를 발사했다. 빛의 기둥이 휩쓸고 지나가자 시커멓게 타버린 변이체 수백이 땅으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나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지나쳐 제멜아크 진영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제멜아크 진영은 생각보다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라이브러쉬쪽처럼 여유롭진 않았다.
아무래도 저쪽에는 스테이시가 광역마법으로 한번 쓸어낸 것이 컸다. 초월자 한명의 차이가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기본적인 준비는 라이브러쉬나 제멜아크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천골포나 방어진의 축성은 이렇게 될 줄 알고 제멜아크쪽이 더욱 신경써서 준비했다.
천골포가 불을 뿜고 그사이에 마법사들이 광역마법을 발사하고 그 화력을 뚫고 들어오는 놈들은 성벽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이 정리한다.
가장 선두에 서서 활약하는 것은 역시 제멜아크의 7성 기사들이었다. 자칼은 아직 대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성벽에 내려서기 직전에 또 한 번 사기를 북돋기 위한 작은 퍼포먼스로 수천발의 오러탄을 발사해 마치 스테이시가 사용했던 광역마법처럼 전장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제멜아크 진영에서 환호가 터져 나올 때 자칼의 옆으로 내려섰다.
“괜찮을 것 같아?”
자칼이 괜찮냐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아직 검 한번 휘두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니까.
“이 상태라면 사나흘 정도는 괜찮겠어.”
이제 예전의 그 소심했던 자칼은 없다. 자칼은 언제나 냉철한 상태를 유지하는 무인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알지? 이미 비행형이 나왔더라.”
자칼도 3년간 변이체를 질리도록 상대했다. 변이체들이 행동 패턴이 어떤 식인지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조금씩 돕는다는 전제하에 1차 방어선이 일주일 정도는 버티겠어.”
그와 동시에 근처에 있던 보좌관을 불러 비행형이 올 것이라는 말을 전달했다. 보좌관이 어딘가로 빠르게 마법 통신을 전달했다.
“그 안에 끝나기를 바라야겠어. 저쪽 총 전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좀 답답하네.”
피체둘라가 저쪽 세상에서 대체 얼마나 변이체들을 준비해놨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좀 답답하게 느껴졌다.
자칼과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성벽 위로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비행선들이었다. 내가 지구에서 가져온 기술로 인해 가장 큰 발전을 한 것이 바로 비행선이었다. 기존의 배에 가까운 형태에서 전투기에 가까운 형태로 진화한 비행선에는 공중전에 특화된 무기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최고 속력은 몰라도 기동성에는 지구의 전투기보다 뛰어났다. 인류가 준비한 최신의 무기가 비행형 변이체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한 것이다.
쐐애애액!
대기를 가르며 고속으로 날아가는 비행선을 보며 병사들이 환호를 질렀다. 아직 약한 변이체들을 상대로는 충분한 전력이었다.
“그럼 수고해라. 도움이 필요하다 싶으면 바로 연락해.”
“그럴 일은 없을 거야.”
예전의 자칼이었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오만한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변한 자칼도 싫지 않았다.
격렬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나는 다시 통로를 열었다. 라이브러쉬 진영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나는 지구로 들어갔다.
아노더스의 대격변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지구의 영지는 평화로웠다.
“바쁘지 않은가?”
인공 연못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있던 광검제가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다시 낚시찌로 눈을 돌렸다.
“저쪽 전력은 얼마나 됩니까?”
“나도 잘 몰라.”
알면서 말을 안해주는 것인지 진짜 모르는 것인지 심드렁하게 말하는 광검제의 속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지구에서야 동료들이 많이 있었고 아노더스에서 막아낸 첫 번째 침공에서도 동료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두 번째는 단신으로 피체둘라의 침공을 막아낸 광검제다. 그것을 생각하면 이런 모습을 보고도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는 어땠습니까?”
“질리도록 많이 몰려왔지. 잡놈들은 1차 침공 때 더 많이 몰려왔어. 센놈들은 2차에 더 많았지.”
“그때그때 다른겁니까?”
“저쪽은 저쪽 나름대로 사정이 있지 않겠어?”
저쪽 사정이야 내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냥 인간이었을 때의 광검제는 모르지만, 지금의 광검제는 분명 뭔가 알고 있을 것만 같은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그러지 말고 뭐라도 좀 알려주시죠. 여기 따지고 보면 제가 만든 영지 아닙니까?”
“미레이가 준 지식과 물건으로 만든 거잖아. 그리고 만든건 스테이시라는 여자애고.”
“어쨌든 주인은 접니다.”
내가 좀 뻔뻔하게 나가자 광검제는 눈을 부라렸다. 그러나 이제 저 정도는 무섭지 않다. 나를 해하지 않을 거란 것을 알고 있다. 왜냐고? 광검제는 곧 나다. 생각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얘기다.
내가 무서운 눈빛에도 물러서지 않자 광검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지금 이 싸움을 지켜보고 계신 분들이 많아.”
“내기라도 하셨답니까?”
“그 비슷할걸?”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것 같지만 광검제가 좋은 정보를 줬다.
이것은 좋지 않다. 높으신 분들이 관심이 많다는 것을 피체둘라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광검제가 알고 있다면 피체둘라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좋지 않군요.”
“그래서 포기하는 거야? 너랑 친한 애들 몇 명은 이곳으로 도망쳐와도 내가 지켜줄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광검제의 유혹에 나는 웃었다.
“감사하지만 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