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of juniors RAW novel - Chapter 9
에필로그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선하는 간신히 회의를 마치고 나와 휴식을 가졌다.
선하는 지난밤 자신을 향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울먹이던 서윤의 얼굴을 떠올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아도 들려오는 그 여리지만 사랑스러운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를 집에 두고 왔지만 꼭 결혼한 새신랑처럼 집에서 기다릴 그녀가 걱정이 됐다. 결국 그는 남은 업무를 다 끝내지 못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축 늘어진 몸으로 선하에게 안겨 잠이 들었던 서윤은 퉁퉁 부어 뜨거운 눈두덩을 힘겹게 올려 떴다.
새벽 내내 곁에 있었던 선하의 빈자리를 느끼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허리며 어깨가 욱신거려 절로 눈을 찌푸렸다.
정사가 끝난 후 그가 한동안 빨며 놓지 않았던 허벅지 안쪽은 멍 자국으로 난도질돼 있었다. 허벅지 안에 남겨진 그의 흔적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윤은 문득 침대 옆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시계를 보았다.
이제 저녁 6시. 늘 밤늦게나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니까 그가 오려면 아직 멀었겠다 싶어 천천히 방에서 나와 거실로 향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일찍 퇴근을 했는지 슈트를 입은 선하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가스레인지 앞에 서 있었다. 서윤은 느리게 그에게로 다가갔다.
“선하야.”
꽉 잠긴 목소리에 스스로 놀란 서윤이 침을 삼켰다. 선하는 힘없이 비틀거리는 서윤을 보며 그녀의 허리를 손쉽게 감아 당겼다. 그러고 보니 구미가 당기는 냄새가 난다.
“딱히 너 먹일 만한 게 없네. 장이라도 봐 올 걸 그랬다.”
스크램블드에그와 베이컨 몇 개가 프라이팬 위에서 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토스터 안에는 서윤이 좋아하는 식빵이 알맞게 구워지며 식욕을 자극했다.
서윤은 빵 위에 스크램블드에그와 베이컨을 올려 급하게 입 안으로 밀어 넣었다. 오늘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로지 체력만 한가득 쏟아 낸 탓에 입가에 소스가 묻는 것도 모르고 식빵을 크게 베어 물었다.
“천천히 먹어. 또 체하면 반나절이 고생이잖아.”
“맛있어.”
선하는 지난밤 같은 건 다 잊은 해맑은 눈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서윤을 보며 웃음이 샜다. 목덜미며, 허벅지에 온통 그의 흔적을 달고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토스트를 먹고 있는 그 모습이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워서.
토스트 하나를 빠르게 비운 그녀가 그제야 한입도 먹지 않고 그녀만 바라보고 있는 선하를 눈치챈 건지 멋쩍게 입가를 닦았다.
선하는 자리에서 일어서 그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는 서윤의 손을 끌어 무릎에 앉히곤 헐렁이는 상의 안으로 손을 넣었다. 갑자기 따뜻한 몸 안으로 들어온 차가운 촉감에 서윤의 몸이 펄떡 뛰었다.
“한 번 더 할까? 배도 채웠겠다.”
선하는 느긋한 음성으로 서윤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안… 돼. 목 다 쉬었단 말이야.”
“익숙해져 가는 거지. 뭐든 배워야 느는 거잖아. 안 그래?”
사악하리만치 짓궂게 웃으며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 또한 농담인 듯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지난 밤 오래도록 시달린 그녀를 걱정하는 건지 가슴을 주무르는 손엔 크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 으응. 나 힘들어. 참, 그보다.”
서윤은 그가 잊었을까 봐 지난 새벽 그녀의 귀에 속삭였던 그 약속을 재차 확인했다.
“내일 가는 거 맞지?”
“그래.”
늘 했던 것처럼 그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서윤은 그가 만지면 만지는 대로 얼얼한 가슴을 붙잡았다.
“하으… 아파….”
“이제 입으로 해 준다고 안 해?”
어젯밤, 친구들과 방 하나를 두고 다급한 마음에 내뱉었던 말을 잊을 리 없는 그가 물었다.
“안 해.”
“그럼 내가 해 줘?”
“그, 그것도 싫어.”
“다 할 수 있다고 하더니. 그냥 해 본 말이었어?”
“…그냥 …해 본 말 아냐.”
뭐든 잘할 수 있다고 말은 던졌지만 피로한 몸은 의지만큼 따라 주지 않았다. 그래서 더 던지지 못하고 서윤은 고민과 갈등만 깊어지고 있었다.
머리맡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의아해 고개를 들었다.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던 그가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
Rrrrrr
서윤은 외출 준비를 모두 마치고 집 안에서 빙글빙글 돌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선하였다.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가 사무치게 다정했다.
– 준비는 다 했어?
“응. 기다리고 있어.”
– 곧 집 앞이야. 클랙슨 울리면 나와.
어두우니까 절대 먼저 집 밖으로 나와 기다리고 있지 말라는 그의 당부가 이어졌다.
챙길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서윤이 문밖에서 빵빵! 하는 도착 신호를 듣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밤 드라이브도 신이 나는데 오늘따라 더 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그가 환하게 웃는다.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그녀답지 않게 먼저 쪽, 하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라면 어디를 가든 그녀를 기쁘게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행선지 같은 건 상관도 없을 만큼 그녀의 옆에 앉아 있는 이 남자가 좋기도 했으니까 묻지 않았다. 피곤하면 도착할 때까지 눈 좀 붙이라고 했지만 서윤은 가는 동안 그의 한 손을 잡고 있었다.
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녹음이 푸르른 이곳은 여전했다.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다소 서늘한 공기에도 옆에 있는 사람 때문에 행복한 것도 여전했다.
어릴 적, 사랑하는 할머니와 아끼는 친구들과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내내 시끌벅적한 이 거리를 누볐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도 만났다. 서윤은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놓고 먼저 나무들 사이를 빠르게 걸었다.
서윤은 추억 사이를 걸어 거리의 끝에 닿았다. 그곳엔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집이 있었다.
그녀가 손에서 떠나보냈던 그녀의 집을 그가 그녀에게 선물했다.
서윤은 천천히 뒤를 돌아 선하를 마주 보았다.
언제나 늘 지금처럼 그녀의 곁에 있어 주었던 선하를.
커다란 나무 아래에 서 있는 선하는 달빛을 받으며 미소를 짓고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 손을 뻗는 선하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너른 품으로 안겼다.